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그마한 체구에 다부진 몸매를 가진 조용호는 올해로 스무살. 저그유저인 조용호는 마치 ‘황소’를 연상시키는 ‘울트라리스크’ 유닛을 많이 사용한다. 때문에 닉네임도 ‘목동저그’이다.
“학교에선 너나할것없이 ‘스타’가 화제였죠. ‘스타붐’으로 교내가 떠들썩하던 중학교 3학년 때 친구들과 유즈맵으로 처음 ‘스타크래프트(이하 ‘스타’)’를 시작했습니다.”
2000년, 중학교를 졸업한 조용호는 지루하고 따분한 학교생활이 싫어 가출을 결심했다. ‘게임’이 좋아서가 아니라 단지 ‘학교’가 싫어서였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교복대금과 학원비 등을 모아 50여 만원의 가출자금(?)을 마련해서 옷가지를 챙겨 집을 나섰다.
부산에 있다가는 얼마 못 가 아버지께 잡힐 게 뻔했고 평소 알고 지내던 형이 있는 ‘인천’으로 향했다. 예전부터 어느 정도 계획하고 있던 ‘준비된 가출’이라 별다른 죄책감이나 두려움은 없었다.
‘인천’에 도착한 조용호는 아는 형의 도움으로 자그마한 자취방을 구했다. 당시 그의 목표는 많은 돈을 벌자는 것. 중국집 배달원 일자리를 구했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기까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있었다. 그는 무료한 시간도 때울 겸 동네 PC방에서 게임을 즐겼다. 그의 실력을 알아본 아는 형의 도움으로 근처에서 PC방을 운영하는 사장을 소개받았고 그 사장이 지금의 매니저다.
“제 실력을 높이 평가해주니 게임 할 맛이 났어요. PC방 반지하 방으로 거처를 옮기고 게임을 시작하게 됐죠.” 중국집 배달 일을 하지 않아도 매니저의 도움으로 생활고를 걱정할 일은 없었다.
TV에 자주 얼굴 비추는 게 효도
조용호의 가족은 아버지와 두 명의 누나, 이렇게 넷이다. 어머니는 그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를 대신해 집안 일을 도맡아 온 큰누나는 조용호에게 어머니 대신이었다. 이런 사정을 알고있는 매니저와 팀원들은 조용호를 설득시켰고 그는 가출 7개월만에 부산으로 내려가 가족들과 재회했다.
심하게 꾸짖으실 줄 알았던 아버지는 그를 반갑게 맞아 주셨다. 조용호는 아버지께 프로게이머를 하겠다며 허락을 구했고 검정고시를 준비한다는 조건 하에 허락을 받아낼 수 있었다.
2001년 8월. 조용호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켰다. 4개월 간 준비 끝에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그 이후론 마음 편히 게임을 할 수 있게 됐다.
“언젠가 아버지께서 제게 전화를 하셨는데… 아버지와 전화통화를 해본 게 3년만이었어요. TV에서 절 보셨다고 앞으로도 열심히 하라는 격려의 전화였는데 원래 무뚝뚝하고 표현을 잘 하지 않는 분이시라 코끝이 찡해지더라고요.”
아버지는 그가 어렸을 때부터 TV를 보며 “저들이 TV에 얼굴을 비추기까지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해야하는지 아느냐”며 “무엇을 하든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고 늘 말씀하셨다.
그런 당신의 아들이 TV에 나오자 자랑스러우셨던 것이다. 이제 조용호는 아버지께 걱정거리만 안겨주는 가출한 아들이 아니라 동네를 다니며 자랑할 만큼 훌륭한 아들이 된 것이다.
이제는 자랑스러운 아들
조용호는 개인적으로 인간관계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 그에게 고등학교 시절의 추억이 없다는 건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고향인 부산을 내려가도 친구라고는 중학교 때 친구들 몇몇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프로게이머 생활은 나의 학창시절과 맞바꾼 소중한 제 인생입니다. 그래서 후회하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방황하면서 제 나이에 하기 힘든 돈벌이도 해봤고, 저 밑바닥 인생도 경험해 봤습니다. 이젠 ‘프로게이머’로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일만 남았습니다.”
2002년 작년 한 해 무서운 속도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그는 어느 해보다도 찬란한 2003년을 열어갈 포부로 가득 차 있다.
이제 그에게 주어진 일은 2등이 아닌 1등으로 스타리그를 정복하는 일이다. 스타리그 최초의 저그우승을 조용호에게 기대해 본다.
출처: Striker_w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