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왜 그리 전화 안받노 내가 시번이나 했다" 어제도 아버진 내가 전화기 묵음으로 해서 그렇다고 말해도 일방적이다 들을려고도 않는다 단감 보내준다고 주소를 부르란다 두 분이서 서로 바꿔가며 받아적는다 그런데 202동에서 2002동이라하니 내가 소리를 지른다 "선니야 이백이 200하고 그 담이 2가 아니나~" 아이고 단감받기 힘들다 왜 내 주소만 잘미(친정)에 없는지 난 또 화를 낸다
내가 국민학교 들어 가면서 해마다 여름은 옥수수와 함께 시작 되었다 울집은 논과 밭이래봐야 몇 자락이 되지않는 빈농이었다 그래도 아버지 허세만 하늘을 찌르는 이장집이기도 했다 "선니야 니 아바이 오면 강내이 팔러 갔다 말하지 마래" "아부지 나보고 또 모라 할텐데" "고마 오늘 안가면 안 되나?" "부뚜막에 강내이 있다 이따 먹어라 선니야" 엄만 못 난 옥수수만 양재기에 가득 담아 두고 성류굴로 가셨다 우리집에서 성류굴까진 십리길이다 갓 찐 옥수수를 양은 다라이에 이고 신작로길로 부지런히 가실게다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자리에 다라이를 놓을려고 말이다 그땐 성류굴엔 관광객들도 참 많이 왔다 아버진 면사무소서 집으로 오시다가 성류굴 앞에 있는 엄마를 분명 봤을게다 자전거에서 내리시기도 전에 "니 어마이 강내이 팔러 갔나?" 어제도 그랬고 그제도 했던 말이다 아버진 면에서 단속하는 걸 알고 이리저리 자리 옮기는 엄마가 안돼서 그러는지 아니면 정말 옥수수 파는 엄마가 싫어서 그런지 내가 보기엔 둘다다 어떤 날은 다 찐 옥수수 다라이가 마당에 내팽게친 적도 있었다
늦은 오후 엄마는 죄지은 거 마냥 빈다라이를 들고 얼른 들어 오신다 그래도 울 엄만 일찍 팔고 오시는 편이다 다행인건 아버지가 논 물 보러 나가고 안계신다 엄만 옆 밭에 가서 어린 열무를 한짜닥 뽑아 오시곤 엉덩이를 바닥에 철퍼덕 앉으신다 "니 아바이처럼 살면 우리 뭐 먹을게라도 있는 줄 아나?" "하이 자전거 타고 면에나 댕길줄 알지" 눈물이 묻은 익숙한 하소연이 시작 된다 목소리는 갈라지고 일바지는 낡아 하늘 거렸다 아직 어렸는데도 난 엄마 하소연을 들으며 아버지가 싫었다 정말 엄마 말대로 하는게 없는 아버지였다 "선니 니 왜 강내이 안 먹었노" 그랬다 양재기 담긴 옥수수는 이제 나도 물려 버렸다 더 이상 옥수수가 이뻐 보이지않고 엄마 아부진 옥수수 파는 거 땜에 싸우는 줄 알았다
"언니 찰옥수수 하나 드세요 금방 쪄낸거예요" 이제 난 사십 후반대고 길거리서 야쿠르트를 팔고 있다 물려버린 아니 질려버린 그 옥수수는 수요 장터만 되면 다들 한 개씩 주고 간다 우리 엄마가 팔던 거 보다 훨씬 멋있게 생겼다
어제도 엄만 전화에다 대고는 "선니야 니 한 데 서 있나" 하신다 그 때의 엄마만큼 나도 나이를 먹었고 그 때 엄마랑 닮아가는 날 보면서 눈물이 그렁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