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태양처럼 빛난다
사랑과 자비라는 것은, 마치 태양이 뿜어내는 빛과도 같습니다. 태양빛은 어때요? 온 우주에 골고루 비친단 말이죠. 어디에만 선택적으로 비치는 것이 아니라, 골고루 비칩니다. 태양빛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비치고, 빛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비쳐요. 심지어 태양빛을 비추지 말라고 증오하고 욕하는 사람에게도 고스란히 비칩니다. 아무런 차별이 없어요. 분별이 없어요.
좋은 사람에게도 비추고 나쁜 사람에게도 비추고, 죄인에게도 비추고 성자에게도 비추고, 동일한 태양의 빛이 모든 존재에게 인간과 짐승 할 것 없이 자연만물 모든 것에 평등하게 비출 뿐입니다. 하다못해 동굴 속에 10년 20년 갇혀있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동굴 안에만 벗어난다면 언제든 그 빛이 비칠 수 있습니다.
“나는 빛이 싫어. 빛을 믿지 않아. 빛은 없어. 즉 진리는 없어. 신은 없어. 부처는 없어.”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것을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빛은 그 사람에게 비칩니다. 태양은 언제나 있지요. 태양이 비추는 것은 막을 수는 없습니다. 이 우주 법계의 자비와 사랑이라는 근원적인 빛, 이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자비와 사랑이 물결치고 있고, 부처님의 자비와 신의 사랑이 언제나 충만하게 우리에게 있는데 우리가 그것을 막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내 삶은 최악이야. 이것은 자비도 아니고 사랑도 아니야. 나에게는 자비로운 빛이 내리 쬐지 않는다고’ 하며 화를 내고 있다고 할지라도 근원에서 본다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좋고 나쁜 분별이 있어서, 어느 한 쪽의 좋은 면을 보내주어야 나를 사랑한다고 여기지만, 우주법계의 무한한 자비는 그 누구도 둘로 나누지 않고 모두에게 골고루 자비의 빛을 내보내고 있기 때문이지요. 분별은 우리 쪽에서 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 무한한 가능성의 빛을 우리 스스로 생각, 판단, 분별함으로써 그 마음, 의식을 인연으로 괴로운 과보를 스스로 만들어 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어떤 사람이 ‘나는 안 보겠다. 난 믿지 않겠다. 태양을 보지 않겠다’라고 고개를 숙일 수는 있습니다. 고개 숙이고 안 보겠다고 하면, 그 사람에게는 태양이 없는 거죠. 그러나 그런 사람에게 조차 고개를 들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고개를 드는 순간 태양은 바로 그 자리에 있습니다. 어디 도망간 게 아니란 말이죠.
우리 모두에게 부처님은 한없는 자비로써, 법계는 언제나 완전한 자비로써 우리를 품어주는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를 심판하는 일, 우리를 미워하는 일 이런 일을 전혀 안 한다는 말이죠. 항상 사랑하는 일 밖에 안 합니다. 그야말로 ‘사랑밖엔 난 몰라’예요.
그러면 나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고, 나에게 괴로운 일이 생기는 이유는 뭡니까. 그건 내가 만들어 낸 거죠. 내가 만들어 낸 겁니다. 부처님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고. 내가 그것을 만들겠다고 해서 작정하고 만드는 사람에게 이 태양빛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아 버리는 사람에게는 태양도 어쩔 수가 없는 거죠.
그러나 그것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자에게는 우리에게는 언제나 자비와 사랑이 우리 삶 속에 끊임없이 물결 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우주법계의 무한한 자비의 빛을 고개 들고 가슴을 활짝 열어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이미 자비와 사랑과 지혜는 온누리에 가득합니다.
첫댓글 '우주법계의 무한한 자비의 빛을 고개 들고 가슴을 활짝 열어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아~~ 방송 녹취를 하셨나 봐요?
여기서는 뜨지 않아서 늘 궁금했는데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복 많이 받으실거예요~~^^ ㅎ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_()_
다시듣기가 쉽지 않아서 방송원고를 올립니다.
법우님도 복 많이 받으세요.
여기 계시는 모든 법우님들이 무량대복을 누리고 있는것 같습니다.
정말 좋습니다.
예
무량 대복 맞습니다.
감사 합니다.사랑합니다.
사랑밖엔 난 몰라...ㅎㅎ 네 법우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