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랑대 바치는 것
이종문 시조시인
당신, 내 오랜 꿈이 뭔지 아는가요?
알지, 알고 말고, 저 비행기 구름에다
흰 빨래 하얗게 널고 바지랑대 바치는 것
-《문학청춘》, 2022. 가을호
시조시인 이종문은 1955년 경북영천 출생. 대구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3회 쯤 되겠다. 1993년 경향신문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 시집으로 『저녁밥 찾는 소리』,『봄날도 환한 봄날』,『정말 꿈틀, 하지 뭐니』등. 논저로 『고려전기 한문학연구』,『한문 고전의 실증적 탐색』,『인각사 삼국유사의 탄생』등이있다. 계명대 한문학과 명예교수
바지랑대를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빨래줄을 바쳐 올리는 긴 장대를 말한다. 바지랑대와 더불어 잊어져가는 이름群들을 떠올려보자. 홋이불, 이불호청, 할배 두루마기, 할매 고쟁이, 드물게는 아지매의 서답까지 줄줄이 있다. 대게가 흰 빨래 들이다. 높이 고여 놓은 빨래들은 어린 녀석들을 신나게 했다. 만국기처럼 휘날리는 길게 드리운 빨래사이를 헤집고 숨바꼭질 하던 재미가 있었다. 그때가 1960~70년대 쯤이 되지 않았을까? 시인은 젯트 항공기 꽁무니에서 뿜어내는 하얀 飛行雲을 보고 문득 장난을 치던 어린 날이 생각났을 것이다. 李시인은 한국 시조단에서 넘치는 해학으로 일가견이 있는 시인이다.
봄날도 환한 봄날
이 종 문
봄날도 환한 봄날 자벌레 한 마리가
호연정浩然亭 대청마루를 자질하며 건너간다
우주의 넓이가 문득, 궁금했던 모양이다
봄날도 환한 봄날 자벌레 한 마리가
호연정浩然亭 대청마루를 자질하다 돌아온다
그런데 왜 돌아오나? 아마 다시 재나보다
*
한 줄 쓰기에 곡강 김태엽 교수님의 요청이 있어
李시인의 글 하나를 더해 놓습니다.
詩 속의 호연정浩然亭 은 계명대학교 학내에 있는 정자입니다.
점심 휴게 시간에 浩然亭에 걸터 앉아 浩然之氣를 즐기던 중,
때 마침 마루에서 꿈틀 거리는 자벌레를 보고
시상이 떠 올라 단 5분만에 읊었다는 시조랍니다.
온달로서는 5년을 싸매도 이런 글 못 쓸것 같습니다.
자벌레에겐 좁은 마루청도 곧 우주로 보였을 것임이 틀립없습니다.
지구 측량의 도구인 GPS 와 자벌레의 측량 방법을 대비시키는 발상이
神技에 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