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간 163.2]
지상설교
정연원正淵源 도성입덕道成立德
정암 주선원_한강교구
모시고 안녕하십니까?
오늘 봉독한 「도수사」는
글자 그대로 무극대도를 닦아 나가는 연원도통, 즉
무극대도의 심법계통에 관한
당부의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지도자급 제자들에게 전하는
편지 형식의 가르침으로서 한 구절 한 구절마다
수운 대신사님의 간곡한 심정이 깃들어 있습니다.
1절은 수운대신사께서
무극대도를 받은 지 1년이 지난 신유년 여름부터
여러 제자들의 요청에 따라
법을 정하고 글을 지어서
천도와 천법을 가르치고 포덕을 하셨습니다.
그러던 중 유생들의 헐뜯는 말과
관의 지목이 괴이하고 심각해져서
잠시 용담정을 떠나 있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2절은 천리타향 전라도 은적암에서
제자들을 생각하며 「도수사」를 써서 전하노라.
그러니 이 가사를 가볍게 생각하지 말고 부디
정성과 공경을 다해서 내가 시킨 대로 수행을 하면
도성입덕 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3절은 정연원, 즉 연원을 바르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연원이란
무극대도의 심법이 스승과 제자 사이에
끊임없이 이어지며 전해 내려가는
올바른 천도교 정체성의 계통입니다.
저는 환원하신 종법사님들로부터
“자네는 수여수授與受를 아는가?
도道라는 것은 자기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사사상수師師相受로 주고 받는 것이야…”
이런 말씀을 수없이 들었습니다.
수운대신사께서도
공자의 예를 들면서 연원도통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공자의 연원에서
도통을 온전히 지키지 못한 경우를 예로 든 것입니다.
공자의 제자가 3천 명이라고 하지마는
그중에 도를 통한 제자는 72명밖에 안 되고
그것도 불과 100여 년 만에
전자방이나 단간목 같은 제자가 나타나서
공자의 법도를 어지럽히고 말았으니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냐고 개탄을 하십니다.
전자방과 단간목은
공자보다 약 100년 뒤 중국 전국시대의 사람입니다.
전자방은 공자의 수제자인 자공의 제자이고
단간목 역시 공자의 수제자인 자하의 제자로서
전국시대 위나라 문후라는 제후의 스승이 되었던
무시할 수 없는 매우 유명한 현자들입니다.
전자방은
빈천한 신분으로 문후의 스승이 되었지만
그의 건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자존심을 굽히지 않고
그 나라를 떠나버린 사람입니다.
단간목 또한 문후의 스승이었으나
문 제후가 그를 재상으로 임명하려고 하자
그 즉시 담을 넘어 도망쳐서
재상의 자리를 사양했던 사람입니다.
한번은 위나라 문후의 아들인 태자가 외출 중에
길에서 아버지의 스승인 전자방을 만나서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전자방은 그 인사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태자가 물었습니다.
“여보시오!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 왜 그리 거만하시오?”
그러자 전자방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빈천한 사람이기에 거만을 떨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귀한 사람은
거만을 떨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한나라의 임금이 거만을 떨면 나라를 잃게 됩니다.
나라 망친 임금이
임금 대접을 받았다는 말을 듣지를 못했습니다.
나같은 빈천한 선비는
나라에 건의한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다른 나라로 떠나간들 어디를 간들
빈천한 신분이야 못 얻겠소?”
태자는 그제서야 자기의 잘못을 사과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수운대신사께서는 어째서
공자의 이런 훌륭한 사람들을
연원계통의 난법난도자로 예를 들었을까요?
이 두 사람은 분명히 현자였습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결국
위나라 문후를 공자의 심법인 인의사상을 펼치는
왕도정치로 인도하지 못하고
무력이나 권모술수로 나라를 다스리는
전국시대의 패도정치를 열게 하였기 때문에
가차 없이 난법난도자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하신 것 같습니다.
전자방에게는 끈기가 부족하였고
단간목은 사명의식이 부족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도통군자라는 것은
단지 지혜로울 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실천과
실행력을 겸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선 수운대신사님께서
시천주 심법이 혹여 잘못 전해지지 않을까
매우 우려하셨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즉 우리들 각자가
아무리 아는 것이 많고 닦은 것이 많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겸양지심謙讓之心과 경외지심敬畏之心을
잃지 말아야 하며,
수운대신사의 심법에 어긋나지 말고
용담연원의 정신을 올곧게 지켜나감으로써
그것이 온전히 세상에 펼쳐지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하시는 것입니다.
생각건대 천도교 163년사에서
무극대도의 이치를
자기 나름 약간 어찌 깨달았다고 해서
제멋대로 도통군자를 사칭하고
용담연원을 벗어나서 교문을 별립한
동학 계열의 종단이 얼마나 많습니까?
청림교, 동학교, 보천교, 증산교 수운교 등등…
이런 동학계열의 신흥종교가
무려 수십 개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태는 최근까지도 이어져서
근래에는 천도교가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보니,
듣도 보도 못한 주문을 새로 만들어서
자기들이 “참 동학”이라고
큰소리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대신사는 동경대전 수덕문의 결사에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혹은 떠도는 말을 들어서 수련을 하고
혹은 흘러다니는 주문을 얻어들어서 외우고 있으니
어찌 그릇됨 일이 아니며, 어찌 민망치 않겠는가.
안타까운 나의 심정은 날로 간절치 않는 날이 없고
빛나고 거룩한 덕을 혹 그르칠까 두려워 하노라.…
내 이글을 지어내 펴서 보이니
어진 그대들은 삼가 나의 말을 들으라.…
내 지금 밝게 가르치니 어찌 미더운 말이 아니겠는가”
이 말씀은 어쩌면 수덕문뿐만이 아니라,
경전 전체를 아우르며,
우리가 수운대신사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세상에 펴고자 할 때 반드시 염념불망하고
엄숙히 지켜나가야 하는
교훈의 말씀이 아닌가 합니다.
「포덕문」과 「논학문」 그리고 「불연기연」의 결사도
큰 틀에서는 모두 이러한 뜻의 연장선이거나
심화된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운대신사님의 연원도통 의식은
불교의 선종이나 유교의 연원도통 의식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수운심법의 도성덕입은
정심수도를 통해서 전혀 새로운 세상의 의식이 열리는
“다시개벽적”인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수사 제 4절에서는 천도교의 정심수도는
시천주의 체험을 통한
모든 민중의 군자화를 도모하는 것이고,
천도교의 공부는
도성입덕의 도통이
불과 3년 안에 반드시 이루어질 수 있다는
도성입덕의 속성과정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나 “삼년 안에 이루지 못하게 되면
그 아니 헛말이냐?”는 이 말씀 속에는
아무리 속성 과정이라 하더라도
모우미성毛羽未成한 너희들,
아직 깃털도 나지 않은 상태의 너희들이,
약간 어찌 무슨 소리를 들은 것을 가지고
도성입덕이 다된 것처럼
엉뚱한 짓을 하지 말라는 경고의 뜻도 담겨 있습니다.
경망스럽게 설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칭 지식인들이 세상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가볍게 판단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므로
이런 경망한 태도를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또 「도수사」의 가르침은 천도교인이
수도자로서의 자기가 할 도리는 다해 놓고
천명을 기다려야 하는 것인데,
조급히 도통만 바라는 것을 경계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무엇이든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
즉 갑자기 벼락부자가 된다든지
일시에 높은 지위에 오른다든지 이런 일들은
모두가 상서롭지 못한 것이며
오히려 재앙과 액운이 따르기 쉽다고 하셨습니다.
선후본말을 분명하게 가려서
취사선택을 잘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배금주의에 물들어서 살다 보니
천도교도 돈이 있어야 포덕이 된다고
세속적인 주장을 하는 교역자 또한 없지 않습니다.
한 40년 전의 일입니다.
전라도 장흥지역 종법사님의
손자 되시는 귀한 분이 시일식 날,
이 대교당 바로 저 앞자리에 나와서 마이크를 잡고
우리 천도교도 돈이 있어야 잘되는 것이니,
자기가 천도교 지도자가 되면
매년 1억원 씩을 내 놓겠다고, 큰소리를 치며
한동안 교단을 시끄럽게 뒤집어 놓더니
어느날 소리소문없이
기독교로 사라진 일이 있었습니다.
돈이란
무시할 수는 없는 조직관리의 재원이요
수단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천도교는
돈을 앞세워서 경영하는 곳이 아닙니다.
정심수도로써 사람농사를 경영하는 곳입니다.
그것이 제대로 되어서 성금이 모여져야
올바른 천도교가 정립되는 것입니다.
끝으로 도수사 5절에서는
천도교에 입도한 사람 중에 자신의 자각이 없이
남의 말만 믿고 덩달아 입도하여
입으로만 呪文을 건성건성 외우며
나도 득도 너도 득도 하고 있으니,
이런 사람에게는
도성입덕을 기대할 수 없다고 단언하십니다.
이런 사람들을 불사不似한 사람이라 하셨습니다.
즉 같잖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도교를 하는 사람은 이 「도수사」의
가사를 외우며 제정신 차리라는 것입니다.
특히 정신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교역자가
미덥지 못하면 일반 교인들은 의심을 하게 되고
주요 원주직의 교역자들이
공경스러운 품행을 유지하지 못하거나
교만한 언행을 하면 교회의 안정이 흐트러져서
혼란을 초래한다는 말씀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어려운 때일수록
교인 모두가 우선 안심정기安心正氣를 하고
수운심법의 정연원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래서 저는 지난 1월의 설교 때도
한울님과 한마음 한뜻이 되는 동귀일체와
정심수도를 강조하였습니다.
세간중인世間衆人부동귀不同歸의 안심정기로부터
획을 시작하자고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의 현기사가 하루 속히
제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현기玄機는 불로不露라,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기에
함부로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그만큼 오늘의 교회 입장에서
중차대하다는 것을 말씀드리며
오늘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2.13 대교당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