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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자원봉사가 붐이다. 그러나 문제는 지속성이다. 대다수 사람들이 붐을 타고 자원봉사에 참여했지만, 한두 번 뒤 마침표를 찍어버리기 일쑤. 이벤트처럼 일어나는 자원봉사에 일침을 가하듯 꼬박 8년째, 자원봉사를 해온 이들이 있다. 사랑의교회 청년부 한빛맹아원 봉사팀이다. | |
지난 2월 23일, 63빌딩에서 열린 '가루야 가루야' 체험학습장. 밀가루를 바닥에 뿌려놓고 그림을 그리고, 반죽을 한 후 수제비를 떼어보기도 하는 등 밀가루를 통해 상상력을 키워나가는 이곳에 눈에 띄는 이들이 있다. 바로, 20여 명의 시작장애아이들과 30여 명의 청년들이다. “한 달에 한 번 아이들과 함께 소풍을 가는데요, 오늘이 바로 그 날이에요.” 한빛맹아원 봉사팀 팀장을 맡고 있는 김영란 씨. 올해로 3년째 이 모임을 통해 맹아원 아이들과의 데이트를 즐기고 있단다.
이 봉사팀의 시작은 2000년으로 훌쩍, 거슬러 올라간다. 사랑의교회 청년부에서 예배를 드리던 한 시각장애인 청년. 그를 통해 한빛맹아원을 알게 된 청년들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돕는 손길'로 분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시작된 모임은 어느새 막강 조직(?)이 된 것. “시각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기 때문에 바깥으로 다니는 것이 힘겨워요. 대부분 맹아원에서만 지내죠.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바로 야외 소풍이었어요.”
매달 다양한 기관에서 이뤄지는 프로그램들을 모두 챙겨두었다가 하나가 최종적으로 '낙찰'(?)이 되면 '주도면밀' 답사팀의 시찰이 시작된다. 시각 장애인이기에 입구에서부터 행사장에 이르기까지 동선을 체크하는 것은 필수. 사실, 이렇게 챙겨도 당일 돌발상황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그것이 사고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중 삼중으로 겹겹이 답사가 이뤄지는 것.
“한 번은 등산을 앞두고 있었어요. 그날도 사전 답사가 이뤄졌죠. 산 중간에 있다는 정자까지만 올라갔다가 내려오기로 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올라가도 정자가 보이지 않는 거예요. 길을 잃은 거죠.(웃음)” 어느새 산 정상까지 오른 답사팀. 그것도 모자라 올라왔던 반대편으로 내려오는 바람에 또 다시 답사길을 나서야 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졌다. 그러나 백 번 산을 오르면 어떠하리요. 솔향의 상쾌함을 온 몸으로 느끼며 산을 오를 아이들을 생각하면 이보다 더한 수고로움도 기꺼이 할 수 있다고 고백하는 이들. “왜냐면, 아이들의 마음을 얻기까지 정말 힘들었거든요. 어떻게 얻은 마음인데 그 마음에 감동을 줘야죠.”
사랑은 기적을 낳는다. 처음 이들이 방문했을 때 아이들은 그저 그런 봉사팀 중 한 곳이겠거니 했던지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단다. “사람이 그립구나, 했어요. 저희가 이것저것 준비해 간 건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을 하고 싶은 지를 얘기하더라고요.” 그들이 바라는 것은 비싼 선물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말벗이었던 것. 그런데 밀물 들어오듯 몰려왔다가 썰물 빠지듯 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마음에 적잖이 스크래치가 난 것이다. “다음 달에 또 올게” 하며 '꼭'이라는 단어를 몇 번이고 덧붙여도 믿지 않던 아이들의 마음이 열린 건 그로부터 얼마 후. “얼굴 한 번 제대로 보지 않던 아이가 전화를 한 거예요. 제 안부를 묻는데 눈물이 덜컥 나더라고요. 고마워서…”
봉사팀에서 임원으로 섬기는 류리 씨. 그날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아이의 목소리는 그녀가 힘들 때면 어김없이 들춰보게 되는 '힘센' 기억이란다. 그렇게 마음의 빗장을 조금씩 열기 시작한 아이들. 그 기회(?)를 놓칠 세라 이진효 씨는 아예, 아이의 집을 방문해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며 확실히 '내 사람'(?)으로 만드는 공략을 시작했다. “한달에 한 번밖에 보지 못하기 때문에 좀 더 많은 것을 알면 더 풍성하게 챙겨줄 수 있을 것 같아 집으로 쳐들어 간 거죠.(웃음)” 그의 세심한 배려는 뜻밖의 쾌거를 이뤘다.
대부분의 시각 장애 아이들은 보지 못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상상력이 풍부해지기 마련. 그래서 이들이 던지는 질문은 날카롭다 못해 철학적이다. 논리정연하게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말하는 한 아이를 눈여겨보던 진효 씨. 아이의 부모님께 그것을 살짝 귀띔해 주던 것이 계기가 되어 '말하기 대회'에 출전한 것. 그런데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말하기 대회에 나간 것만 해도 놀라운 일이죠. 그런데 대통령상을 수상한 거예요.” 시각 장애는 아이들에게 더 이상 '재앙'이 아니었다. 그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서는 귀히 여기시며, 아름답게 사용하신다는 것을 목도하는 순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저희가 아이들에게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그 반대예요. 오히려 아이들 때문에 저희가 감동을 받아요.“
개인적인 사정으로 얼마 동안 봉사에 못 참석했다가 복귀했다는 황의종 씨. 그 기간이 지옥같았다며 웃는 그의 말이 너스레는 아닐 터다. 평화란, 세상이 심어놓은 왜곡된 모습에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본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 아닐까. 그들이 만들어갈 4월의 소풍에서도 또 하나의 평화가 그곳에 심겨지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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