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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친구들
(2022 · 11 · 2)
고향을 생각하면 정 지용 시인의 ‘향수’가 떠오르면서 가슴이 설레인다. 그 고향의 초 · 중학교 동창들 10여명이 ‘덤풀회’란 이름으로 모임을 가진지 벌써 4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우리 동기들이 고향인 담양의 ‘제 6회 선후배 친선축구대회’를 주관하면서, 내가 대회장을 맡아 그 대회를 마무리 한 지난 83년이었다. 행사를 끝내고 뒤풀이를 하면서, 그대로 헤어지기가 아쉬워 함께 축구를 했던 친구들 중심으로 이 모임을 가졌던 것이다.
달마다 마지막 목요일 저녁에 고향에서 모이기로 했다. 그 무렵에는 직장생활을 하다보니 자주 참석하지 못해 한달 용돈을 다 털어 밀린 회비를 내기도했다.
그 모임에서 고향을 떠난 친구들의 소식을 듣기도 하면서, 그러구러 세월이 흘렀다. 대부분 공무원, 조합원, 자영업 등에 종사하는 친구들이다. 봉급생활자들이 퇴직을 하면서 모이는 날을 저녁에서 점심시간으로 바꾸었다. 겨울 철 눈이 오거나, 미끄러운 길을 저녁에 운전하고 오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던 때문이다. 세 명 만 고향에 살고, 다른 회원들은 모두 광주에서 살고 있었다.
때로는 송년회(2014년 12월 19일)를 하자면서 부부모임을 광주 금수장에서 가진 때도 있었다. 모두 허물없는 사이여서 친구 아내들을 으레 ‘제수씨’라고 부르며 농담을 주고 받고 시간을 때우기도 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는 사이 몇 명의 회원들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 자리에 또 다른 동창들이 새롭게 참여했다.
회원들도 점차 노인네들 모습으로 바뀌어갔다. 고향 산과 들은 변하지 않았건만 덧없는 세월이 회원들의 머리위에 내려앉은 것이다. 하얀 머리카락, 더러는 염색을 해 본디 머리보다 더 까맣게 변한 머리, 벗겨진 이마, 꾸부정하게 걷는 모습들이 영락없는 노인들이었다.
회원 가운데 군의회 부의장을 지낸 친구가 뒤늦게 색소폰을 배운다면서 모임이 겹친다고 해, 몇 달전부터 우리 모임을 금요일로 바꾸기도 했다.
어느 해 여름, 모임에서 농협조합장을 지낸 회원에게 ‘어떻게 지내느냐?’ 물었더니 ‘시골 집(면 단위)에서 닭을 키우면서 살고 있다’고 했다. 우리들의 모임 장소는 식당이고, 그곳에서 몇 년 동안 계속 식사를 했었다. 같은 음식에 약간 질리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어린 시절 어머님이 닭을 잡아 찹쌀을 넣어 고아 주실 때 그 노란 빛의 뽀얀 기름이 떠있던 백숙이 떠올랐다. ‘그럼 다음 번 기회 되면 자네 집에서 닭백숙 한번 먹기로 하세’하고 운을 뗐다. ‘그러자’는 대답을 기대 했는데 ‘집사람이 건강이 안 좋고 도와 줄 사람이 없다’며 난색을 표했다.
그렇게 하여 그 일은 없었던 일이 됐다. 하지만 그 친구, 그게 부담이 됐던지 지난 7월 ‘추월산 아래 어탕집에서 회원들을 대접 하겠다’ 한다고 총무가 전화를 했다. 조합장일 하면서 자주 이용했던 음식점이어서 그렇게 부담은 되지 않을 거라 했다.
하지만 막상 그 얘기를 듣고 보니 오히려 ‘닭백숙’ 말을 꺼냈던 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 그날 ‘6년근 홍삼 편’을 잘 포장해 그 친구에게 선물한 것으로 조금이나마 그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지난 달 모임 며칠 전에 고향에서 법무사로 일하는 초 · 중학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회원은 아닌 동창이었다. 우리 모임 총무가 같이 일을 하고 있어 모이는 날 시간 여유가 있으면, 법무사 사무실에 들르곤 했던 터였다. 때문에 식사시간이 되면 가끔 우리 회원들과 어울렸던 친구였다. ‘경기도 안 좋고 직원들 급료도 주기 어려워 1년 정도 휴업하기로 했다’는 이야기였다. 잠시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아쉽지만, 그 정도 일 했으면 이제 좀 편히 쉴 때도 됐다’는 말로 위로를 했다. 한편 공직에서 퇴직한 뒤 그 사무소에서 오랫동안 함께 일했던 총무가 걱정됐다. 연금 이외에 그 일하면서 받는 돈으로 가계를 꾸려갔을 터인데, 이제 수입이 줄어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한 것이다. 총무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적게 벌면 적게 쓰면 된다’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직원들 퇴직금은 다행히 그동안 적립해 두어 그것으로 충당하면 된다고 했다. 적이 마음이 놓였다.
지난 10월 28일 금요일 모이는 날, 열명 정도 모였다. 9월 모임 때 죽순 추어탕을 먹자고 해, 옛날 D식당에서 모였다. 가끔 고향에 들렀을 때 먹어본 그 곳 추어탕이 어느 곳보다도 제 맛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아서 내가 제안했던 터였다. 집에서 먹을 요량으로 따로 2인분을 포장 해 달라고 했다. 이날도 모임에 참석한 법무사 친구 역시 그렇게 주문하더니만 손 쓸 틈을 안주고 식사 중에 내 것 까지 계산을 했다.
이날, 광주에서 출 · 퇴근했던 그 법무사 친구가 회원으로 가입해 한 달에 한 번 씩 고향에서 얼굴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광주로 오는 길, 깊어가는 가을의 찬바람이 추수를 끝낸 황량한 들녘을 휩쓸고선 저쪽 산모퉁이로 쏜살같이 달려가고 있었다.
(2022 · 11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