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면 죽으리이다.
성경본문 : 에스더 4: 13-17
13.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15. 에스더가 명하여 모르드개에게 회답하되
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17.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의 명한대로 다 행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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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84주년을 맞는 3.1절 기념주일입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이 시간 메시지의 주제입니다. 믿음으로 애국하고, 또 애도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돌이켜볼 때 우리네 역사 속에는 나라를 잃은 슬픔이 있습니다. 우리들만이 지닌 가슴 아픈 애사(哀史)이기도 합니다. 종살이하고 거지 생활했던 한 맺힌 눈물도 있습니다. 언어도, 문화도, 풍습도, 양식도, 짓밟힌 비분(悲憤)도 있습니다. 애국가도 못 불렀고, 태극기도 흔들지 못한 민족의 애가도 있습니다. 우리 나라 국화는 무궁화입니다. 그런데 일본사람들이 우리에게 무궁화를 눈애피꽃이라고 가르치고, 거기다가 침을 뱉도록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함석헌옹은 그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쓰다가 말고 붓을 놓고 눈물을 닦지 아니하면 안돼는 역사, 눈물을 닦으면서도 쓰지 아니하면 안되는 역사, 셰익스피어를 못 읽고, 괴테를 몰라도 이 역사는 읽어야 한다, 이 역사는 알아야 한다" 고 했습니다.
예레미야의 슬픈 애가는 우리의 노래이기도 합니다.
"슬프다 이 성이여 본래는 거민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히 앉았는고 ... 밤새도록 애곡하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 중에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도 다 배반하여 원수가 되었도다"(애 1:1-2).
3월이 되면 김소월의 초혼의 첫 구절을 외우는 성도도 있습니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한 맺힌 슬픔의 노래이기도 합니다.
1919년 3월 1일, 당시의 민족 없는 나라가 어디에 있었으며, 나라 없는 민족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때 일제탄압 아래에서 종살이하던 우리 모두가 총칼 앞에 사무치게 외쳤던 말이 무엇입니까?
오늘 설교 제목 그대로입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생각하면 3.1운동이 무엇입니까? '죽으면 죽으리이다'운동이 아닙니까?
오늘 우리 모두는 에스더서의 교훈을 묵상하면서 작은 애국자들이 되었으면 싶어집니다. 에스더서의 교훈이 무엇입니까? 세 가지입니다.
첫째, 하만의 계략입니다.
"저희가 모르드개의 민족을 하만에게 고한 고로 하만이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이 경하다 하고 아하수에로의 온 나라에 있는 유다인 곧 모르드개의 민족을 다 멸하고자 하더라"(에3:6).
아하수에로왕 밑에 하만이라는 악한 신하가 있었습니다. 생각하면 세상 모임마다 하만은 있습니다. 모르드개를 넘어뜨리기 위해서 모함했고, 또 유다인들을 죽이기 위하여 계략 했습니다.
하만은 그의 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 아하수에로왕에게 뇌물을 약속하기도 하고, 그리하더니 결국 왕의 조서가 전국에 하달되었습니다.
조서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유다인을 진멸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만이 누구입니까?
"유다인의 대적"(에 3:10)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단의 화신입니다.
그러니까 지금도 도처마다 하만은 있습니다.
하만은 아하수에로왕의 비가 된 에스더를 시기하고, 또 모르드개를 미워하더니 유다인 학살의 음모를 계략한 것입니다. 결국 피비린내 나는 포고문이 작성되고, 유다는 민족적으로 흔들리는 연약한 갈대 형편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하만은 득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 는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
이 땅에 살고 있고, 때문에 하만의 계략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 속에도 환란은 있고, 고통은 있고, 눈물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그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하만과 모르드개의 결말이 무엇입니까? 우리 모두는 믿음으로 역사의 거울을 보듯이 지켜보아야 할 것입니다.
둘째, 모르드개의 충언입니다.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에 4:14).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충언했습니다. "만일 잠잠하면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물론 삼촌과 조카관계이지만, 왕후에게 이렇게 충언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모르드개의 믿음이 무엇입니까?
진리 앞에서 담대케 하는 믿음이요, 그 믿음은 어려운 일을 단행하는 믿음이기도 했습니다.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를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또한 적용해야 할 것입니다.
"네가 성공한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이렇게도 물을 수 있습니다.
"네가 부자된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네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네가 건강한 것이, 네가 진급한 것이, 네가 재물을 얻은 것이, 네가 집사되고, 네가 권사되고, 네가 장로된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이렇게도 물을 수 있을 것입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를 딸처럼 양육했습니다. 결국 에스더를 양육함으로 아하수에로왕을 기쁘게 했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교회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를 키워야 합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군을 양육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이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셋째, 에스더의 기도입니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에 4:16).
에스더의 기도는 '죽으면 죽으리이다" 기도입니다.
일사각오의 기도입니다. 목숨을 내놓고 드린 순교의 기도이기도 합니다.
에스더는 삼일 동안 금식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몇 사람만 모아서 기도를 드린 것 아닙니다. 민족적인 기도를 한 것입니다.
어려운 때, 위기의 때, 국가적인 환난을 만났을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땅히 해야 될 것이 무엇입니까?
기도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센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죽음을 겁내지 않고 일사각오의 기도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무슨 일이나 죽을 각오를 하면 못해 낼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죽는다고 다 순교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만의 손을 들어주셨던가요? 모르드개의 손을 들어주셨던가요? 역사의 거울 앞에서 지난날을 훑어보며 미래를 계획하려고 할 때에, 우리는 뒤안길을 훑어볼 때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의 거울 앞에서 묻고 배워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 아닙니까? 악은 징계하고, 선은 축복하신 분이십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약 5:16). 하나님께서 모르드개의 손을 번쩍 들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더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유다 민족의 기도를 들으사 승리의 깃발 꽂게 하셨습니다. 하만이 모르드개를 달고자 한 나무에 도리어 하만을 달게 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3.1절의 함성을 들어주시고, 8.15 해방도 주셨습니다.
에스더는 왕비로서 그 지위가 더 높아졌고, 모르드개는 그 진실성이 인정되어 총리대신 되었습니다.
기도하는 백성은 결코 망하지 아니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넘어졌다가도 다시 일어납니다.
3.1절 기념예배로 드리면서 우리의 모든 마음 가운데에 새로운 다짐이 있었으면 싶어집니다.
물론 우리 모두는 다 작은 애국자들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뜻깊은 날에 "하나님이여 이 백성을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언제까지 두 동강이 난 이 백성을 그대로 두시려하나이까", 마침 간절히 기도할 때를 만난 줄 압니다. 기도하는 우리 모두이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미년 삼월 일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 독립 만세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
이 날은 우리의 의요 생명이요 교훈이다
한강은 다시 흐르고 백두산 높았다
선열하이 나라를 보소서
동포야 이 날을 길이 빛내자 ♬
우리 모두를 감격케 하는 노래인 줄로 압니다.
파고다 공원에서 민족 대표 33인의 이름으로 독립 선언문이 낭독된 것처럼 뜻 깊은 3.1절 기념예배를 드리면 우리 함께 선언하고 싶은 것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새 정부입니다.
얼마 전에 새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군부정부도 종식되고, 문민정부도 사라지고, 김대중정부도 막을 내렸습니다. 새롭게, 개혁정부가 출범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새 정부가 3.1운동 정신으로 끊을 것을 끊어버리고 정말 개혁하는 정부가 되기를 위하여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새 정치입니다.
이 땅의 위정자들이여, 각성하라. 그래서 3.1운동정신으로 새 정치운동을 펼쳐지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노무현 새 대통령의 제 일성처럼 부정부패를 단호히 척결하는 새 정치가 구현되어야 하는데 정말 기대를 걸어도 좋을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라가 부강해야 되겠습니다. 경제적으로 성숙해져야 되겠습니다. 그리하려하면 우선 준법 정신이 실현되고, 협동정신이 국민정신이 되며, 순직정신이 위정자정신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진통을 앓아야 합니다. 진통을 앓은 다음에는 새벽이 열리지 않습니까? 옥동자를 낳으려면 엄마가 피를 쏟아야 됩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습니다. 가시 없는 장미도 없습니다. 눈물을 흘려야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라 하지 않았습니까? 이러한 정신으로 새 정치가 이 땅에서 알현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야 이 나라에 소망이 있고, 모든 민중에게 살맛이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셋째, 새사람입니다.
온 국민이 3.1운동정신으로 새사람 운동도 펼쳐야 합니다. 이것이 기독교 운동이 아닙니까? 사실 정부가, 정치가 부패한 것아닙니다. 사람이 문제가 아닙니까? 사람이 때가 묻으면 정부가 때가 묻고, 사람이 부패하면 정치가 부패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달라져야 합니다. 내가 달라져야 하고, 네가 달라져야 합니다. 사람이 문제입니다. 사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2-24).
사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사고방식이 새로워지고, 살아가는 방법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여기 새로운 길이 열릴 것입니다. 새로운 소망이 싹틀 것입니다. 예배가 무엇입니까? 옛사람이 변하여 새사람이 되는 경건입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주님의 능력으로 이 모습이 달라지는 그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의 제목이 무엇입니까?
"3.1절 기념예배를 드리는 이 시간, 우리 함께 변모하는 한국 되게 하소서" 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개혁되는 코리아, 축복 받고, 세계 정상에 발돋움하는 아시아의 등불 되기를 소원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3.1절 기념예배를 드립니다.
이 정신을 가슴에 안아야 할 것입니다.
두 주먹을 불끈 주고 새 출발해야 될 것입니다.
바로 이 3.1절 정신으로 교회를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