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부터 한반도産이 특상품…
조선 시대엔 銀과 같은 무게로 바꿨대요
인 삼
지난 2022년 KGC인삼공사의 인삼 재배량이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습니다. 인삼공사가 계약 재배로 수확하는 인삼밭 면적은 774ha(헥타르)로, 축구장 면적(0.7ha)의 약 1100배라고 하죠. 한국은 질 좋은 인삼 산지(産地)로 과거부터 유명했는데요. 인삼에는 어떤 역사가 있을까요?
지금은 산에서 자연적으로 자란 삼(蔘)을 산삼(山蔘), 재배 시설에서 사람이 재배한 것을 인삼(人蔘)으로 구분해 부르고 있지만, 인삼 재배 기술이 나오기 전에는 산에 자라는 삼도 인삼이라고 불렀습니다. 인삼과 관련한 기록은 중국 고대부터 등장하는데요. 전한(前漢) 원제(재위 기원전 48~기원전 33) 때 만들어진 한자 사전 '급취장(急就章)'에서 여러 가지 약재를 소개하는 대목에 삼(參)이라는 이름이 등장합니다. 이 당시에는 '삼'을 나타내는 한자를 쓸 때 '蔘'과 '參'을 혼용했다고 해요. 후한(後漢) 헌제(재위 189~220) 때 쓴 의학서에도 인삼을 의약품으로 사용하는 법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어요.
인삼은 전 세계 곳곳에서 자라는 식물이지만, 옛날부터 한반도에서 나는 것이 특상품(特上品)으로 인정받았어요. 삼국사기 등 한국 역사서뿐 아니라 중국 쪽 사료에도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이 중국과 교역할 때 교역 물품으로 인삼을 활용한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특히 중국인들은 진시황이 찾았다는 불로초(不老草·먹으면 늙지 않는다는 전설의 식물)가 한반도에서 자라는 인삼이라고 믿었는데요. 불로초와 관련된 기록 가운데 '바다 건너 동쪽에 불로초가 자란다'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래요.
시간이 흘러 13세기 이후 몽골이 팽창하면서 유라시아 대륙을 장악했고, 고려에서도 원 간섭기가 시작됐습니다. 고려는 몽골에 여러 공물(貢物·상납하는 각 지역 특산품)을 보내야 했는데, 그 품목 중에는 인삼이 포함돼 있었어요. 이때 몽골이 요구한 인삼량이 너무 많아 부족한 물량을 맞추고자 삼을 직접 재배하려는 시도를 하게 됐죠. 이 때문에 한반도에서 인삼 재배가 시작된 시기를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는 시기인 14세기 후반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조선 시대에도 인삼은 특상품으로 인정받으면서 조선의 주요 무역 상품이 됐어요. 조선 사신들은 중국에 갈 때 조공할 은(銀)이 부족하면 인삼을 중국으로 가져가서 팔아 부족분을 메우게 했습니다. 또 인삼을 판 돈으로 책 등을 구입해서 귀국할 때 가져오는 방식의 무역도 이루어졌지요. 특히 일본에서는 우리 인삼이 같은 무게의 은과 교환할 수 있을 만큼 고가품이었다고 해요. 이후 일본이 인삼 생산에 성공하고 중국과 직접 교역하면서 교역량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인삼은 조선의 주요 무역 품목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이 인삼의 전매(專賣·국가가 특정물의 생산·판매를 독점함) 제도를 실시하기도 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