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첨벙 뛰어들 정도는 아니지만 바닷물이 제법 따뜻해졌다. 주꾸미는 주당들이 고개를 저을 정도로 살이 단단해졌을 것이다. 바닷물이 따뜻해졌으니 말쥐치들이 알을 낳을 텐데, 알 낳기 전에 그물을 조심해야 한다. 쥐포를 위해 어린 개체도 서슴지 않는 사람은 망목이 촘촘한 그물을 선택하지 않던가. 한데 언제부턴가 쥐치잡이 그물에 해파리가 먼저 들어오기 시작했다.
작년 여름 해파리의 위력은 대단했다. 섬과 섬 사이의 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양식장 주위를 어슬렁거리던 해파리가 해안을 배회하기 시작했는데 잘난 척하며 한길 넘는 곳까지 헤엄치던 관광객이 있었고, 해파리는 그의 다리를 이따금 휘감았지만 작년엔 달랐다. 한여름에는 물보다 사람이 많은 해안으로 진출, 첨벙대는 이의 맨살을 가차 없이 공격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휴가철이 지난 지하철에 채찍 맞은 듯 울긋불긋 멍이 든 팔과 다리를 그대로 노출시킨 젊은 여성이 더러 눈에 띈 건 해파리 탓이었다. 오죽 따끔했으면 옷으로 가리지 못했을까.
어릴 적, 친구가 생일 축하한다며 ‘도깨비 상자’를 전한 적 있다. 도깨비 얼굴이 달린 용수철을 눌러 넣은 뒤 뚜껑을 살짝 닫은 그 상자는 여는 순간 깜짝 놀라게 했는데, 해파리의 촉수에는 도깨비 상자와 비슷한 주머니가 피부 아래 잔뜩 배열돼 있다. 도깨비 상자는 놀라게 할 뿐 몸에 상처를 남기지 않았지만 해파리의 도깨비 주머니는 인정사정없다. 주머니 속에 숨긴 날카로운 침은 강한 독을 포함하기도 하니 웬만한 물고기들은 죽거나 기절한다. 해파리의 흐늘흐늘한 촉수가 맛난 먹을거리로 착각하고 다가오는 물고기는 그만 해파리의 밥이 되고 말 것이다.
해파리의 몸에 숨긴 도깨비 주머니를 학자들은 ‘자포’(刺胞)라고 말한다. 칼을 숨긴 주머니라는 뜻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자포 속의 도깨비의 정체는 작은 압정이라고 해야 할까. 촉수의 피부 아래에 무수히 장착된 자포는 기회를 엿보는데, 물고기가 다가와 촉수를 건드리면 자포의 뚜껑이 열릴 터. 순간 독침 비슷한 압정이 느닷없이 찌를 테니 괴로운 물고기는 몸을 움츠리며 다른 자포를 건드릴 것이다. 그러면 더 많은 독침이 찌르겠지. 놀란 물고기가 달아나려할수록 압정과 용수철에 이어진 촉수가 단단히 휘감을 테고, 몸부림치다 그만 기절하거나 숨을 거두고 말 것이다. 그 다음은? 상상에 맡기겠는데, 지난여름, 많은 해수욕객이 그 고통을 당하게 된 것이리라.
납량특집 영화는 사람을 잡아먹는 거대한 해파리를 해안에 출몰시킨다. 한적한 해수욕장에서 수영을 즐기던 관광객들은 일순 공포에 휘말리겠지만 사실 사람을 해칠 정도의 자포를 가진 해파리는 거의 없다. 현실에서 희생된 이는 자포의 독성보다 느닷없는 고통과 공포에 놀라 정신을 잃었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물에 빠진 게지. 물론 종류에 따라 자포에 찔린 피부가 변색될 수 있고 옷에 쓸리면 상처부위가 한동안 따가울 게다. 독성 가진 작은 침이 무수히 박혔으니 오죽하겠는가. 하지만 자포를 그만큼 잃은 해파리는 생명이 위태로워졌을지 모른다. 이제 무슨 수단으로 먹이를 사냥할 텐가. 사람이 버린 음식 쓰레기를 찾아 공연히 해변으로 다가갔다가 봉변을 당한 꼴인데, 사람들은 해파리에 일말의 동정심도 베풀지 않는다. 졸지에 ‘공공의 적’이 되었다.
공공의 적의 대표는 단연 노무라입깃해파리다. 바다가 따뜻해질 무렵 동중국해에서 우리나라를 향해 이동하는 그 해파리는 출발할 때 삿갓 같은 머리가 3에서 15센티미터에 불과하지만 제주도를 거쳐 동해안이나 서해안의 어장에 당도하는 늦여름이면 머리가 1미터에 무성한 촉수가 5미터에 달하고 무게가 200킬로그램을 넘을 정도로 거대해진다. 우리 바다의 유기물을 블랙홀처럼 흡수하고 촉수에 걸리는 물고기들을 닥치는대로 잡아먹기 때문일 것이다. 간혹 2미터 이상의 갓 뒤로 늘어뜨리는 촉수가 10미터를 훌쩍 넘으며 무게가 1톤에 달하는 녀석들이 걸려 그물을 못 쓰게 만들 뿐 아니라 어장을 황폐화한다고 어민들을 울상 짓게 한다.
노무라입깃해파리의 출현이 점점 빨라진다고 한다. 다른 곳보다 두 배 높게 뜨거워진 우리 바다는 2000년 언저리 이른 여름마다 그 해파리를 초대하기 시작했는데, 애초 6월에 동중국해를 출발하더니 이제 5월 중순부터 행차에 나선다는 게 아닌가. 제주도 일원 바다가 예년에 비해 섭씨 2도 정도 올랐다더니 그 탓인가. 5월 말이면 제주 연안에 출현할 노무라입깃해파리가 휴가철 다가오기 전에 우리 해역으로 확산될 것으로 예상하는 국립수산과학원은 주의를 당부하지만, 어민과 관광객들은 딱히 주의할 게 없다. 조업을 포기하거나 다른 곳으로 휴가를 떠난다면 몰라도.
말쥐치를 남획하면서 해파리가 부쩍 늘었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된다. 천적이 없다면 해파리든 말쥐치든 먹이가 보장되는 만큼 늘어나는 건 당연한데, 해파리가 요즘처럼 늘어난 주요 원인이 말쥐치 남획에 있을까. 말쥐치든 뭐든 남획은 분명히 재고해야 하겠는데, 정작 해파리를 주식으로 즐기는 물고기는 말쥐치가 아니라 3미터의 뭉뚝한 몸을 자랑하는 개복치다. 식용이 아닌 개복치는 어민들이 외면하건만 왜 해파리는 폭증이라 해야 할 만큼 늘어난 걸까. 모래와 갯벌로 형성된 우리 동해안과 남서해안이 지나치게 매립되거나 개발된 데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 어린 해파리는 바위처럼 단단한 구조물에 한동안 붙어 있다가 조건이 맞으면 해파리로 떨어져 더운 바다로 이동하며 성장하고 번식하는데, 매립과 개발이 만든 거대한 제방과 방조제는 해파리의 유생이 붙어 있기 알맞다. 게다가 발전소 터빈을 식힌 온배수가 쏟아지지 않은가.
해파리 공포는 일본도 우리와 비슷한지 해파리가 출몰하는 바다를 공유하는 우리와 일본의 지방자치단체들은 해파리 퇴치를 위한 연구와 바다 쓰레기 청소에 함께 나서겠다고 한다. 그와 별도로 우리 정부는 ‘농어업재해대책법’의 어업 재해 범위를 고쳐, 어민들이 받는 해파리 피해를 어느 정도 보상해주겠다고 나섰다. 그나마 다행인데, 갯벌 매립과 해안 개발을 자제하겠다거나 바다의 수온을 낮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 해파리 불러들인 탐욕을 반성하자는 목소리는 없다는 거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5월의 해파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다. (전원생활, 2010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