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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팔관회에서 시작된 부처님오신날 연등축제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최대의 전통문화축제로 발돋움 했다. 사진은 지난해 서울 연등축제 모습. |
2634년 전 5월, 인도 북부 룸비니 동산에서 싯달타 태자가 탄생했다. 봄날의 화사한 꽃비가 내리는 가운데 정반왕과 마야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태자는 훗날 ‘더 없는 깨달음’을 얻고 세계의 중생을 구원할 석가모니 부처님이 되신다. 전 세계에서는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다양한 축하 행사와 법회가 열린다. 불교가 전래된 이후 우리나라에서 부처님오신날은 국가 최고의 경축일이었다. 거리마다, 집집마다 연등을 내달고 부처님의 자비와 덕에 찬탄을 했다. 그리고 사원을 찾아 참배를 하고 탑돌이를 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고자 서원을 올렸다. 삼국시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부처님오신날을 어떻게 맞이했는지 살펴보자.
신라 팔관회·고려 연등회에서 연등축제로…
사찰·왕궁·거리마다 집집마다 연등 밝히며
무명에서 벗어나고 국가·백성의 ‘안녕 기원’
# 연등축제의 유래
부처님오신날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거리를 수놓은 연등이다. 연등은 부처님 재세 시부터 이어져 온 공양의 한 방법으로 중국 동진의 법현스님(339~414)이 쓴 인도 구법여행기에서도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여행기를 실은 <법현집>에는 당시 중인도 지역 부처님오신날 행사가 기록돼 있다. 이에 따르면 “출재가자들이 사원에 모여 예능을 겨루고 꽃과 향을 공양한다. 또 사찰 뿐 아니라 불상을 모신 수레를 화려하게 치장하여 읍내까지 순례한다”고 기록돼 있는데, 이는 오늘날 제등행렬의 모습과 유사하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후 팔관회가 유행을 했다. 팔관회의 기록은 신라 진흥왕 12년(551)년 고구려 혜량스님이 신라에 귀의한 후 시작됐다고 전해진다.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팔관법회는 전몰장병을 위해 외사(外寺)에서 7일간 열었다고 하며, 이후 호국적인 내용으로 팔관회가 진행이 됐다.
팔관회는 매년 11월에 국가 주도로 열렸다. 이와 같은 형태로 정월 보름(음력 1월15일)에는 연등회가 서민들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기록을 보면 신라 경문왕 6년(866)과 진성여왕 4년(890) 정월 15일에 임금이 황룡사로 행차해 연등을 켜고, 꺼지지 않도록 간등(看燈)을 했다고 나오며, 진흥왕 때에는 팔관회와 더불어 연등회를 열었다는 기록이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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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승려도성출입금지’가 해제된 후 1900년대 초 서울서 열린 부처님오신날 행사. 민족사 제공 |
연등은 ‘무명을 깨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어두운 길을 밝히 듯, 마음의 길을 밝히려는 서원을 담아 연등공양을 올리는 것이다.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왕성(王城)에서 시골 마을에 이르기까지 정월대보름에는 14일부터 이틀간 저녁에 연등을 달았다고 한다. 이를 고려 무신정권 시대 집권자인 최이가 4월8일로 옮겼다고 한다. 현재의 연등축제는 이때부터 음력 4월 초파일로 변화됐으며, 조선시대 까지 이어졌다. 기록으로 볼 때 조선 성종 때에도 성대한 연등축제가 진행됐다. 하지만 조선 후기 들어 사찰에서만 겨우 명맥을 유지했다가 ‘승려도성출입금지’가 해제된 이후 1900년대 초 연등축제가 부활됐다.
# 부처님오신날 풍속
전몰장병을 추모하고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던 팔관회의 풍속은 점차 연등회와 혼합되면서 부처님오신날 풍속으로 발전을 했다. 매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백성들은 사찰을 찾아 제를 올리고 관등(觀燈)을 했다. 관등이란 연등을 보면서 마음을 밝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처님오신날을 관등절, 연등절이라고 불렀으며 또는 등석(燈夕)이라 했다.
사찰에서는 부처님오신날이 다가오면 사찰 뜰에 등간(燈竿)을 세우고, 그 위에 꿩의 꼬리를 꽂고, 비단으로 기를 만들어 달았다. 이를 호기라고 하는데, 일반 집에서는 추녀 끝이나 나무에 줄을 매고 등을 달아 부처님오신날 등에 불을 켰다. 각자의 소원을 담아 만든 등에는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글씨를 써 넣기도 했다. 등의 모양은 과실, 꽃, 어류 또는 여러가지 동물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다. 이름도 수박등.마늘등.참외등.연화등.잉어등.거북등.봉등(鳳燈).학등(鶴燈).일월등(日月燈).선인등(仙人燈).칠성등(七星燈).누각등(樓閣燈)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또 등에 ‘태평만세(太平萬歲)’ ‘수복(壽福)’ 등 기원을 담은 글을 적기도 하고 기마장군상(騎馬將軍像)이나 선인상(仙人像)을 그리기도 했다.
가정에서는 가족의 숫자대로 등을 만들었다. 사찰의 등간과 마찬가지로 뜰에 등간을 세우고 줄에 등을 매달았는데, 부처님오신날과 다음날까지 등에 불을 밝혔다. 부유한 집에서는 큰 대를 수십 개 얽어 해와 달의 형상으로 만들고, 바람에 따라 굴러 돌게 하기도 하며, 종이에 화약을 싸서 새끼줄에 매어놨다가 불을 댕겨 불꽃놀이를 했다고 한다. 또 종이로 용을 만들어 바람에 날려 띄우기도 하고, 인형을 만들어 달기도 했으며, 상점에서는 서로 등대를 높이 세우려고 경쟁을 했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 따르면 “사월초파일에는 인가와 관청, 저자 모두에서 등간(燈竿)을 세운다. 이 등간은 대나무를 묶어 사용했는데, 높이는 십여 장(丈)이나 된다. 등간 위에는 비단이나 면포를 잘라서 꽂으며 깃발 밑에는 갈고리가 달린 막대기를 가로 대고 또 갈고리에는 줄을 얹어서 줄의 좌우 끝은 땅 위에까지 내려오게 한다. 그런 연후 밤이 되면 등에다 불을 켜는데 많이 달 때는 십여 개의 등을 달고 적게 달 때는 3, 4개의 등을 매달아 놓는다”고 전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통행금지가 실시됐지만, 부처님오신날은 통금이 해제됐을 정도로 연등행렬은 서민생활 깊숙이 자리한 풍속이었다. 부처님오신날이 되면 낮에는 사찰에서 공양을 올리고, 저녁에는 집집마다 세운 등대에 자녀수대로 등을 밝혔다. 밤에는 온 장안의 남녀들이 등을 들고 나와 장관을 이뤘다고 한다. 조선시대 시골노인들은 한성의 남산 잠두봉에 올라 불야성을 이룬 시내거리를 구경하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다고 할 정도다. 조선 성종 때는 한성의 대표적 경치 가운데 하나로 종로의 연등축제가 꼽혔다고 한다.
민간의 아이들은 연등놀이의 하나인 호기놀이를 즐겼는데,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아이들이 종이를 잘라 등대에 매달고 장안을 돌아다니며 쌀이나 돈을 구하였다고 한다.
부처님오신날 풍속 가운데 빼 놓을 수 없는 문화 중 하나가 탑돌이다. <금오신화>, <삼국유사> 감통편 등을 보면 탑돌이는 부처님께 소원을 비는 의식이면서, 또한 젊은 남녀들이 만남을 갖는 기회이기도 했다. 감통편 김현조에 보면 “신라 풍속의 하나로 매년 이월이면 초여드렛날부터 보름날까지 경주의 남녀들이 다투어 흥륜사의 전탑을 돌면서 복을 빌었다”고 한다. 김현이 여자로 변한 호랑이와 인연을 맺은 것도 탑돌이를 하다가 정이 통한 까닭이었다.
이외에 지역별로 다양한 풍속도 있었다. 경북지방에서는 노인들이 절에 다녀온 후 팥죽을 쒀 먹으면서 늙지 않기를 기원했다고 한다. 전남 지방에서는 고기잡이배에 횃불을 밝히고 풍물을 치며 한해의 안녕을 기원했다고 하며, 제주에서는 이날 연등을 밝히고 한해의 날씨를 점쳤다고 한다. 이날 비가 안오면 48일간 가뭄이 든다고 여겼으며, 날씨가 좋으면 한해 풍년이 든다는 속설도 전해온다.
# 초파일 음식
흥겨운 축제에 다양한 먹거리도 빼 놓을수 없다. 아이들은 화려한 등대 아래에 깔개를 깔고 느티떡이나 소금물에 볶은 콩을 먹으며 물동이에 바가지를 엎어놓고 돌리며 바가지를 두들겼다. 이를 수부(水缶)놀이라고 한다. 또 부처님오신날을 전후해 우리 조상들이 즐겨 먹은 음식으로는 찐떡(蒸餠).화전(花煎).어채(魚菜).미나리강회 등이 있다. 찐떡을 찹쌀가루를 반죽해 동그랗게 빚어서 찐 음식이다. 그런 다음 팥에 꿀이나 설탕을 섞어서 떡 안에 넣고, 대추를 붙여 먹는 음식이다.
화전은 찹쌀가루를 편편하고 둥글게 빚은 다음 진달래꽃을 붙여 모양을 내고 기름에 지지는 음식이다. 어채는 국화잎사귀.파.석이버섯.생선 등을 가늘게 썰어서 썩은 것인데, 여기에 참기름을 쳐서 먹는다. 미나리강회는 미나리를 삶아서 파와 마늘을 함께 감아 고추장에 찍어먹는 음식이다.
[불교신문 2718호/ 5월7일자]
첫댓글 감사드립니다.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
연등은 ‘무명을 깨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어두운 길을 밝히 듯, 마음의 길을 밝히려는 서원을 담아 연등공양을 올리는 것이다. <고려사(高麗史)>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 아미타파 _()()()_
조상들이 믿었고, 역사가 증명하는 그 불교를 지금 제가 믿으니 얼마나 다행이고 얼마나 복받은 건지...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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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화려한 등보다 작고 초라하지만 정성이 가득한 난타의 등이 폭풍에도 꺼지지않고 온 천지를 밝혔습니다.
진실된 마음으로 등공양을 올리는 부처님 오신날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
연등회날에 가족의 안녕도 기원하고, 탄생도 축하 하고, 젊은이가 연애도하는 풍습이 되게 풍성하면 좋겠습니다.
부처님 오신날에 부처님을 그리워 하는 사람이 많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