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정도의 길다면 긴 세월을 어느 해외지역에서 지낸다는 것도 그 나라와의 운명적 만남이므로 나는 어느 국가에 발령받으나 그 나라에 애정을 갖고 지냈다
사랑하는 요르단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있는 것이 안타까워 나는 주재국 정부 인사를 만날 때마다 우리의 경제발전경험을 설명하고 요르단 경제의 부활을 강조하였다
만나는 인사라고 해보았자 인구 500만의 사막국가 정부였으므로 매우 한정되어있었다
외무성인사는 대사나 정무담당참사관이 주로 상대하므로 나의 담당업무인 경제협력업무의 재무부와 상공부의 국과장들급 인사들이었다
그들에게 우리나라도 1960년이전에는 국민소득200불정도의 식량자급자족도 못한 후진국이었다 미국의 구호물자로 살림을 꾸려갔었다 그러나 1960년대 초기부터 수출주도의 경제구조만이 경제난국을 벗어나는 길이라고 정책방향을 정하고 초기에는 노동집약적인 분야 즉 섬유 봉제산업 가발 및 엑서서리 ,완구제품을 중심으로 수출산업을 일으키고 차츰 해외건설사업 등으로 확대하였으며 지금은 석유화학 자동차등 중화학공업으로 개편중임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요르단은 팔레스타인 인적자원의 교육수준이 높고 인접국가인 이락,사우디 이짚트등이 인구도 많고 시장규모도 크니 그 나라를 상대로 하는 중소기업중심의 수출산업육성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피력하였다
특히 요르단에는 훌륭한 관광자원이 많아 관광사업의 경제효과를 강조하였다
요르단에는 기독교성지와 로마시대의 유적지가 많다
영화 인디아나 죤스 배경의 신비스런 장소(페트라)도 요르단에서 촬영되었다
모세가 출에급하여 홍해를 건너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찾아가는 40년간의 긴 여로가 요르단의 <킹스로드>다
그외에도 소돔과 고모라의 유적과 사해지역, 요단강 유역의 성지, 세례요한이 살로매와 헤롯왕에 죽음을 당한 헤롯왕 궁전과 사막온천, 여리고 성을 앞에두고 모세가 죽은 느보산 유적지등 기독교성지와 제라쉬등 로마시대 도시국가유적지등 관광의 보고가 깔려있으나 회교국의 정서상 그 유명한 유적지에 변변한 숙박시설이나 관광안내시설 심지어 표시판도 없는 것이 그때의 실정이었다
나는 그곳 관료들에게 너희나라 인구가 500만이면 가구수로는 7-8만 가구(회교국은 자녀가많음)아니냐 가령 년간 외국인관광객10만명이 1000불만 쓰고가도 너희 국민총생산의 몇퍼센트의 수준이다 (당시 이집트만해도 년간 관광수입이 3-4억불수준이었다)
호텔을 지을 돈이 없으면 미국 영국 등 큰 여행업 회사보고 투자하라고 하여 그들에게도 돈을 벌게하라 라고 숫자와 계산을 나열하며 설명하였다
그러나 그 곳 관료등은 그런 국가 경제기본정책같은 것은 왕이나 수상등이 생각할 문제지 공무원인 자신의 소관업무가 아닌데 이 친구는 지금 무슨 구름잡는 이야기하고있나 하는 태도였다
그리고 자기들은 그래도 영국이나 미국에서 공부한 경제 전문관료인데 자기들이 보기에는 올림픽을 치룬 국가라 해도 아직도 별 볼일 없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하급 외교관이 경제가 어떻다느니 이상한 얘기를 하고있다는 태도였다
다른나라 외교관은 잘 찾아오지도 않는데 자기 사무실을 방문해주어 주위 시선도 있어 미소 띈 표정을 짓고있었으나 그들의 시선은 대화 내내 허공을 헤매고 있다거나 인사치레로 가지고 간 인삼차 선물 박스만 쳐다보는 시선만 보아도 나의 말을 전적으로 흘려듣고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의 말이 끝나자 신고있는 자기 양말을 보이며 이것이 한국산 양말인데 구라파제품보다 좋다라고 화제를 돌린달지 자기가 구라파 어느 국가 무슨 제약사의 국내판매권을 가지고있는데 한국에도 어떻게 판로를 소개시켜줄 수 없느냐등 개인 사업을 말하기도 하였다
그렇지않으면 일본이나 어느 나라는 최근 이러저러한 원조를 우리애게 했는데 너희 나라는 너무 적다 (당시 우리나라의 대요르단 경제원조는 몇십만불 규모로서 이동 급수차량을 지원하였음)좀더 지원액을 늘려달라 등 그런 말로 화제를 바꾸는 것이었다
나는 주요 정책결정자도 아닌 일반 공무원인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였으나 답답한 심정이었으며 또 내 자신 장관이나 대사도 아닌 하급공무원이라는 처지가 아쉬울 뿐이었다
그런데 내가 기회있을 때마다 우리의 경제개발경험을 열심히 소개 하게된 것 아니 후세인 국왕에 대한 호감이 더욱 커진 계기가 있었다
당시 나의 아들은 초등학교2학년으로 수도 암만의 미국인 학교에 재학중이었다
하루는 학부모회의가 있다는 통지를 학교로부터 받고 참석했는데 약 20명정도의 학부모가 참석하였다
회의 도중 약간 둥뚱한 40대의 부인이 나에게 오더니 누구 아버지냐고 묻기에 그렇다고했더니 자기는 알리왕자의 영국인 가정교사라고 소개하면서 알리왕자 (당시 왕비인 noor왕비와의 아들 중 장남, 현재의 왕세자)에게 그날의 학교생활을 물으면 항상 아들과 재미있게 지냈다는 등 아들얘기만 한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