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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 4-5. 에 녹색당 농업먹거리 특위 주최의 농민당원 대회가 열린다. 손수건 한 장씩을 참가자 분들께 드리기로 했다.
위 사진이 그것인데 '쌈지농부' 대표이자 농특위원이신 천호균당원님께서 협찬 해 주신 것이다.
오래 전에 쓴 손수건 주제의 글 올린다.
여러 해 전에 어머니를 모시고 대전에서 하는 어느 결혼식에 갔을 때 일이다. 어머니 말동무 삼으려고 우리 집에서 몇 달째 공부하고 있던 학생 한 사람도 내 트럭에 태워 갔었는데 정작 결혼식장에 가서 보니 아는 사람이 제법 많았다. 내 중심으로 생각하자면, 어머니 말동무가 많이 오셨던 것이다.
그분이 세속적으로 유명한 사람은 아니고 생명평화운동을 오래 하셨고 사회복지사업도 고생고생 하며 해 오신 분이라 정작 혼례를 올리는 신랑 신부는 모른다 해도 결혼식장에는 그 분 인연으로 그쪽 분야의 사람들이 많이 온 것이다.
결혼식이 끝나고 밥 먹는 시간이 되었다. 고급 채식뷔페에서 출장식단을 차렸는데 진풍경이 벌어졌다. 뷔페식이니 자기가 먹을 만큼만 덜어 와 먹으면 될 텐데 자기가 먹을 양도 모르는지 하나같이 음식을 남겼다. 남은 음식그릇에다 냅킨을 쑤셔 넣고 일어선 사람에다 쓰던 수저를 반쯤 남은 밥그릇에 꽂아 둔 사람, 무슨 속셈인지 남은 음식을 긁어모아 한 그릇에 잡탕을 만들어 놓고 일어 선 사람 등 각양각색이었다.
어머니 휠체어를 밀고 좀 늦게 식탁으로 이동한 나는 남들이 남기고 일어서는 음식들을 빠른 동작으로 걷어 와서 종류별로 우리만의 식탁을 차렸다. 유기농 채식요리가 얼마나 정갈하고 맛있는지 아는 나는 그 음식들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것을 마냥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이른바 '푸드 마일리지(음식 이동거리)' 운동도 하고 법륜스님이 시작한 빈 그릇 운동 서명에도 참여하면서 나는 음식을 남기면 이것이 이산화탄소를 만들고 결국 지구 온난화를 촉진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당연히 어머니나 나는 손수건으로 입을 닦고 냅킨은 한 장도 쓰지 않았다. 먹다 남은 음식보다도 음식을 버리는 짓이 더 더럽다고 생각을 한 때문이다. 같이 간 학생은 처음에는 질겁을 했지만 내 설명을 듣고는 곧 마음을 돌려 먹고 걷어 온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손수건으로 혁명을?
이산화탄소는 지구온난화의 대표적인 주범이다. 에너지를 쓸 때 마다 이산화탄소는 생겨나게 되는데 에어컨이나 전기 히터만 에너지가 아니다. 밥 한 상에도 에너지가 듬뿍 들어 있다. 생산과정과 유통과정은 물론이고 조리과정에 에너지가 소모된다. 어디 이 뿐인가. 음식물 쓰레기 처분하는 데에 엄청난 에너지가 소비된다. 음식물 쓰레기는 분리수거가 잘 안 되는 경우 대부분 소각되는데 그 과정에서는 맹독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이 나온다.
지구 온난화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지난 11월 9일에 국제에너지기구 '아이이에이(IEA)'에서 나온 보고서가 웅변해 주고 있다. 이 국제에너지기구에서는 지금 상태로 가면 딱 5년 뒤에는 인류의 안전을 보장하기 힘들게 될 뿐 아니라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된다는 연례 조사연구 결과를 내 놓았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450피피엠 미만이어야 인류의 생존이 가능한 데 현재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390피피엠에 달한다. 그러나 에너지기구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2015년이면 위험 한계치인 450피피엠의 90%에 달하고, 2017년에는 한계치에 도달할 것이라고 추산하고 있다. 지난해 전 세계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전년도에 비해 5.3% 증가한 304억 톤으로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고 한다.
그런데 웬 손수건이냐고 반문하는 분이 계실지 모른다. 손수건으로 무슨 혁명을 한다는 것이냐고 말이다. 사정은 이렇다.
도시의 빌딩과 고속도로 휴게소에 가면 손 씻고 나서 말리는 열풍기가 있다. 일회용 손 휴지를 걸어 둔 곳도 있다. 무심코 열풍기 밑에 손을 넣고 비벼 가면서 말리는데 얼마의 에너지가 소모될까? 손 휴지 두 세장 뜯어 쓰는데 얼마의 나무가 잘려질까? 이런 생각을 해 보면 왜 손수건 얘기를 꺼내는지 알 것이다.
통계가 나온 건 없지만 모든 사람들이 손수건 한 장씩 가지고 다니면서 손을 닦는다면 절감 될 수 있는 에너지와 살아남을 나무들이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작년 9월에 나온 재미있는 통계가 하나 있긴 하다. 어느 잡지사에서 행사를 하면서 기념품으로 손수건을 나눠 줬는데 그때 나온 통계다.
우리나라 성인 인구 3500만 명이 하루 한 번 화장실에서 무심코 손 휴지나 열풍기를 쓴다고 가정하면 1039톤의 이산화탄소가 나오고 소나무 37만 그루가 필요한 양이라는 통계다. 돈으로 환산하면 2억4500만원이나 된다고 한다. 끔찍한 수치다.
에너지 중에 전기에너지는 가장 고약하다. 에너지는 원래 빛과 열과 일(역학)로 구성된다. 이들 에너지의 변환과 이동에는 손실이 생기는데 이를 열효율이라고 한다. 전기로 변환된 에너지는 이동과 보관이 용이해서 모든 에너지 원은 전기로 일차 전환을 하고 있다. 화장실 열풍기는 그 전기를 가지고 열과 바람(역학에너지)으로 또 전환을 하기 때문에 원 에너지에서의 손실(열효율)이 가장 취약하다.
손수건은 불결하지 않다
언젠가 내가 공동대표로 있는 한울연대 시천주생활위원회 회의에서 손수건 쓰기 회의를 한 적이 있다. 한 회원이 손수건은 비위생적일 것 같다고 했는데 그럴 수 있다. 젖은 손수건을 다시 접어서 호주머니에 넣으려면 왠지 께름칙한 게 사실이다. 이 문제는 손수건을 두 세 개씩 가지고 다니면 된다고 본다. 아니면 팔목에다 장식용으로 두르고 있으면 금방 말라 버린다.
식사 뒤 입을 닦거나 코 풀 때, 손과 얼굴을 씻고 닦을 때 사용하는 에너지와 나무를 생각 한다면 이런 수고는 당연하지 않을까 싶다. 수고 없이 개선될 생활은 없다고 봐야 한다. 불편함 없이 나아지는 지구환경 역시 없다. 일정한 불편함과 수고는 도리어 사람의 건강을 돕는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지갑이나 카드를 챙겨서 외출하듯이 손수건도 필수 소지품으로 하기 위해서 핸드백이나 가방, 겉옷 몇 군데에 미리 넣어 두면 된다. 필자가 그렇게 하고 있다. 모든 지구 재앙의 근원에는 딱 한 가지가 도사리고 있다. 편리다. 인간이 추구하는 편리는 끝이 없다. 인간이 애초에 갖고 있는 여러 능력까지 도태시켜 가면서 편리를 쫒는다. 끝까지 부를 수 있는 노래 하나가 없고 외는 전화번호가 몇 안 된다. 편리한 기계들 때문이다. 스마트 폰과 네비게이션 덕분에 길 찾는 능력도 다 잃었다.
편리를 쫒는 게 지나치다 보니 지구 생태계까지 파괴하고 종래는 인간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수준까지 왔다고 보면 틀리지 않다. 편리한 용품과 편리한 장치, 편리한 사고방식은 모든 소중한 가치들을 파괴하고 있다. 편리와 신속함을 위해 자본주의 시장은 매일 매일 이를 부추긴다. 손수건 사용은 비위생적이지도 불결하지도 않다. 도리어 고결한 생태생활이라 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어쩌다 손수건을 못 챙겼을 때는 스스로를 나무라며 손수건을 또 산다. 여기저기 행사에 참여했다가 받은 손수건까지 합하면 10여개가 넘는 손수건을 갖고 있는데 색상이나 도안, 글귀가 참 다양해서 어떤 것은 방 안에 치장용으로 걸어 두기도 한다. 언젠가 선물로 받은 '대숲만다라'라는 손수건이 그것인데 이것은 빨강과 보라와 파랑색으로 만다라가 그려져 있는데 굴레와 속박의 육신관념에서 벗어나는 에너지를 표현한 것이라 한다. 내 방 문 위에 걸어두고 있다.
다른 손수건들도 하나하나가 재미있고 멋진 사연이 스며있기도 하다. 등산 가서 구입한 지리산과 설악산의 등반 안내도가 그려진 손수건은 그 당시의 기억을 새록새록 떠오르게 한다. 로고와 함께 '위기의 지구, 당신이 희망입니다'라는 글귀가 새겨진 수선재라는 명상단체의 손수건은 홈페이지 주소까지 선명하게 찍혀 있다. 이럴 때는 손수건이 유용한 홍보 수단으로도 쓰이는 셈이다.
늘 몸에 지니는 필수품이자 지구 온난화를 막는 지혜이기도 한 손수건을 이용한 홍보는 요즘 쓰이는 말로 '착한 홍보'가 아닐까 한다. 즉시 쓰레기가 되는 천연색 홍보전단이나 방송과 신문매체들에 비해 손수건 홍보는 참 좋은 발상이다.
손수건은 손만 닦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손수건의 용도는 참 다양하다. 머리에 두르면 예쁜 단장이 되고, 추울 때는 목도리로도 쓰인다. 또 없을까? 뜨거운 물 컵을 들 때 보온재로도 쓰인다. 손수건으로 상징되는 눈물을 훔쳐낼 수도 있고 재채기나 웃을 때 입 가리개로도 적격이다. 작별할 때 손수건을 꺼내 흔들어 본 적이 있다. 우리 집에 오신 손님들이 떠나는 날 재미삼아 손수건을 높이 치켜들고 흔들었더니 다들 재미있어 했다. 정서적 공감대를 만드는 소품이 되는 손수건.
언젠가 필자는 급하게 화장실에 갔다가 밑닦개로 손수건을 쓴 적이 있다.
화장지가 당연히 걸려 있을 줄 알고 들어 간 공중변소에 화장지는 없고 일은 이미 벌여버렸으니 난감하기 짝이 없는 상태였다. 그때 심정은 휴지통에라도 누군가 화장지를 함부로 쓰고 깨끗한 부위가 남은 게 있었으면 했으나 그날따라 싹 비워져 있었다. 덕분에 3천 원짜리 손수건으로 밑을 닦았으니 참 비싼 뒤처리였다. 그 손수건을 버렸냐고 묻는다면 대답을 하지 않겠다. 내 자존심이 걸린 문제니까.
장바구니 사용하기, 안 쓰는 전기제품 코드 뽑기, 점등식 멀티 콘센트 쓰기, 물 컵과 수저 갖고 다니기 등 일회용제품이나 비닐제품 안 쓰기 생활이 교양 수준이 되어 있는 현실에서 손수건 쓰기가 곁들여 진다면 시천주 생활의 폭이 그만큼 넓혀지는 것이라 할 것이다.
뜻있는 시민단체 행사장에 가면 휴대용 물 컵과 손수건을 기념품으로 주기도 한다. 지난 달 한울연대 1주년 기념행사 때도 휴대용 물 컵을 회원들에게 나눠 주었다. 손수건 한 장으로 절약되는 에너지가 얼마나 된다고 그러냐는 반문은 없을 줄 안다.
손수건으로 절약되는 에너지와 이산화탄소 감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본다. 이로 인해 우리 안에 진정한 하늘 모심과 생태 생활이 자리 잡아 간다는 사실이다. 대전의 결혼식장에 모인 많은 분들이 시민운동을 하시는 분들인데도 접시에 묻은 양념과 국물들은 물론이려니와 온전한 음식도 거리낌 없이 버리는 것은 생각과 이념이 생활화 되지 못한 때문이라 본다. 양념과 국물도 남겨서는 안 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감안해서 음식을 떠 와야 할 것이다.
한울연대에서는 몇 달 전부터 '시천주(侍天主)밥상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일곱 가지의 실천사항 중에는 음식점에서 밥을 먹을 때 남은 반찬이 있는 이상 빈 반찬 그릇을 치켜들고 추가 시키지 않는다는 조항도 있다. 그러면 둘 다 남아버리기 때문이다.
손수건은 손만 닦는 게 아니라 내 마음속에 하늘을 모시는 통로가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혁명이 별 것인가. 내 행위 하나가 지구와 그 속에 사는 모든 생명체를 살리고 제대로 하늘을 모시는 것이야말로 혁명의 첫 단추라고 생각된다.
혁명은 일상 매 순간에서 해 보고 또 해 보면서 생태 생활을 습관으로 잡아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바로 그 중심에 손수건을 두자.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인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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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신인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1660340
첫댓글 감동적인 글입니다.저는 다른 이유로 손수건을 늘 휴대하고 유용하게 사용합니다.
다만 문화충격; '그 손수건을 버렸냐고 묻는다면 대답을 하지 않겠다.' ^^;;;
그래도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