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기론 (論)
친한 친구들끼리 가끔 가는 종로 뒷골목 빈대떡집에서 대포를 한잔하던 중, 한 친구가 느닷없이 나에게 엉뚱한 질문을 했다.
“우리나라 통계에 의하면, 혼자 사는 남자보다 마누라와 함께 사는 남자의 수명이 더 길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뭔지 아나?”
“그야 마누라 덕분에 집안일에 일일이 신경 안 써도 되고 특히, 먹고· 자고· 입을 걱정 안 해도 되기 때문이 아니겠나.”
그 친구는, 그런 우답이라면 내가 왜 질문을 했겠느냐며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더니, 마누라와 함께 있으면 항상 마누라 눈치를 살피며 긴장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오래 살려면 마누라 눈치를 잘 살펴 알아서 처신하고, 잔소리를 자장가처럼 들으며 고맙게 생각하라나….
그런 소리를 듣고 있자니, 한때 내가 S기업에서 일할 때 그룹 회장이 임직원들에게 강조한 이른바 벤허론(論)과 메기론이 생각났다. 불후의 명화 ‘벤허’의 숨 막히는 장면인 전차 경주에서 로마 장군 ‘메살라’는 네 필의 흑마에게 끊임없이 채찍을 휘둘러 선두에서 달렸지만, 결국 말이 채찍에 견디다 못해 앞으로 고꾸라져 전차가 뒤집히면서 그를 만신창으로 만들고 만다.
그러나 벤허는 한 번도 채찍을 쓰지 않고 네 필의 백마와 한 몸이 되어 질주함으로써 당당히 승리한다. 관리자는 조직 관리를 벤허처럼 하라고 했다.
또한 회장은 벤허론과 더불어 메기론을 강조했다. 메기론은 먼 지방에서 잡은 싱싱한 물고기를 차량 수족관에 넣어 서울까지 운반하는데, 번번이 많은 물고기가 배를 뒤집고 죽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에는 물고기가 한 마리도 죽지 않아 수족관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안에 커다란 메기 한 마리가 유유히 노닐고 있었다고 한다. 물고기들은 메기에 물려 죽지 않으려고 긴장하며 메기의 움직임에 따라, 요리 피하고 조리 피하다가 모두 생생하게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적당한 긴장도가 유지되어야 조직이 활기차게 살아 움직인다는 비유였다.
술이 거나하게 취한 나는, 그 친구의 농담 같은 진담이 마치 요즘 나를 빗대어 말하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소리를 ‘꽥’질렀다.
“뭐야? 그렇다면 내가 이 나이에 메기 눈치나 보는 물고기가 되어서 오래 살란 말이야? 그렇게 해서 스트레스받으면 오히려 병 걸려 일찍 죽으니, 자네나 그렇게 해서 오래 살아라.”
술에 취한 친구들이 웬 메기는? 이라고 물어, 내가 메기론을 설명했더니, 한 친구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난데없이 혀 꼬부라진 소리로 ‘메기의 추억’을 흥얼거렸다. 그러자 다른 친구들도 따라서 흥얼거렸다. 그것도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메기 같이 앉아서 놀던 곳, 물레방아 소리 들린다…”
그러자 한 친구가 이 메기와 그 메기는 틀린다는 둥, 요즘 메기와 옛날 메기가 어떻다는 둥 한참 횡설수설하다가 한바탕 웃고 헤어졌다. 마누라 눈치를 잘 살피며 살아야 오래 산다는 그 친구는 빈대떡집을 나와 헤어지면서도 또 한 번 천연덕스럽게, “인명재처(人命在妻)여, 인명재처!”라며 손을 흔들고 사라졌다.
하기야, 세상이 어떻게 거꾸로 돌아가려는지, 남편을 하늘같이 섬기라는 성현의 가르침은 이제 전설이 되고, 하루 세끼를 집에서 먹는 남편을 삼식(三食)이라고 비하하는 세상이 되다 보니 그런 엉터리 사자성어까지 나오는 게 아닌가. 어쨌든 요즘 이런 망국적이고 배은망덕한 세상 풍조를 내 마누라라고 모를 리 없겠거늘, 나는 백수가 된 후에도 그렇게 마누라 눈치를 보고 살지 않으니, 유행하는 말로 내가 바로 간 큰 남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 나도 백수로 이 년, 삼 년 지나다 보니 간이 항상 그대로 커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아내도 40여 년 동안 새벽부터 일어나 남편 출근 시키랴, 자식들 학교 보내랴 고생하다가 노년에나 좀 편하려니, 하고 참고 견뎠을 텐데, 이제 남편에게 점심까지 꼬박꼬박 대령하려니 말은 안 하지만 심사가 편하지 못할 것은 자명할 터. 그러니 어찌 아내의 눈치가 보이지 않으랴.
그러기에 자격지심인지 몰라도 점심상 차리는 사기그릇 소리가 예전처럼 얌전하지 못한 것 같이 들리기도 했다. 그래서 궁리 끝에, 온종일 집에 있는 날에는 아내가 집에 있더라도 점심은 나 스스로 해결하기로 했다. 상가의 만둣가게에서 고기만두를 사 와 때우고, 아파트 상가에 있는 상하이 중국집으로 슬슬 걸어가서 짜장면으로 때우기도 한다. (아내는 만두는 안 먹고, 중국 음식은 좋아하지 않는다) 아내에게 점심은 내가 해결하겠다는 말은 결코 한 적이 없지만, 눈치가 9단인 아내는 이미 내 속심을 알아차렸는지 자연스럽게 점심 걱정은 아예 덜어낸 것 같았다.
나는 오늘 점심에도 또 무엇으로 한 끼 때울까 하고 한창 궁리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동네 무슨 헬스장에서 운동을 마친 아내의 전화였다.
“점심 뭐로 할래요?”
나는 나도 모르게 심통을 부렸다.
“먹긴 뭘 먹어, 밥맛도 없는데….”
9단 고수는 평소 내가 좋아하는 따끈한 고기만두 두 판을 사 들고, 큰 선심이라도 쓰는 양 터질 듯한 미소를 머금고 현관문을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