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이 신의주를 방문했다는 지난 달 북한 조선중앙통신의 보도와 관련, “11월 24일 신의주에서 ‘1호 행사(김정일 현지지도에 대한 환영행사)’가 열리긴 했으나, 장군님(김정일)의 등장 여부는 모른다”고 신의주 내부소식통이 전해왔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달 25일, 방문일자는 밝히지 않은 채 김정일이 평안북도 신의주화장품공장 비누직장(생산라인)과 낙원기계연합기업소를 시찰했다며 총 30장의 사진을 공개한 바 있다.
이 소식통은 6일 ‘데일리엔케이’와 통화에서 “특별열차가 24일 오후 1시경 남신의주 역에 도착했고, 오후 2시부터 약 15분간 신의주 화장품공장에서 ‘1호 행사’가 열렸다”며 “행사를 한답시고 화장품공장에 대한 전면통제가 이루어지긴 했지만 장군님을 직접 봤다는 사람은 없다”고 전했다.
소식통은 “신의주에서는 11월 23일 저녁 5시부터 갑자기 보위부, 보안서의 과장급 이상 간부들이 긴급회의에 소집됐다”며 “보안서의 일반 보안원들 조차 그냥 무슨 회의가 있나보다 했는데 다음 날 전격적으로 행사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신의주화장품 공장에서는 24일 점심시간부터 갑자기 ‘비상회의가 있다’며 공장 일꾼들과 노동자들을 모두 회의실에 집결시킨 후 호위총국 성원들이 회의실을 봉쇄하고 변소도 못 가게 통제했다”며 “그 중에 전공(電工)과 수리공 등 네 사람만 회의실 밖에 있었다”고 말했다.
소식통은 “공장 노동자들은 오후 3시 경에야 작업에 복귀했는데, 그 이후에도 장군님이 다녀가셨다는 것을 전혀 알려주지 않아서 다음날 보도(TV 뉴스) 소식이 입으로 퍼지면서 모두 ‘장군님이 다녀가셨나 보다’하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신의주의 또 다른 소식통은 “신의주화장품 공장에서 ‘1호 행사’가 열린 것은 사실이지만 장군님을 봤다는 사람도 없고, 통제도 너무 간소해 장군님이 진짜 왔다 가셨는지 아직도 뒷 소문이 많다”고 전해왔다.
이 소식통은 “물론 장군님이 현지방문에서 군중들 앞에 나타나는 경우는 없지만, 그래도 공장기업소를 둘러봤다면 반드시 초급당 비서나 작업반장이 옆에 따라 붙는 것이 관례”라면서 “장군님 접견에 뽑힌 작업반이나 소조 성원들은 장군님으로부터 직접 ‘1호 선물’을 받기 때문에 반드시 소문이 나게 돼 있다”고 말했다.
또한 “장군님이 신의주화장품 공장을 진짜 방문했다면, 이곳 간부들에게는 비할 바 없이 큰 영광이자 출세의 담보”라며 “장군님이 다녀가셨다면 이 공장에서는 지금 대대적인 선전이 벌어져야 옳지만 특별한 움직임이 아무것도 없다”고 덧붙였다.
지난 달 24일 당시 신의주에 체류 중이었다는 중국 단둥(丹東)의 조선족 무역상 A씨 역시 “당시에 김정일이 신의주에 왔다는 소식을 전혀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수시로 신의주를 왕래하고 있다는 A씨는 “김정일의 신의주 방문이 계획되면 그의 신변 안전을 위해 우선 신의주-단둥 간 입출경이 모두 차단된다”며 “신분이 확실한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중국에서 신의주를 들어갈 수 없고, 화물차량의 경우도 검문이 강화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김정일 방문 당일에는 신의주 철교 자체가 차단되며, 김정일 도착 일주일 전 그리고 신의주를 떠난 이틀까지는 단 한사람도 드나 들 수 없다”며 “올해 9월 중순부터 11월말까지 이런 조치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신의주를 경유해 12월 초 중국에 들어온 북한 여행객 B씨는 “장군님이 신의주에 오셨다는 소식은 중국에 와서야 알게 됐다”며 “만약 장군님이 진짜 오셨다면 신의주가 떠들썩했을 텐데 내가 나올 때는 평소와 똑같이 조용했다”고 말했다.
B씨에 따르면 북한의 관례상 김정일이 군부대가 아닌 인민경제 분야를 시찰할 경우 ▲호위사령부와 보위사령부(국경지역의 경우 보위사령부의 역할이 커짐)가 1선 경호를 책임지게 되고 ▲2선은 국가안전보위부 ▲3선은 인민보안서 ▲4선은 현지 규찰대 및 각종 예비 병력(교도대 등)이 경비에 나서게 된다. 1선과 2선 경호 관계자를 제외하고는 일반 주민들은 왜 갑자기 경계와 검문이 강화되는지에 대한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
김정일이 신의주를 방문하게 되면 압록강변(중국 단둥 방향)과 동강(북한 비단섬방향) 쪽의 국경 경비가 대폭 강화된다. 또한 신의주로 들어오는 주요한 도로가 일주일 전부터 차단되며 특히 3호 초소(신의주로 들어오는 마지막 관문)는 철저하게 통제된다.
이밖에 김정일이 신의주에 체류하는 시간 동안 모든 주민들의 이동과 대중교통(버스 및 기차) 운행이 중단되며 모든 야외 활동 및 모임, 집회 등이 일제히 불허된다. 김정일 방문에 맞춰 대대적인 거리청소와 환경정리 사업이 진행되기도 한다.
그러나 지난 달 24일 당시 신의주에 머무르고 있었다는 B씨는 “당시에 그 어떤 특별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단둥의 대북무역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북한이 ‘김정일 와병설’을 일축하기 위해 일부러 ‘신의주 현지지도’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단둥의 대북 무역업자 C씨는 “신의주가 올해처럼 시끄러웠던 때는 없었다”며 “건강도 좋지 않다는 김정일이 이렇게 어수선한 상황의 신의주를 방문했다는 것이 납득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4월부터 중앙당에서 국경검열을 한다며 온 도시가 난리 법석이었고, 장성택까지 내려오지 않았느냐”며 “후열사업(검열에서 지적된 사항을 제대로 집행했는지 확인하는 사업)이 아직도 마무리가 안됐는데 김정일이 직접 내려온다는 것이 앞뒤가 맞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어 “신의주라면 이곳(단둥)에 앉아서도 그 속사정을 뻔히 알 수 있는 곳”이라며 “김정일이 멀쩡하다는 것을 외부에 알리려면 저기(신의주) 만큼 적당한 곳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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