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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예레미야 20:1–18 (참조: 욥기 3:1–16, 고린도전서 9:16–17, 고린도후서 4:8–10, 마태복음 27:39–44)
핵심 명제: 사명자의 실존은 거짓 평안을 외치는 세상과의 타협 없는 충돌 속에서 육체적 박해(마흐페케트)와 고립을 겪으며 때로 침묵하고 포기하려 하나, 영혼의 골수에 갇혀 활활 타오르는 말씀의 거룩한 불길(에쉬 보에레트)은 인간의 나약함과 실존적 탄식(생일의 저주)을 뚫고 하나님께 완전히 사로잡힌 불굴의 증인으로 다시 일어서게 한다.
1. 서론: 차꼬에 채워진 선지자와 밤새 흘린 눈물
예레미야 19장에서 도벳 골짜기에 질그릇 옹기병(바크부크 헤레스)을 내던져 산산조각 내며, 예루살렘의 수리 불가능한 파멸(로-유칼 레-헤라페)을 선포했던 선지자의 사역은 종교 기득권층과의 정면충돌을 불러왔습니다(4강).
선지자가 성전 뜰에 들어서서 이 심판을 다시 공포하자마자, 성전 치안과 질서를 총괄하던 최고 실권자가 격노하여 달려들었습니다:
"임멜의 아들 제사장 바스훌은 여호와의 성전의 총감독이라(파쉬후르 벤-임메르 코헨 웨-후 파키드 나기드 베-베이트 야훼) 그가 예레미야의 이 일 예언함을 들은지라 이에 바스훌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때리고(와야케 파쉬후르 에트 이르메야후 하-나비)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베냐민 위문에 있는 목차꼬에 채웠더니(와이텐 오토 알-하-마흐페케트)" (렘 20:1–2)
‘바스훌(Pashhur)’은 성전의 2인자이자 영적 경찰총수였습니다.
그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정식 재판도 없이 무자비하게 몽둥이로 구타했습니다(와야케).
그리고 성전의 가장 번화한 출입구인 베냐민 문 위층에 있는 ‘마흐페케트(מַהְפֶּכֶת, 차꼬)’에 결박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구금이 아니었습니다.
목과 손과 발을 비정상적인 각도로 비틀어 채움으로써 온몸의 근육과 뼈마디가 찢어지는 고통을 주는 고문 도구였으며,
성전을 오가는 모든 제사장과 백성들에게 침 뱉음과 조롱을 당하도록 전시하는 ‘공개적인 인격 살인’이었습니다.
밤새 차디찬 차꼬에 묶여 피눈물을 흘리던 예레미야는 다음 날 풀려납니다.
그는 바스훌을 향해 하나님의 무서운 개명(改名)을 선언합니다:
"너는 더 이상 바스훌이 아니라 '마고르 미스-사비브(사방의 두려움)'라 하리라!"
그러나 바스훌을 향한 서슬 퍼런 선언 뒤편에서, 예레미야 20장 7–18절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솔직하고 처절하며 충격적인 선지자의 내면 일기, 곧 ‘예레미야의 고백록(The Confessions of Jeremiah)’의 가장 깊은 심연을 드러냅니다:
"주께서 나를 권유하셨으므로(속이셨으므로) 내가 속았사오며...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그리고 급기야 14절에 이르러, 욥의 절규를 뛰어넘는 탄식을 쏟아냅니다:
"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면, 나의 어머니가 나를 낳던 날이 복이 없었더면!"
제5강은 바스훌의 폭력과 사방의 두려움(마고르 미스-사비브), 하나님께 속았다는 사명자의 탄식(파티타니), 침묵하려 해도 뼈마디를 태우며 폭발하는 말씀의 화염(에쉬 보에레트 아추르 베-아츠모타이), 친구들의 음모와 조롱, 자신의 출생일을 저주한 인간적 고뇌의 실체,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과 십자가 위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를 외치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영성을 심층 해부합니다.
2. 본문 주해: 마흐페케트(차꼬)의 수치와 바스훌의 개명(1) 마흐페케트(מַהְפֶּכֶת): 뒤틀림의 고문틀 (렘 20:2)
하파크 (הָפַךְ): '뒤집다, 뒤틀다, 거꾸로 꺾다'.
신체를 기형적으로 웅크리게 만들어 척추와 사지를 비틀어 고정하는 목차꼬(Stocks)입니다.
성전 총감독 바스훌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참선지자의 입을 틀어막고, 그의 몸을 죄수처럼 뒤틀어 성전 문간에 던져둠으로써 공포정치를 극대화했습니다.
(2) 핵심 원어 강해: 마고르 미스-사비브(מָג֥וֹר מִסָּבִֽיב) (렘 20:3–4)
다음 날 아침 바스훌이 예레미야를 차꼬에서 풀어주었을 때, 선지자는 고문 앞에서 기죽지 않고 적장의 심장을 향해 벼락같은 하나님의 법정 선고를 내던집니다:
"다음 날 바스훌이 예레미야를 목차꼬에서 풀어 주매 예레미야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네 이름을 바스훌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마고르밋사빕이라 하시느니라(마고르 미스-사비브)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너로 너와 네 모든 친구에게 두려움이 되게 하리니(힌니 노텐카 레-마고르 레카 우-레-콜-오하베이카) 그들이 그들의 원수들의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네 눈은 그것을 볼 것이며(웨-에네이카 로오트)... 너와 네 집에 사는 모든 사람이 수감되어 바벨론으로 가리니 네가 거기서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렘 20:3–4, 6)
{מָג֥וֹר\ מִסָּבִֽיב}
{“마고르 (מָגוֹר, 극도의 공포 / 전율) + 미스-사비브 (מִסָּבִיב, 사방으로부터)”}
{“사방에 둘러싸인 극심한 공포와 두려움(Terror on every side)!”}
바스훌(Pashhur)의 본래 뜻: '평화, 번영, 자유'를 뜻하는 이집트/셈어계 이름.
바스훌은 백성들에게 "성전이 있으니 우리는 평안하다, 앗수르도 바벨론도 두렵지 않다"고 거짓 평안(샬롬)을 팔아먹던 거짓 종교의 거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강제로 개명(改名)하십니다:
*"너는 평화의 사람이 아니다! 너는 동서남북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피할 곳이 없는 ‘움직이는 공포 그 자체(마고르 미스-사비브)’*가 될 것이다!"
예언대로 바스훌은 바벨론 침략 때 자기 친구들과 가족들이 눈앞에서 칼에 도륙당하는 끔찍한 비극을 목도한 뒤, 쇠사슬에 묶여 바벨론으로 끌려가 그곳에서 비참한 시체로 묻히게 됩니다(6절).
3. 핵심 원어 강해: 파티타니 야훼(פִּתִּיתַ֤נִי יְהוָה֙) — 사명자의 실존적 항의
바스훌을 향한 서슬 퍼런 심판을 선포하고 돌아선 후, 예레미야는 골방으로 들어가 하나님과 단둘이 마주 앉습니다.
그리고 20장 7절에서, 신앙의 껍데기를 완전히 벗어던진 구약 역사상 가장 파격적인 탄식을 토해냅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셨으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파티타니 야훼 와-에파트)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하자크타니 와-투칼)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하이티 리-세호크 콜-하-욤 쿨로 라에그 리)" (렘 20:7)
{פִּתִּיתַ֤נִי\ יְהוָה֙\ וָֽאֶפָּ֔ת}
{חֲזַקְתַּ֖נִי\ וַתּוּכָ֑ל׃}
{"파티타니 야훼, 와-에파트! 하자크타니 와-투칼!"}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꾀어 속이셨으므로(파타) 내가 그 꾐에 속아 넘어갔으며, 주께서 나보다 훨씬 힘이 세시므로 나를 완력으로 제압하여 굴복시키셨나이다!"}
(1) 파타 (פָּתָה 파티타니): 속이다, 유혹하다, 꾀어내다
매우 거칠고 충격적인 단어입니다.
출애굽기 22장 16절에서 약혼하지 않은 처녀를 남자가 '말로 꾀어(유혹하여)' 동침할 때 쓰인 법률적 단어입니다.
예레미야의 피 끓는 항변:
"하나님, 1장에서 나를 모태에서부터 아셨다고, 놋성벽과 쇠기둥으로 지켜주시겠다고 달콤하게 부르시더니, 정작 내게 닥친 현실은 성전 문간에서 매 맞고 차꼬에 채워져 온종일 백성들의 웃음거리와 침 뱉음이 되는 것뿐입니까? 주님이 나를 속이셨나이다!"
이것은 신성모독이 아니라, 감당할 수 없는 사명의 무게 앞에서 연약한 인간이 창조주 아버지 앞에 쏟아놓는 가장 정직하고 처절한 영혼의 발가벗김(Lament)입니다.
(2) 하자크 (חָזַק $\longrightarrow$ 하자크타니): 전능자의 완력에 압도당함
예레미야는 하나님과의 씨름에서 도망치려 발버둥 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한 손길이 너무나 강하여(하자크타니),
인간 예레미야는 그 불가항력적 은혜와 섭리 앞에 두 손을 들고 꺾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4. 파멸과 멸망의 외침과 대중의 조롱 (렘 20:8)
선지자가 받는 고통의 본질은 말씀의 내용 자체에 있었습니다: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므로(하마스 와-쇼드 에크라)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키-하야 데바르-야훼 리 레-헤르파 우-레-켈레사 콜-하-욤)" (렘 20:8)
하마스 와-쇼드 (חָמָס וָשֹׁד): "폭력과 파멸이로다!"
백성들은 "평화다, 축복이다, 부흥이다"라는 달콤한 설교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입술에서는 40년 내내 "너희는 망한다, 성전은 불탄다, 칼과 기근이 온다"는 저주 같은 심판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은 선지자에게 영광이 아니라 ‘온종일 치욕(헤르파)’과 ‘조롱거리(켈레사)’만을 안겨주었습니다.
5. 핵심 원어 강해: 에쉬 보에레트(אֵ֤שׁ בֹּעֶ֙רֶת֙) — 골수에 사무치는 불
견디다 못한 예레미야는 마침내 사역의 은퇴와 침묵을 결심합니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로-에즈케렌누 웨-로-아답베르 오드 비-쉐모)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웨-하야 베-리비 케-에쉬 보에레트) 골수에 사무치니(아추르 베-아츠모타이)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웨-닐에이티 칼켈 웨-로 우칼)" (렘 20:9)
{וְהָיָ֨ה\ בְלִבִּ֜י\ כְּאֵ֤שׁ\ בֹּעֶ֙רֶת֙\ עָצֻ֣ר\ בְּעַצְמֹתָ֑י}
{וְנִלְאֵ֥יתִי\ כַּֽלְכֵ֖ל\ וְלֹ֥א\ אוּכָֽל׃}
{"웨-하야 베-리비 케-에쉬 보에레트, 아추르 베-아츠모타이!}
{웨-닐에이티 칼켈, 웨-로 우칼!"}
{"그러나 내가 '다시는 그분을 기억하지도 않고 그분의 이름으로 외치지도 않으리라!' 결심하면, 내 심장(베-리비) 한복판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케-에쉬 보에레트)이 일어나 내 뼈마디 골수 속에 갇혀 요동치니, 내가 참아 가두어 두려다 지쳐 쓰러지겠고 도무지 견뎌낼 수가 없나이다!"}
사명 포기의 결단과 말씀의 폭발 메커니즘
[ 선지자의 인간적 결단 ] ──> 로-에즈케렌누 (침묵 선언 / "다시는 여호와의 이름을 말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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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혼의 지성소에서 일어난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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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쉬 보에레트 (אֵשׁ בֹּעֶרֶת) ] ──> 말씀이 활활 타오르는 불덩이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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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추르 베-아츠모타이 (עָצֻר בְּעַצְמֹתָי) ] ─> 골수(Bone marrow) 깊숙한 곳에 갇혀 뼈마디를 녹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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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지자의 한계 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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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닐에이티 칼켈 (נִלְאֵיתִי כַּלְכֵל) ] ──> 억누르려다 기진맥진하여 포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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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 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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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로 우칼 (וְלֹא אוּכָל) ] ─────────> "도저히 침묵할 수 없다!" 다시 광장으로 뛰어나감
(1) 케-에쉬 보에레트 (כְּאֵשׁ בֹּעֶרֶת): 타오르는 불
바아르 (בָּעַר): 활활 타오르다, 맹렬히 집어삼키다.
하나님의 말씀은 머리로 외운 교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선지자의 내장과 심장을 태워버리는 '살아있는 화염'이었습니다.
(2) 아추르 베-아츠모타이 (עָצֻר בְּעַצְמֹתָי): 골수에 갇혀 뼈를 녹임
아차르 (עָצַר): 가두다, 억류하다, 댐으로 물을 막다.
에쳄 (עֶצֶם $\longrightarrow$ 아츠모타이): 뼈, 뼛속의 골수(Marrow).
입술을 닫아 말을 하지 않으려 억누르면,
그 억눌린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의 뼛속 깊은 골수(Bone marrow) 속으로 파고들어가
뼈마디 전체를 시뻘겋게 달구며 폭발할 듯 끓어올랐습니다.
(3) 닐에이티 칼켈 웨-로 우칼 (נִלְאֵיתִי כַּלְכֵל וְלֹא אוּכָל): 견딜 수 없도다
라아 (לָאָה $\longrightarrow$ 닐에이티): 피곤하여 탈진하다, 지치다.
쿨 (כּוּל $\longrightarrow$ 칼켈): 품다, 억제하다, 억누르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9장 16절에서 고백했던 영적 고뇌의 원형입니다:"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예레미야는 도망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불이 그의 온 영혼을 쥐어짜고 있었기에,
그는 다시 피 묻은 광장으로 뛰어나가 외칠 수밖에 없었던 ‘말씀의 포로’였습니다.
6. 친구들의 배신과 음모: 실족하기를 기다리는 자들 (렘 20:10)
광장으로 나간 선지자를 맞이한 것은 사방의 웅성거림과 배신이었습니다:
"나는 무리의 비방과 사방이 두려워함을 들었나이다(샤마티 디브바트 랍빔 마고르 미스-사비브) 그들이 이르기를 고소하라 우리도 고소하리라 하오며(학기두 웨-낙기덴누) 내 친한 벗도 다 내가 실족하기를 기다리며(콜 에노쉬 쉘로미 쇼메레이 찰이) 그가 혹시 유혹을 받게 되면 우리가 그를 이기어 우리 원수를 갚자 하나이다" (렘 20:10)
에노쉬 쉘로미 (אַנְשֵׁי שְׁלוֹמִי):
"내 평강(샬롬)의 사람들", 곧 가장 가까웠던 친구들과 친족들(시 41:9의 다윗의 고백).
쇼메레이 찰이 (שֹׁמְרֵי צַלְעִי):
'첼라(절뚝거리다, 넘어지다)'에서 유래하여, "내가 발을 헛디뎌 넘어지기만을 매의 눈으로 숨죽여 감시하고 있는 자들".
어제의 동역자들과 친구들이, 예레미야의 말실수 하나를 꼬투리 잡아 사형장으로 끌고 가려고 밀고자(Informer)가 되어 그를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선지자는 온 세상 한복판에서 완벽한 외톨이였습니다.
7. 반전의 찬송: 여호와는 강한 용사이시니 (렘 20:11–13)
그러나 11절에 이르면, 벼랑 끝에서 믿음의 거대한 반전이 번개처럼 솟구쳐 오릅니다:
"그러하오나 여호와는 권능의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 하시므로(와-야훼 오티 케-깁보르 아리츠) 나를 박해하는 자들이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며... 가난한 자의 생명을 악인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히칠 에트-네페쉬 에브욘 미-야드 메레임)" (렘 20:11, 13)
깁보르 아리츠 (גִּבּוֹר עָרִיץ):
대적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맹렬하고 전능한 용사(Mighty warrior)'.
친구들은 다 등을 돌렸으나,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의 곁에 무장한 거대한 용사로 버티고 서 계심을 영안으로 본 것입니다!
13절에서 그는 외칩니다: "여호와께 노래하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쉬루 라-야훼 할렐루 에트-야훼)!"
이것으로 고백록이 아름답게 끝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8. 충격적인 심연: 아루르 하-욤(אָר֥וּר הַיּ֛וֹם) — 생일의 저주 (렘 20:14–18)
그런데 성경 기자는 13절의 찬송 직후, 인간의 모든 종교적 미화를 산산조각 내는
예레미야의 가장 칠흑 같은 절망의 밑바닥을 가감 없이 이어 붙입니다:
"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면(아루르 하-욤 아쉐르 율라드티 보) 나의 어머니가 나를 낳던 날이 복이 없었더면...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나와서 고생과 슬픔을 보며(람마 제 메-레헴 야차티 라-로오트 아말 와-야곤) 나의 날을 부끄러움으로 보내는고(와이크루 베-보쉐트 야마이) 하니라" (렘 20:14, 18)
{אָר֥וּר\ הַיּ֛וֹם\ אֲשֶׁ֥ר\ יֻלַּ֖דְתִּי\ בּ֑וֹ}
{י֥וֹם\ אֲשֶׁר־יְלָדַ֥תְנִי\ אִמִּ֖י\ אַל־יְהִ֥י\ בָרֽוּךְ׃}
{"아루르 하-욤 아쉐르 율라드티 보! 욤 아쉐르-옐라다트니 임미, 알-예히 바루크!"}
{"내가 태어난 그 날이 차라리 영원한 저주를 받았더라면(아루르)! 내 어머니가 나를 낳았던 바로 그 날이 결단코 축복을 받지 못하였더라면!"}
욥의 탄식과 예레미야의 저주의 비교
[ 욥기 3장: 개인적 고난 ] ──────> 육체의 질병과 재산·자녀 상실의 고통 속에서 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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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레미야 20장: 중보자의 고난 ] ───> 1.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당하는 공적 박해
2. 조국의 멸망을 눈앞에 두고 느끼는 중보적 피눈물
3. "차라리 모태가 내 무덤이 되었더라면(17절)!"
메-레헴 야차티 (מֵרֶחֶם יָצָאתִי):
1장 5절에서 하나님이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베-테렘 테체 메-레헴) 성별하였노라" 하셨던 그 모태를 소환합니다.
17절의 소름 끼치는 탄원:"그가 나를 태에서 죽이지 아니하셨으며 나의 어머니가 내 무덤이 되지 않게 하셨으며 그의 배가 영구히 부른 채로 있지 않게 하셨던 까닭이로다(와-테히-리 임미 키브리)"
"차라리 내가 어머니 자궁 속에서 사산(死産)되어, 어머니의 복중이 내 영원한 무덤(키브리)이 되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왜 나를 이 빛 가운데로 끄집어내어 조국의 멸망과 이 백성의 능욕을 두 눈으로 보게 만드시는가!"
신학적 통찰:
이것은 자살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저주한 것도 아닙니다(그는 하나님을 저주하지 않고 오직 '자신이 태어난 날'과 '출생 소식을 전한 사내'만을 저주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공의의 진노와, 멸망해 가는 자기 백성을 향한 찢어지는 긍휼 사이에서 영혼이 두 조각으로 찢겨나간 중보자만이 토해낼 수 있는 '거룩한 절망의 극치'였습니다.
9. 구속사적 절정: 겟세마네와 골고다에서 버림받으신 예수 그리스도
존 칼빈과 찰스 스펄전, 알렉산더 화이트와 마틴 로이드 존스는 예레미야 20장의 차꼬의 수치와 생일을 저주한 깊은 어둠을, 겟세마네 동산에서 핏방울을 쏟으시며 고뇌하시고 십자가 위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를 부르짖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고난의 가장 처절한 모형으로 해설합니다.
마태복음 27장 39–44절을 펼쳐보십시오: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예레미야의 고난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조
| 구분 | 선지자 예레미야 (렘 20장) |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 (복음서) |
| 종교 지도자의 폭력 | 성전 총감독 바스훌에게 매를 맞음 (와야케) | 대제사장 가야바의 하속들에게 주먹과 뺨을 맞으심 (마 26:67) |
| 수치와 결박 | 베냐민 문 목차꼬(마흐페케트)에 결박당함 | 빌라도의 군병들에게 채찍질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심 |
| 친구들의 배신 | 가장 친한 벗(에노쉬 쉘로미)들이 등을 돌림 | 가룟 유다가 은 30에 팔고 모든 제자가 도망침 (마 26:56) |
| 침묵할 수 없는 불 | 말씀이 골수에 사무치는 불(에쉬 보에레트)이 됨 | "내가 세상에 불을 던지러 왔노라" (눅 12:49) |
| 실존적 탄식 | "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면" (탄식) |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 27:46) |
| 사명의 완수 | 조국의 멸망을 보며 눈물 흘림 |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다 이루었다" 승리하심 (요 19:30) |
예레미야는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저주받아야 할 날에 태어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친히 십자가 위에서 ‘인류의 모든 저주 그 자체(갈 3:13)’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바스훌보다 더 잔인한 대제사장들과 군병들의 조롱을 받으셨습니다.
친구들은 다 도망쳤고, 수제자 베드로는 세 번이나 저주하며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성부 하나님마저 얼굴을 돌리시는 지옥의 외독(Solitude) 속에서 절규하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예레미야의 골수에는 말씀의 불이 타올랐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에는 온 인류를 향한 성부 하나님의 ‘대속의 사랑의 불’이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그 수치와 버림받음의 차꼬를 끝까지 참아내셨기에,
오늘 우리는 태어난 날을 저주하며 죽어갈 자리가 아니라,
"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것이 되었도다!"
영원한 부활의 생일을 찬양하는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10. 목회적 적용과 묵상(1) 사역의 고난과 배신 앞에서 '솔직한 탄식(Lament)'을 하나님께 쏟아놓으라
주의 일을 하다가 배신을 당하고, 믿었던 교우들이 등을 돌리며, 세상의 조롱거리가 될 때 어떻게 하십니까?
거룩한 척 감정을 억누르며 영적 우울증에 걸려 시들어가지 마십시오.
예레미야의 기도를 배우십시오!
선지자는 자신의 억울함, 분노, 슬픔, 심지어 "하나님 나를 속이셨나이까"라는 바닥의 절규까지 가감 없이 하나님 보좌 앞에 쏟아부었습니다.
시편의 탄원시와 예레미야의 고백록은 거룩한 기도의 문법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픈 감정과 피눈물을 다 받아내실 만큼 광대하신 아버지이십니다.
사람에게 하소연하지 말고, 골방에 들어가 당신의 찢어진 가슴을 정직하게 토해내십시오.
(2) 침묵할 수 없는 '골수에 사무치는 불(에쉬 보에레트)'을 사모하라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 쉽게 복음을 부끄러워하고, 세상의 불이익 앞에서 입을 닫아버립니다.
조금만 피곤해도 "나 이제 교회 봉사 안 해, 전도 안 해"라며 주저앉지 않습니까?
예레미야의 심장에 타올랐던 그 거룩한 화염을 구하십시오:
"주여, 내 심령 속에 성령의 불을 다시 지펴 주옵소서! 골수에 사무치는 말씀의 불을 부으사, 내가 입을 다물려 해도 도무지 참을 수 없어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거룩한 말씀의 포로가 되게 하옵소서!"
불붙은 사명자 한 사람이 타락한 세상을 태우는 거룩한 불씨가 됩니다.
(3) 세상이 주는 거짓 평안(바스훌의 샬롬)에 속지 말고 십자가의 좁은 길을 가라
세상은 끊임없이 바스훌처럼 속삭입니다: "다 잘될 것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해라, 고난 없는 영광을 누려라."
그것은 영혼을 지옥의 마취제로 잠재우는 사탄의 거짓말입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고, 회개 없는 구원은 없습니다.
세상의 거짓 평안에 안주하지 마십시오.
진리를 외치다가 매를 맞고 차꼬에 채워지는 수치를 겪을지라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권능의 용사(깁보르 아리츠)'를 신뢰하십시오.
세상이 당신을 조롱할지라도,
마지막 날 하나님께서 당신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영원한 영광의 면류관을 씌워주실 것입니다.
11. 결론: 나무 멍에와 쇠 멍에의 피비린내 나는 격돌을 향하여
예레미야 20장의 막이 내리며,
선지자는 성전의 차꼬에서 풀려났고,
골방에서 자신의 태어난 날을 저주하는 영혼의 밑바닥을 통과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사명의 자리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골수에 사무치는 말씀의 불길이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웠기 때문입니다.
그는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다시 하나님의 거룩한 전장 한복판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갑니다.
그리고 이제 예레미야 27장과 28장의 거대한 영적 전면전의 문이 열립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줄과 멍에를 만들어 자신의 목에 메라(아세 레카 모세로트 우-모토트) 명하셨습니다.
선지자는 소처럼 목에 무거운 나무 멍에를 멘 채,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와 예루살렘의 귀족들 앞에 서서 외쳤습니다:
"바벨론 왕의 멍에를 목에 메고 그를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리라!"
그러나 바로 그때,
궁중 예언자이자 백성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던 거짓 선지자 ‘하나냐(Hananiah)’가
성전 한복판에서 예레미야를 가로막아 섰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태 안에 바벨론 왕의 멍에를 꺾어버리고, 빼앗긴 성전 기명과 포로들을 다 다시 돌아오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온 백성이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리고 하나냐는 예레미야의 목에서 ‘나무 멍에’를 빼앗아
성전 돌바닥에 내리쳐 산산조각 부러뜨렸습니다!
거짓 평화와 참된 심판의 정면충돌!
이에 하나님께서 침묵을 찢으시며
하나냐의 이마를 향해 내리치신 무시무시한 사형선고:
"네가 나무 멍에들을 꺾었으나 그 대신 쇠 멍에들을 만들었느니라! 너는 금년에 죽으리라!"
제6강: 나무 멍에와 쇠 멍에 — 거짓 선지자 하나냐와의 격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