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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청정하면 불보살님과 신중님의 가피가 따릅니다. 초하루 신중기도 법문중에서 도량청정무하해 삼보천룡강차지 아금지송묘진언 원사자비밀가호(道場淸淨無瑕穢 三寶天龍降此地 我今持誦妙眞言 願賜慈悲密加護). 어디서 많이 듣던 게송이죠? 어디서 들었나요? 천수경에 있는 내용입니다. 도량을 청정히 하여 티끌이 없으면 불법승 삼보와 ‘천룡’, 이거 신중님을 얘기하죠, 신중님들이 함께하시며, 묘한 진언을 지성하면 비밀히 아주 은밀하게 여러분들을 가호하신다고 하는 내용입니다. 이 내용을 보면 청정히 해야 된다, 그래야 만이 불보살님과 신중님의 가피를 받을 수 있다하는 전제조건이 따르고요. 또한 묘한 진언을 지송하면 비밀히 가호하신다, 라고 하는 겁니다. 그냥 무작정 무댓뽀로 하면 부처님이 가피를 주시는 것이 아니고 이러한 조건하에서 부처님의 가피와 신중님의 옹호가 따른다, 라고 하는 거죠. 아시겠어요? 또한, 여기서 도량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절처럼 부처님을 모신 도량이 되겠습니다만 본래 의미의 도량은 우리 마음의 도량, 또 우주의 도량 이렇게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도량이 청정해야 된다는 건 부처님을 모시는 내 마음의 도량이 청정해야 된다는 것이고, 또한 이 사는 세계가 청정해야 된다는 것이고, 이차적 의미는 부처님을 모신 이 도량, 승보(僧寶)가 같이하는 수행의 도량, 즉 참좋은우리절, 이 도량이 청정해야 된다, 이러한 의미가 되겠습니다. 절에 보면 사천왕문이 있고 금강문이 있고 전부 이게 신중님들이잖아요. 이렇게 문이 있는 것은 도량에 들어서는 여러분들의 마음을 청정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들 제가 한번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왜 불보살님이 계신데 또 신중님이 계시고, 또 뭡니까? 나한님이 계시고, 이렇게 신앙해야할 대상이 많아 가지고 골치 아프게 만드나. 그죠? 이게 뭐 절에서 돈 벌려고 하는 수작이냐. 예를 든다면 신중님 날도 만들어 놓고 그날만 오면 안 되니까 관음제일도 만들고 지장제일도 만들어 놓고 이렇게 종목을 달리해가지고 골고루 해서 돈을 내라 이런 것이냐. 어떤 의미 같아요? 뭣 땜에 그런 거 같아요? 신중님과 불보살님의 차이는 딱 한가집니다. 한가지로 얘기 할 수 있어요. 자비심이 있느냐 없느냐 그 차이입니다. 불보살님은 차별 없이 일체중생을 제도합니다.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지옥에 간 중생이나 아무리 못된 중생이나 그 무슨 다른 종교를 믿는 중생이나 어쨌든 간에 차별 없이 모든 중생을 다 구제하신다는 거죠. 근데 신중님은 그렇지 않다, 신중님은 불법을 옹호하고 마음이 청정하고 기도를 열심히 하고 이랬을 때만 옹호를 하신다, 이겁니다. 왜냐하면, 불보살님은 깨달음 최후의 단계, 깨달으신 분, 혹은 깨달음 바로 전 단계에 있으신 분이고, 신중님들은 여러분들 불교의 우주관에서 말씀드렸듯이 복(福)을 잘 닦아서 우리보다 훨씬 많은 능력을 가지고 좀 더 나은 세상에 태어나신, 그런 신들로 불법을 옹호하는 분들이다. 깨닫지는 못한 존재라는 겁니다. 그래서 좋고 나쁜 호불호를 따진다는 겁니다. 내가 좋은 대상은 옹호를 하되 그렇지 못한, 기준에 벗어난 대상들은 벌을 준다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유달리, 신중기도라던가 산신기도, 나한기도 이런 기도를 할 때는 유달리 까다롭게 뭘 따지잖아요. 그런 이유가 그 호불호를 따지는 그 기도 대상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기위해서 그렇습니다. 기도를 하다보면 흔히 마(魔)가 끼게 됩니다. 신심을 내다가도 아휴~ 내가 이렇게 신심을 낸다고 해서 부처님이 과연 옹호를 해 주실 것인지 가피를 주실 것인지 부처님이 과연 있기나 한지 화엄성중님이 있기나 한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죠. 그런 생각을 하게 돼요. 신행하다 보면 당연하게 일어날 수 있는 생각입니다. 그렇게 기도를 열심히 하는데, 그렇게 내가 이렇게 절에 뻔질나게 왔다 갔다 하는데, 도대체 왜 나에게는 가피를 안주시는지. 소원하는 바를 들어주지 않는 것인지에 대한 반문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금방금방 쉽게쉽게 내가 원하는 것들을 다 성취시켜 주신다면은 내가 안 믿을 이유가 없죠.
그리고 또 부처님이 이렇게 기도를 하면 금방 뿅 하고 나타나서 보여주시면 안 믿을 이유가 없죠. 그런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죠. 그래서 어찌해서 나에게는 소위 가피를 내려주지 않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고 부처님의 존재에 대한 신중님의 존재에 대한 그런 의문을 갖게 돼있습니다. 부처님의 존재를 확신하는 것은 몇 가지 방법들이 있어요. 첫 번째는 기도로 친견하는 겁니다. 기도가 지극했을 때 불보살이 화현해서 나투십니다. 의상스님이 기도를 통해서 관음을 친견했고요, 또 진표율사가 기도를 통해 미륵보살님을 친견했고, 모든 우리의 선조 큰 스님네들은 지극한 기도를 통해서 불보살님을 친견했습니다. 여러분들처럼 이렇게 무슨 뭐 대충 두루뭉실 이렇게 해 가지고는 친견하기가 어렵고 지극히, 여기서 지극이라는 것은 일심(一心)이고 일심이라는 건 귀의(歸依)고 귀의라는 것은 귀명례(歸命禮) 즉, 목숨을 바친다는 겁니다. 목숨을 바치라고 해서 부처님 보이나 안보이나 목매달아라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온몸 온 마음을 바쳐서 귀의했을 때 부처님이 여러분 앞에 나투신다, 라는 겁니다. 그걸 우리는 현전가피(現前加被)라고 그래요. 눈앞에 나타나는 가피 현전가피. 현전가피 외에도 몽중가피(夢中加被), 꿈에 나타나는 것, 또 명훈가피(冥熏加被)가 있습니다. 명훈가피, 알게 모르게 여러분들은 부처님의 광명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아! 내가 부처님의 가피를 안 받은 거 같지만 돌이켜보니까 정말 낱낱이 부처님 가피 속에 살아왔구나! 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게 명훈가피예요. 이렇게 지극히 기도했을 때 친견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두 번째,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확실히 이해함으로써 부처님의 존재를 아는 것. 말이라는 건 누가 했으니까 있을 거 아니겠어요. 말씀이라는 거. 그죠? 팔만장경이 누군가가 해놓았을 거라는 말이지. 그 누군가 해 놓았다는 그 팔만장경이라는 것이 도저히 우리중생으로는 얘기할 수 없는 내용들입니다. 그렇잖아요? 그래서 부처님이 아! 이러한 정말 심심미묘(甚深微妙)한 가히 중생이 헤아릴 수 없는 그러한 진리를 말씀하셨구나, 라는 것을 알고, 아! 부처님의 존재가 이렇게 위대한 거로구나 확실히 존재하시구나, 이렇게 아는 방법입니다. 우리 불교대학을 통해서 불법(佛法)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나면 아! 정말 부처님의 존재가 이런 것이었구나! 특히나 타종교를 믿다가 오신 분들은요 정말 비교될 수 없는 교리(敎理)의 차이에 의해서 정말 확신을 갖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부처님말씀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또 주야장창 이렇게 부처님말씀을 얘기하는 도량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만날 듣는 사람은 또 그 소리가 그 소리겠지……. 한 번도 정말로 정말 그 폐부 깊숙이 다가오게끔 간절한 마음으로 들은바가 없으니까 또 그 소리가 그 소리겠지……. 그러고 안변해. 그저 만날 하는 소리겠지 하고 타성에 젖어 있어요. 그러니까 부처님을 친견하지 못하고 부처님이 계신 것을 확신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부처님의 존재를 확신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분이 직접 부처님처럼 깨닫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원력을 세우셔야 됩니다. 원력이 뭐냐면 내가 꼭 이 생애는 머리를 깎고 수행자가 안됐지만은 이렇게 이 법복을 입는 것이 그냥 그렇게 뭐 한번 입고 안 입고 이렇게 가벼운 것이 아니에요. 이렇게 입음으로서 이 인연공덕이 있어요. 이게 수행복이잖아요. 이 인연공덕의 다음에는 꼭 수행도량에 태어나고 수행자가 돼서 태어난다, 라는 겁니다. 이게 그런 인연을 짓는 거예요. 음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도 가능한 한 이 도량에 오실 때는 때빼고 광내지 말고 법복을 딱 준비해서 입고오시는 것이 정말 업장을 소멸하고 내생에는 불법인연을 또 만나고 부처님도량에 태어나고 수행자가 되고 궁극에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또 미래세에는 미륵부처님 세상에 태어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겁니다.
허튼소리가 아니에요. 이 유니폼이라고 하는 것이 뭡니까. 유니폼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면 현대면 현대, 아시아나면 아시아나, 그 유니폼이 다 있잖아요. 그 유니폼을 통해서 마음을 일으키는 거잖아요. 그래요, 안 그래요? 군인이 군복을 입는 이유는 그 군복을 입음으로써 내가 군인이다, 적군을 물리쳐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거잖아요. 근데 군인이 군복만 딱 벗어던졌다 하면은 그냥 개차반오분전이 되잖아요. 이유가 바로 그런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수행복을 입는 이런 유니폼을 입는다는 것은 그 만큼 우리마음을 뭔가 다잡는다는 것이고 인연공덕이 다음 생 까지 간다는 거예요.
참 중요한 겁니다. 극명하게 얘기하면 우리 스님 네들이 승복을 입잖아요. 만약에 승복을 안 입고 사복을 입고 다닌다고 생각을 해보세요. 그럼 이거 완전히 그냥 그러지 않겠어요? 그만큼 이 승복이라는 것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웬만하면 여러분들도 법복을 입고 사는 것이 더욱더 업장을 소멸하고 수승한 세계로 나아가는 지름길입이다. 지금까지 부처님을 친견을 하는 방법들을 말씀드렸는데, 그럼 왜 부처님을 친견하지 못하는가? 그 이유는 이미 여러분들에게 게송으로 얘기했어요. 마음이 청정하지 않으니 신중님이 옹호를 안 하는 것이다. 또 밀가호, 비밀스런 진언을 내가 암송하고 그렇게 간절히 지송했을 때 또한 비밀스런 가호가 있게 되는 것이다. 마음이 청정하려면 전제조건으로 기도하고 수행해야 합니다. 불법이 무엇인지 정확히 바르게 알아야합니다. 실천해야 합니다. 대한불교 조계종 참좋은 우리절 회일스님 법문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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