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탄면 석우2리라는 같은 지역이었지만, 그녀는 음말에 나는 옥골에 살았다. 옥골이 위치한 곳이 동쪽 언덕배기 인데 반하여 음말은 서쪽 방향 아래쪽으로 논들을 끼고 십 분정도 내려간 다음, 작은 개울을 건너 맞은편 동학산으로 올라가는 언덕배기에 있었다. 학교로 가는 길 역시도 나는 윗길을 그녀는 아랫길을 이용하였다. 학생수에 관계업이 각 학년이 일반 이반 딱 두 반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주로 1반이었고 그녀는 주로 2반이어서 초등학교시절을 함께 보낸 시간이 적은 셈이다.
마을은 달랐지만 같은 학년 여학생이 네 명이었다. 함께 집으로 오다가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있던 지점에서 두 갈래길이 나오는데 그녀만 아랫길로 향하였다. 그녀가 정말 외롭고 심심한 날이거나, 아니면 우리가 그녀를 함께 놀자고 잡아끌어서 가끔 윗길로 동행 한 적이 있기는 했다. 공기놀이나 고무줄 놀이를 하고는 했는데 웃을 때마다 눈가에 번지던 간지러운 자잘한 웃음은 그녀만의 매력이었다. 막내 특유의 가늘고 어리광 섞인 목소리는 외모만큼 얼마나 애교스러웠는가. 지금도 여전하다. 또 하나 추억이 생각난다. 그 당시에는 중학교에 가려면 시험을 치뤄야 했다. 넷이서 각 집을 돌아가며 모여 꽤 열심히 공부를 하였는데 어머님들이 다양하게 내주시던 간식을 먹는 재미가 더 달달하였지 싶다.
그녀와 나는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달랐으므로 수원을 오고가는 시내버스에서 우연히 만나는 일이 고작이었다. 그녀의 아버지와 내 아버지가 동네 친구여서 가끔 한번 씩 소문처럼 그녀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빼어난 미모로 뭇 남성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고 했다. 초등학교 졸업사진을 봐도 그녀의 얼굴은 눈에 띄게 콧날이 오똑하고 눈매와 입매가 곱다. 이십대 후반쯤에 초등학교 여학생 동창 모임이 서너 번 있었는데 그곳에서 그녀를 만났고 내 결혼사진에 청순한 그녀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그 후로 만남이 지속되지는 못하였다. 나는 결혼 후 남편 직장을 따라 부산에서 살았다. 한창 입덧중이었고 서울에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아서 그녀 결혼식에는 참석하지 못하였다. 같은 동네라는 것을 빼고는 공유할만한 추억이 그나마도 많지 않은 것이다.
사십년이 흐른 후에 중년의 우리는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만났다. 그렇게 함께 한 시간이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동창들에 비하여 친근감과 다정함이 물씬 묻어났다. 특히 그녀가 내 이름을 부를때는 어린시절 억양 그대로여서 더욱 다정하게 느껴졌다. 오래도록 지속적으로 만나온 기분이었다. 같은 고향 같은 동네라는 연결고리의 위력이 대단히 끈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느낌 때문이었을까. 서둘러 그녀를 비롯한 석우리 친구들 셋이서 카메라를 들고 남이섬으로 여행을 갔다. 서쪽해가 비춰들어 반짝이는 잔물결과 단풍잎들에 마음을 빼앗겨 해가 지도록 돌아다니며 셔터를 눌렀다. 육십이 가까워진 나이를 잊고 열 살 때로 돌아가 깔깔대며 웃었다. 4월 초에 날짜를 잘 맞춰야 볼 수 있는 창경궁 매화꽃을 함께 보러 간 적도 있다. 숨이 막힐만큼 절정이었다. 부천에 진달래 동산에 갔을 때에는 산 중턱 전체에 진분홍과 연분홍 진달래꽃이 섞여 흐드러지게 피어나 고향 뒷산을 헤매는 듯 꿈결처럼 몽롱하였다. 올림픽 공원과 양귀비꽃 공원을 다녀오기도 했다. 어린 시절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였다. 떨어져 살았던 적이 있을까 싶을 만큼 친숙해졌다.
십리 길을 걸어서 학교에 다녔던 나는 그 먼 길을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 적지 않았다. 세살터울 언니와 동네 언니들과 옆집에 정주가 있어 학교에 갈 때는 함께였지만 하교 시간이 달랐다. 동탄초교에서 청계리에 이르는, 걸어도 걸어도 제자리인 것 같은 지루한 신작로를 지나 장마철이면 무섭게 불어나 학교에 가는 우리를 가로막던 냇물을 건너고, 도깨비라도 나올것 같은 가파른 강태고개를 두려움으로 뛰어올라 헉헉거리며 뛰어내려가서야 암말이라는 마을이 있어 비로서 마음이 놓여 천천히 걸었다. 혼자라는 것은 무섭고 두렵기도 하지만 주변 것들을 세세히 바라보거나 들을 수 있는 시간이다. 풀 한 포기, 새 한 마리, 들꽃 한 송이 뿐이랴. 무수한 생각들을 공기놀이처럼 이리저리 던져보고 굴려보는 시간이었다.
그녀는 나보다 더했다. 혼자인 날이 거의 대부분이었다는 것을 안다. 그녀 동네에 여학생이 둘 있었으나 학년이 달랐다. 그녀의 언니와 오빠들은 공부를 하러 수원이나 서울에 나가 있었다. 막내이면서 마르고 작은 소녀였던 그녀 혼자서 구불구불한 들길을 따라 산길을 따라 학교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누가 친구였겠는가. 들꽃이었다. 구름이었다. 바람이었다. 송사리들이 떼지어 노는 냇물이었다. 들녘이었다. 외로움이었다. 그 시간들은 절대로 헛된 것이 아니다. 자연을 친구삼아 걸어 다니는 동안 투명했던 어린 가슴에 따스하면서도 서러움이 깃든 감성이 외로움과 함께 더께로 칠해지지 않았겠는가. 도시의 아이들이 절대로 소유할 수 없는 특별하고 신비한 빛깔로 말이다.
가슴속에 내재된 그 빛깔을 그녀는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았다. 표출해내었다. 처음에는 유화로 그려내더니 두 번 째로는 사진에 나타내었다. 가느다란 그녀 손목이나 몸피를 보면 어떻게 그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종횡무진 돌아다니는지 의아해하기 마련이나 벌써 1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갔다. 새벽이건 한밤중이건 가리지 않고 멋진 풍경이 있는 곳이라면 달려 나가는 그 열정을 나는 얼마나 부러워하였던가. 나도 사진에는 지대한 관심이 있었지만 그녀만큼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는 열의는 일어나지 않았다. 카메라를 들고 소극적으로 가까운 주변만 어슬렁거렸다. 그녀만큼 사물이나 풍경을 자신의 느낌으로 담아내는 능력도 부족했다.
동백꽃을 찍은 그녀의 사진이 생각난다. 동백꽃을 보러 선운사나 오동도에 또는 제주도에 가보기도 했지만 내가 찍은 사진들은 열에 열 모두 아무런 감흥이 일어나지 않았다. 동백나무에 매달린 싱그런 꽃뿐만 아니라 떨어져 뒹구는 무수한 동백꽃들을 향하여 수도 없이 셔터를 눌러댔으나 그저 우중충하고 밋밋한 사진만 나왔다. 실망감이 나를 감싸 돌던 그때에 그녀의 동백꽃 사진이 동창회 카페에 올라왔다.
검은색 바탕에 붉은 동백꽃 한 송이가 그림자를 드리우고 비스듬히 놓여있는 사진이었다. 다분히 의도적인 냄새가 풍겼으나 세상에! 내 가슴이 벅차올랐다. 언제였더라. 마주 바라보던 검은 눈동자 안쪽에서 서서히 피어오르던 붉은 꽃송이 같던 사랑을 떠올리게 하였다. 어느 날 툭 떨어져 시들어버릴 동백꽃 같은 사랑이 겁이 나서 무심한 듯 바라보기로 작정했던, 사랑이 거기 있었다. 그녀의 동백꽃 사진에 대한 내 느낌을 적어 액자를 만들어 그녀에게 주었다. 들꽃이 흔들리듯 그녀가 간지러우면서 자잘한 웃음을 지었다.
동백꽃
화정
어둠속 지탱해 온 사람을 안다
그리하여 동백나무처럼 견고한 사람을 안다
한 때 그를 사랑하여 쓸쓸함으로 잠 못 이루었으나
끝내 다가서지는 못하였다
등을 타고 흐르는 어둑한 그늘과 얼룩진 눈물
닦아줄 가슴 내게 있었던가
눈을 들어다보는동안
동굴처럼 컴컴한 먼 안쪽으로부터 서서히 피어나던
등백꽃, 어지러울만큼 찬란하였다
사랑이었으나
그 저리도록 붉은 향기 온전히 맞이할
용기 내게 있었던가
결국 어느날 떨어져 땅에 뒹굴고 말 꽃송이
들여다 볼
심장 내게 있었던가
나는 늘 멀리서 생각만하는 방관자로 살아가고
동백꽃은 오늘도 핀다
그녀가 사진 전시회를 연다는 초대장이 날아왔다. 당연한 귀결이었다. 처음 사진을 찍을 때부터 그녀만의 애잔하면서 서정적인 감성은 사진 속에 자연스레 녹아있었다. 사진 찍는 일이 너무 재미있어서 몸이 아픈 줄도 모른다는, 나중에는 아픈게 다 나았다는 그녀의 사진을 볼 때마다 놀랍게도 내 가슴이 쿵쿵 뛰었다. 짝사랑하는 남자애를 우연이 버스안에서 마주쳤던 십대때처럼 그랬다. 마치 내가 직접 그 풍경을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흥분이 일었다. 기쁨이 몰려들었다.
여기는 사진 전시장이다. 옅은 푸른빛 계열과 주황빛 계열의 빛깔들이 어우러진 환상적인 느낌의 드레스에 검은빛 긴 수트를 걸쳐 입고 회색 테두리가 있는 검은색 모자를 쓴 우아한 그녀가 보인다. 빛깔이며 실루엣이며 그림자며 표정이며 그녀 자체가 사진속 인물이다. 무덤덤하게 살아왔고 그 어느것에도 욕심이 없던 내게 질투심이 일어날만큼 그녀는 전시회에 썩 잘 어울리는 작가였다.
꽃 사진들이 흰 빛깔의 이중 액자에 소중하게 들어있다. 꽃 한 송이 또는 두 송이 또는 여러 송이를 초점을 맞추어 도드라지게 나타낸 다음 나머지 물체들은 뭉개진 빛깔로 처리해 전체적으로 환상적이고 몽환적이다. 사진이 아니고 그림인듯 하여 가까이 다가가서 붓 자국을 찾아보게 된다. 그녀의 따스하고 정감어린 감성이 흘러내릴 듯 듬뿍 묻어있다.
가장 첫 번째 걸린 사진은 작가가 제일 아끼는 작품이리라.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세배는 되는 크기다. 무리지어 피어난 앞쪽 붉은 양귀비와 보랏빛 수레국화에 초점을 맞추고 뒤 배경에 많은 꽃들을 환상적으로 뭉개어 처리하였다. 넓디넓은 꽃숲을 바라보는 느낌인 동시에 내가 그 속에 들어가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다. 깨어나기 싫은 꿈속 같다. 이미 빨간 리본이 달려있다. 사진을 볼 줄 아는누군가 소장하기 위해 서둘러 점찍어 놓았다는 표시다.
그 곳 작품들 중 하나를 집으로 가져왔다. 거실에 걸었다. 주변의 꽃들을 초점 밖으로 밀어내 뭉개놓아 황홀한 빛깔로 처리하고 오직 붉은 장미 한 송이를 초점 안으로 들인 사진이다. 아침나절의 이슬 맺힌 붉은 장미꽃 한 송이가 집 안에 항상 피어나 있는 셈이니, 집안에 늘 꽃을 두고자 하는 내 욕심을 채웠을 뿐만 아니라 언제든 고향친구의 손을 잡고 그 섬세하고 몽롱한 풍경 뒷편의 소로길을 따라 나설 수 있게 됐다.
어릴 적 함께 한 시간이 적어 공유한 감정이 적을 거라는 내 생각은 틀렸다. 같은 고향에서 같은 것들을 마주하고 유년을 보낸 그녀나 나나 결국은 늘 함께였던 것이다. 우리 둘의 마음을 찍어볼 수 있다면, 분명 비슷한 문양에 비슷한 빛깔이 나오지 않을까. 고향이 고향친구이니까. 고향친구는 고향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