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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벤에셀 전투
삼상 4:1-22
요약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대패한 민족 해방 전쟁으로 이 전투에서 엘리의 가문은 피 묻은 갓난 아이 하나 남기고 완전히 파멸 당한다. 우리는 여기서 죄인을 구속하시려는 초림의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된다.
1. 예수님은 예언하신 대로 세상에 오셨다.
1절 "블레셋 사람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 치고"
☞ 에벤에셀은 '도움의 돌'이라는 뜻으로 그리스도의 상징이요(롬9:33), 에벤에셀이 위치한 미스바와 센 사이의 이 두 곳은 전망대로서 율법과 선지자가 예언한 그 메시야가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게 한다.
2. 예수님은 구원을 이루시려고 원수들에게 죽으셔야 했다.
2절 "이스라엘을 대하여 항오를 ‥ 죽임을 당한 군사가 사천명 가량이라"
☞ 블레셋은 사단의 상징이며, 아벡에 진쳤으니 아벡은 그 뜻이 '하천바닥' 혹은 '요새지'로 세속사상을 요새지로 삼고, 항오란 블레셋의 강력한 전투대형으로(눅23:12, 시2:1-3) 자기 택한 백성들을 위해 고난을 받으셨다.
3. 회개하지 않는 외식으로는 구원받지 못한다.
3절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 아무리 법궤일지라도 부적신앙을 가지면 법궤는 소용이 없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구원을 받지 못함은 회개없는 외식 뿐이었기 때문이다.
4. 고난을 통하여 성도를 온전케 하십니다.
(5-11절)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대동단결하여 2차 공격함인데 이는 지상의 교회에 대한 박해를 뜻하며 홉니와 비느하스가 죽게 됨은 시련을 통하여 도리어 옛사람을 죽이는데 일조함을 보여준다(약1:2-4).
5. 초림을 통해 율법을 완성 및 종식시키셨다.
(12-18절)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자빠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 엘리가 베냐민 사람이 전하는 법궤 빼앗긴 소식을 듣고 목이 부러져 죽었듯 복음의 새 소식으로 율법시대가 종식됨을 보여준다(갈3:19).
6. 율법의 목적은 사람들을 아이로 만드는데 있다.
(19-22절)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였으니"
☞ 엘리의 둘째 며느리가 비보를 듣고 해산하다 이가봇을 외치며 핏덩이 아이 하나 남기고 죽는데 이는 어린이처럼 그리스도의 의를 의지하지 않고는 불가능함을 보여주는 율법의 목적을 보여준다.
강해
이 시간에는 "에벤에셀 전투"라는 제목입니다. 이 에벤에셀 전투는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전투했던 민족해방전쟁의 이름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 전투에서 대패하고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엘리의 가문은 피 묻은 갓난 아이 하나 남기고 완전히 파멸 당하고 맙니다. 그러나 어떤 비극도 신약의 눈으로 보면 다 복음이 됩니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일까요?
1. 예수님은 예언하신 대로 세상에 오셨음을 보여줍니다.
1절부터 보십시다.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은 아벡에 진 쳤더니"
여기 이스라엘이 에벤에셀 곁에 진을 쳤는데 에벤에셀은 '도움의 돌'이라는 뜻으로 후일에 사무엘이 돌비를 세운 곳입니다. 성경에 돌은 대부분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큰 반석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다윗이 던진 물매돌에서 죄인을 쳐서 죽이는 험한 돌까지도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롬9:33에서 "기록된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면서 예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에벤에셀은 그 지리적 위치가 미스바와 센 사이였습니다. 미스바는 '전망대'라는 뜻으로 지형이 아주 높은 곳입니다. 이 곳에 올라가면 먼 곳이 다 보입니다. 또 센도 '치아' '뾰쪽한 지점'이라는 뜻처럼 높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전략적으로 적의 동태를 살피고 대비하기에는 아주 좋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이 곳에다 진을 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지점들은 영적으로 율법과 선지자를 뜻합니다. 이 둘은 먼 미래를 내다 보면서 예언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율법이 예언했던 그 분이요, 또 선지자가 오리라고 예언했던 바로 그 분이셨습니다. 그 사실을 본문이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원수들에게 죽으셔야 했습니다.
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스라엘을 대하여 항오를 벌이니라 그 둘이 싸우다가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패하여 그들에게 전쟁에서 죽임을 당한 군사가 사천명 가량이라"
여기서 블레셋은 전에 제가 삼손 강해를 하면서 사단을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블레셋은 본래 대륙에서 살다가 추방되어 지중해의 그레데와 에게 해의 섬에서 살다가 가나안 남서부 해변으로 이주해 온 해양민족으로, 이처럼 사단은 본래 천사였는데 범죄하여 하나님께 쫓겨나 이 지구를 침범한 침입자라 했습니다. 혹은 블레셋의 가장술이나 호전성이나 철기문화의 발달과 그들의 영향으로 이스라엘 왕국이 태동함과 그들의 최후를 보면 한치도 틀림이 없는 사단의 상징입니다.
더구나 본문을 보면 그들은 아벡에 진을 쳤습니다. 아벡은 사론 평야의 아르곤 강 근원지로서 그 뜻이 '하천바닥' 혹은 '요새지'입니다. 즉 물있는 곳을 요새로 삼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단은 물 없는 곳에서는 쉴 곳을 찾지 못해서 돌아다닙니다. 그런데 여기의 물은 나쁜 의미의 물입니다. 물은 좋은 의미로는 말씀 혹은 성령인데 나쁜 의미로는 세속사상들을 가리킵니다. 이 세속사상이 바로 악령이 사는 집입니다. 그래서 귀신이 이미 집을 지어버린 사람은 고치기 힘이 듭니다. 왜냐하면 세속사상이 그 사람의 인격과 사상과 습관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고치기 전에는 나가도 다시 들어와 버립니다. 그래서 사단은 이 세상에 침입하여 아담에게서 왕권까지 빼앗아 놓고 또한 이 세상을 온통 자기의 문화로 퍼뜨려 놓아 세상을 완전히 그들의 탄탄한 요세지요 거점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블레셋이 아벡에 진쳤다는 영적인 의미인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대하여 항오를 벌이더라고 했습니다. 이 항오를 벌였다는 것은 블레셋의 강력한 전투대형을 뜻합니다. 로마군대가 세계를 2,000년이나 지배하고 끝 없이 승리한 것도 바로 이 단결력에 있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블레셋은 각종 철기나 강한 방패를 앞에 두고 어떤 가운데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강력한 전투대형을 유지하여 공격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싸워보기도 전에 밀려서 4,000명이나 죽고 대패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의 세상의 형편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얼마나 단결했습니까? 헤롯과 빌라도가 본래 원수였으나 친구가 되었고(눅23:12), 싸움을 일삼던 당파들은 예수를 죽이자는 데는 일심동체가 되었으며, 백성들까지 예수를 죽이라고 외쳐대니 빌라도가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예수를 그들에게 내어주고 말았습니다. 바로 그 날 그 때처럼 유대인과 이방인과 관리와 백성들과 당파들이 보여준 강한 단결력은 없었습니다. 여기에 대해 시2:1-3에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버리자 하도다"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첫 전투에서 죽은 수효가 4,000명이라는 데도 뜻이 있습니다. 여기 4는 사방 즉 전세계를 가리키는 수요, 1,000은 셀수 없이 많은 그러나 일정한 충만 수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롬11:25에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장로교의 제한속죄설이 여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믿을 온 세계의 모든 택한 백성들을 위해서 고난을 받으셨다는 의미입니다.
3. 회개하지 않는 외식으로는 구원받지 못합니다.
3절에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했습니다.
아무리 법궤일지라도 부적신앙을 가지면 법궤는 구원을 줄 수 없습니다. 법궤를 본문에 언약궤라고 했는데 이곳에는 언약의 말씀이 보관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언약의 형태는 이렇게 하면 이렇게 하리라는 조건부적인 형태였습니다. 예를 들면 신28:1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하신 말씀이라든지 반대로 15-16절에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한 말씀이 그것입니다.
즉 참된 신앙만이 구원을 가져다 줍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구원을 받지 못함은 회개없는 외식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메시야를 믿었고 정작 메시야이신 예수를 배척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메시야관의 오해도 있으나 중요한 것은 그들의 믿음이 참된 것이 아니라 외식적인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무식하지만 진실로 주의 강림을 기다리던 목자들은 예수를 만났고 먼 나라의 동방박사들 마저 별을 보고 찾아와 경배를 드렸습니다.
4. 예수님 외에 율법으로는 구원받지 못함을 보여줍니다.
3-4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백성이 진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로 오늘 블레셋 사람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이에 백성이 실로에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 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 있었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블레셋에게 대패를 당하고 이 번에는 하나님의 법궤까지 동원하여 전쟁하려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법궤일지라도 이런 부적신앙을 가지면 법궤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 결과 법궤를 빼앗기고 맙니다. 여기 구원해 주지 않은 법궤에서 우리는 율법으로는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갈2:16에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5. 예수님께서는 고난을 통하여 성도를 온전케 하십니다.
5-11절의 내용인데 여기 말씀은 법궤가 진에 들어왔다는 소문을 들은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대동단결하여 이스라엘을 쳐부수었다는 내용입니다. 이것이 제 2차 공격인데 이 공격으로 이스라엘의 3만 대군이 죽고 엘리의 두 아들도 함께 죽습니다.
이처럼 사단의 제 2차 공격이 언제입니까? 사단이 겁을 먹고 두려워 한 때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승천하셔서 주와 그리스도 즉 만왕의 왕권을 획득하실 때부터였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사건이 사단의 제 1차 공격이라면 제 2차 공격은 그리스도 승천 이 후 지상의 교회와 성도들에 대한 박해를 뜻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공격으로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도들은 사단의 시련을 통하여 옛사람이 죽고 영에 속한 사람으로 변화받는 결과가 왔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귀한 진리입니까? 그러니까 사단이 아무리 날뛰어도 하나님보다는 수가 아래이기 때문에 결국은 하나님의 일을 협조하는 결과 밖에는 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첫 공격으로는 예수님을 죽여 인류 구원사역을 이루어 놓더니 제 2차 공격으로 결국은 성도를 온전케 하고 맙니다.
마치 애굽의 이스라엘처럼 시련이 있을수록 성도들은 더욱 회개하고 기도하므로 성령으로 변화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약1:2-4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한 것입니다. 그런데 2차 공격으로 3만이 죽었습니다. 여기 3만은 온전수 3에다, 무한 충만수 만이니까 온전히 죽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이와 같이 이제 우리 안의 홉니와 비느하스도 온전히 죽어지기를 축원합니다.
6. 예수님께서 율법의 완성과 종식을 위하여 오셨습니다.
12-18절까지 내용인데, 본문은 엘리 제사장이 비극적으로 죽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엘리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엘리는 소식을 듣고 죽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는 베냐민 사람이 전한 소식을 듣고 죽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소식 중에서 법궤를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고 죽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냥 죽지 않고 목이 부러져서 죽습니다.
여기 엘리는 율법의 그림자로서, 그가 법궤를 빼앗긴 소식에 죽었듯 이제는 복음의 새 소식으로 말미암아 율법시대가 종식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3:19에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 특히 또 베냐민 사람은 구약 12지파의 마지막 지파로 마지막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그가 광야 37km를 달려왔으니 죽기 일보 직전의 상태일 뿐 아니라, 소식을 듣던 엘리 역시 더 살 수 없는 나이였습니다. 그리고 엘리의 목이 부러져 죽듯 율법시대는 세례요한의 목베임으로 완전한 종결을 이룹니다.
그래서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시자 마자 우리는 동역할 줄 알았는데 즉시 요한이 잡히고 곧 목베임 받아 죽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다 율법의 옛시대는 끝나고 에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새 시대가 왔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복음의 새시대가 오겠습니까?
7. 율법의 목적은 사람들을 아이로 만드는데 있습니다.
21절에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였으니" 했습니다.
19-22절의 내용인데 이 말씀은 이제 엘리의 둘째 며느리가 패전의 비보를 듣고 해산하다 죽는 장면입니다. 그녀는 이가봇하면서 죽습니다. 즉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났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엘리 가문에 남은 것은 핏덩이 아이 하나 딱 남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복음의 비밀입니다. 사울 왕가도 예고한 대로 완전 파멸되지만 누구 하나 남습니까? 요나단의 아들 무비보셋입니다. 그것도 절뚝발이입니다. 야곱도 수십 년 동안 연단 받은 결과가 겨우 절뚝발이 아닙니까? 그러나 여기에 깊은 진리가 숨어 있습니다. 절뚝발이는 온전히 주님을 의지하는 성도의 모습이요, 어린이는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새롭게 변화된 성도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어린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아무리 죽어간들 핏덩이 아들에게 왜 관심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그녀는 아무리 아들을 낳았다 소리쳐도 관심하지 않고 이가봇만 계속하여 외치며 죽어갔습니다. 이와 같이 세상이 아무리 우리를 불러도 세상의 영광과 탐욕을 다 버리고 어린이처럼 순수하고 오염되지 않고 하나님 만을 받들고 사랑하는 참성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율법과 선지자의 증거를 받은 참 구주이십니다. 인간은 율법으로는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만 의지하고 또 세상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천국의 어린이가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이제 복음의 새 시대는 왔는데 아직까지 죄와 사망의 법에 매여 살고 있다면 어서 속히 그리스도 안의 은혜의 성령으로 변화 받는 신약의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모두 참된 천국 백성으로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는 귀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