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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과 멋을담는 찻그릇
인류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음료인 차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음료중의 하나이다. 중국에 기원을 둔 차는 육로와 해로를 통해 동양 각지와 유럽에 전래되면서 지역마다 독특한 차 문화를 이루었다. 차는 단순히 마실거리의 차원을 넘어 서양에서는 사교문화로 동양에서는 정신문화로 꽃피웠다. 특히 동양에서 차는 예술적인 규율안에서 격식있게 마시는 의식을 만들었으며 거기에 정신적 의미를 부여했다. 그리고 이를 다도(茶道), 다례(茶禮), 다예(茶藝), 다법(茶法)이라는 이름으로 차를 내는 이의 철학적 태도를 반영하기도 했다.
차는 크게 찻잎의 원형을 살려 가공한 잎차와 찻잎을 미세한 분말 상태로 만들어 가공한 가루차로 나눈다. 이런 차의 향과 멋을 담아내기 위해 꼭 필요한 그릇으로는 잎차를 우려 마실 때 쓰는 다관(차주전자)과 찻잔, 그리고 가루차를 타서 마시는데 사용하는 찻사발(다완)이 있다. 이같은 찻잔과 다관, 찻사발을 좁은 의미에서 다기(茶器) 또는 찻그릇이라 하고 기타 찻일에 쓰이는 다른 도구들을 다구(茶具)라고 한다. 이 글의 주제가 “다기의 미학”에 대해 알아 보는 것이지만 그에 앞서 동양의 정신문화에 녹아있는 ‘차의 정신’에 대해 먼저 알아보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동양에서의 차의 역사
동양에서 차는 5,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고전기호(古典嗜好) 음료라고 말할 수 있다. 차에 대한 최초의 기록인 당나라 때 육우가 쓴 「다경(茶經)」에 보면 ‘차를 오래 마시면 사람으로 하여금 힘이 있게 하고 마음을 즐겁게 한다’는 신농(神農)의 「식경(食經)」을 인용한 내용의 기록이 있다.
신농은 중국의 삼황(三皇)가운데 한 사람으로 백성들에게 농사짓는 법을 처음 가르쳤고 약초를 발견하기 위해 백가지 풀을 맛보다가 하루에도 70번이나 독초에 중독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때마다 신농황제는 독초의 중독을 찻잎을 씹어 해독하곤 했다는 의약의 신이기도 하다. 이런 기록들의 내용으로 보면 신농 황제 때인 BC 2700년경에도 차가 있었다고 추정된다.
이렇게 수 천년의 역사를 이어 온 차는 동양의 생활 문화 속에서 단순한 마실거리가 아닌특별한 정신문화로 자리잡게 되었다. 우선 차는 약리적 기능으로 마음을 편히 가라앉히고 정신을 맑게 하여 우리에게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한다. 이런 사색의 시간은 다인들에게 자연과 우주의 본질에 대한 심오한 명상과 자기 성찰을 통한 수양의 실마리를 주었고 시인과 묵객들에게는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중국에서 나서 우리나라에 전래된 차는 다선일여(茶禪一如)를 주장하는 승가의 사원차, 접대연이나 제례 등 의례로 행하는 의식차, 일상에서 마시는 생활차, 아플 때 마시는 약용차로 각각 이어져 내려오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측면에서 우리 민족의 삶의 한 요소가 되었다. 우리 옛 선인들은 차를 자기 수양의 방편으로 삼아 혼자 마시며 깊이 생각했고 둘이 마시며 담론하고 여럿이 마시며 예를 갖추었다. 이래서 차는 다른 마실 거리와 차별되는 동양이 만들어 낸 정신적 음료가 되었다.
차생활은 실천 미학
차 생활은 단순히 차를 우려내는 일만은 아니다. 차생활을 하다보면 차를 우려내거나 담아 내는 다기로써 도자기와 찻그릇을 올려놓는 찻상이나 다반같은 목기, 다실의 분위기를 위 해 장식하는 서화(書畵)나 음악, 꽃을 꽂는 화기(花器) 등 찻일(茶事)에 쓰이는 갖가지 도구에 관심을 갖게된다. 더 나아가서 정원의 나무 한 그루, 이끼 낀 작은 돌, 풀 한 포기가 만 들어내는 조형이나 놓여진 섬돌 하나에서도 감동어린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에게 관심을 갖게 하는 이 모든 것들은 미의 추구를 위한 요소들로써 그 목적이 단순히 감상에 있다기보다는 일상생활 속에서 아름다움을 경험하는데 있다. 그것은 단지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직접 체험하는 것이다.
차생활은 정적인 미가 깃든 동적인 미를 추구한다. 그것은 운동 속에서의 미다. 한 벨기에 사람은 어느 다인 집(다가연 차회 김용술님 댁)에 초대되어 차를 대접받고 귀국한 후 다음과 같은 글을 보내왔다.
정갈한 숲의 향을 우리는마셨다. 창호지와 간결하고 명확한 몸짓으로 우려내는 차. 한 손 밑의 다른 손... 손가락 마디 마디... 물이 흐르고, 부드럽고 분명하게 따라진다. 그런 폭포수... 시원한 도자기의 그 멋! 세 번에 나누어 마시는 행위가 계속된다. 그릇들이 묵묵히 이동한다. 그런 호흡... 환대하는 분위기 속에서의 그 특별한 맛! 이추억이얼마나근사한지!!
그 외국인은 ‘차내는 일’에서 동양정신이 담긴 정중동(靜中動)의 미, 즉 고요함과 인체의 동선이 함께 어우러진 선(線)의 미학을 본 것이다.
차 생활은 일상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는 행위 예술이고 차와 관련된 주변 문화를 동시에 체험하는 종합적 실천미학이다. 또 차 생활을 통해 공예문화 즉 도자기나 목기, 다실의 분위 기를 돕기 위한 민예품 등에 대한 이해와 안목을 높일 수 있다. 차는 시(詩),서(書),화(畵)의 세계까지 정신적 눈의 영역을 확장시켜준다.
어울림과 더불어 사는 삶
따라서 차 생활은 종합문화체계이면서 미의 나라로 들어가는 관문이라 말할 수 있다. 일 상 속에서 아름다움을 경험하는 차생활을 통해 미의 나라로 들어가는 우리는 다시 착함의 세계로, 착함의 세계에서 참됨의 세계로, 참됨의 세계에서 경건함의 세계로의 여정을 거치게 된다. 왜냐하면 아름다움의 극치는 착함과 참됨과 경건함과 한 가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여정을 통해 眞(학문), 善(윤리), 美(예술), 聖(종교)이라는 조화로운 전인적 인격을 만들 어 가는 것이다.
차의 정신은 한 인격이 삶에 생기와 빛을 주는 아름다움을 체험하면서 자기 성찰을 통해 얻어내는 조화의 마음이다. 개인적으로는 치우침이 없는 인격의 조화이고 사회적으로는 너 와 나의 어울림이며 더불어 살려하는 상생(相生)의 정신이다. 자연을 통해서는 질서와 이치를 배우고 자연과 인간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이해하고 몸에 익히는 일이다.
김동현은 茶會'작은 다인들의 모임' 회장이고 차문화 공예연구소인 雲中月의 대표로 일하고 있다. 그는 흙과 나무로 차 생활에 소용되는 기물등을 만들며 그 것들을 사용함으로써 생활이 생기 있고 아름다워지기를 원한다.
다기란 무엇인가
다기(茶器)는 넓은 의미로는 차를 내는데 쓰이는 여러 종류의 도구를 말한다. 그러나 좁은 의미의 다기는 ‘찻물을 담거나 차를 우려내는 그릇’을 말한다. 기타 찻일에 쓰이는 다른 도구, 예를 들면 차를 올려놓는 찻상, 차를 보관하는 차통, 차를 떠내는 차수저는 다구(茶具)라고 한다.
차는 마시는 방법에 따라 크게 잎차와 가루차로 나눈다. 잎차는 찻잎을 물에 넣어 우려 마시는 방법이고 가루차는 찻잎을 가루 낸 분말에 물을 부어 저어 마시는 방법이다.
이때 쓰이는 다기는 잎차의 경우 차를 우리는 다관(찻주전자)과 따라 마시는 찻잔으로 구성되고, 가루차는 찻가루를 넣고 물을 부어 저어 마실 수 있는 찻사발(다완)이 있다. 우선 잎차 다기에 관해 이야기하고 가루차 사발에 대해서는 후에 잎차 찻잔과 함께 설명을 하도록 하겠다.
잎차 마시기의 역사
다관에 찻잎을 넣고 더운 물을 부어 우려 마시는 잎차를 음용하기 시작한 것은 명 왕조 홍무 24년(1391년)부터다. 그때까지 송대에 유행하던 연고차(硏膏茶)는 차를 찌고 즙을 짜낸 후 갈아서 틀에 찍어 내는 공정을 거친 다음 광택을 내는 등 제다공정이 까다롭고 힘들었다.
명 왕조는 그간 연고차를 만들어 나라에 바치는 공차(貢茶)제도로 인한 백성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연고차 제조를 법령으로 금지시켰다. 이때부터 일종의 덩이차인 연고차(硏膏茶) 대신 잎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 후 차를 우리는 다관이 의흥 지방을 중심으로 활발히 제작되어 지방 이름을 붙인 유명한 ‘의흥 다관’이 탄생되었고 찻잎을 다관에 넣어 우려 마시는 다법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다갈색의 의흥의 자사 다관은 쓸수록 차의 정유 성분이 밖으로 나와 유막(油膜)을 형성하면서 자연스런 광택이 난다. 또 뜨거운 물을 부으면 홍조를 머금듯 색이 변하면서 살아 있는듯하고 금방이라도 생명을 분출할 것처럼 느껴지며 차맛 또한 좋게 한다.
우리나라에서 차를 우려마시는 다법의 시작은 16, 17 세기로 추정된다. 정영선님에 의하면 이는 그시절 정사룡(鄭士龍)과 허균(許均)의 차시(茶詩)에서 우린다는 뜻으로 유추할 수 있는 데칠약 이라는 한자어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 후 다산시대에 와서 우려 마시는 다법이 널리 보급되었다.
조선시대 사헌부(司憲府) 관리들이 일정시간에 모이는 것을 다시(茶時)라고 했으며 궁중에는 다색(茶色)을, 또 관아에는 다모(茶母)를 두었다.
최근 인기 사극 다모(茶母)는 차와 관련있는 드라마이다. 좌포도청 다모인 채옥은 여인들이 관련된 사건의 조사를 맡은 포도청 소속 관비로 각종 사건을 해결하는 오늘날의 여형사로 화려한 무술 영상과 빠른 전개 등은 시청자의 눈을 즐겁게 한다.
다모는 다(茶) 심부름을 하는 여자로 관청에서 차를 끓이는 등의 잡무를 담당하는 여성을 말하며 신분은 천인으로 대부분 관비였다고 한다. 글 읽고 똑똑한 여성으로 의녀(醫女)와 함께 여성수사를 담당하기도 했다. 다모의 관련 기록은 많지 않으나 조선 후기에 쓰여진 송지양(宋持養: 1782~?)의 ‘다모전’(茶母傳)은 그 시대 다모의 여자 형사로서의 역할을 보여준다.
잎차의 종류
잎차를 발효 정도에 따라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불발효차
덖거나 찌는 방법에 의해서 잎 속의 산화 효소를 파괴시켜 발효를 방지한 것으로 이런 불발효차로는 녹차가 있다. 녹차는 가공된 찻잎이 녹색을 띄고 찻물색은 연두색이거나 황금색이며 신선한 풋내음을 간직하고 있다.
■반발효차
발효가 10-65% 정도 이루어진 것으로 백차류(10%), 화차류(20%), 포종차류(20-50%), 우롱차(65%)로 나눌 수 있다. 반발효차는 발효 도중 생긴 독특한 향과 부드러운 맛이 특징이다.
■발효차
발효가 85% 이상 된 것으로 홍차가 있다. 홍차는 잎차 형태와 파쇄형 홍차로 나눌 수 있다. 파쇄형은 맛과 홍색의 찻물색이 강하여 티백용으로 사용되고 잎차형은 티포트에 넣어 우려 마시는데 찻물색은 연하나 향기가 파쇄용보다 뛰어난 고급차다.
■후발효차
후발효차는 군산은침 같은 황차와 보이차 같은 흑차로 나뉜다. 비효소성 발효로 만들어지는 것이 황차이고 아스퍼질러스(Aspergillus) 등의 곰팡이 균류를 생기게 하여 떫은 맛과 풋내를 없애고 흑색으로 변하도록 발효시켜 만든 것을 흑차라고 말한다.
잎차 우리는 그릇 - 다관(茶罐)
다관은 잎차를 넣고 더운 물을 부어 차가 적당하게 우러나오면 우린 차를 찻잔이나 다른 그릇에 따르기 위해 만들어진 주전자 모양의 그릇을 말한다. 다관을 만드는 재질로는 금, 은, 동, 유기 등 금속과 옥과 같은 자연석, 그리고 도자기가 있다.
다관의 명칭은 물대를 기준으로 손잡이가 몸통 옆에 붙어 있으면 다병(茶甁), 뒤에 있으면 다호(茶壺), 위에 있으면 다관(茶罐)으로 분류되지만 현재 가장 많이 쓰이는 명칭인 다관으로 통일해서 부르는 것도 좋다고 본다. 다만 손잡이 위치에 따라 윗손잡이 다관, 옆손잡이 다관, 뒷손잡이 다관으로 부르면 다관의 종류를 인식하는데 도움이 된다.
■다관의 종류
주전자 모양의 다관은 몸통에 붙은 손잡이의 위치에 따라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윗손잡이 다관
다관(茶罐)은 활 모양의 손잡이가 위에 있는 것으로 차를 넣고 내는 데는 불편한 점이 있지만 옛날에 가장 많이 쓰였던 형태다. 손잡이는 도자기로 된 경우와 대나무나 등나무, 나무 뿌리로 만든 것을 사용하기도 한다.
■옆손잡이 다관
다병(茶甁)이라고도 부르며 자루 모양의 손잡이가 물대를 기준으로 몸통 옆에 붙은 차 주전자를 말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쓰인다.
■뒷손잡이 다관
다호(茶壺)라고도 하며 고리 모양이나 의장(意匠)적으로 변형된 손잡이가 물대 반대편 몸 통에 붙어 있다. 고리 모양의 손잡이는 중국차가 들어오면서 부쩍 많이 쓰이고 있는 형태다.
다관의 기능성과 예술성
생김새보다는 쓰임새에 유의하는 걸 생활 미술에서는 ‘기능성’이라고 말한다. 공예적 관점에서는 아름다운 그릇보다 쓸모있는 그릇이 더 가치를 지닌다고 보는 만큼 기능성은 매우 중요하다.
쓰임새 면에서 볼 때 다관은 다음과 같은 기능적 부위로 구성돼 있다. 필요한 용량을 담을 수 있는 몸통, 찻물이 깨끗하게 따라지는 물대, 쥐거나 잡기에 편한 손잡이, 찻물이 식는 것과 향기의 휘발을 막아주는 꼭맞는 뚜껑으로 되어있다.
또 다관은 이러한 기능성 외에도 위에서 말한 네 가지 부위가 적절히 조화를 이룬 아름다움, 즉 예술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다관은 쓰임새가 편한 ‘기능성’과, 심미적 감상 욕구를 충족시키는 ‘예술성’을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
다관이 갖추어야 하는 기능성 - 3수3평(三水三平)
쓰기에 편한 다관은 3수3평(三水三平)의 원칙에 따라 만들어져 있다. 3수란 출수(出水), 절수(切水), 금수(禁水)를 말한다. 출수는 물대에서 나가는 물줄기가 힘차면서도 예상 지점에 물이 떨어지는 것이고, 절수는 물 끊음질이 깨끗해서 물이 몸통으로 흘러내리지 않는 것을 말한다. 금수는 뚜껑의 바람 구멍을막으면 물이 한 방울도 나오지 않을 만큼 뚜껑이 정확하게 꼭 맞는 것을 뜻한다.
3평이란 물대 끝과 몸통의 전(찻잎을 넣는 입구) 그리고 손잡이의 끝이 같은 높이가 되어 수평을 이루는 것이다. 옆손잡이나 뒷손잡이 다관은 3평의 원칙을 지켜 제작한 게 좋다. 윗손잡이 다관도 당연히 물대와 몸통의 전은 수평을 이루어야 한다.
3평의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다음과 같은 기능상의 문제가 생긴다. 물대 끝이 몸통의 전 높이보다 높을 경우, 다관을 많이 기울여야 물이 나오고 이때 전을 통해 찻물이 몸통 밖으로 흘러내릴 수 있다. 또 물대 끝이 몸통의 전보다 낮으면 전 높이 만큼 물을 채울 때, 물대로 물이 넘쳐 흘러나온다. 또 손잡이의 끝이 물대와 몸통의 전과 수평을 이루지 않고 너무 높거나 낮으면 우리개의 무게 중심이 안정되지 않아 쥐거나(자루 손잡이) 잡고(고리 손잡이) 쓰기에 불편하다.
다관의 예술성
다관은 항상 다인(茶人) 곁에 있는 말없는 벗이므로 쓰임새뿐 아니라 예술성 또한 뛰어나야 한다. 러시아 작가 고리키는 “천성적으로 인간은 예술가이며, 그가 어느 곳에 있든지 언제나 아름다움을 자신의 생활 속에 지니기를 바란다”고 했다. 또 “미는 생활이다”고 말한 미학자도 있다. 그렇다. 다인의 차생활은 곧 아름다움이다.
생활 속에서 일상으로 쓰는 다관은 질박함과 건강미를 갖고 있는 도질자기(陶質磁器)로 된 다관이 쉽게 싫증나지 않아 좋다.도질자기는 반 자기화한 것으로 약간의 흡수성이 있고 숨을 쉬므로 세월의 분위기가 주는 고태미(古態美)를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사용하면서 길을 내는 즐거움도 더할 수있다.
주의할 일은 도질 자기는 맛과 향을 잘 흡수하므로 다관을 발효차용과 비발효차용으로 구분해서 사용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차의 맛이나 향에 영향을 받지 않고 본래의 차 맛을 즐길 수 있다. 또 수분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으므로 차를 우리는 일이 끝나면 깨끗이 비우고 잘 건조시키는 것도 지켜야 할 일 중에 하나다.
백자나 청자다관은 완전자기화된 도자기로 쉽게 변화하는 아름다움은 없지만 그 형태나 색상이 정교하면서도 기품이 있고 단아한 품격을 갖추고 있어 특별한 분위기의 차 마심이나 의식다례에 쓰면 좋다.
다인이라면 차를 마시는 그 시간만큼 더 행복을 느낄 때는 없을 것이다. 그 행복의 순간에 말없이 곁에서 시중드는 찻그릇이야말로 다인의 진정한 친구라고 할 수 있다. 다인들의 가장 가까운 친구인 다관의 매력에 대해 더 알아 보도록 한다.
다관의 아름다움 찾기
가. 태토(속살 흙)와 유약의 물성(物性)이 갖는 자연미
다관의 조형은 태토의 물리적 성질에 순응하여 만들어질 때 아름답다. 예를 들면 백자의 태토처럼 치밀질 흙으로는 섬세한 맛과 단아하고 우아한 멋을 지닌 백자 다관을 만들고 거친 흙으로는 무심한 손맛과 소탈한 맛이 느껴지는 도질자기 다관을 만들어야 제격이다. 치밀질 점토로 거칠고 질박한 형태를 흉내내거나 거친 점토로 섬세하고 유연한 맛을 내려한다면 모두 재료의 물성을 거슬리는 일이 될 것이다.
이때 투명성 유약으로 옷을 입히면 태토의 색깔이나 입상(粒狀)까지도 비쳐 나오므로 태토의 본질인 물성의 자연미, 즉 ‘흙맛’까지도 느낄 수 있다. 다관의 피부는 태토의 색과 질감, 유약의 색과 투명성, 유약의 두께와 빙열, 유약의 응결과 확산상태에 따라 느낌과 분위기가 다르게 된다. 따뜻해 보이고 부드러우면서도 불길이 지나간 흔적에 따라 유색(釉色)과 분위기의 변화가 있으면 더 많은 감상거리가 있는 다관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청자나 백자는 유약의 확산이 고르고 유색도 일정해야 한다.
나. 형태의 느낌 - 조형의 아름다움
물대, 몸통, 뚜껑, 손잡이로 구성되어 있는 다관은 이 네 가지의 구성 요소가 조화를 이룬 형태미를 갖추어야 한다. 다관의 형태를 구성하는 요소로 조형성과 품격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물대와 손잡이다. 따라서 다관의 물대와 손잡이는 차를 따를 때 가장 중요한 기능을 할 뿐 아니라 그 형태에 따라 다관의 품격이 결정되는 만큼 기능성과 예술성을 모두 요구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몸통은 안정된 모습이 제일 중요하다. 그러나 뒷손잡이 다관의 경우 너무 키가 낮고 납작한 것은 무게 중심이 손잡이로부터 멀기 때문에 무겁게 느껴지는 단점이 있다. 그 외의 형태의 변화 즉 다각형이나 동식물 또는 다른 사물의 형상을 취해 만든 것들은 작가의 취향이고 창작의 차원이므로 쓰는 이들을 즐겁게 해 줄 수도 있다. 그러나 형태가 너무 복잡하고 화려한 것들은 쉬이 실증이 난다는 점도 염두에 두는 것이 좋다.
다. 분위기의 맛- 조화의 아름다움
다관의 형태와 유색(釉色), 표면의 질감이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분위기의 아름다움을 조화미라고 한다. 도자기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의 맛은 사람에게 있어서 내면의 미나 인격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형태의 구성 요소 하나 하나는 아름답다고 해도 전체 속에서 하나가 되지 않고 따로 떨어져 있는 느낌이 든다면 균형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해체된 미일뿐이다.
라. 변화한다는 것의 아름다움
찻그릇은 주인과 함께 늙어가므로 더 애정이 가는 기물이다. 쓴 만큼 세월이 입혀지고 깨어져도 버리지 않고 금이나 은으로 때워주며 그 상처 난 이야기를 간직하는 것, 이것이 다인이 찻그릇에 바치는 예우이고 찻그릇은 그렇게 주인과 함께 늙어 간다. 그리고 다인은 변해가는 찻그릇과 본인의 모습에서 새삼 살아 간다는 것의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것이다.
다관을 감상하고 즐기기 위해서는 도자기를 읽는 심미안을 가져야한다. 도자기는 아는 만큼 이해하게 되고 이해하면 애정이 생겨난다. 애정을 갖게 된 후에는 넓게 보는 훈련이 필요하다.사람의 눈이란 한 가지를 자주 보면 친숙해지고 친숙해지면 그것만이 정이 간다. 그러므로 도자기를 보는 눈도 편식을 하면 안된다. 가능하면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보아야한다. 더 알고자 한다면 옛날 그릇들을 많이 보기를 권한다. 그렇게 되면 스스로 다관을 감상하는 눈이 트인다.
찻잔과 찻사발(다완)
찻잔-잎차용 잔
다관에서 우린 잎차를 담는 찻잔은 잔(盞)과 배(杯, 盃)가 있다. 보통 잔에 비해 바닥의 굽이 높은 것을 배라고 부른다. 배에는 무사가 말을 타고 한 손으로 들고 마시는 굽이 높은 마상배(馬上盃) 등이 있다. 문향배(聞香盃)는 중국인이 차향을 즐기기 위해 고안한 잔이다.
▲ 각종 찻잔 형태. 마상배(사진 좌 두번째), 문향배(사진 좌 네번째) . 사진/김동현
중국인은 좁고 긴 문향배에 차를 따르고 그 차를 다시 마실 잔에 옮긴 다음 문향배를 코 가까이 대고 향을 맡는다. 그러나 알게 모르게 가슴 높이에서 향을 즐기는 우리의 정서나 품격에는 알맞지 않은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찻잔의 형태
찻잔은 형태를 중심으로 분류하면 범종을 거꾸로 세운 듯한 종형과 위아래 크기가 비슷한 통형, 굽에서 위로가면서 벌어지는 사발형 등으로 크게 나눌 수 있고 이 기본형으로 부터 많은 변형이 나온다. 잔은 입술이 안으로 많이 옥으면 마실 때 목을 젖혀야하므로 좋지 않고 잔의 입술이 너무 두꺼우면 차 맛을 예민하게 느낄 수 없다.
▲ 찻잔은 개인의 취향과 차의 종류에 따른 선택이 필요하다. 사진/티&피플 제공
찻잔의 색과 크기
찻잔 빛깔에 대한 취향이나 기호는 시대에 따라 다르다. 이는 당시에 마시던 차의 종류에 따라 찻물색이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수색이 붉게 나오는 덩이차를 마시던 중국 당대에는 월주요에서 구워진 청자를 최고로 여겼다. 이는 형주 가마에서 만들어진 백자에서는 덩이 찻물이 붉게 보이는데 비해 월주의 청자는 찻물의 빛깔이 백록색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라고 육우가 쓴 ‘다경(茶經)’은 기록하고 있다. 같은 덩이차를 마시던 송대에도 청자가 주로 사용되다 11세기에 이르러서는 흑유(천목) 찻잔이 애용되기 시작해 13세기에 절정에 이르고 14, 15세기에는 내리막 길에 들어선다. 그뒤 잎차를 마시기 시작한 명나라 때에는 잎차의 황금색이나 연두색 찻물색이 잘 보이는 백자를 좋아했다.
▲ 한국의 도공들이 만들어낸 각종 찻잔, 과거 조선은 세계 도자기 강국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수많은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가 쇠퇴의 길을 걷고 일본은 오늘날 세계 도자기 강국이 되었다. / 변희석 기자
조선시대 초의(草衣)스님이 쓴 다신전(茶神傳)에는 잔은 설백색이 가장 좋고 남백색(藍白色) 은 색을 해치지 않으니 다음으로 좋다고 했다. 찻잔의 색은 찻물의 색을 정확히 내려면 백자나 분청자기의 흰색이 제격이겠지만 차를 마시는 일이 찻물색만 보는 것은 아니므로 그 날의 기분과 손님에 따라 다양한 색의 찻잔을 골라 쓰는 즐거움 또한 크다. 찻잔의 크기도 오랫동안 다담을 나눌 때는 좀 작은 잔을 사용하고 일상적인 찻자리에서는 중간 크기의 찻잔을 사용한다. 혼자서 찻일 조차 번거롭고 그저 생각에 젖고 싶을 때는 큰 잔에 차를 가득 담아 천천히 나누어 마시는 것도 괜찮다.
찻사발 [茶碗] - 가루차용 사발
▲ 가루차용 찻잔은 다완(茶碗) 또는 찻사발이라 부른다. 주로 한국이나 일본에서 사용한다./ 변희석 기자
가루차는 찻잎을 곱게 갈아 만든 분말을 그릇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은 다음, 차솔로 휘 저어 거품을 만들어 마신다. 이때 쓰는 사발을 다완(茶碗) 또는 찻사발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찻사발은 신라 때는 토기사발, 고려 시대에는 청자사발, 조선시대에는 백자, 분청 자기, 지방자기로 만든 사발이 있었다. 특히 조선시대 찻사발은 형태에 무리한 모습이 없고 어디에 놓여지든 있는 듯 없는 듯 고요한 모습으로 차의 중용사상이나 겸양지덕의 정신과 잘 어울린다.
조선찻사발 위에 세워진 일본다도
일본은 ‘도자기 전쟁’이라고 불리워지는 임진왜란을 통해 수 많은 조선의 사기장들을 일본 으로 끌고 갔고 찻사발과 많은 도자기를 약탈해 갔다. 이때 끌려간 조선의 사기장과 가져갔 던 도자기는 일본의 도자산업을 일으켜 국가 경제를 부흥시켰고 식생활과 차문화를 바꾸었 으며 일본 다도의 초석이 되었다.
5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일본의 모든 문화를 그 속에 아우르고 있다는 일본 다도는 조선 의 찻그릇 위에 세워진 ‘심미주의의 종교’라고 말할 수 있다. 차 문화의 싹이 튼 15세기, 일본의 무로마치(室町)시대의 미 의식은 적막함, 쓸쓸함, 그리고 스산함이였다.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활약했던 모모야마(桃山)시대는 일본다도가 완성된 시기이다. 승려이면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차 스승이고 일본 와비차 다도를 완성시킨 센리큐(千利休)는 자연으로 돌아가 꾸밈없이 사는 소박한 삶과 완벽하고 화려한 미(美)로 부터 불완전하고 검소한 것으로 돌아오는 미의식의 세계를 확립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주장하는 와비차 정신을 담아내는데 가장 적절한 찻그릇으로서 조선의 사발을 선택했다. 센리큐가 제창한 이런 차 문화의 영향으로 조선의 찻사발 하나는 당시의 오사카성(城) 하나와도 바꾸지 않을 만큼 가치를 지니게 되었고 일본 다인들의 명예와 부의 상징이 되었다.
일본의 고려 다완 연구가 하야시의 조선 찻사발에 대한 평가는 매우 솔직하고 함축적이다. “이 고려다완은 물론 조선 시대의 막사발이긴 하지만 우리 일본인들에게는 신앙 그 자체 였으며, 우리에게는 단순한 보물이 아닌 우리들의 마음을 한없이 평화롭고 기쁘고 또 숭고하게 했으며 우리의 마음을 영원한 안식처로 이끌어 주었던 마치 신과도 같은 그런 존재였습니다.”
일본 다인들에 의해 국보로 지정되었고 일본 천황도 무릎 꿇고 보아야한다는 ‘신같은 존재’ 로 신앙의 대상이 된 조선 찻사발은 형태의 단순성, 꾸밈이 없는 무위성(無爲性), 무욕의 마음에서 나오는 소박성이 투영된 자연주의적 미학의 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