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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 돌아보기로서의 ‘로드(Road)-시’
나민애
<시인의 말>은 중요하다. 그것은 단순한 소감인 듯 보여도, 내심 ‘시인의 속말’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한 시집의 성격을 함축하고 있기도 하다. 이재무 시인의 이번 시집, 그리고 <시인이 말>도 그러하다. 우리는 이 시집을 펼치고 맨 앞장에서 <시인의 말>을 만난다. 그저 일상적인 소회인 듯 담담하지만, 이 글에서 퍽 상징적인 언급들을 찾을 수 있다.
“나는 길 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라고 <시인의 말>은 시작된다. 독자에게는 일종의 힌트가 되는 구절이다. 여기 적혀 있는 ‘길’은 물리적 실체가 있는 길이다. 한 인간이 두 다리로 걸어 다니는 바로 그 길 말이다. 그런데 시인이 말하는 ‘길’은 하나가 아니다. 하나 이상의 길을 말한다는 점에서 이 시집의 본체가 서서히 드러난다. 이어서, 나머지 구절들을 읽고 나면, 시인이 말하는 ‘길’에 중층적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된다. 시인은 실제의 길을 걸으면서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를 그려본다고 했다. 결국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길’의 궁극적 의미란, 바로 ‘인생행로’인 것이다.
시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두 가지의 길. 그리고 그 길 위에 놓여 있거나 오가기도 하는 것. 이러한 것들이 모여 작품집을 이루었다. 길과 길 위의 단상들이 모여 시집 《슬픔은 어깨로 운다》이 되었다. 그러니 이번 시집은 물리적 길 위에서 쓰여진 시집이자, 인생의 길 위에 헌정된 시집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시집의 구체성은 바로 ‘길 위’의 이야기들이 지닌 구체성에서 비롯된다. 과거로부터 오늘, 오늘로부터 먼 미래에 이르기까지 시인이 만나왔으며 만나올 것들의 이야기. 그가 온 곳과 그가 갈 곳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것들을 바라보는 한 시인의 시선 이야기. 길 위에서 탄생하고, 길 위에서 자랐으며, 길 위에서 사라져갈 그의 이야기들이야말로 이번 시집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1. ‘묵직함 정감’과 ‘섬세한 관찰’의 크로스오버
이재무 시인은 시인으로서의 자기 역사, 한 인간의 자기 역사 안에서 성찰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그는 자신이 무척 오랜 시간 걸어왔음을 인지하는 시점에 도달했다. 오래 지나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 현명한 이는 과거를 돌아보고, 더 현명한 이는 과거를 통해 미래를 유추한다. 이재무 시인은 바로 이 일을 시작하려는 것이다. 시집 『슬픔은 어깨로 운다』 에 ‘길’이 등장해야 했던 필연적 이유는 ‘성찰’의 필요성과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이번 시집에서 간과할 수 없는 점은, 이재무 시인 본래의 장점이 십분 발휘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재무 시인의 장점은 ‘묵직함 정감’과 ‘섬세한 관찰’의 크로스오버에서 발생한다. 묵직함이 주는 투박함과 섬세함이 낳는 서정성은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따뜻함’이라는 제3지대를 창출한다. 이러한 시인 특유의 창작 방법, 세계에 대한 접근 방식이 이번 시집에서도 유효하며 유연하다. 그 중에서도 백미는 <걸어 다니는 호수>라고 하겠다.
소가 눈 들어 앞산을 바라보니
앞산이 호수에 잠긴다
눈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구름이 잠긴다
소가 끔벅, 하고 눈을 감았다 뜨니
산이 눈을 빠져나오고
소가 또 끔벅, 하고 눈을 감았다 뜨니
구름이 빠져나온다
소는 느리게 걸어 다니는 호수를 가지고 있다
- <걸어 다니는 호수> 전문
소는 짐승이면서도 덕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 증거인 것처럼 크고 고운 눈을 끔벅거릴 줄 안다. 여기까지 알고 있던 일반의 인식에, 이재무 시인은 환상적이며 아름다운 이미지를 부여한다. 눈은 호수이고, 그 안에 앞산과 구름이 잠긴다는 대목에서 소는 일종의 능력자 내지는 마법사가 된다. 나아가 이 상상 속에서 소는 앞산과 구름을 담을 정도의 크기, 놀라울 정도로 확장되는 마법을 보인다.
시라는 장르에서 제일 기본적이고 또 유능한 재주꾼인 은유가 바로 이 지점에서 등장한다. “소는 느리게 걸어 다니는 호수를 가지고 있다”는 마지막 행에서, 소는 은유를 타고 짐승의 카테고리를 넘어선다. 이제 소는 짐승 따위가 아니라 호수를 품은 소우주로, 신비롭고 놀라운 존재로 전환된다. 변신술이라는 시의 기초적 문법을 활용하고, 소라는 흔한 소재를 선택하면서 이렇게 개체의 특화를 구체화할 수 있는 것은 시인의 자질에 달려 있다. 예민한 신경증을 전제하지 않고도 섬세한 관찰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시인의 상상력은 누구보다 따뜻하고 깊어질 수 있었다.
울타리 너머에서 들려오는 저녁
종소리 한쪽 귀로 들어와 한쪽 귀로
빠져나가는 날이 많았지만
두 눈으로 흘러들어와 한참을 머물다
양쪽 귀로 나가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은 두 눈을 꼬옥 감아도
치어 떼처럼 몰려와
옴찔옴찔 한사코 눈꺼풀 열어젖혀
파고들어 와서는
몸 안 구석구석을 헤엄치고 다니며
은빛 잔물결을 일으키고는 하였다.
- <저녁 종소리> 전문
시 <걸어 다니는 호수>는 호수가 되어버린 소의 심상을 우리에게 심어준다. 이처럼 잔잔한 아름다움이 빛나는 또 다른 작품으로 <저녁 종소리>를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전봉건 시인에게서 최고조로 개발되었던 이미지의 향연과 그에 대한 장악력을 연상시키며, 나아가 김종삼 시인에게서 보았던 음악적 이미지의 시각적 변용을 떠올리게 한다.
이 작품에서 시인은 종소리를 귀로 듣지 말고 눈으로 듣는다고 말한다. 저녁이 왔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그것을 듣는 사람은 눈을 감고 저녁과 종소리와 소리가 불러오는 심상을 음미하기 시작한 것이다. 외부의 소리가 기폭제가 되어 불러오는 심상은 아름답다.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그것은 파급력을 지녔다. 이를테면 작은 물고기들, 은빛 잔물결, 이런 것들에 대한 상상은 점점 커져 이제 몸 전체로 파동을 일으킨다.
이 작품을 읽는 묘미는 소리가 시각으로 변화되는, 이미지의 전환 국면에 있다. 마치 소리가 살아 있는 듯, 이미지가 살아 숨 쉬는 듯 꿈틀거리는 역동성을 보여준다. <저녁 종소리>는 원고지 위에서 뛰노는 심상들을 신뢰하는 시인의 자세, 순간의 마법을 포착하는 시인의 작업을 잘 보여준 작품이 아닐 수 없다.
2. 기원 돌아보기로서의 ‘로드(Road)-시’
‘묵직함 정감’과 ‘섬세한 관찰’의 크로스오버가 이재무 시인의 특유라면, 이제는 이번 시집의 특유에 대해 말할 차례다. 새로 막 태어난 이 작품집은 시인의 고유한 장점이 발휘된 시집임과 동시에, 시인의 현주소가 반영된 시집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이 시집은 ‘인생으로서의 길’과 ‘길로서의 인생’을 엮는 또 다른 크로스오버 위에 놓여 있다. 유독 ‘길’에 대한 작품이 많은 것도, 유난히 성찰과 회오의 주제가 잦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보다 적극적으로 이해한다면 이 시집은 ‘길’이라는 주제를 통한, 일종의 ‘기원 돌아보기’에 해당된다. 소설 쪽에서 자기 기원에 대한 탐사란 1990년대에 특화된 것이었지만, 시에 있어서 기원적 탐사란 장르의 본성상 필연적이고 항구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자기 내면에 닻을 내려 언어를 길어 올리는 것이 시인의 임무라고 한다면, 문학의 원천이 세계보다 자아에 더 초점을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원천으로서의 자기 기원에 대한 시적인 각색, 내지는 시적인 탄생은 어느 시인이건 반드시 거쳐야 할 시적 관문이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재무 시인은 이번 작품집에서 자기 성찰의 본격화를 위해 자기 기원에 대한 탐색을 시도하고 있다.
그 예로서 이 작품집에 수록된 ‘길의 시’들을 들 수 있다. 이 작품들은 로드 무비의 문법에 비견될 만한, 길을 통해 의미를 얻어가는 ‘로드(Road)-시’들이라 지칭할 수 있다. 그리고 길 위의 시선들 중에는 분명 시인의 문학적 운명, 문학적 원천을 비추는 작업이 포함되어 있다.
아침이나 저녁 호수에 나가 물수제비를 뜬 적이 있다.
수면에 배를 깔고 수평으로 아슬아슬 날아가다가
물속으로 가라앉는 돌멩이들
돌이켜보면 내 지난날이 그러하였고
오늘과 내일이 또한 그러할 것이었다.
물에 닿는 찰나의 경이가 사는 동안의 축복이리라.
그러나 그 어떤 돌멩이도 수면과 영원히 동행할 수는 없다.
나와 당신이 던진 돌들을 삼킨 호수가 저기 있다.
<물수제비> 전문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길’이라고 할 때 <물수제비> 역시 ‘길의 시’에 포함된다. 이 작품은 물수제비를 뜨던 일화를 말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길 위의 삶’을 다루고 있다. 시인은 자기 자신을 물속으로 가라앉는 돌멩이들에 비유한다. 어떠한 물수제비도 영원히 날아갈 수 없고, 어떠한 돌멩이도 영원히 수면과 동행할 수 없다. 매번 가라앉는 돌멩이들처럼 사람의 일과는 매번 가라앉으며, 다시 돌아오지 않는 돌멩이처럼 지나간 시간은 결코 되돌아오지 않는다. 이렇듯 시인은 물수제비의 행보를 통해 자신의 행보, 내지는 유한성을 지닌 인간의 행보에 대해 성찰하고자 한다.
작품에서 특히나 흥미로웠던 부분은, ‘찰나의 경이’에 대한 시인의 긍정적 포착이다. 이 구절은 한 사람이 시인이라는 업에 끌릴 수밖에 없었던, 태생적으로 지닌 시인의 기질을 암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시인은 돌멩이가 물에 닿는 찰나를 ‘축복’으로서 인식하고 있다. 있는 듯 없는 듯한 찰나에 주목한다는 것, 그 순간이 지닌 경이로움을 인식한다는 것, 곧 사라질 미미한 것을 포착한다는 것. 바로 이러한 경향이 사람으로 하여금 시인이 되도록 한다. 다시 말하자면 시인만이, 혹은 적어도 시인‘적’인 경향만이 순간의 중요함을 볼 수 있다. 그는 이 순간에 주목하기에 시인이 되었고, 시인이 되었기에 이 순간의 축복스러움을 분명히 말할 수 있었다. 나아가 우리는 이 순간의 파생물들이야말로 ‘시’에 가깝다는 점 또한 알 수 있다. 이재무 시인의 자아가 이 시의 돌멩이에 비유되고, 그의 과거 모든 나날이 물수제비뜨기에 비유된다면, 돌멩이가 수면과 만나 이루는 찰나들은 그의 ‘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상을 빌어, 혹은 기억에 기대어 ‘성찰’을 시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인은 과거를 돌아보고, 과거의 원리를 ‘돌’과 ‘수면’과 ‘호수’를 통해 정리한다. 그가 살았던 인생을 하나의 명제로서 완성하려고 한다. 과거를 성찰적으로 정의하는 일은 ‘오늘과 미래’의 지표 설정으로 이어진다. 즉 시인이 물수제비의 길과 운명에 대해, 과거의 인생행로와 의미에 대해 정리하는 것은 미래의 새로움을 갈구하기 위한 희망을 전제하고 있다. 시인의 눈앞에는 오래 걸어온 길이 있고, 오래 걸어갈 길이 있다. 그 길 위에서 시인은 길의 의미와 방향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고 있는 중이다.
오르막길이 많은 동네에서 산 적이 있다
오르다 쉬고 쉬었다 다시 올라야 하는
오르막길을 숨 질질 흘리며 오르다 보면
몸에 깊숙이 박힌 증오의 못들이 뽑혀 나왔다
불쑥, 아득히 멀어졌던 과거가 튀어나오고
주인을 알 수 없는 전화번호가 떠오르기도 하였다
노래를 부르면서 오르는,
입안에 고인 욕설 가래처럼 내뱉으며 오르는
오르막길 오르내리며 나는
천천히 걷는 법과 느리게 살 줄 아는 인간이 되었다
- <오르막길> 전문
<오르막길>이라는 작품은 이 시집이 지닌 ‘길의 테마’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 시인은 예전에 살았던 동네의 구체적인 경험을 표면에 내세웠지만, 그 이면에 숨어 있는 것은 지형지물로서의 길이 아니라 역정을 담고 있는 인생길이다. 작품에 의하면 그의 인생길은 일종의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었다. 그것을 반복적으로 오르락내리락하다가, 그는 길의 법리를 터득하게 되었다. 시인은 길 위에서 증오를 털어냈고, 인생의 과정에서도 증오를 털어냈다. 시인은 길 위에서 기억을 반추했고, 인생의 과정에서도 기억을 반추했다. 시인은 길 위에서 노래를 불렀고, 인생의 과정에서도 노래를 불렀다. 이렇게 길 위에서 했던 모든 일들은 인생의 과정에서 했던 모든 일들과 연결된다. 그렇게 시인은 길 위에서 탄생하고 자라고 배웠다. 나아가 길에서 모든 것을 얻고, 길에서 비웠다.
이 시에서 가장 눈여겨 볼 대목은 가장 마지막 행이다. 길에 대한 그의 배움은 길고도 깊어 길의 거친 호흡에도, 인생의 고단한 골목에도 응할 수 있는 인간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 말인즉슨, 어느 새 길이 나인지 내가 길인지 그 구분이 별 상관없는 지점에 이르렀다고도 읽힌다. 걸어온 모든 선택, 행보가 축적되면 오늘의 내가 되는 법이다. 이 시인에게 있어 깊이감은 바로 이런 지점, 즉 인생(길)이 곧 ‘나’이고 내가 곧 시라는 인식에서 나온다. 결국 이재무 시인에게 있어 시, 삶, 과거, 인간은 함께 움직이는 유기적 전체인 것이다.
3. 계속해서 ‘길’은 어딘가로 이어지고
이번 시집은 어머니에 대한 회상, 아버지에 대한 추억, 어린 유년 시절의 회고, 과거의 행보 등등을 다양하게 담고 있다. 오늘날 이재무 시인을 만든 과거의 갖가지 편린들을 검토하고 분석하고 판단하는 보고서를 시로 만든다면 아마 오늘의 시집이 되지 않을까 싶다. 시집 『슬픔은 어깨로 운다』 가 특히 과거의 이야기에 헌정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집이 복고적, 회상적 시집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시인의 길 위에는 ‘오늘의 나’ 내지는 ‘내일의 나’까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인의 내면을 살짝 들여다보자면, 그가 회상의 주제를 인생의 지금 시점에서 꺼내든 것은 아마 내일에 대한 구상이 필요했기 때문이리라. 그는 과거를 보며, 과거를 정리한다. 정리에 비추어 오늘의 궤도를 재설정한다. 그리고 미래로 나아가려고 한다. 이 시집에 실린 대다수의 작품이 과거와 오늘의 길에 바쳐져 있다면, 소수의 작품은 오늘과 미래의 길에 대한 것이다. 시집에 의하면, 미래로 향하는 가장 밝은 길은 아래와 같다.
비 다녀간 아침 산길
차돌처럼 단단해진 공기
새들의 음표는 통통 튀고
살 내린 산의 쇄골 또렷하고
골짝 물은 변성기 소년처럼
소리가 괄괄하다
아직 형상이 남아 있는 발자국 하나
나뭇잎 새로 떠오른 햇살에
젖은 몸 털고 있다
- <아침 산책> 전문
이 시를 보면 청신한 마음이 가뿐하기 그지없다. 주민등록상의 나이와 무관하게, 정신의 어떤 나이를 지녔기에 저렇게 청신한 화면을 시에 담았을까 감탄하게 된다. 시인의 눈에 들어온 갖가지 형상들은 생기 넘치고 활기차며 신선하다. 나아가 이 시 역시 시인이 태어나고 살고 배우는 ‘길’ 위에 놓여졌다는 점 역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 <물자국>이라는 시에 등장하는 ‘물의 자국’처럼 시인의 길 위에는 여러 가지 자국이 피어나 있다. 어느 때에는 회상의 과거, 어느 때에는 회한의 과거이지만, 아프고 쓰린 순간만이 길 위에 기록된 것은 아니다. 이 점에서 시인의 미래와 그가 바라보게 될 시의 미래에 대해 우리는 낙관하게 된다. 그는 청신한 눈을 닦으려고, 묵은 먼지를 털고 다시 태어나려고 과거의 길을 돌아본 것이 아닐까. 지금까지 길 위에서 시인이 늘 해 왔듯이 말이다.
충남 공주 출생.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2007년 《문학사상》 신인문학상 평론 부문 등단.
편저 『신석초 시선집』(지만지, 2013), 연구서 『1930년대 ‘조선적 이미지즘’의 시대』(푸른사상, 2016), 평론집 『제망아가의 사도들』
현재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재직
동아일보 <시가 깃든 삶> 코너 연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