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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도 야생을 산다 에드워드 윌슨 지음 ∥최재천. 김길원 옮김 에드워드 윌슨(1929~) 「개미에 관한 연구로 앨라배마 대학교에서 생물학 학사 및 석사 학위를, 하버드 대학교에서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퓰리처상 2회 수상에 빛나는 저술가, 개미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 섬 생물지리학 이론 및 사회생물학의 창시자로 명성 높은 그는 1956부터 하버드 대학교 교수로 재직해 왔고 미국 학술원 회원. 」 [서문-全文] 1975년부터 1993년까지 쓴 이 에세이들은 두 가지 지극히 본질적인, 그래서 조금은 모호한 개념들에 대해 논한 글이다. 그 첫째는 자연 즉 우리를 넘어선 영원한 존재이며,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우리가 속한 인간이라는 종의 요람이라고 생각되는 세계이다. 둘째는 우리의 본질이자 태초에 우리가 시작된 모습이며, 언어와 관습이 우리를 서로 다른 종족으로 나눔에도 불구하고 모든 인유를 하나의 종으로 묶어주는 감각과 감정의 영역을 포괄하는 인간 본성이다.
-과학적 자연주의자의 눈으로 본 인간 -윌슨 선생님의 뒤를 따르며 (옮긴이의 말)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서울대학교에서는 ‘인간 본성의 과학적 이해’, 연세대학교에서는 ‘생명 윤리와 인간 본성’이라는 교양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둘 다 참으로 거창한 제목들이다. 둘 다 인간 본성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지만 나는 자꾸만 자연으로 학생들을 내 몬다. 자연 속에 인간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 현대인은 사실 능동적으로 변화시킨 환경에 스스로를 끼워 맞추며 살아가는 원시인들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자꾸만 현대를 살려 하지만 우리의 유전자는 여전히 야생을 살고 있다. 윌슨 선생님 곁에서 거의 10년을 보내며 그의 글쓰기 색깔에 나도 모르게 조금은 물이 들었나 보다. 윌슨 선생님이 처음부터 글재주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도 모른다. 선생님은 하버드 대학의 교수가 된 다음 과학자야말로 효과적인 글 솜씨가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따로 가정교사를 두고 글쓰기 과외를 받은 사람이다. 어쩌다 보니 이 책이 내가 번역한 첫 윌슨 선생님의 책이다. 한국에 돌아 온지 10년 만의 일이다. 제자로서 영 면목 없는 일이지만 이 책을 처음으로 번역하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뱀의 이미지는 상징과 마법의 전조로 꾸며져 몽상이나 꿈에서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쉽게 넘나든다. 예고 없이 나타나고 느닷없이 사라지며, 실제 존재하는 뱀에 대한 특정한 기억을 남기지 않으면서 보다 강력한 존재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남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뱀에 대한 공포심을 가진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인간은 생후 첫 5년동안 이러한 공포심을 빠르고 쉽게 배우는 선천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두드러지게 꿈에 출현하는 동물들이 바로 뱀이나 뱀과 유사한 동물이다. 인간의 마음은 뱀의 형상에 예민하게 반응하도록 만들어졌다. 독사를 단순한 공포의 대상으로 바라볼 뿐만 아니라 그들의 부분적인 모습에도 민감하게 자극받는다. 방울뱀은 머리가 잘려도 해가 질 때까지 죽지 않고 산다든가, 독사에게 물리면 물린 상처를 칼로 절개하고 석유로 소독하여 독을 중화시켜야 한다든가, 온 마음을 다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두려움 없이 방울뱀이나 살모사를 목에 감을 수 있으나 그래도 물리면 신의 계시로 받아들여야 하고 죽든 살든 평화가 있을 것이라든가, 돼지코뱀이 미끄러지듯 S자형을 하고 잇을 때는 매우 위험해서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뱀이 뿌리는 독을 눈에 맞아 실명하게 되고 이 뱀의 피부 냄새만 맡아도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등등. 사육된 침팬지는 이전에 한 번도 뱀을 경험한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뱀을 보면 두려워한다. 다섯 살 이전의 아동들은 뱀에 대해 특별한 불안감을 드러내지 않지만 성장하면서 점점 더 큰 경계 반응을 보인다. 단지 한 두 번의 나쁜 기억, ~~~~만으로도 아이들은 뱀에 대한 경렬하고 영구적인 공포에 사로잡힌다. 어둠, 낫선 사람, 불쾌한 소음 같은 것에 대한 공포는 일반적으로 7세 이후부터 감소하기 시작하는 반면에 뱀을 기피하는 경향은 나이가 들면서 ㅈ머점 더 강해진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뱀에 물려 사망한 인구는 연간 10만명당 5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지역별 최고 기록은 버마의 한 지방으로 연간 10만명당 36.8명이 뱀에 물려 사망한 것으로 보고됐다. -상어를 분류하는 기준 바다의 쓰레기통이라는 별명이 딱 어울리는 뱀상어를 통해 우리는 이런 다양성을 실감할 수 있다. 큰 놈은 길이 6미터에 몸무게가 거의 1통까지 나가며, 동물성 단백질이 있을 것 같은, 혹은 그런 것이라곤 전혀 없을 것 같은 쓰레기로 가득한 해안을 어슬렁거린다. 포획된 놈들의 위에서는 물고기, 신발, 맥주병, 감자봉지, 석탄, 개, 그리고 사람의 신체 부위까지 발견됐다. 한 거대한 뱀상어의 위에서는 오버코트 세벌, 비옷 세벌, 운전면허증 하나, 소 발 하나, 사슴뿔 한 쌍, 아직 소화되지 않은 바다가재 열 두 마리, 깃털과 뼛조각들이 든 닭장 한 개가 발견됐다. - 개미 사회의 위대한 성공 개미나 다른 사회성 곤충들을 존재하게 한 진화적 계통은 지금으로부터 6억만 년 이상 앞선 시기에 인류가 유래한 계통으로부터 분리됐다. 곤충의 사회체제는 우리의 사회체제와 전혀 관련이 없으며, 본질적으로 매우 다르다. 지금까지 액 9500종의 개미들이 알려져 있고, 이 수치는 학명이 주어진 개미 총수의 총합이다. 나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두세 배 정도 많은 총수의 개미들이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다. 브리질 중부 아마존 지역 마나우스 근처 숲을 예로 들면, 개미들과 흰개미들의 생물 중량을 합산한 것이, 작은 벌레와 다른 무척추동물로부터 큰 덩치를 가진 척추동물까지 모두 합산한 생물 중량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미국 남서부의 사막에서 도리어멕스속 개미 정찰병들은 자신들의 라이벌인 머메코시스터스속 개미의 집을 발견하면 둥지 입구를 에워싸고 입구 주변에 있는 작은 돌들을 물어다 개미집 안으로 떨어뜨린다. 말레이시아 열대우림에 살고 있으며 캠포노터스속에 속하는 일개미들은 아래턱에 괴상하게 비대해진 분비샘 한 쌍을 가지고 있다. 몸통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이 분비샘은 끈적끈적한 독성 화학물질을 담고 있다. 이 일개미들은 적들이 들이닥쳐 위기 상황이 되면 배 근육을 수축시켜 적의 얼굴에 독성화학물질을 뿜어댄다. 일종의 걸어다니는 폭탄이라고 할 수 있다. 대다수의 종의 일개미들은 몸에 10~20개의 엑소크린 분비샘을 가지고 있으며 이곳을 통해 이런 저런 방법으로 화학물질을 분비하여 동료들로 하여금 냄새를 맡고 맛을 보게 한다. 일개미들은 이 분비물을 이용해서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동료들을 불러 모으고, 동료를 알아보고, 계급을 인식하는 등 다양한 일을 수행한다. - 개미들의 만찬 오늘날 지구상에 t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9500종의 개미들 중 상당수가 좀더 현명하게 액체를 나누어 먹는 방식을 진화시켜 왔다. 그것은 자신의 몸 안에 액체를 저장했다가 분배하는 방식이다. 물, 꽃물, 가끔은 용해된 집아들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서 소장까지, 그리고 풍선처럼 줄었다 부풀었다를 반복하는 근육 조직까지 퍼진다. 액체를 잔뜩 마신 일개미는 소장이 팽팽해지면서 배 전체가 부풀어 오른다. ~~~~ 다른 동료들에게 입과 입을 맞대고 액체를 토해내어 전해준다. 일개미는 약 100만 개의 신경세포로 이루어진 뇌를 가지고 있다. 평균적으로 개미보다 100만 배나 더 무거운 인간은 약 100조 개의 신경세포로 이루어진 뇌를 가지고 있다. [본성의 탐구] -이타주의와 공격성 개미, 말벌, 벌 군체의 상당수 구성원들은 집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침입자들을 향해 미친 듯이 돌격할 준비가 되어 있다. 꿀벌의 일벌들은 낚싯바늘처럼 구부러진 침을 가지고 있다. 이들이 침입자를 공격할 때 침은 피부에 걸리고 벌이 날아가려고 하면 그 침은 독액샘 전체, 그리고 내장의 일부와 함께 몸 속 깊숙이 박힌 채로 남게 된다. 공격을 감행한 벌은 곧 죽지만 그의 공격은 침을 그대로 빼낸 경우보다 효과적이다. 이러한 극단적인 희생 능력을 공유한다고 해서 인간의 마음과 곤충의 마음(만약에 존재한다면)이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러한 충동이 신성하거나 초월적인 어떤 것들에 의해 지배되는 것은 아님을 의미하며, 우리가 좀 더 정형화된 이러한 설명을 찾는 것을 정당화해 준다. 그런데 이런 설명은 죽은 영웅은 더 이상 자손을 생산하지 못한다는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다윈의 자연선택론을 좁은 의미에서 적용해 보면, 자기 생은 자손들의 수가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하며, 영웅을 태어나게 하는 유전자 또는 형질 유전의 기초 단위들이 집단 내에서 점차 사라지게 될 것임을 예상하게 한다. 이기적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이타적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보다 더 우세하게 증가할 것임으로 이기적 유전자는 많은 세대를 거치면서 수적인 면에서 증가하고, 인간 집단 전체로 보면 이타적 방식으로 행동하는 능력이 점점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인간의 이타적 유전자도 혈연선택에 의해 진화되었을까? 어떤 훌륭한 사람이 남을 위해 스스로를 완전히 희생했을 때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는가? 그의 그런 생각이 수백 수천세대를 거치면서 그의 친척에게 유리하게 작용해서 궁극적으로는 그의 유전자를 공유하는 자손들이 보다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인류 역사의 대부분의 기간 동안 사회의 구성이 적게 가족과 가까운 친족의 밀접한 네트워크로 이루어져 왔다는 사실은 이러한 설명에 설득력을 더해준다. 사회학자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제기할 수 있는 일반적인 변론들을 예상하여 미리 밝혀두면, 나는 이타적인 행동의 의도나 실제가 상당 부분 문화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을 인정한다. 인간의 사회적 진화는 분명 유전적이기 보다는 문화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생물학자들은 모든 인간 사회에서 강하게 드러나는 근본적인 감정들이 유전자를 통해 진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이러한 가설로는 다양한 인간 사회들 간의 차이를 설명할 수 없지만, 왜 인간이 다른 포유동물과 다르며, 어떤 면에서 사회성 곤충들과 더 많이 닮았는지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암살 , 사소한 시비, 치열한 전투 등이 일상사인 개미들에 비하면 인간은 정말 조용하고 평화로운 존재다. 행동의 특성을 형성하는데 유전적 요인이 환경적 요인보다 더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가의 문제는 인간 사회생물학을 논의하는데 있어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어떤 학자들은 유전자가 인간의 행동을 통제한다는 사실 자체를 아주 기분 나쁘게 생각한다. 그들은 곧바로 유전적 결정론이 지금 벌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는 사회적 불평등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는 정치적 시나리오를 만들어 낸다. . 똑 같이 그럴듯한 각본인 문화결정론이 독재주의적 마인드 컨트롤을 지지하고 보다 최악의 불평등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시나리오를 그들은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치인이나 이념적으로 편향된 과학자들이 과학을 못대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 두 가지 시나리오는 거의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 만일 멋대로 이용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벌어지겠지만. 사회생물학이 시사하는 바를 넘어선 우려는 대개 유전의 본질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유전자가 명령하는 것은 특정 행동이 아니라 어떤 행동으로 발전될 수 있는 가능성이며, 더 나아간다면 다양하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특정행동이 발달하는 성향이다.” 하나의 범주에 속해 있는 인지 가능한 모든 반응을 열거할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 모든 공격 반응을 나열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편의상 그것들에 알파벳을 붙이면 A부터 W까지 정확히 23가지 반응이 있다고 하자. 인간은 그 모든 종류의 반응을 나타내지 않으며 나타낼 수도 없다. 전 세계 모든 다양한 사회들을 조사해 보면, A에서 P까지는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행동들이 모든 사회에서 똑같은 유연성을 가지고 발달하는 것은 아니다.A에서 G까지는 인간 발달의 대부분의 과정에서 강하게 발현되는 경향이 있고,H에서 P 까지는 매우 드물게 몇몇 문화에서만 관찰된다. 유전되는 것은 바로 그 가능성과 확률의 패턴이다. 오랫동안 우리 안에 존재해 온 원시적인 유전자들은 미래에 훨씬 더 많은 문화적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아직은 모를 일이지만 우리는 인간 본성이 좀 더 이타주의와 사회정의를 많이 포함하는 방향으로 적응해 갈 수 있다고 믿는다. 유전적 편향은 사라질 수 있고, 갈망도 다른 방향으로 돌려질 수 있으며, 윤리는 새롭게 만들어질 수 있다. -멀리서 바라본 인간 인간의 모든 문제는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알지 못하는데서, 그리고 어떤 존재이기를 원하는지 서로 동의하지 못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베르코르(장 브륄레르) [그들은 알게 될 것이다 중에서] 만약 지능적인 생명체가 다른 행성에 존재한다면(천문학자들과 생화학자들은 이런 생명체가 아주 풍부하게 존재한다는데 합의를 보았다). 우리는 그것이 인류ㅇ와 비슷한 생명체나 포유동물 또는 진핵생물일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 우리는 공상과학에서 만들어낸 다른 문명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간의 사회적 행동은 동물에 근거를 두고 있는 사회생물학으로부터 예측할 수 없는 독자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쥐나 곤충들의 기관과 거의 같은 기능을 하는 인간의 염색체나 신경막의 작동에서 비롯된 순전히 기계적인 행동과는 비교할 수 없다. 인간의 사회 행동 레퍼토리는 두 갈래의 유전에 의해 진화한다. 하나는 전통적인 다윈의 자연선택에 따라 변하는 전형적인 유전적 전달이고, 다른 하나는 그보다 훨씬 빠른 속도를 가진 라마르크식 유전(개체의 적응에 의해 획득된 형질이 자손에게 유전된다)인 문화적 전달이다. 게다가 조직의 특성들도 있다. 완전한 상징성과 끝없는 생산력을 지닌 언어, 오랫동안 전해진 관습에 기반을 둔 계약, 복잡한 물질문명과 종교 등이 그것이다. 유전적 진화가 비록 느리기는 하지만 문화적 진화와 한 두 단계밖에 차이가 안 날 정도로 빠르게 일어날 수도 있다. 안정적인 선택압 하에서는 불과 10세대만 거치면 하나의 유전자가 다른 유전자로 대체된다. 이것은 인간의 경우 그저 200~300년이 걸리는 일이다. 지금의 인간 본성이 200~400만년 전에 존재했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로부터 호모 하빌리스에 이르는 역사의 산물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것은 역사시대를 포함한 호모의 시대를 거쳐 점진적으로 형성된 하나의 바이오그램biogram에 더 가깝다. 그러므로 사회이론은 문화적 진화가 지배한 역사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유전적 변화와 문화적 변화가 조화를 이루며 발생했던 선사시대까지 시야를 확장할 때 비로소 의미 있는 수확을 거둘수 있을 것이다. -유전자와 문화 문화는 궁극적으로 생물학적 산물이다. 지금까지 연구된 바에 따르면 모든 생물의 유전적 진화를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추진력은 자연선택이다. 이것은 같은 개체군에 속한 다양한 유전형들이 다음 세대에 차별적으로 기여하는 것을 말한다. 흔히 돌연변이압이나 정향진화, 그밖에 다른 추진력들과 구분하기 위해 다윈주의라고도 부른다. 분자 구조 수준에서 일어나는 진화는 유전적 부동, 다시 말해 단백질 안에서 아미노산 치환에 영향을 미치는 대립유전자들의 무작위적인 치환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그러나 해부학적, 생리학적 특성들과 행동 면에서 보이는 주요한 특성들은 궁극적으로 자연선택에 기인한다. • 유전자와 문화의 공진화 인간의 진화는 유전적 변화와 문화적 변화가 혼재된 독특한 이중 트랙 시스템이다. 유전적인 변화는 인간 두뇌의 급속한 성장을 가져왔다. 200만 년 전 호모 하빌리스의 시대로부터 초기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하는 50만 년 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인간의 대뇌피질 체적은 3.2배나 증가했다. 또한 뇌의 언어 영역과 후두부에서는 근본적인 구조 변화가 일어났다. 문화적인 변화의 속도는 이보다 훨씬 빠르다. 인간 사회생물학 연구가 어려운 주된 원인은 생물학자와 사회학자간에 존재하는 절차와 언어의 차이에 있지 않다. 진정한 어려움은 생물학적 진화와 문화적 진화의 상호작용이라는 공통 관심사가 충분히 탐구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는 사실에 있다. 우리 모두는 인간의 사회적 행동이 학습과 문화를 통해 전수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문화는 생물학적 과정을 통해 창조되고 다듬어지는 반면 생물학적 과정은 문화적인 변화에 대한 반응으로서 함께 변화를 일으킨다. • 문화의 단위 의미기억은 시각을 비롯한 감각 경험의 연쇄 작용을 수반하는 일회기억과는 다르게 단어와 상징적인 조작으로 이루어져 있다. 의미기억은 인상들을 분리된 묶음으로 조직하는 경향이 있다. 실험적 연구들은 의미기억이 가장 많은 속성들을 공유하는 대상과 추상적인 개념들을 기준으로 묶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나무’, ‘개’, ‘집’ 같은 범주들은 실제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뇌에서 가장 쉽게 처리할 수 있는 비교적 많은 수의 자극을 공유하고 있는 대상들의 집합이다. 아이들은 사물, 또는 사물의 집합을 잘 기억하며 이러한 기억 구성 방식 속으로 쉽게 들어간다. 그들은 동일시되는 어떤 자극들을 개별적인 사물처럼 뚜렷하게 분리된 집합들(예를 들면 ‘과자’와 ‘케이크’, 또는 ‘등받이가 있는 의자’ 와 등받이가 없는 의자‘)로 조직한다. 뇌는 이러한 묶음들을 계층적으로 구성하면서 좀 더 넓은 집합으로 만들어 낸다. 이 집합에는 서로 구분되면서도 호환성이 있는 형태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과정이 끝나면 두뇌의 자극 처리 속도는 한층 빨라진다. 사물과 추상적인 개념들로 나타나는 의미기억의 단위들은 마디node라는 적절한 이름으로 불리며, 기억을 저장했다가 불러내는 것에 대한 확장-활성화 모델들에서 가능한 마디들 간의 연결들과 각 마디들에 대한 설명을 정리해 준다. 적어도 세 개의 서로 다른 차원의 마디가 있다. 가장 기본적인 묶음인 개념은 단어 또는 구로 기호화된다(예를 들면 ‘개’, ‘사냥하다’). 마지막으로 도식은 문장과 텍스트의 좀 더 넓은 단위들로 기호화 된다(예를 들면 ‘개가 지닌 사냥 기술’). 이러한 마디 연결 구조는 원래 심리학자들이 이론적인 표상으로 제시한 것이었는데, 그 조직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내용들이 더해졌다. 성ㅈ아기 아이들은 마디연결 구조를 계속 넓혀 나가며 그 복잡성을 증가시킨다. 이러한 성장의 주요 단계는 대부분 장 피아제가 제시한 인지 발달 단계와 일치한다. 이 단계는 개인적인 성장 과정에서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보편적인 과정으로서 모든 문화에 걸쳐 나타나는 어떤 질서를 보여준다. 문화를 형성하는 의미론적 구조는 그것이 만들어내는 최종적인 결과물보다 확고하고 일관성이 있다. 이 사실ㅇ느 생물학과 문화의 관계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두뇌는 표준이 될 만한 전형을 만들려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이상적인 붉은색을 만들어내는 특정한 빛의 파장과 세기 전형적인 개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특정한 외형과 크기 같은 것이다. 비슷한 변형들이 제시됐을 때, 인간의 정신은 그 변형들의 평균치에 가까운 표준을 추론할 수 있다. 그리고 표준에 딱 맞아 떨어지는 예가 없더라도 그것을 하나의 전형으로 사용한다. 유전자와 문화의 공진화(다른 종의 유전적 변화에 맞대응하여 일어나는 한 종의 유전적 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극이 계속적으로 변하더라도 그러한 구분이 계속 창조되고 이름붙여진다는 것이다. 즉 정신은 자동적으로 세상에 대해 상당히 불연속적이고 계층적인 질서를 부여하려 한다. 의미기억의 기본단위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개념은 문화사의 특수성에서 비롯된 순수하게 표현형적인 변이의 영향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개념들은 모든 문화에 걸쳐 일관되게 나타나는 몇몇 범주에 속하는 경향이 있다. • 후성법칙 인지 발달의 후성법칙은 마디가 창조되고 마디가 의미의 네트워크(이후에 문화로 이어진다)를 형성하기 위해 결합하는 방식을 결정한다. 이러한 생리 과정은 환경에서 주어진 자극을 걸러내고,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으로 저장된 것들을 다시 불러내고, 느끼고, 상상하고, 의사 결정을 내리는 인지의 각 단계를 밟아 나간다. 자극을 걸러내고 행동을 일정한 방향으로 몰고 가는 문화의 생물학적 경로화를 가장 충실하게 분석한 사례는 시각적 어휘에 관한 것이다. 빛의 세기는 연속적인 것으로 인식된다. 방 안의 빛을 조명 스위치로 점차적으로 밝게 하거나 어둡게 하면 두뇌는 그 변화를 연속적 진행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거기에는 어떤 단계나 표준이 없으며 결과적으로 빛의 세기의 변화를 표현하는 어휘도 적은 편이다. 그렇지만 정상 시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빛의 파장 변화를 연속성을 지닌 빛의 속성으로 보지 않는다. -유전자에서 문화로의 전환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을 수정하거나 일상생활에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마다 의미기억의 독특하고 제한적인 속성들을 따르는 일련의 인지 사건들을 재연한다. 문화유전자들이 모두 동등하게 취급되는 것은 아니다. 인지 과정은 완전히 중립적인 여과 장치로 진화되지 않았으며, 인간의 정신은 특정한 유전자들을 다른 것들보다 더 쉽게 통합하고 이용한다. 게다가 편향화는 세대 즉 사회의 인구학적 속성에 따라 변화하는 유형들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는 통합된 경험과 기억들이 한층 더 현실적인 문화적 변이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그에 필요한 도약을 만들어내는 방식들을 연구해왔다. 특히 하나의 대안적 선택이 다른 선택으로 전환될 확률은 다른 이들에 의해 이미 만들어진 선택들, 즉 문화적 맥락의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사회적 작용이 얼마나 많은가에 관한 연구는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러나 그러한 사회작용이 대체로 하나의 행동 범주에서 다른 범주로 달라진다는 것을 증명할 만큼은 충분히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각 개인은 일생동안 다른 사람들의 선택과는 상관없이 근친상간을 피하는 반면, 길거리의 인파 속에서 주변 사람들이 한 방향을 바라보는 비율이 높아지면 그 방향을 따라갈 수도 있다. 문화는 생물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것도 아주 깊이. 문화의 진화는 정신 발달의 후성 법칙들을 통해 경로화되며 그러한 법칙들은 유전적으로 정해져 있다.
-극락조의 재구성
최근의 추산에 따르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무척추동물의 종수는 1000만 또는 그 이상일 것이다. 우리는 무척추동물이 왜 그렇게 다양한지 그 이유를 확실히 알지 못하지만, 일반적으로 그들의 작은 크기가 핵심적인 특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계통분류학의 시대 • 다원화는 왜 일어나는가? 동물, 식물, 미생물들을 통틀어 살아 있는 전체 생물종의 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최소한 500만은 될 것이고 1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수가 얼마건 간에 그것은 지질학적 역사 속에 단 한 번이라도 존재했던 모든 종의 1퍼센트도 채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 신경생물학의 경우 대장균 개체들은 배의 스쿠루처럼 편모를 회전시키면서 이동한다. 개체는 이동 경로를 바꾸기 위해서 편모의 회전방향을 변화시키는데, 이 때문에 개체가 뒹굴면서 임의적으로 새로운 방향을 향하게 된다. 대장균은 이러한 계속적인 시행착오를 통해 독성물질로부터 멀어지고 영양소 쪽으로 가까이 다갈 수 있다. • 계통분류학의 청지기 정신 - 생물 다양성의 가치 만일 ‘생명 애착’ 이 존재하고 내가 그것을 믿는다면, 그것은 생명이 있는 것들에 대한 인간의 내재적 감정의 결연이다. 생명 애착은 단일 본능이 아니라 분리될 수 있고 개별적으로 분석될 수 있는 학습 규칙의 복합체이다. 생명 애착의 학습 규칙에 의해 형상화된 느낌들은 몇 개의 감정 스펙트럼 위에 위치한다. 진화와 혐오, 두려움과 무관심, 평온과 공포로부터 유발된 불안, 이런 여러 갈래의 감정적 반응들은 한테 묶여 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구성하는 상징들을 만든다. 인간이 자연 환경으로부터 분리된다 해도 그 학습 법칙들은 기술 혁신에 의한 오늘날의 생명의 특징에 잘 들어맞는 현대판 생명 애착에 의해 대치되지 않는다. 대신에 그 생명 애착적 학습 법칙들은 인공적인 새로운 환경에서 위축되고 변형되어 발현되며 세대를 거쳐서 지속될 것이다. 각종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는 사람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동물원을 방문하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더 많은 문화, 부자가 되면 전망 좋은 곳에 대저택을 짓고 야외 풀장이나 연못이 있는 정원을 가꾸고 싶어 하는 문화, 알 수 없는 이유로 끊임없이 뱀이 나오는 꿈을 꾸는 도시 거주자들이 살아가는 문화, 이러한 문화는 결코 우연은 아니다. 생명 애착에 관한 증거는 없지만 그 존재에 대한 가설은 진화적 논리에 의해 계속 주장될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사람속이 기원한 수십만 또는 수백만 년 전에 시작됐다. 인류 역사의 99퍼센트 이상의 기간 동안 사람들은 다른 생명체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수렵과 채집으로 생활해왔다. 이 까마득한 역사의 기간 동안 혹은 그보다 더 오래된 원시인류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 기간 동안 인간은 자연사의 혹독함에 대해 정확하게 배워 얻은 지식에 의존해서 살았다. 이런 사실은 오늘날 원시 도구들을 사용하고, 식물과 동물들에 관해 체험적으로 지식을 습득하는 침팬지들에게서도 확인할 수 있다. 언어와 문화가 번성하면서 인간은 갖가지 살아있는 생명체들을 상징적 표현과 신화의 중요한 소재로 이용해 왔다. 요컨대, 인간의 두뇌는 기계가 지배하는 세계가 아니라 생명이 중심인 세계에서 진화해온 것이다. 이 때문에 그 옛날 인류와 관련됐던 모든 학습 법칙들이 수천 년 사이에, 심지어 완전히 도시화된 환경에서 한 세대 또는 두 세대 이상 살아온 극소수의 인간들에게서 씻은 듯이 잊혀진다는 것은 상당히 신기한 일이다. 생명 애착 가설 안에서 아주 단순화된 형태로 뱀에 대해 설명하자면, 진화의 과정에서 인간은 뱀의 해로움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었고, 그 반복된 경험들은 자연선택에 의해 유전되는 혐오와 매료의 감정으로 기록되었으며, 결국 문화의 진화 속에서 꿈과 이야기로 드러났다. 같은 방법으로 그러나 다른 선택압에 의해, 그리고 다른 유전자의 집합과 신경 회로가 관여하여 다소 독립적인 기원을 갖는 다른 종류의 생명 애착 반응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지구의 생물 종수는 인류가 출현하기 이전에 비해 100배에서 1000배나 빠른 비율로 감소하고 있다. 현재 열대 우림의 생물종 멸종율은 매해 1퍼센트 이상이고, 그것은 대략 0.3퍼센트에 해당하는 생물종이 출현 즉시 전멸하거나 적어도 그들이 살 수 있을 만한 기간보다 훨씬 짧은 기간에 사라져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적 규모로 연구를 하는 대부분의 분류학자들은 지구상 생물종의 절반 이상이 열대우림 지역에 살고 있다고 믿는다. 생물종들은 인류의 친척이다. 이러한 인식은 진화적 시간에서 볼 때 사실이다. 현화식물에서 곤충,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진화된 진핵생물들은 약 1조 8000만년 전에 살았던 하나의 조상 개체군에서 유래했다고 생각된다. 인간은 다른 행성으로부터 온 외계인처럼 풍부한 생물권 안으로 연착륙한 것이 아니다. 인간은 이미 존재했던 다른 생명체들로부터 생겨난 것이다. 이 생명체들의 엄청난 다양성은 새로운 형태의 생명을 창조해내기 위해 계속되는 실험을 거친 끝에 결국 우연히 인류를 만들어낸 것이다. - 인류는 자멸할 수밖에 없는가? [Review]
오늘날 자연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가 늘어나고 긍정적인 효과가 보고되고 있다. 미국 환경보건센터의 하워드 프럼킨 박사는 이러한 효과를 결국 우리 모두는 숲에서 왔다는 진화 이론의 배경을 가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연구에서 실제로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이 창밖으로 자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다른 환자들보다 빨리 퇴원할 수 있었다고 했다. 자연에 대한 연구자들은 그것을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이른바 집으로 간다”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바이오필리아 즉, 생물과의 우정이 우리의 유전자 속에 숨어 있다는 것이다. 몇몇 연구에서는 반려동물이 있는 심장마비 환자들의 경우, 그렇지 않은 환자들에 비해 발병 1년 후 생존의 가능성이 여섯 배나 높다. 심장 및 혈관 질환 또한 남녀 모두 더 드물게 발생한다. 수감자들도 정원 일이 허용될 경우, 더 잘 지낸다. 벽을 보는 대신 창밖의 자연으로 눈길을 돌리면 병에 걸리는 경우가 24% 감소한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 책은 조선일보 칼럼니스트 “최재천 교수” 가 하버드 대학교 학창시절 은사인 “에드워드 윌슨”이 쓴 책을 번역한 것이다. 윌슨은 이 책에 실린 에세이들이 이미 오래전 1975년부터 1993년 사이에 쓴 것이라고 했으며, 우리나라에는 2005년도에 소개되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후에 쓰인 책,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와 매트 리들리의 <이타적 유전자>의 원조 격이라고 할 수 있다. 생물학자로서 글쓰기에 사사를 둘 정도로 열정적인 그의 글 표현은 독자를 책 속으로 끌어들이는 독특한 맛이 있다. 특히 개미 연구에 독보적인 존재로 알려진 그의 개미 이야기가 재미있다. 자연에서 똑같이 한 생물 종으로 출발했지만, 인간은 수천, 수만 년 동안 최고의 영장류라는 특권으로 자연을 지배해왔다. 그러한 특권을 지나치게 낭비한 결과 오늘날 자연은 황폐해지고 돌이킬 수 없는 재앙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조화로운 먹이사슬은 인간에 의해 무참히 깨어져 버렸다. 이러한 우울한 소식과 함께 이 책의 저자와 같이 수천 년 동안 자연환경에 능동적으로 적응한 인간은 변화시킨 환경에 또다시 스스로를 끼워 맞추며 살아갈 것이라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것은 우리의 유전자가 여전히 환경에 순응하는 야생을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창조와 진화는 생명이 아미노산의 결합인 하나의 단백질조각에서 출발했다는 진화론자들과 원숭이와 인간은 전혀 별개라는, 그래서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차이다. 이 책은 전적으로 진화론자의 입장에서 쓴 책이기 때문에 그러한 시비를 가릴 필요는 없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곤충이나 동물 사회에서 일어나는 협동과 분화 그리고 이기적인 것과 이타적인 모습은 인간사회 모습과는 전혀 별개의 개념이라고 본다. 진화론자들은 그것들 사이에 공통점을 찾으려 하고 이에 대한 연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을 뿐이다.
“인간 두뇌의 급속한 성장을 가져왔다. 200만 년 전 호모 하빌리스의 시대로부터 초기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하는 50만 년 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인간의 대뇌피질 체적은 3.2배나 증가했다. 또한 뇌의 언어 영역과 후두부에서는 근본적인 구조 변화가 일어났다.”(본문) “인류 역사의 99퍼센트 이상의 기간 동안 사람들은 다른 생명체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수렵과 채집으로 생활해왔다. 이 까마득한 역사의 기간 동안 혹은 그보다 더 오래된 원시인류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 기간 동안 인간은 자연사의 혹독함에 대해 정확하게 배워 얻은 지식에 의존해서 살았다. ”(본문) “지구의 생물 종수는 인류가 출현하기 이전에 비해 100배에서 1000배나 빠른 비율로 감소하고 있다.”(본문) “인간은 다른 행성으로부터 온 외계인처럼 풍부한 생물권 안으로 연착륙한 것이 아니다. 인간은 이미 존재했던 다른 생명체들로부터 생겨난 것이다. 이 생명체들의 엄청난 다양성은 새로운 형태의 생명을 창조해내기 위해 계속되는 실험을 거친 끝에 결국 우연히 인류를 만들어낸 것이다.”(본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