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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창세기-029 꿈 많은 소년의 시련2(창세기 39장 1-6절)
성경말씀은 창세기 39장 1절에서 6절까지 봉독합니다.
[창세기 39장]
1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그를 사니라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4 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으로 가정 총무를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 손에 위임하니
5 그가 요셉에게 자기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6 주인이 그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임하고 자기 식료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더라
기독교의 진리가 역설적인 진리다 그런 말을 하는 분이 많죠. 역설적이다..
거꾸로 되어가는 것 같고, 일이 잘못 되어가는 것 같은데 나중에 보면 그것이 잘 된, 더 좋게 된 그런 일이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 동양 사람들도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는 그런 말도 쓰죠.
화가 뒤집어져서 복이 되었다. 그런 말도 있는데 성경은 꽤 그런 사건이 많고 또 사람에 바라던 것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일이 전개되는데 결론에 가서는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는 그런 일이 더러 있습니다.
아마 이 요셉의 사건도 그런 면에서는 아주 대표적 사건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창세기 39장]
1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그를 사니라
그러면 이중으로 팔린 거죠.
처음에는 유다의 제안에 의해서 이스마엘 자손에게 팔렸고, 팔린 걸 또 한 번 더 팔아서 애굽사람에게 판 거니까, 이중으로 팔리게 된 그런 요셉의 참 시련이라는 것은 사람의 이성으로서는 정말 받아들이기 어려운 그런 고난을 겪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 39장 2절에 보면,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다.’
오늘 우리가 주목 할 부분은 이런 부분입니다. 분명히 여호와께서 함께하시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납득할 수 없는 거의 수용하기 어려운 이런 고난과 역경과 큰 시련이 있을 수 있다는 거죠.
여기 지금 이 39장 이후에 계속 보면 일이 계속 잘못되어 가는데도 성경은 끊임없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다는 거죠.
여러분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는데 형님들에게 미움을 받고, 미움을 받는데 또 꿈을 꾸고 꿈을 꾸고 또 미움을 받는데 그런 때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다는 겁니다.
함께 하시는데도 형님들에게 미움을 받아가지고 이스마엘 사람에게 팔리고 또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데도 애굽에 팔리고 그런 이야기입니다.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참 납득하기 어렵죠. 어떻게 함께 하는데 함께하면 그런 일이 안 일어나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함께 하는데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3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그러니까 보디발이라고 하는 그 바로왕의 시위대장이 볼 때도 어떤 전능한 신이 요셉과 함께 하는 것 같다하고, 이방사람의 눈에도 요셉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보일 정도로 분명히 함께하시는데도 그런 역경을 겪어 나갔다는 얘기죠.
..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4 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으로 가정 총무를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 손에 위임하니
5 그가 요셉에게 자기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은 자기가 잘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잘 될 수 있지만 자기는 어려움을 당하는데, 요셉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요셉이 섬기는 그 보디발의 집이 복을 받는다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저 생각 할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저 내가 잘 돼야 하지 않느냐? 그런 좁은 생각에 갇히기 쉬워요.
그런데 요셉은 지금 팔리고 이중으로 팔리고 또 이제 조금 있다가 보면 누명을 쓰고 감옥으로 들어가고 그렇게 하는데도 성경은 한 번도 ‘여호와께서 요셉을 떠나니 그가 감옥에 들어갔더라.’ 그렇게 한 적이 없어요.
감옥에 들어갔는데도 여전히 여호와께서 함께 하신다는 거죠.
여러분 이런 이야기가 이게 성경이야기 입니다. 일반 세상 이야기하고 달라요.
예수님께서도 그러고 이사야 선지자도 내 생각과 너희 생각과 다르다는 거죠.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다. 그 하나님은 방법도 우리와는 다르다는 겁니다.
6 주인이 그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임하고 자기 식료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더라
요셉이라는 사람이 아마 자기 엄마 라헬을 닮아서인지 용모도 아주 준수하고 아담한 그런 청년인데, 열일곱 살에 팔려가서 그가 총리가 될 때 서른 살이니까 13년 이라는 긴 세월을 그 질곡의 세월을 보내는 겁니다.
그리고 억울하게 팔리고 또 팔리고 이따가 보면 아시는 대로 누명을 뒤집어쓰고 감옥에 들어가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성경은 늘 그저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러니까 이 순전하고 정직하고 그런 성실한 하나님의 사람은 팔려가도 하나님이 함께하고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도 하나님이 함께하는 거예요.
반면에 어떤 사람은 예배당에 있어도 함께 하지 않는 사람이 있어요.
또 어떤 사람은 감옥에서도 하나님 만나는데 어떤 사람은 교회에 와도 마귀를 만나는 사람이 있다니까.. 그러니까 이게 내가 할 탓이야.
감옥에서도 천사를 만났고 하나님을 만나는데 교회와 가서 마귀를 만나면 어떡해요 글쎄..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넘어서는 그런 역설적인 이야기가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그런 이야기가 한두 건이 아니고 애굽으로 팔려가는 것이라든지, 또 아브라함이 ‘네 자손이 애굽에서 애굽사람의 종이 되어서 400년을 섬길 것이다’ 하는 것은 아주 불행을 가정하는 것이죠. 그렇죠?
아주 불행 같은데 이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이루실 뜻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항상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런 과정을 겪고 이런 과정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그 쪽을 찾아야 믿음을 가지고 그런 시련과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거죠.
7절에,
7 그 후에 그 주인의 처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8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처에게 이르되 나의 주인이 가중 제반 소유를 간섭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임하였으니
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하고 요셉이 딱 자기 신앙을 가지고 바로 서서 흔들리지 않고 그런 유혹을 뿌리치는데,
10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여러분 이럴 때 함께 있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자꾸 함께 있다 보면 문제가 터져요.
그런 건 피해야 되지, 그런 건 ‘믿습니다’ 해서 되는 게 아니라, 그런 건 피하고 도망을 가야 돼요.
11 그러할 때에 요셉이 시무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은 하나도 거기 없었더라
12 그 여인이 그 옷을 잡고 가로되 나와 동침하자 요셉이 자기 옷을 그 손에 버리고 도망하여 나가매
13 그가 요셉이 그 옷을 자기 손에 버려 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14 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도다 그가 나를 겁간코자 내게로 들어오기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15 그가 나의 소리질러 부름을 듣고 그 옷을 내게 버려 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16 그 옷을 곁에 두고 자기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17 이 말로 그에게 고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코자 내게로 들어왔기로
18 내가 소리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 옷을 내게 버려 두고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19 주인이 그 아내가 자기에게 고하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이렇게 해서 요셉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는 거죠.
20절,
20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넣으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고,
이것 보세요. 옥에 갇혔는데도 또 성경은 여호와께서 함께하신다는 겁니다.
.. 요셉과 함께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자주 드리는 말씀이기도 한데 우리가 남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은 한참 후에 할 일이고 은혜 베풀기 전에 사람이 어디 가서 은혜 받는 사람이 되어야 돼요.
은혜를 받고 사랑을 받는 사람이 돼야지, 어디 가서는 은혜 못 받는 사람이 있어요.
그 은혜 받고 사랑받는 게 인생의 출발이 참 올바른 출발은 사람이 어려서부터 은혜를 받고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돼요. 이걸 잘 못 받는 사람이 있어요.
잊어버리기 전에 내가 이 말 꺼낸 김에 말씀을 드리고 가는 것이 좋겠어요.
여러분 은혜 받고 사랑을 받는 비결은 간단합니다. 그 실천은 어렵지만 이론은 간단해요.
첫째 은혜 받고 사랑 받으려면 겸손해야 돼요. 겸손하면 틀림없이 은혜 받습니다.
여러분 성경 전체에 흐르는 진리가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는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이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예요.
성경 66권 전체에 흐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녀 노인을 막론하고 영원불변의 진리가 사람이 겸손하면 은혜 받는 겁니다.
둘째 예절이 발라야 돼요. 예절이 있어야..
기본적인 사람이 출입할 줄 안다는 말이 옛날엔 그 예절을 보고 말하는데 기본예절이 있다는 거예요.
사람이 물러설 때 알고 다가설 때 알고, 나설 때 안 나설 때 가릴 수 있는 기본 출입하는 정도의 예절이 있어야 은혜를 받고 사랑을 받고 하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그저 아무데서나 나서고 해가지고 아무데나 그저 혀를 대고 이러면 사랑 받지 못해요. 아무리 예뻐도 안 돼..
여러분 우리 사회라든지 방송이나 우리 눈에 자주 보이는 사람들 가만히 보면 얼굴이 예뻐 가지고 사랑 받는 사람은 그 몇 사람 안 돼.
얼굴이 예뻐서는 이런 게 아니고 겸손하고 그리고 예절이 있으면 사랑 받고 예쁨을 받습니다.
세 번째는 자기 일을 성실히 해야 돼요. 자기 일 성실히 안하고 남의 일 간섭하는 사람은 그 사랑 못 받아. 그거는 어디 가서 귀 싸대기 얻어맞지..
자기 일을 성실히 하는 사람, 자기 맡은 일에 최선을 다 하는 사람.
그러니까 그 세 가지만 하면 돼요. 우리가 막 천가지 만가지 조건을 다 갖혀야 우리가 사랑 받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 가지만 잘 가다듬어 봐요.
겸손하면 은혜 받는 것이고, 예절을 갖추면 은혜 받는 것이고, 자기일 성실히 하면 사랑 받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여러 곳에서 그런 사람들 만나게 되는데, 겸손하고 그리고 예절 바르고 자기 일 성실히 하는 사람들.. 여러분 이 요셉이 그런 사람 아닙니까?
자기 맡은 일에 대해 최선을 다 하는 사람. 하나님께서도 그런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는 것이고 또 그 복이나 은혜가 하늘에서 바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개 사람을 통해서 복을 받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도 거의 사람을 통해서 전달되기 때문에 겸손하고 예절 바르고 자기일 성실히 하면 틀림없이 사랑 받습니다.
요즘은 아마 사람들마다 다르지만 자기 앞집 옆집 뒷집 사람들보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이 더 가까운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그렇죠?
우리 한국에 지금 배우들 중에 정말 무슨 잘 생겨서 사랑 받는 사람은 몇 사람 안 돼.
제가 볼 때 내가 눈이 좀 높아 그러는지는 모르지만 몇 사람 안 돼.
다 사랑 받거나 인정받는 사람은 전부다 못 생겼거나 상관없이 자기일 성실히 하는 사람들이야.
우피골드버그가 무슨 미인이야? 전혀 미인이 아니거든요. 그렇지만 자기 연기에 대해서 최선을 다하니까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것 아닙니까?
우리나라 그 배우들 중에서도 뭐 전혀 생긴 것 하고 상관없이 사랑 받는 것 보세요.
여러분 그 박지성이 전혀 미남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요즘 뭐 신문에 보니까 이순신하고 비교를 하더라고 보니까..
사람들이 축구에 미쳤는지 박지성하고 이순신하고 영웅으로 같이 대접을 하더라고 보니까 평발인 것도 모르고 그냥 열심히 뛰어 다녔어. 발이 망가질 때까지 뛰어 다닌 거야. 이 사람이..
그러니까 그 생긴 것과는 상관없이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겁니다. 심지어 해외 어떤 언론도 그 박지성이를 칭찬하지 않는 언론이 없어요. 자기 그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니까..
그래서 우리가 우리 샤론교회 성도들은 남에게 은혜 베푸는 것은 그 한참 있다가 할 일이고 어디가든지 은혜 받는 사람 사랑 받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사랑 받는 사람이 남을 행복하게 해요. 여러분 사랑을 베푸는 것이 남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남의 사랑을 받아야 다른 사람이 행복하다니까. 여러분 그래요? 안 그래요?
내가 남의 사랑을 받는 사람일 때 다른 사람 행복하게 하는 거야. 이상하죠? 내가 사랑을 받데 다른 사람 행복하게 해.
내가 남을 사랑하는 것은 놔두고 우리가 먼저 사랑 받아야 돼. 사랑 받는 사람이 돼야 돼. 그러기 위해서는 겸손하고 예절 바르고 자기일 잘 하면 그러면 사랑받고 복 받는 거야.
그리고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거예요.
여러분 지금 이 요셉이 요셉은 내가 봐도 용모도 준수하고 아담하고 할 뿐 아니라 예절도 바르고 뭐 그 성실하고 조건을 다 갖추었어.
그래서 어딜 가든지 은혜를 받아요. 감옥에 가면 전옥에게 은혜를 받고, 팔려 가면 또 보디발이라는 그 애굽사람 시위대장에게 은혜를 받고, 자기 집에서는 아버지 사랑을 독차지 하고.. 그리 할 때 미움 받지 않느냐? 미움 받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사랑을 받으면 누구에게 미움을 받게 돼 있어.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으려고 하면 그건 곤란해.
하나님도 그건 잘 안 돼요. 하나님이 전능하시지만 하나님이 그리 아름다우신 분이지만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습니까? 아니죠.
여러분 저는 우리 샤론교회는 시작한지 얼마 안 되고, 또 여기 왜 왔는지 모르겠어?
여기 뭐 속아서 왔는지 끌려 왔는지 잘 모르겠는데 여기 오신다 해 가지고 그 모든 샤론교회 성도들이 저를 다 사랑한다는 것 뭐 그런 거 믿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도 그거는 잘 안 되는데 내가 감히 어떻게 모든 사람으로부터 다 사랑을 받느냐?
여러분 그리 기도 하지 말고 성경에 보면 사람들의 말에 너무 귀를 기울이지 마라. 자꾸 들으려고 하면 네 종이 너를 욕하는 것을 듣는 그런 수가 있어요.
더러는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사랑을 받을 때 미움을 받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처럼 사랑 받은 분이 없고 예수님처럼 미움 받은 분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까 더러 누가 우리를 미워 할 수 있는 거야. 그럼 미워하는 것이 뭐 기분 좋은 것은 아니지만 늘 그렇게 생각해야 해.
예수님도 사람들에게 미움 받았고 하나님도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 다 받지 못한 거야.
그리고 미움 받았다고 해서 스트레스 받고 그럴 필요 없어요.
정직하고 그리고 순전하고 예절바르고 겸손하고 하면 적어도 사랑받을 사람으로부터 사랑 받는 겁니다.
우리가 아무리 잘해도 미워할 사람은 미워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잘 할수록 더 미워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로부터는 우리가 미움 받는 것이 정상이야.
그런 사람으로부터 사랑 받으면 오히려 문제가 있어요.
그래서 이 요셉이라는 사람이 감옥에 갇혔는데 전옥에게 이 간수에게 또 사랑을 받는 겁니다.
22절,
22 전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전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겼다 했는데, 여러분 사랑 한다는 것은 일을 맡기는 겁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일을 주시는 거야. 돈을 주는 것이 아니고 일을 주는 겁니다. 교회에서도 여러분 목회자나 하나님이나 교회가 여러분을 사랑 한다는 것이 뭐냐 하면 일을 맡긴 다는 겁니다.
일을 맡기지 않는다는 거는 뭐냐? 무시한다는 겁니다.
당신은 이런 일할 능력도 무슨 재능도 실력도 없다. 그러면 일을 안 맡기는 거죠.
일을 맡겨 주는 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여러분이 교회 와서 할 일이 많고 바쁩니까? 그럼 여러분 사랑 받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직장에서나 사회에서 맡은 일이 많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 한다는 거야. 그래서 요셉은 일이 많아..
저의 주변에 어떤 분들은 맨날 바빠 그리고 늘 일이 많아요. 아무 일 없을 줄 알았는데 맨 날 바쁘다는 거야.
그래서 생각하기를 ‘아 이분은 정말 사랑 받는 분이다.’ 그래서 뭐 이곳저곳에서 항상 찾고 부르고 늘 바쁜 거야.
22 전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23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않아. 요셉에게 맡겨 두면 뭐 물어보고 챙겨 볼 것도 없어 뭐 얼마나 완벽하게 하는지 그러니까 복을 받는 겁니다.
여러분 남의 일을 잘 하지 않으면, 성경에 보면 남의 일을 잘 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 것이 생기지 않는다는 겁니다. 남의 일을 잘 해야 자기 것이 생긴다는 거야.
남을 잘 되게 하고 남을 복 되게 하고 다른 사람을 잘 되게 하면 그러면 우리가 복을 받는 것은 그 기본이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한 가지 더 나가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고 윤택하게 하고 다른 사람을 잘 되게 하면 자기가 복 받는 것은 그 기본이죠.
그래서 이 요셉이 잘 되는 것은, 요셉이 가면 요셉 때문에 다른 사람이 복을 받는 거야.
그러니까 요셉이 잘 될 수밖에..
만약에 우리가 하나님을 믿어가지고 나만 잘 되겠다 뭐 계속 그런 마인드만 가지고서는 아무 것도 되는 것이 없습니다.
교회 다니는데도 하나도 복도 못 받고 다른 사람도 유익하게 못하고 자기도 복을 못 받아.
그래서 반드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내 삶을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것인지, 내 봉사를 통해서 어떻게 다른 사람이 유익을 도모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돼요. 다른 사람을 잘 되게 하면 자기가 잘 되는 것은 기본이야.
40장입니다.
[창세기 40장]
1 그 후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 주 애굽 왕에게 범죄한지라
이 사람들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왕에게 술이나 빵 식사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왕이 정말 자기 목숨을 담보할 만한 그런 사람들에게 그런 관직을 주는 건데,
그래서 무슨 범죄했다는 것은 무슨 역모에 연루 되었는지 알 수가 없는 거죠.
2 바로가 그 두 관원장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노하여
3 그들을 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가두니 곧 요셉의 갇힌 곳이라
4 시위대장이 요셉으로 그들에게 수종하게 하매 요셉이 그들을 섬겼더라 그들이 갇힌 지 수일이라
5 옥에 갇힌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 두 사람이 하룻밤에 꿈을 꾸니 각기 몽조가 다르더라
여러분 이 꿈이라든지 이게 다양한 얘기죠.
그런데 이 꿈을 꾸기는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이 꾸고, 그 꿈은 일차적으로는 이 술 맡은 관원장 떡 굽는 관원장 이 사람들 이야기이지만, 사실은 궁극적으로는 그 꿈이 전부 요셉 이야기가 되어 버려요.
여러분 어떤 사람은 ‘아, 나는 아홉 가지 은사를 다 받았다.’ 그래요. 그런데 해 놓은 게 뭐냐 하면 아무것도 없어. 그런 사람 많아요.
뭐 신령 신령해가지고 온갖 은사를 다 받았다고 하는데 아무것도 되는 것 없이 그런 사람도 있어요. 가끔..
여기 보세요. 요셉은 이 은사 하나 밖에 없어 사실.. 꿈 해몽 하는 것. 꿈 해몽 하는 것 이 하나만 가지고도 하나님께서는 큰일을 할 수 있는 겁니다.
사람이 근본 바탕이 성실하고 그리고 또 정직하고 순전하고 하니까 단지 그 꿈 하나 해석해 주고도 한 나라의 총리가 되는 것 아니예요?
그래서,
6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 빛이 있는지라
7 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관원장에게 묻되 당신들이 오늘 어찌하여 근심 빛이 있나이까
8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컨대 내게 고하소서
그러니까 꿈 하니까 요셉이 당장 관심이 있어.
이 요셉이 어릴 때부터 꿈꾸는 데는 전문이야.
그 해석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다. 해석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거요. 하면서 청컨대 내게 고하라..
9 술 맡은 관원장이 그 꿈을 요셉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10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고
11 내 손에 바로의 잔이 있기로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노라
‘바로’라는 말은 애굽 왕이라는 거죠. 그 손에 드렸다는 거야.
12 요셉이 그에게 이르되 그 해석이 이러하니 세 가지는 사흘이라
13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의 전직을 회복하리니 당신이 이왕에 술 맡은 자가 되었을 때에 하던 것같이 바로의 잔을 그 손에 받들게 되리이다
14 당신이 득의하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고하여 이 집에서 나를 건져내소서
15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치 아니하였나이다
이왕에 술 맡은 자가 되었을 때에 하던 그 일을 다시 복직해서 그 일을 감당하게 될 겁니다 하고, 그래서 요셉이 ‘당신이 회복되거든 나를 잊지 말아 주시오. 나는 옥에 갇힐 죄를 짓지 아니했다.’ 이렇게 이야기 됐어요.
그러니까 그 떡 굽는 관원장도 가만 보니까 해석이 좋거든요. 복직 된다고 하니까..
그 떡 굽는 관원장이 나도 꿈을 꿨는데 하면서 꿈 이야기를 합니다.
16 떡 굽는 관원장이 그 해석이 길함을 보고 요셉에게 이르되 나도 꿈에 보니 흰 떡 세 광주리가 내 머리에 있고
17 그 윗광주리에 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식물이 있는데 새들이 내 머리의 광주리에서 그것을 먹더라
18 요셉이 대답하여 가로되 그 해석은 이러하니 세 광주리는 사흘이라
19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끊고 당신을 나무에 달리니 새들이 당신의 고기를 뜯어 먹으리이다 하더니
아이고! 끔찍한 꿈이죠.
20 제 삼 일은 바로의 탄일이라 바로가 모든 신하를 위하여 잔치할 때에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으로 머리를 그 신하 중에 들게 하니라
21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매 그가 잔을 바로의 손에 받들어 드렸고
22 떡 굽는 관원장은 매여 달리니 요셉이 그들에게 해석함과 같이 되었으나
요셉이 그들에게 해석함과 같이 목이 달아나 가지고 그 머리가 나무에 달렸는데 새들이 와서 그 살점을 뜯어 먹게 되는 거죠.
23절에,
23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지 않고 잊었더라
이게 또 사람이야. 그렇죠?
자기 좋으면 그만이야. 그냥.. 그 아쉽고 어려울 때 그 꿈을 풀지 못해서 그 꿈을 해석해 주고 뭐 어쩌고 했는데, 자기가 그저 회복되고 행복하니까 뭐 남이야 죽든 말든 상관없는 거야.
여러분 이게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항상 잊지 말아야 될 것은 사람들은 은혜를 잊어버린다는 겁니다. 원수는 돌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새긴다는 말이 있죠.
그냥 잊어버렸어 그냥..
여러분 술 맡은 관원장은 잊어버려도 하나님은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그런 게 믿음이라는 거야. 사람들은 우리가 은혜를 베풀어도 잊어버리고 다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자기 좋으면 자기 편하면 그냥 잊어버리는데 하나님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거야.
이런 이야기가 성경에 흐르는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이죠.
41장입니다.
[창세기 41장]
1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하숫가에 섰는데
‘만 이년 후에’ 여러분 2년 이라 하면 요셉에겐 긴 시간이죠.
이거 싸가지 없이 잊어버렸네.. 참 기가 막히겠죠.
사실은 아까 그 술 맡은 관원장 떡 맡은 관원장이 꾼 꿈을 자기들이 꾼 것 같지만, 결국은 그것이 요셉을 위한 꿈이 되는 것이고, 여기 바로 왕이 꿈을 꿨는데 이것도 사실은 결과적으로는 요셉을 위한 꿈이야.
1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하숫가에 섰는데
‘하수’라는 말은 나일강을 말하죠.
.. 하숫가에 섰는데
2 보니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3 그 뒤에 또 흉악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 그 소와 함께 하숫가에 섰더니
4 그 흉악하고 파리한 소가 그 아름답고 살진 일곱 소를 먹은지라 바로가 곧 깨었다가
5 다시 잠이 들어 꿈을 꾸니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6 그 후에 또 세약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7 그 세약한 일곱 이삭이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킨지라 바로가 깬즉 꿈이라
참 꿈이라는 것이 그렇죠. 보통..
8 아침에 그 마음이 번민하여 보내어 애굽의 술객과 박사를 모두 불러 그들에게 그 꿈을 고하였으나 그것을 바로에게 해석하는 자가 없었더라
애굽의 모든 술사, 박사, 어중이, 떠중이 다 불러 가지고, 내가 이 꿈을 꿨는데 이 꿈이 뭐냐? 하고 아무리 좀 해석을 해봐라 해도 해석을 못해요.
그래서 왕이 꿈을 꿨는데 그 해석을 못해가지고 막 소동이 나니까, 술 맡은 관원장이 그 때야 ‘아차! 꿈 하면 끝내주는 사람이 있는데..’ 하면서 이제 요셉이 기억나는 거야. 이년 만에.. 여러분 사람이 까마득히 잊어 버려요.
그리고 여러분 나이가 들면 더 자주 잊어버리죠. 나이가 오십에서 육십으로 넘어가면 그냥 잊어 버려요.
그러니까 연세든 사람들이 뭐 좀 잊어버리는 것 용서하세요. 여러분도 얼마 안가서 곧 잊어버립니다.
그러니까 이 술 맡은 관원장이 또 잊어버린 거야.
저도 보니까 저도 원래 참 기억력이 좋은 편인데 어떤 사람을 뻔히 보는데 이름이 기억 안 나는 거야.
그래서 얼마나 큰 충격이 되었는지 하루 종일 고민이 되더라고요.
그런 게 점점 자주 오면 천국 갈 날이 가까운 거야. 땅의 것은 이제 잊어버리고 먼데를 내다보는 눈이 점점 생기는 거죠.
보통 사람은 젊을 때는 가까운데 먼데 잘 보이다가, 대개 나이가 들어가면 가까운 데는 안 보이는데 먼 데는 보여요.
그러니까 좀 멀리 내다 봐라 이 말입니다. 너무 가까운데 땅만 내려다보지 말고 좀 멀리 내다보라는 뜻이죠. 그 해석을 잘 해야 돼. 꿈은 이상하게 꾸어도 해석을 잘 해야 돼.
그 요셉이 이제 꿈을 해석하게 된 거죠.
9 술 맡은 관원장이 바로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오늘날 나의 허물을 추억하나이다
10 바로께서 종들에게 노하사 나와 떡 굽는 관원장을 시위대장의 집에 가두셨을 때에
11 나와 그가 하룻밤에 꿈을 꾼즉 각기 징조가 있는 꿈이라
12 그곳에 시위대장의 종 된 히브리 소년이 우리와 함께 있기로 우리가 그에게 고하매 그가 우리의 꿈을 풀되 그 꿈대로 각인에게 해석하더니
13 그 해석한 대로 되어 나는 복직하고 그는 매여 달렸나이다
완전히 거기 족집게가 있습니다. 거기 가면 꿈 하면 그저 퍼펙트하게 해석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야. 그래서 당장 데려오라고 한 거죠.
14절,
14 이에 바로가 보내어 요셉을 부르매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낸지라 요셉이 곧 수염을 깎고 그 옷을 갈아 입고 바로에게 들어오니
15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더라
16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여러분 항상 이 사람을 보면 자기를 앞세우는 것이 아니야. 하나님을 앞세우는 거야.
지난번에도 ‘그 꿈의 해석은 하나님께 있는 거요.’ 하더니 이 왕에게 와서도 ‘그 꿈 해석은 하나님이 대답할 거다.’
내가 나를 내세우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한다는 겁니다. 이러니까 복을 받는 거야.
좋은 것은 다 하나님께 돌리고 누명은 다 자기가 뒤집어쓰고, 복은 딴 사람이 받게 하고 이런 세월을 13년간 가는데, 여러분 이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억울한 일도 한두 번 말이지 억울한 일을 계속 당하고 자꾸 당하고 하면 계속을 선을 행하다 낙심합니다.
정직하게 해 봤자 말짱 헛거다. 하면서..
그러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믿음 없는 세대가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는 겁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렇게 억울한 일이 계속되는 데도 불구하고 그 순진함과 정직함과 성실함을 굽히지 않고 한결같이 그렇게 하는 겁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복 주시려고 시험하는 과정이예요.
그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꿈에 꿨는데 말이야..’ 하고 그 꿈 이야기를 다 털어놨어. 그것도 두 번 씩이나 연거푸 꿈을 꿨거든요.
요셉이 가만히 들어 보더니 25절,
25 요셉이 바로에게 고하되 바로의 꿈은 하나이라 하나님이 그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
두 번 꿨지만 사실은 하나라는 거야.
여러분 이 해석이라는 것은 단순화 하는 거예요. 해석해서 주석처럼 해가지고 두껍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요셉은 딱 보니까 꿈을 두 번 꿨지만 사실은 하나라는 거야.
‘하나님이 그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신 겁니다.’ 하면서 여전히 이 사람이 하나님을 내세우는 거야.
26 일곱 좋은 암소는 일곱 해요 일곱 좋은 이삭도 일곱 해니 그 꿈은 하나이라
27 그 후에 올라온 파리하고 흉악한 일곱 소는 칠 년이요 동풍에 말라 속이 빈 일곱 이삭도 일곱 해 흉년이니
28 내가 바로에게 고하기를 하나님이 그 하실 일로 바로에게 보이신다 함이 이것이라
바로 이겁니다.
29 온 애굽 땅에 일곱 해 큰 풍년이 있겠고
30 후에 일곱 해 흉년이 들므로 애굽 땅에 있던 풍년을 다 잊어버리게 되고 이 땅이 기근으로 멸망되리니
31 후에 든 그 흉년이 너무 심하므로 이전 풍년을 이 땅에서 기억하지 못하게 되리이다
32 바로께서 꿈을 두 번 겹쳐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속히 행하시리니
지난번에 말씀했죠?
한번 지나가는 꿈은 그 개꿈도 있어요. 그런데 같은 꿈을 이중으로 꾸거나 겹쳐 꿨을 때는 확실함을 보중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 두 번 겹쳐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속히 행하시리니
33 이제 바로께서는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택하여 애굽 땅을 치리하게 하시고
34 바로께서는 또 이같이 행하사 국중에 여러 관리를 두어 그 일곱 해 풍년에 애굽 땅의 오분의 일을 거두되
35 그 관리로 장차 올 풍년의 모든 곡물을 거두고 그 곡물을 바로의 손에 돌려 양식을 위하여 각 성에 적치하게 하소서
36 이와 같이 그 곡물을 이 땅에 저장하여 애굽 땅에 임할 일곱 해 흉년을 예비하시면 땅이 이 흉년을 인하여 멸망치 아니하리이다
적어도 이 요셉이 14년 앞을 내다보고 준비하는 것 아닙니까? 이정도로 이제 실력자죠.
37 바로와 그 모든 신하가 이 일을 좋게 여긴지라
38 바로가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 하고
이 바로 앞에서나 누구 앞에서나 이 요셉이 항상 자기를 앞세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드러냈기 때문에 결국은 바로가 인정할 때,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사람이다.’ 이렇게 된 거죠. 이게 요셉의 선교라는 겁니다. 선교..
여러분 우리가 어디 가서 실수한 것은 전부 제 탓입니다. 어떤 사람은 뭐 실수는 지가 해 놓고 하나님이 나 보고 왜 그러는가? 그런 사람들 많아요.
내가 목회 하면서 별 희한한 사람들 많이 봤어요. 자기가 운전해서 교통사고 내 놓고 ‘하나님이 나한테 왜 그러는가?’
여러분 하나님께서 할 일 없어서 교통사고 내고 다니겠습니까? 그거는 지가 잘못한 거야.
지가 잘못했거나 상대방이 어떤 가해자가 나에게 잘못했거나 한 것이지, 하나님이 그리 한 것이 아니거든요.
잘되면 뭐 지가 잘해서 잘됐다고 하고 잘못되면 ‘하나님이 내게 왜 그러나..’ 하고 이러면 하나님 곤란하죠.
여기 요셉은 거꾸로 아닙니까? 그렇죠?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편안한 길을 주신다는 겁니다.
39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꿈은 바로왕이 꾸었지만 그것은 요셉과 만남을 이루어지게 하려고 한 것이고, 요셉과 바로 왕이 만나게 하려고 꿈은 바로 왕이 꾸었어요.
그러나 해석은 요셉이 해야 돼. 거꾸로 하면 안 되죠.
꿈은 요셉이 꾸었고 해석을 바로 왕이 해 봐. 엉망이 되는 거죠.
거꾸로 꿈은 왕이 꾸었기 때문에 요셉을 부르는 것이 아니예요?
그래서 이런 모든 시나리오의 연출자가 하나님이시죠.
그래서 결과적으로 이 모든 사건 배후에 하나님이 계신데, 결과적으로는 요셉 잘되게 하는 것도 아닙니다. 따지고 보면 하나님이 이루고 싶으신 뜻이 있다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제사 드릴 때 400년이 지나서 사대 만에 큰 민족이 되어서 나올 것이다. 그 하나님께서 이루실 뜻이 있는 거야. 거기에 동참하거나 거기에 쓰임 받는 인물이 요셉이라는 거죠.
39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40 너는 내 집을 치리하라 내 백성이 다 네 명을 복종하리니 나는 너보다 높음이 보좌뿐이니라
하면서 모든 권한을 그야말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으로 요셉을 세워서 총리가 되게 한 거죠.
41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로 애굽 온 땅을 총리하게 하노라 하고
42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목에 걸고
43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바로가 그로 애굽 전국을 총리하게 하였더라
이제 요셉 총리가 나가면 온 애굽이 엎드리는 그런 위치가 되었습니다.
44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나는 바로라 애굽 온 땅에서 네 허락 없이는 수족을 놀릴 자가 없으리라 하고
45 그가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 하고,
‘사브낫바네아’라는 말은 이집트 말인데 이것을 해석을 하면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그분이 살아있다.’ ‘살아 있는 하나님이 삶속에서 말씀하신다.’ 그런 이름을 붙였다는 겁니다.
최고의 이름이죠.
.. 또 온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그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니라 요셉이 나가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라
온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이라는 애굽 최고 미인을 주어서 가정을 이루게 했는데요, 여러분 나중에 애굽에 가면 보게 될 텐데, 여러분 그 애굽 그러면 우리가 뭐 항상 그저 안 가보고 뭐 생각 할 때는, 이집트 그러니까 사람들이 뭐 거무튀튀하고 뭐 입술이 두텁고 그냥 그 흑인들 못생긴 사람들 이런 사람들 밖에 없다. 그런 생각하죠?
그런데 사실은 가보면 깜짝 놀랍니다. 색깔은 우리보다 조금 진하죠.
그런데 남자들도 잘 생겼고 특히 여자들이 애굽 사람들은 눈매가 그리 빼어난 겁니다.
아주 얼굴 윤곽이 뚜렷하고 그 이집트 여자들이 참 예쁘게 생겼어요.
그 검기는 좀 검지만 마치 흑장미처럼 생겼습니다. 길가에 있는 애들을 봐도, 길가에서 그냥 ‘원달러! 원달러!’하고 달라고 하는데, 그런데 참 예뻐요.
그리고 대개 보면 세수를 몇 년도에 했는지 전혀 구별이 안 되고 목욕을 평생에 해 봤는지 안 해 봤는지 그렇게 해놔도 그리 예쁜데 저걸 깨끗이 씻어서 잘 다듬어 놓으면 얼마나 예쁠까 그런 생각이 나요.
그런데 냄새가 나요. 노랑 냄새 비슷한 게.. 고기를 먹어서 그런지 냄새가 나는데 그래도 참 예쁩니다.
그런데 요셉이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이라는 애굽의 최고미인을 아내로 맞이했다는 겁니다.
46 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 세라 그가 바로 앞을 떠나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
그러니까 17세에 팔려가서 약 13년간을 그런 질곡의 날을 보냈는데 그 모든 과정 속에 하나님 함께 하셔도 어려운 일도 있고, 누명도 있고 그렇게 하셨다는 거예요.
47 일곱 해 풍년에 토지 소출이 심히 많은지라
48 요셉이 애굽 땅에 있는 그 칠 년 곡물을 거두어 각 성에 저축하되 각 성 주위의 밭의 곡물을 그 성중에 저장하매
49 저장한 곡식이 바다 모래같이 심히 많아 세기를 그쳤으니 그 수가 한이 없음이었더라
그래서 7년 동안 풍년들 때 소출이 얼마나 많은지, 여러분 그 이집트에 가면 나일강 하구에 이렇게 삼각주가 있어요. 뒤집어 진 삼각주 이렇게 밑이 좁고 위가 벌어진 그런 삼각주가 델타라고 그러죠. 델타..
원래 델타는 위가 좁은 삼각형을 델타(Δ)라 하는데, 나일강 하구에 삼각형을 뒤집은 모양의 삼각주가 있습니다.
나일강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흘러서 올라옵니다. 나일강은 그 델타 지역이라는 고센 평야에 가면 사람 한길이나 두길을 파도 돌이 없어요. 돌이..
이디오피아에서 시작해가지고 약 3천 킬로미터 되는 강이 나일강이 흘러오면서 그 위쪽에서 퇴적토를 계속 실어다가 그 지중해하고 나일강이 만나는 그 지역에다 이 퇴적토를 쌓아서 그 삼각주를 만드는데 얼마나 비옥한지 유럽의 곡창이라고 할 정도로 곡식이 많이 났어요.
원래 이 고센 평야를 유럽곡창 다시 말하면 애굽의 양식을 가지고 유럽 사람을 다 먹여 살리는 거예요. 대개 이 알렉산드리아나 포사이드에서 양곡을 가득히 실은 배가 로마로 건너가서 유럽을 다 먹여 살리는 그렇게 비옥한 땅입니다.
거기 7년 동안 연거푸 계속 이제 풍년이 들었다는 거죠. 소출이 심히 많아가지고 해마다 곡식을 저장을 합니다.
50절 보세요.
50 흉년이 들기 전에 요셉에게 두 아들을 낳되 곧 온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이 그에게 낳은지라
51 요셉이 그 장자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로 나의 모든 고난과 나의 아비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장자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는데, 므낫세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
하나님이 나로 나의 모든 고난과 나의 아비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그 ‘므낫세’라는 말이 ‘잊어버리자, 잊어버리게 하시는구나, 그런 쓰라린 마음의 상처를 가시게 하는구나.’ 그런 뜻이예요.
나중에 이 창세기 끝날 때쯤 가면 요셉이 큰아들 이름을 므낫세라고 지은 것을 후회 했을 거야.
여러분 우리가 보통 설교하는 분들이 뭐 요셉이 팔려갔어도 형님들 원망 하지 않았다. 그런 말을 원망했다는 소리 없으니까.. 요셉을 미화 한답시고 자꾸 그런 말을 하는데, 그 거짓말입니다.
여러분 여기 므낫세라는 이름을 보면 형님들 원망하지 않은 게 아니죠. 정말 한창 17살 그럴 때 엄마도 없는 그 아이를 갔다 형님들이 팔아가지고 이중으로 팔려가지고 그 누명을 쓰고 감옥 들어가고 할 때, 여러분 그 요셉이 신도 아니고 사람인데 왜 요셉이 원망하지 않았겠어요?
여기 ‘나의 모든 고난과’ 할 때, 이 고난이 무슨 고난이겠어요?
어머니를 일찍 잃어 버렸는데 아버지 슬하에서 또 팔려가지고 이중으로 또 팔려서 감옥 들어가고 하는 것이 다 고난들인데, 그 애굽의 총리가 되고 애굽의 최고 미인 아스낫과 결혼을 하고 거기서 옥동자 둘씩이나 낳고 이렇게 하니까 그때서야 잊어버리게 하시는구나 하면서, 온 고난을 잊어버리게 하시는구나 하는 그런 말이겠죠.
속으로 참 그런 가슴 아픈 그런 원망이 있었지만 그 한풀 가셨다는 그런 얘기고 더 나아가서는 이 모든 일들이 사람들이 한 것이 아니고 형님들이 한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하셨다는 그런 결론이 날 때는 므낫세라는 이름 지은 것을 후회했을 거예요.
므낫세라 할 것이 아니고 이 모든 일을 하나님이 하셨구나 하면서 기념비를 세우거나 잊어버릴게 아니라, 그 힘들었던 그런 일들 잊어버리자 그런 말들을 하는데,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걸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도 교훈이 있다는 말이야.
우리가 다 헤아릴 수 없는 교훈들이 있다는 거죠.
그 다음에,
52 차자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로 나의 수고한 땅에서 창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
53 애굽 땅에 일곱 해 풍년이 그치고
54 요셉의 말과 같이 일곱 해 흉년이 들기 시작하매 각국에는 기근이 있으나 애굽 온 땅에는 식물이 있더니
55 애굽 온 땅이 주리매 백성이 바로에게 부르짖어 양식을 구하는지라 바로가 애굽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요셉에게 가서 그가 너희에게 이르는 대로 하라 하니라
56 온 지면에 기근이 있으매 요셉이 모든 창고를 열고 애굽 백성에게 팔새 애굽 땅에 기근이 심하며
55 애굽 온 땅이 주리매 백성이 바로에게 부르짖어 양식을 구하는지라 바로가 애굽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요셉에게 가서 그가 너희에게 이르는 대로 하라 하니라
자, 풍년만 계속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인생을 살아 가다가 맑은 날만 계속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그런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리 되는 게 아니야.
사람들이 풍년만 계속되면 아마 하나님도 안 찾을 거야. 그리고 갠 날만 계속 되면 좋을 것 같지만 갠 날만 계속 되면 사막이 됩니다.
오늘도 아침에 출발하는데 비가 처음에는 아주 부슬부슬 오더니 오면서 점점 빗방울이 굵어지는 거야. 제가 무안서부터 늘 하는 얘기죠. 맑은 날은 좋은 날이고 비오는 날은 더 좋은 날.
여러분 비라는 것은 맑은 날은 가만 놔두면 맑은 날인데, 비라는 것은 하나님이 꽤 정성을 기울여 가지고 비 오게 하는 겁니다.
저 지리산 꼭대기 나무 이파리부터 물 다 줘야 되고 인간들이 그 개울가에 더럽혀 놓은 것 전부다 씻어 내야하고, 그리고 농사짓는데 또 물이 필요하고 공업용수도 필요하고 또 가정용수도 다 필요해요.
제가 우리 한반도에 내리는 비의 양, 1년에 강우량을 살펴봤는데, 그냥 홍수 때 내려 가버리는 것 말고, 용수로 쓰는 공업용수, 농업용수 유지용수 다 해서 보니까 1년에 물로 말미암아서 우리 한 가정에 내려지는 유익이 엄청나요.
간접적인 것 말고 직접적으로 우리가 그 물을 사용하는 것만 해도 분별해 보니까 그 수익이라는 것이 엄청난 겁니다. 엄청나요.
한해 이 한반도에 내리는 그 빗물, 다시 말하면 강우량 그 강수량을 가지고 경제적 가치를 하니까 수해에 딱 아홉 배예요.. 아홉 배..
그러니까 우리가 보통 TV에 뉴스 하는 사람들이 뭐라고 하느냐? ‘이번 홍수로 인한 피해 수해가 얼마다..’ 이런 미친 소리를 하는데, 한 번도 수익이 얼마다 라는 말 안 해요.
아무리 봐도 나쁜 놈들이야. 내가 하나님 같으면 비 내려줘.. 그냥..
수익이 90%고 수해가 10% 밖에 안 돼요.
그래서 적어도 우리 기독교 방송국이라면 내가 그 아나운서들한테 이번 홍수로 해서 수익은 얼마인데 수해는 불과 10%였습니다. 이렇게 뉴스로 나가야 돼. 놀라운 일이죠.
그래서 이 풍년이 들고 난 후에 흉년이 올 때가 있다는 거죠. 흉년이..
사람도 형통한 때가 있고 또 곤고한 날이 있다는 겁니다. 형통한 때는 찬송하고 곤고한 때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아무도 미래를 장담하지 못하게 했다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형통하다고 큰 소리 칠 수 없는 게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을 이게 엇갈리게 해 놨기 때문에, 그래서 형통할 때는 찬송하고 곤고한 때는 생각하라.
그러니까 어려운 때가 없으면 인생을 깊이 생각할 수가 없어요.
여러분 농사도 안 짓고 흉년도 풍년도 없고, 계속 1년 내내 먹을 게 계속 나오는 데에서는 철학자가 안 나오는 겁니다.
여러분 인도네시아 출신 철학자 봤어요? 거긴 철학자가 안 나와요.
다 인생에 깊이 있는 삶을 살게 하는 것은 다 우여곡절이 많은 땅 거기서 삶의 깊이를 더 하는 거예요.
고난이 없고 애환이 없고 어려움 없으면 철학자가 안 나오고, 사람의 인생이 깊이 있는 삶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전도자가 말하기를 형통할 때는 찬송하고 곤고한 때는 생각하라고 하나님이 이 두 바퀴를 엇갈리게 해 놨기 때문에 아무도 미래를 장담할 수 없게 해 놓은 거야.
56 온 지면에 기근이 있으매 요셉이 모든 창고를 열고 애굽 백성에게 팔새 애굽 땅에 기근이 심하며
57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
애굽 땅에 기근이 있지만 양식을 공급 받을 수 있고 각국에서 양식을 사려고 몰려옵니다.
여러분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고 지금은 구원의 날이고 지금은 여러분 성경 공부 할 수 있어요.
여러분 지금 주일 낮 예배 때 또 성경이야기만 하고, 점심 먹고 또 한 시간 두 시간 또 공부하고 저녁에 또 하고 여름 되면 또 에스라하우스 강좌 해서 지금은 풍년이죠.
7년 풍년 이때 여러분 적치 해 놓아야지, 물이 없어 기갈이 아니고 양식이 없는 기근이 아니고 하나님 말씀을 들어 보려고 해도 들어 볼 수가 없는 그런 때가 옵니다.
언젠가 아모스가 하던 말입니다.
풍년들 때 또 눈이 밝아서 성경 볼 수 있을 때 건강할 때 열심히 해야지, 어느 날 우리가 안하고 안하고 안하다가는 못할 때가 옵니다.
이런 것이 역사적 대가를 지불하고 얻은 교훈들이죠.
우리 샤론 교회 성도님들은 풍성할 때 풍년든 7년 동안에 영혼의 양식도 많이 쌓아 놓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언젠가는 흉년이 오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 두 가지를 항상 바뀌게 하기 때문에 아무도 미래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할 수 있을 때 열심히 하고 또 요셉처럼 아무리 어려운 그런 환경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겁니다. 우리가 순전하고 겸손하고 예절바르고 자기일 성실히 하게 되면 우리가 어려울 때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꿈 많은 소년 요셉이 시련의 날들을 겪어 넘어가지만 그래도 그가 순전하고 겸손하고 그리고 예절바르고 자기일 성실히 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그가 가는 곳마다 함께 하셨고, 요셉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기를 하나님께서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의 손으로 하는 모든 일을 복 되게 하사 다른 사람들을 유익하게 함으로써 정말 그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손색이 없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도 요셉의 때와 같이 지금 풍년들 때에 7년 풍년들 때에 풍성하고 풍족한 여유 있는 양식을 많이 적치하여서 어려운 때를 대비하는 지혜로운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아무리 어두운 칠흑 같은 곳에서도 은혜 받는 사람들 사랑 받는 사람들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