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로드 | 밀리의 서재
어제부터 '밀리의 서재' 플랫폼에 늦게나마 저의 자전적 단편소설을 연재하였습니다.
진작에 이런 플랫폼이 있은 줄 알았지만, 그동안 웹소설 위조 연재하느라 놓친부문입니다.
앞으로 이 밀리의 서재에서 저의 본업, '순수 소설'을 꾸준히 연재하고자 합니다.
참고로 이번 단편소설은 회당 글자 수 대략 1,500자, 총 10회로 마무리됩니다.
매화 짧은 분량이니 가독성이 좋을 것입니다.
응원과 지지바랍니다.
꾸벅!
'비와 그대 ' 소설가 이인규 드림
제1화. 이장 가는 길
장례식장에서 선친의 산소가 있는 H 읍으로 가는 길은 초장부터 막혔다. B 시의 외곽, 고속도로 진입로에 지하철 공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여름휴가 기간이어서 차량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로 앞다투어 진입을 시도하느라, 이곳은 그야말로 북새통이었다. 교통체증을 고려하여 아침밥도 그른 채 일찍 서둘렀건만 출발한 지 20분도 채 못 되어 우리는 꼼짝없이 그곳에 갇히고 말았다. 첫날 빈소를 차리고 밀려드는 조문객을 받느라 지쳐, 간밤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한 나로서는 여간 짜증이 나는 게 아니었다. 그나마 나를 대신하여 그가 운전대를 잡고 있었는데, 사실 이 점도 내 마음을 조금 불편하게 하였다.
이십 대 중반부터 이런 계통으로 종사했다는 그는 내게 담배를 피우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그는 반가운 기색으로 얼른 창문을 열었다. 출장(그는 이송을 출장이라고 불렀다)을 갈 때 상주가 여자인 경우, 그는 꼬박 몇 시간을 비흡연자로 행세하느라 아주 힘들었다며 내게도 담배 한 대를 권했다. 그가 내민 담배로 우리는 어색한 분위기를 극복하고 꽉 막힌 도로에서 서로의 숨통을 틔웠다.
“행님! 제가 이 업을 하면서 느낀 게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뭔고 하면 많은 사람이 죽을 때 ‘껄, 껄, 껄’ 한다는 겁니다.”
어차피 오고 가는 시간에 인상만 쓸 수 없는 노릇이라 나는 그에게 내 소개를 간단히 하고 난 뒤였다. 오늘 처음 만난 그였다. 하지만 나보다 서너 살 아래인 그는 사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형님, 소리가 붙은 모양이었다. 하긴, 뜬금없이 나더러 사장님, 혹은 선생님, 하는 멋쩍은 호칭보다는 형님이 더 낫긴 했다.
“걸, 걸, 걸요?”
나는 그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오십 초반으로 보이지 않는 외모였다. 곱슬머리로 파마하고 윤기 있는 얼굴에 엷은 선글라스를 쓴 그는 도시의 웬만한 멋쟁이 못지않았다.
“살아 있을 때 여행이나 자주 다닐걸, 자식에게 주지 말고 자신에게 돈이나 왕창 쓸걸, 기타 가르쳐줄 때 열심히 배울걸, 마음에 드는 여자가 고백할 때 받아줄걸, 등등 모두 후회막급입니다.”
나는 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말에 호응하는 내게 친밀감을 느꼈던 게 분명했다. 연이어 큰소리로 자신의 소견을 피력했다.
“그래서 행님은 지금부터라도 재미있게 살아야 합니다. 이제 막말로 천애 고아 아닙니까? 마누라, 자식 이런 것들 다 필요 없습니다. 살아 있을 때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일, 하고자 하는 일을 다 해야 합니다. 죽고 나면 끝이지 않습니까? 그래, 행님은 지금 무슨 일 하십니까?”
얼핏 생각하니 그는 내가 마누라 눈치나 보면서 마지못해 시시한 직장에 꾸역꾸역 돈벌이 나가는 좀생이처럼 보였나 싶었다. 남루한 행색에다 술이 덜 깬 얼굴과 헝클어진 머리로 보면 맞는 말이었다. 나는 사실대로 말할까, 하다 초면에 너무 많은 말을 하는 것 같아 그냥 농부라고 말했다.
“농부요?”
그가 적잖이 놀라는 순간, 어느새 내가 탄 차가 고속도로 진입로에 들어섰다. 그제야 그는 시계를 보며 아까의 대화를 까맣게 잊은 듯 급히 차를 몰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