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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소명을 이루는 선지자의 특징/겔 2:1-10
1.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일어서라 내가 네게 말하리라 하시며
2. 말씀하실 때에 그 신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켜 세우시기로 내가 그 말씀하시는 자의 소리를 들으니
3.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자손 곧 패역한 백성, 나를 배반하는 자에게 보내노라 그들과 그 열조가 내게 범죄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렀나니
4. 이 자손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강퍅한 자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노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5.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 선지자 있은 줄은 알찌니라
6. 인자야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처하며 전갈 가운데 거할찌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고 그 말을 두려워 말찌어다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도 그 말을 두려워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 말찌어다
7.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찌어다
8.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듣고 그 패역한 족속 같이 패역하지 말고 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 하시기로
9. 내가 보니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그 손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10.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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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9
8. 내가 그들의 얼굴을 대하도록 네 얼굴을 굳게 하였고 그들의 이마를 대하도록 네 이마를 굳게 하였으되
9. 네 이마로 화석보다 굳은 금강석 같이 하였으니 그들이 비록 패역한 족속이라도 두려워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 말라 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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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피영민목사
서론
에스겔 1장은 복잡하지만 “하나님의 이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에스겔 2, 3장도 복잡하지만 한 마디로 “하나님의 소명”이라고 정리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상을 본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순서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사도행전에 세 번이나 기록된 사도바울의 간증도 동일한 순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 음성을 들은 후에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라는 소명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는 것입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근본적인 원리는 동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철저한 소명의식이 없이 복음을 위한 열정을 가질 수도 없고, 복음 증거에 헌신 할 수도 없습니다. 설교자가 소명감이 없으면 설교 할 수 없고, 성도들도 소명감이 없으면 존재의식을 깨닫고 살아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에스겔이 예언하던 시대는 국가적인 부흥이 있던 시대는 아닙니다. 부흥은 찾아 볼 수 없는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개인적인 부흥을 체험 한 것입니다. 국가가 부흥이 없다고 해서 개인에게도 부흥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온 국가가 배역을 해도 에스겔은 개인적인 부흥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당시에 하늘이 열렸던 사람은 두 사람입니다. 한 명은 포로 중에 예언하던 에스겔이었고, 또 한 명은 예루살렘에서 예언하던 예레미야 선지자였습니다. 이 두 사람에게는 하늘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리 말을 많이 할지라도 하늘문이 닫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어떤 메시지를 전하든 그것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10년도는 하늘이 열리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소명의식이 다시 한 번 뜨거워지는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늘문이 닫혀 있는 채 살아가는 사람이 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Ⅰ. 에스겔이 받은 소명은 무엇인가?
에스겔 1장에서 하나님의 이상을 본 에스겔은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정면으로 만난 사람들은 힘을 잃어버리고, 일어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사야 6장 5절에 보면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뵈었더니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누가복음 5장 8절에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에게 신성이 있는 것을 깨닫더니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주님 앞에 설 수 없으니 나를 떠나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도 중에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사도요한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뵙고 나서 요한계시록 1장 17절에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보면 자신의 죄성이 드러나고, 누추함이 드러나기 때문에 감히 일어나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에스겔도 그런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에스겔 2장 2절을 보면 “그 신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켜 세우시기로”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신이 임하더니 에너지를 주고 에스겔을 일으켜 세운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소명을 주셨습니다. 에스겔 2장 3절로부터 5절까지가 소명의 내용입니다.
이 소명을 보게 되면 두 가지 단어가 중요합니다.
하나는 인자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또 하나는 패역한 백성이라는 단어입니다.
요약하면, 인자인 너는 패역한 백성에게 내 말을 가감하지 말고 그대로 전하라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에스겔을 “인자(Son of Man)”라고 부르십니다.
사람의 자식이라는 말입니다. 에스겔이 사람의 자식이지 짐승의 자식입니까? 그런데 왜 하나님은 에스겔을 사람의 아들 인자라고 부르시는 것입니까? 인자라고 하는 타이틀은 에스겔에 90번이나 등장합니다. 이 말을 들은 선지자는 다니엘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자라고 하는 타이틀을 가장 많이 사용하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에스겔 다음으로 많이 사용하셨습니다. 86번 사용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할 때에는 신성을 의미하고, 인자라고 할 때에는 인성을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만, 이러한 설명은 옳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할 때에도 신성과 인성을 같이 말하는 것이고, 인자라고 할 때에도 신성과 인성을 함께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자라고 하는 명칭은 인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자라고 하는 호칭은 예언적인 호칭입니다.
“네 인생은 앞으로 이런 인생이 될 것이다”라는 예언적인 호칭입니다. 하나님이 에스겔 보고 인자라고 부르실 때는 “에스겔아 너의 인생은 이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다가 사람들에게 거절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너는 말씀 증거하는 사역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모욕과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 가시와 찔레와 함께 거하며 전갈 가운데 거하게 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인자라고 하는 것은 선지자의 인생이 거절과 모욕으로 특징지워질 것이라 할 때에 하나님은 인자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에스겔의 인생은 상당히 험난할 것임을 예측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켜 “패역한 백성”이라고 부르십니다.
히브리서에 보면 백성이라고 하는 단어에 대해 두 가지가 나옵니다.
하나는 “암”입니다. 거기에 소유 대명사가 붙게 되면 “암미”입니다. “내 백성”라는 뜻입니다. 내 백성이 아니라고 할 때에 부정사는 “로”입니다. 즉 “로암미”가 되는 것입니다.
호세아가 예언할 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고 “너희들은 로암미다(not my people)”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고 축복하실 때에는 “내 백성”이라고 부르십니다. 그런데 “고임”이라고 부르실 때에는 우상숭배하는 이방 나라 백성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내시면서 “암미”라고 부르지 아니하시고 “고임”이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패역한 고임에게로 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이방 나라 우상숭배하는 백성들처럼 살아가니 나도 너희를 이방 백성처럼 부르고 대우를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패역하고, 배반하고, 범죄하고, 뻔뻔하고, 강퍅한 백성들에게 “너는 인자가 되어 거절되고, 모욕을 당할지라도 하나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에스겔이 받은 소명입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은 영혼 추수의 사명을 받지 않았습니까? 베드로가 한 번 설교하면 삼천 명이 회개하고, 침례도 주니 보람도 있고, 재미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에스겔은 하나님 말씀을 증거해도 거절과 모욕만 당했습니다.
에스겔이 “이제는 더 이상 못하겠다”라고 하면 에스겔 3장 18절 말씀대로 잃어버린 영혼의 피 값을 네게서 찾겠다고 했습니다. 피 값을 찾겠다 하니 안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에스겔의 소명은 이렇게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 백성들 가운데 선지자 한 사람은 있을 줄로 알게 하려고 에스겔을 보낸다는 것입니다. “너는 온 세상 사람들이 패역할지라도 너 하나 만큼은 패역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어라”는 것입니다. 에스겔의 사명은Incarnation(성육신)의 사명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라는 괴로운 소명을 주신 것입니다.
Ⅱ. 소명을 이루는 에스겔의 인격적 특징은 무엇인가?
사명을 받은 것을 이루는 사람은 인격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저는 어려서 제일 좋아하는 TV프로그램이 프로레슬링이었습니다. 그 때 김일 선수는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 TV는 만화가게 밖에 없었습니다. 만화가게에서는 “프로레슬링 중계가 있습니다”라고 종이에 써서 붙입니다. 만화가게 가서 10원을 내고 김일 선수 나오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김일 선수는 처음에 잘 싸우다가도 위기가 찾아오게 됩니다. 위기가 찾아오면 여지없이 김일 선수는 오른발을 들어 상대방 이마를 잡아 박치기를 합니다. 박치기 한 대만 맞아도 흔들흔들 합니다. 두 번째 박치기 하면 피가 흐릅니다. 세 번째 하면 다 쓰러집니다. 그 당시 장동경 목사님 닮은 일본 선수 안토니오 이노키가 있었습니다. 아무리 덩치 큰 안토니오 이노키라 할지라도 세 번만 박치가 하면 쓰러지게 되고, 카운터를 세게 됩니다.
에스겔서에 이런 박치기 경기가 나오는 것을 아십니까?
에스겔 3장 7절로 9절에 보면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강퍅하여 네 말을 듣고자 아니하리니 이는 내 말을 듣고자 아니함이니라 내가 그들의 얼굴을 대하도록 네 얼굴을 굳게 하였고 그들의 이마를 대하도록 네 이마를 굳게 하였으되 네 이마로 화석보다 굳은 금강석 같이 하였으니 그들이 비록 패역한 족속이라도 두려워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 말라 하시고”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김일 선수라 할 수 있습니다. 이마가 화석보다 굳은 금강석이라고 했습니다. 화석(flint)이라고 하는 것은 부싯돌이라는 것입니다. 부엌 칼 가는 돌입니다. 돌이 얼마나 단단하면 칼을 갑니까? 이 부싯돌은 단단한 것의 대명사입니다. 하나님이 에스겔 선지자의 이마를 부싯돌 보다 강한 금강석이 되게 하셨으니 이마가 얼마나 강하겠습니까? 에스겔이 한 번만 박치기 하면 흔들흔들하고 쓰러진다는 것입니다. 즉 에스겔이 이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에스겔 선지자의 이마만 부싯돌 같은 게 아니었습니다.
이사야 50장 7절에 보면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 같이 굳게 하였은즉 내가 수치를 당치 아니할 줄 아노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얼굴도 부싯돌 같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예언은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입니다.
예수님의 얼굴도 부싯돌 같이 단단한 얼굴이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얼굴을 모릅니다. 예수님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의 얼굴을 생각 할 때 확실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부싯돌처럼 강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9장 51절을 보면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베드로가 말려도 예수님은 단호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시려고 가는 예수님의 발걸음을 막을 자가 없었습니다. 그 만큼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자 하는 소명을 이루는데 있어서 단호한 얼굴, 결심을 막을 수 없는 표정을 가지고 계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의 소명은 외롭고 괴로운 것이었습니다. 그 소명은 허약한 결심을 가지고는 이룰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의 이마를 금강석처럼 강하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요동치 않는 단호한 결심, 포기 할 줄 모르는 헝그리 정신, 좌절할 줄 모르는 백절불굴의 정신, 하나님이 주시는 확신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소명을 이루는 선지자에게 필요했던 것입니다.
저는 드라마라고 보는 것은 한 가지 있습니다. “수상한 삼형제”입니다. 그 삼형제는 수상합니다. 이 수상한 삼형제의 아버지는 순경입니다. 이름도 김순경입니다. 그 아버지의 얼굴은 금강석 같은 얼굴입니다. 집안이 아무리 어려워도 아버지가 며느리 불러서 “야 남자한테 너무 그러는거 아니다”라고 하면서 용돈을 주며 여행 다녀오라고 합니다. 자식이 아무리 말썽부려도 아버지가 불러다가 “너 여자한테 그렇게 하는거 아니다”라고 한 마디 하면 해결이 됩니다. 아버지 김순경은 단호한 인상을 주고, 소명을 이룬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단호한 얼굴을 하고 새마을 운동, 경부고속도로 완공을 이루었습니다. 의지가 약한 얼굴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면 박정희 대통령 테잎을 틉니다. 그 음성을 듣고 나면 하루를 살아갈 에너지를 얻는다고 합니다. 그 음성에도 에너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소명을 이루는 사람은 하나님이 그 얼굴에도 단호한 결심을 주시고 자신의 믿는 바에 대하여 단호한 각오를 주어 결국은 일을 이루어 놓는 사람이 되는 줄 믿습니다. 우리도 이 시대에 어려운 소명을 받았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야들야들한 심정을 갖지 마시고 단호한 결단을 가지고 소명을 이루어 가시길 바랍니다.
사도바울의 언어에서도 여러 번 단호한 결단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14절에서도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라고 기록되었고, 빌립보서 1장 20절에도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살아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어도 그리스도를 위하겠다는 단호한 결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바울이 4차에 걸친 선교여행을 이루고, 14권이나 되는 신약을 기록한 역사를 이룬 것입니다.
우리 성도 중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온 가족이 불교입니다. 그래도 고집하여 기독교 장례로 진행했습니다. “우리 어머니도 예수 믿고 가셨고,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인데 이 문제에 대해 신경 쓰지 마라.” 예수 믿으려면 저렇게 믿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이마가 화석보다 굳은 금강석과 같았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올해는 이마를 금강석처럼 하여 결심을 단단히 하고 모든 어려움을 이겨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나라입니다. 왜냐하면 선교하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어도 대한민국 사람은 복을 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Ⅲ. 단호한 결단을 갖게 된 원동력은 무엇인가?
에스겔이 스스로 강해진 것이 아니라 에스겔이라는 이름 자체가 의미하듯이 하나님이 그를 강하게 하신 것입니다. 에스겔 3장 8절을 보면 “내가 그들의 얼굴을 대하도록 네 얼굴을 굳게 하였고 그들의 이마를 대하도록 네 이마를 굳게 하였으되”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 말씀에서는 주어가 중요합니다. 누가 굳게 하신 것입니까? 하나님이 굳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에스겔을 강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올해는 우리 모두를 강하게 해 주는 은혜가 있으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어떻게 강하게 해 주셨습니까? 에스겔 2, 3장에는 두 가지 방법이 나옵니다. 하나는 성령의 권능으로 감동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에너지만 가지고 살아서는 별것 아닙니다.
머리가 좋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건강하면 얼마나 건강합니까?
하나님이 “툭” 치시면 쓰러집니다.
우리에게 있는 에너지 가지고 해봐야 그것은 조족지혈(鳥足之血)입니다. 새 발의 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에너지를 받아야 합니다.
하늘의 에너지, 성신의 에너지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에스겔 2장 2절에 보면 “말씀하실 때에 그 신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켜 세우시기로”, 에스겔 3장 12절에도 “때에 주의 신이 나를 들어 올리시는데”, 에스겔 3장 14절에는 “주의 신이 나를 들어 올려 데리고 가시는데 내가 근심하고 분한 마음으로 행하니 여호와의 권능이 힘 있게 나를 감동하시더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에스겔의 능력의 원천은 성령입니다. 우리에게도 에너지의 원천은 성령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구약 시대에는 성령께서 특별한 사람에게 특별한 목적으로 임했다, 떠났다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는 다릅니다.
요엘 2:28에서 29절까지는 신약 시대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이 예언은 오순절 날 실행되었습니다. 모든 예수 믿는 자에게 하나님이 성령을 부어 주시고 성령이 예수 믿는 우리 영혼 안에 거하시고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영원히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에너지는 아닙니다. 성령을 모신 사람이 기도를 해야 성령의 권능이 우리를 통해 나타나게 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깐 기도하는 자는 하늘의 에너지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올해는 무슨 일이든지 기도함으로 에너지를 받아 소명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 말씀을 먹는 것입니다.
말씀을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니라 영혼으로 먹는 것입니다. 비록 심판과 재앙의 말씀이라도 먹는 것입니다.
에스겔 3장 3절을 보면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꿀처럼 먹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수면제처럼 먹습니다. 레위기 두 장만 읽으면 잠이 무척 잘 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꿀처럼 달게 먹어야 용기와 능력이 나와 소명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에스겔 3장 10절에는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를 모든 말을 너는 마음으로 받으며 귀로 듣고”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말씀을 마음으로 받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성령과 하나님 말씀 이 두 가지가 있어야 우리는 능력 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는 소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막스 베버(Max Weber)는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유명한 책을 썼습니다. 이 책에서 개신교가 들어간 나라는 자본주의가 발전한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유명한 존 칼빈 선생이 개신교도들에게 “모든 직업이 하나님의 소명이다”라고 직업소명설을 가르친 것입니다. 목사만 소명이 아니고 선생님도, 판사도, 장사하는 분도, 모든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님이 맡기신 소명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일을 하니깐 경제가 발전되고, 자본주의가 발전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회학자가 발견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밥 많이 먹는다고 에너지가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에너지의 원천은 하나님 말씀이고, 우리 에너지 원천은 성령인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없으면 우리는 에너지를 가질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제대로 하지 않은 사람은 인생이 비실비실 하게 되는 것이고, 약간의 고난에도 쓰러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과 말씀은 사명을 감당 할 수 있는 원동력인 것입니다. 하루에 십 분만이라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 하실 때에는 무릎 꿇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루에 십분만 기도해도 사단이 그 사람의 인생을 건드리지 못합니다. 에너지를 받아야 장사를 해도 잘 되고, 공부를 해도 잘 되고, 목회를 해도 잘 됩니다. 성령과 말씀 이 두 가지가 에스겔을 강하게 한 것입니다.
결론
모든 성도의 공통된 소명이 있습니다. 패역한 세상을 향해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모든 신자가 제사장이라는 “전 신자 제사장 직분의 교리”를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신자는 선지자이기도 한 것입니다.
우리는 패역한 세대에서 선지자로, 금강석보다도 강한 이 말을 소유해야 되겠습니다.
명절에 우상숭배하면 안 되겠습니다.
가족들이 압박을 준다고 해서 넘어가면 안 되겠습니다.
음식 만들어 놓고선 조상의 영혼이 와서 먹는다고 생각하십니까?
온 가족이 안 믿고 우상숭배할지라도 믿는 자는 넘어가면 안 됩니다.
명절은 우리를 존재하게 하신 조상에게 은덕을 기리고,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상숭배하라고 강요해도 “내 이마는 금강석보다도 강한 이마다”라고 하고, 믿음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명절 때 같이 막걸리 따르면서 예수 믿으라고 하면 무시하고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금강석 같은 이마를 가지고 예수를 증거하게 되면 “저 사람은 달라. 저 사람 말은 진짜야.”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패역한 세상 가운데 복음을 증거해야 하는 선지자의 사명이 있으니 단호한 헌신과 확실한 소명감으로 이 사명을 이루시길 바랍니다. 2010년도는 기도로 성령 충만 받고 말씀을 받되 꿀처럼 받아먹어 하늘의 에너지가 넘치고 하늘이 열리는 성도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