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안양시의 한 굿당에서 ‘진적맞이 굿’이 열렸다. 진적굿은 무속인이 자신의 신을 위해 여는 잔치다. 무속인 정연정(맨 오른쪽)씨가 장단에 맞춰 거성(춤으로 신령을 맞이함)을 드리고 있다. [신인섭 기자]
지난달 21일 경기도 안양시 수리산 웃굿당. 산속에 위치한 단층 건물 주변 곳곳에는 손님을 맞이하려는 듯 차려진 밥상이 여럿 놓여 있었다. 건물 밖에는 커다란 돼지를 잡아놓은 제사상이 눈에 띄었다. 건물 내부에도 음식들이 가득한 상(사진)이 한쪽 벽면 전체를 채우고 있었다. 음식들은 신(神)을 섬기기 위한 제물이라고 했다. 상마다 음식은 조금씩 달랐다. 서로 다른 신을 위한 상차림이다. 웬만한 성인 남자 상반신보다 큰 소갈비가 놓인 상도 보였다. 건물 정면에는 흰색과 노란색·빨간색 등 다섯 가지 색의 천이 매어져 있었다.
10년 전엔 자녀·배우자 먼저 걱정
점치는 사람 늘어 경쟁 심해지고
물가 오르며 점집 운영 팍팍해져
다리 휘어질 듯 8개 상 차려 놓고
모시는 신 위한 11시간 ‘진적굿’
오전 11시쯤이 되자 정적을 깨듯 장구와 피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내 한복을 차려입은 무속인 정연정씨가 흥얼대듯 굿을 시작했다. 할머니 목소리를 내는가 싶더니 아이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굿을 하는 중간중간 주변에 서 있던 이들에게 말을 건넸다. “오늘 좋은 날을 맞아 잔치에 왔어요”라고 하면 주변의 다른 이들은 “네에”하고 답하는 식이었다. 그런 뒤 주변의 다른 이들에 대한 축원과 건강에 대한 당부 등이 이어졌다.
이날 굿은 무속인 단체인 성수청이 운영하는 무당학교 정연정 부학장의 ‘진적맞이 굿’이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진적굿은 무당이 모시고 있는 신들을 위한 잔치다. 진적굿을 할 때는 무당과 그들의 단골 신자가 모인다.
그래서 진적굿은 공개적으로 이뤄진다. 일부 무속인들은 친분이 있는 민속학자 등을 진적굿에 초대해 학술적인 조사가 이뤄지게 돕기도 한다. 이날도 세 명의 무속인과 그의 신도들이 굿당을 찾아왔다. 오전 11시에 시작된 진적맞이 굿은 오후 10시가 넘어서야 마무리됐다.
회사원만큼 수입 거둬
이날의 주인공인 정연정 부학장의 당호는 ‘마마당’이다. 신도들은 ‘마마당 만신님’이라고 부른다. 무당학교는 무당이 되는 데 필요한 지식과 실무를 가르치는 곳으로 충남 공주시 정안면에 있다. 지난해 말까지 9기 교육생을 배출했다.
정 부학장은 2005년 무속인이 됐다. 건강하던 남편이 갑작스레 왼손을 쓰지 못하는 ‘무병’을 앓고는 자연스레 운명을 받아들였다. 자신의 신을 섬기게 되면서 남편과는 결국 갈라섰다. 그를 따르는 신도는 40여 명. 한 해 20~30번의 굿과 치성을 드린다고 했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많은 횟수의 점을 친다. 무속인 역시 현실을 딛고 사는 존재. 수입은 이들에게 받는 복채와 시주다.
이날 만난 무당학교 박노갑 학장은 “요즘 무당은 일반인들의 아픈 마음을 달래주는 힐링의 역할을 하고 있다”며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제대로 된 무속인이라면 보통 회사원 정도의 수입은 거둔다”고 했다. 악사로 활동 중인 그 역시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 다니다 무가(巫家)에 몸을 담게 됐다.
무속인에게도 성수기가 있다. 한 해가 시작되는 정월부터 3~4월까지가 제일 바쁜 시기다. 정 부학장은 “새해 운수를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이 오시는 시기”라고 했다. 많을 때는 한 주에 50명 이상 찾아온다고 했다. 주부와 사업가 등 무속인을 찾아오는 사람도 다양하다. 휴가철인 여름엔 상대적으로 손이 적은 편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점을 보는 트렌드도 달라졌다. 10여 년 전만 해도 점을 보러 오는 이들을 주로 가족의 일을 먼저 묻는 경우가 많았다. 자녀와 부모, 배우자의 안녕을 물은 뒤 자신의 운명을 궁금해하는 게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은 열에 아홉은 본인의 일부터 묻는다고 했다. 부적을 쓸 때엔 명예와 금전운을 비는 부적이 많다고 한다. 과거엔 무병장수나 무탈함을 기원하는 경우가 다수였다.
대학의 전공처럼 무속인마다 전문 분야가 따로 있다고 한다. 어떤 무속인은 사업운에 강하고 어떤 이는 건강운에 강한 식이다. 무속인 각자가 섬기는 신에 따라 달라지는 부분이다. 디지털 세상이라고 하지만 점이나 굿에 대한 수요는 꾸준한 편이라고 했다. 정 부학장은 “30대 때는 20~30대 분들이 많이 오셨는데 40대 무당이 되고 나니 40~50대 분들이 많이 오신다”며 “일반적으로 무당 본인의 나이에 위아래로 10년 정도 차이가 나는 분들이 많이 오시는 것 같다”고 전했다.
자극적 무속 이미지 부담
치솟는 물가는 무속인들에게도 걱정거리다. ‘굿값’은 1990년대 수준에 멈춰 있지만 굿에 쓰이는 제물값은 과거보다 많이 오른 탓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과 무당학교에 따르면 경기도식 진적굿의 경우 천존상과 본양상, 안당 장군상 등 총 8개의 상차림이 필요하다. 상마다 다리가 휘어지도록 제물이 올라간다. 비용이 오르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니 무당 본인이 가져가는 수입도 줄었다. 정 부학장은 “어떨 때는 굿을 거들어주시는 분들보다 수입이 적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최저임금 상승으로 아르바이트생보다 가져가는 돈이 적다는 일부 자영업자들의 호소가 떠올랐다.
팍팍한 현실 탓인지 무속인·역술인 수는 꾸준히 늘고 있다. 무속인 단체인 대한경신연합회와 역술인 단체인 한국역술인협회 등에 따르면 두 단체 가입 회원은 각각 30만 명 선이다. 두 단체에 가입하지 않은 비회원까지 감안하면 각각 50만 명가량의 무속인과 역술인이 있다는 게 이들의 추산이다.
2011년 대한경신연합회에 가입된 무당은 14만 명, 역술인협회에 가입된 역술인은 20만 명 선이었다고 한다. 무속인과 역술인을 찾는 수요도 그다지 줄지 않고 일정 선을 유지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다만 무속인과 역술인의 절대 숫자가 늘어나면서 경쟁은 조금씩 치열해지는 추세다.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무당이 되기 위한 교육 방식도 체계적으로 바뀌고 있다. 무당학교가 대표적이다. 기존엔 도제식 교육이 일반적이었다. 정 부학장은 “일반 세상에서처럼 나를 던지고 최선을 다해 제대로 일해야 좋은 무속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무속과 무속인에 대한 거부감은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다. 영화 ‘곡성’에서처럼 귀신이 들리거나 일부 고발 프로그램에서의 자극적인 무속인 이미지에 대해서는 무가에서도 부담스럽다는 반응이 많다고 한다. 박노갑 무당학교 학장은 “무속이란 우리 전통문화와 결합된 종교의 한 가지”라며 “현대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꾸준히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