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Christmas)의 기적
한국판 쉰들러(Schindler) 현봉학(玄鳳學) 박사
현봉학 박사(1922~2007)는 함경북도 함흥에서 현원국(玄垣國) 목사와 신애균(申愛均) 여사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연세대 세브란스 의전(醫專)을 나와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몬드대학에서 임상병리학을 전공한 후 1950년 3월 한국으로 돌아온다.
현박사는 귀국하던 해 한국전쟁(6.25)이 발발하자 해병대사령관 고문과 미 10군단 사령관 고문으로 근무하게 된다.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으로 이끈 맥아더 사령부는 압록강까지 진격하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역전되자 같은 해 12월 12일, 맥아더 장군은 유엔(UN)군과 국군을 흥남부두에서 동해상으로 철수시키라는 명령을 내리는데 이것이 역사에 길이 기억되는 ‘흥남철수작전’이다.
당시 현 박사의 고향인 함흥(咸興)은 중공군의 포위망에 갇히게 되는데 미 해병1사단과 한국 해병대, 한국군 3사단과 수도사단, 미 육군3사단과 7사단 등 군 병력만 10만여 명이 포위당한다. 거기에다 수많은 피난민들이 부둣가에 인산인해를 이루었는데 대부분 기독교인으로 공산당 색출에 도움을 준 이들은 적치(敵治)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보복을 당할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찾아와 애타게 매달리자 고향 사람들을 돕고 싶었던 현봉학은 애끓는 심정으로 미 10군단장 알몬드(Edward M, Almond) 장군을 찾아가지만 여건은 어려웠다.
마지막 배가 떠나고 폭파되는 흥남부두(1950.12) / 젊은 시절의 현박사 / 만년의 현박사
피란민들은 부두로 몰려드는데 미국 상선인 메레디스 빅토리(Meredith Victory)호는 군수물자와 군인들을 후송하는 배로 이들 피란민을 태울 자리가 없었다.
현봉학은 알몬드 장군을 찾아가 이야기하다가 어떻게 그렇게 영어를 잘하느냐고 묻는 장군에게 리치먼드에 있는 버지니아 주립의대에서 공부했다고 하자 장군은 깜짝 놀라며 “내 고향도 바로 버지니아 주의 루레이(Luray)”라며 매우 반가워한다. 그리고 ‘당신의 고향은 어디냐?’ 고 묻자 현박사는 ‘제 고향이 바로 이곳 함흥입니다. 제 친척과 이웃을 제발 살려주십시오...’
장군은 즉각 참모부장 겸 탑재참모였던 미 해병대 포니 대령을 불러 방법을 강구해 보도록 지시하였고 대령은 함정 탑재(搭載)의 기술적 대안(代案)을 제시하였다. 한 사람이라도 피란민을 더 싣고 떠나려는 현박사의 눈물겨운 노력이 결실을 보는 순간이었다. 알몬드 장군은 즉각 배에 있던 모든 군수물자를 버리고 피란민을 태우도록 명령한다.
떠날 시간이 임박하자 현박사는 빠진 사람을 살피려 시내로 들어갔는데 미국인 신부(神父)와 함께 경찰서 유치장에서 엎드려 기도하는 30여 명을 발견하여 트럭에 태우고 아슬아슬하게 배를 탔다. 구출된 피난민들은 현박사를 ‘한국의 모세’라 불렀는데 이들이 마지막으로 구출된 자들로 이날이 12월 24일이어서 사람들은 이것을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 불렀다.
화물선이었던 빅토리호는 최대 탑승 가능 인원이 2천명 정도였다고 하는데 무려 1만 4천명을 태워서 위험을 감수한 최다 인명 구출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빅토리호와 다른 수송선에 피란민을 나누어 싣고 12월 15일부터 12월 24일까지 탈출에 성공한 함흥시민이 9만 8천 명이나 되었다고 하며, 이 기적의 스토리는 ‘한국판 쉰들러 리스트’로, 현박사는 ‘한국의 모세’로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철수 도중 비좁은 배, 사흘 간 물 한 모금도 마실 수 없는 배 안에서 5명의 아기가 태어나기도 했는데 이렇게 북한을 빠져나온 피란민들 대부분은 부산 국제시장에 정착하게 된다. 너무나 가슴 아픈 우리의 근현대사이다. 그 배 안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금년 65세(2017년 현재)이다.
굳세어라 금순아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었던가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이후 나 홀로 왔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 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 달만 외로이 떴다.
이들 피란민(3.8따라지)들의 애환을 가감 없이 표현한 이 노래는 한국전쟁 후 국민들이 애창하던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 (박시춘 곡, 현 인 노래)인데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민족의 수난이 담겨있는 너무나도 서글픈 노래이다.
현박사는 그 후 펜실베이니아 의과대학원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고 뮐렌버그 메디칼 센터에서 연구소장으로 또 버지니아 의대, 콜럼비아 의대의 내과와 외과, 피츠버그의 토머스 제퍼슨대학교, 펜실베이니아 의과대 등에서 병리학 및 혈액학 교수로 재직했다.
2007년 11월 25일 자신이 근무했던 뉴저지주의 뮐렌버그 병원에서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현박사는 4형제로, 맏형은 이대(梨大) 문과대 학장을 지낸 현영학(玄永學) 교수, 두 동생은 문필가로 활동하는 피터 현과 두 차례 ‘호국 인물’로 선정되었던 현시학(玄時學) 해군제독이 있다.
흥남철수작전의 또 한 분의 공로자인 포니(Edward H. Forney) 대령은 그 공적에 대한 보답으로 포항 해병대 제1사단이 주최한 ‘흥남철수작전 기념 사업회’의 초청을 받고 한국에 온다. 해병대 1사단은 포니의 유족들인 그의 아들 에드워드 포니(Edward W. Forney)와 부인 유본 포니(Yvonne M. Forney) 그리고 증손자 벤 포니(Ben E. Forney)에게 부대 안에 ‘포니 로(Forney Road/ 路)’를 지정하여 헌정했다.
포니대령의 증손자 벤 포니는 ‘흥남철수작전 기념 사업회’ 장학생으로 현재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생인데 ‘대학원에서 만난 한국 젊은이 대부분이 6·25전쟁에 대해 잘 몰라요. 그래서 우리 증조할아버지가 참여한 흥남 철수작전을 외국인인 내가 자세히 얘기해 주고 관심 있게 듣는 모습을 볼 때마다 보람을 느껴요.’ 라는 말을 해서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현봉학박사의 저서로는 수많은 의학서적 외에 ‘중공의 한인들’(1984) ‘한국의 쉰들러, 현봉학과 흥남대탈출’ (1999) 등이 있다.
흥남철수 기념비(거제) / 생전의 마리너스 수사(라루 선장) / 포니대령에게 훈장을 달아주는 알몬드 장군
흥남철수작전에서 피란민을 실어 날랐던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Meredith Victory)호의 선장은 레오나드 라루(Leonard LaRue/ 1914~2001)인데 휴전 한 해 뒤인 1954년 미국으로 돌아가 가톨릭 수도자(修道者)가 된다.
미국 뉴저지주 성베네딕도(St. Benedictus)회 뉴튼수도원에서 종신서원(終身誓願)한 뒤 평생 수도원 밖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세례명은 마리너스 형제/ Brother Marinus).
그런데 미국은 가톨릭 수도사들의 감소와 재정난으로 뉴튼수도원은 문 닫을 위기에 처했고, 결국 스스로 독일 베네딕토회 본부에 수도원 해체를 요청했다.
이 소식을 들은 한국의 경상북도 칠곡(漆谷)의 왜관수도원에서 지원을 결정하였다. 마리너스 수사님은 50년 전 자신이 봉사하였던 한국에서 이렇게 하나님의 은총이 되어 돌아올 줄을 알았을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왜관수도원의 지원(支援)이 결정된 이틀 뒤인 2001년 10월 14일 마리너스 수사는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향년 87) 뉴튼수도원은 현재 왜관수도원에서 운영 중이다.
‘God's own hand was at the helm of my little ship’(내 작은 배의 키는 하나님의 손으로 움직였다.)
1만 4천명의 피란민을 태우고 흥남항을 출발하여 거제도로 항해했던 라루 선장의 말이다.
크리스마스 3일 전에 흥남부두에 도착한 35살의 젊은 선장은 쌍안경으로 보면서 흥남부두의 인상을 ‘단테의 지옥(Dante's Inforno)’ 이었다고 회상했다고 한다.
흥남부두는 마지막 배가 떠나고 난 후 폭발물을 설치하여 모두 폭파해 버렸다.
<1>미영(美, 英) 해병 6.500명이 전사한 장진호 전투(지독한 추위로 동사한 사람이 더 많았다.)
<2>배 안에서 태어난 김경필씨(김치5/65세/ 현 수의사)가 자신이 태어난 배 모형을 가리키고 있다.
흥남 철수작전이 가능했던 것은 미국과 영국의 해병대가 장진호 전투에서 버티어 준 덕분이었다.
개마고원(蓋馬高原)의 장진호수(長津湖水) 전투에서 미국과 영국의 해병 6천 5백 명이 전사(戰死)하거나 동사(凍死)했다. 개마고원은 우리나라의 지붕이라 일컫는 곳으로 매우 춥다.
메레디스 빅토리 호 배 안에서 부산항으로 돌아 오던 중 5명의 아기가 탄생하는데 라루 선장은 김치 1부터 5까지(Kimchi 1~5)의 별명을 붙여주고 산모에게는 특별히 덮을 것과 먹을 것을 주었다고 한다.
*쉰들러 리스트(Schindler List)는 나치독일때 폴란드(Poland)에 이주해 살고있던 독일인 쉰들러가 유태인들의 학살을 보고 자신의 공장에 취업시키는 방법으로 유태인들을 살리려 애쓰며 만들었던 유태인 명단(List)이다.
*현박사의 모교인 연세대학교에서는 12월 26일, 국가보훈처가 발표한 이달(12월)의 전쟁영웅으로 현봉학 박사가 선정된 것을 기념하는 ‘현봉학 박사 12월의 전쟁영웅 선정 기념 축하연’을 연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써본 글이다.(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