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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 뒤에 계시는 하나님
룻기 2장 1-3절
오늘 우리는 룻기에서
새로운 사람을 소개받습니다.
그 사람은 보아스입니다.
보아스가
2장 1절에서 소개됩니다.
룻기를 쓴 사람은
보아스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 중
유력한 자가 있으니
이름은 보아스더라.
우리는 이 구절을 읽고
보아스가 어떤 사람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1장 마지막 구절과
2장 첫구절을 읽어보면,
이야기가
1장에서 2장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고,
앞 뒤 분위기가 뭔가 맞지 않다는 것을
느끼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사람들이 모여서
한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끼어들어서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면,
분위기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룻기 2장 1절이 꼭 그런 형국입니다.
1장에서 2장으로 넘어가면서
갑자기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여러분.
룻기를 쓴 사람은
왜 갑자기 이야기를 바꾸어서
느닷없이 보아스라는 사람을 소개할까요?
이것을 생각해봅시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보아스는
룻기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입니다.
우선,
룻기는
보아스가 등장하지 않으면,
1장에서 끝날 이야기입니다.
만약 보아스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오미와 룻은
특별한 일 없이
그저 그렇게 살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당한 비극적인 삶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일생을 고통스럽게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깨뜨려졌기 때문에
이야기가 1장에서 끝나지 않고
2장으로 넘어갑니다.
이야기의 흐름을 깨뜨리는 것이 바로
보아스입니다.
룻기를 쓴 사람은
갑작스럽게 보아스를 소개함으로써
칙칙한 이야기 분위기를 바꾸어주고,
또 자기들 힘으로는 도저히 바꿀 수 없는
나오미와 룻의 상황을 바꾸어놓습니다.
나오미와 룻은
거지꼴을 하고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베들레헴은 고향이었고,
또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지만,
그러나 베들레헴이 천국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고향 베들레헴에 돌아왔다고 해서
금방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베들레헴에 돌아온 나오미와 룻은
살아가는 것이 막막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대책이 없습니다.
그녀들 힘으로는
살아갈 방도가 없습니다.
아주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2절에서
룻이 시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로 밭에 가게 하소서.
내가 뉘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남의 밭에 떨어진 이삭을 주워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나오미와 룻이 베들레헴에 돌아온 때는
보리 추수때였습니다.
그러니 이제 추수를 하면 식량이 생기겠지만,
지금 당장은
겨울을 지내느라
식량사정이 그리 좋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전혀 대책없이 돌아온
나오미와 룻은
그때 얼마나 어렵게 살았겠습니까?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 도와주는 것으로
겨우 끼니를 잇지만,
계속해서
그렇게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이
계속 도와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런 암담한 상황 속에서
룻이 나오미에게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당장 먹고 살 것이 없으니,
남의 밭에 가서
떨어진 보리이삭이라도 주워와야 하겠습니다.
그렇게라도 해야
우리가 입에 풀칠이라도 하면서 살 수 있겠습니다.
나오미와 룻은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더 이상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아직은
나오미와 룻을 특별히 도와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앞으로도 특별한 일이 일어날 것같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희망이 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이었기에
2장 1절은 아주 중요합니다.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 중
유력한 자가 있으니
이름은 보아스더라.
본문은 보아스를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다르게 소개할 수도 있을텐데
룻기를 쓴 사람은
보아스가
나오미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관심을 둡니다.
보아스의 가정 형편이나
보아스가 무슨 일을 하는지
이런 데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보아스는 엘리멜렉 가문의 사람입니다.
엘리멜렉의 친척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베들레헴에서 유력한 사람이었습니다.
룻기를 쓴 사람은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장 1절을 보면,
친척이라는 말과
유력한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둘을 합하면,
보아스는 나오미의 유력한 친척입니다.
능히 도와줄 수 있는 힘이 있는
친척이라는 말입니다.
룻기기자는 이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나오미와 룻이
베들레헴에서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상황 속에서
보아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는
베들레헴에 돌아온 나오미와 룻이
그들을 도와줄
유력한 사람이 필요한
어려운 상황에서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그래아만
룻기를 쓴 사람이
느닷없이
보아스를 소개하는 까닭을 알 수 있습니다.
나오미와 룻은
그들을 도와줄 유력한 사람이
정말 필요했습니다.
그런 상황인데,
룻기를 쓴 사람은
갑자기 보아스를 소개함으로써
우리에게 무언가 암시를 줍니다.
웬지 좋은 일이 일어날 것같습니다.
보아스는 나오미의 유력한 친척입니다.
유력한 친척이 있으면
어려울 때 그 친척의 덕을 볼 수 있습니다.
일단 여기까지 이야기를 해놓고
그 다음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룻이 보아스를 만나게 되겠지만,
그것은 시간이 좀 더 지나야하고,
아직은 보아스가 등장할 때는 아닙니다.
지금은 보아스 등장 이전 상황입니다.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말합니다.
이삭을 주어오겠습니다.
이삭을 주어다 먹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추수 때가 되어서
다른 사람들은 보리를 거둬들이는데,
나오미와 룻은
거둬들일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
나오미와 룻은
그때까지 어떻게 살았을까요?
지어놓은 농사가 있는 것도 아니니,
다른 사람들이 주는 것으로
목숨을 이어갔을 것입니다.
베들레헴에 돌아왔다고
새로워진 것은 없습니다.
추수하다가 떨어진
이삭이라도 주어다 먹어야 할 상황입니다.
그때까지
사람들이 조금씩 식량을 보태주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것도
이제는 더 할 일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니 남의 밭에 가서
보리 이삭이라도 주어와야 겠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할 때
룻이 얼마나 심각하게 이야기했을 것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어머니를 죽자살자 따라온 결과가 이것입니다.
잘 살기는커녕,
남 보리추수하는 밭에 가서
서성거리다가
떨어진 이삭을 주어다 먹고살아야 하는
비참한 지경입니다.
이삭을 주어먹는다는 것은
아주 가난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에 보면
고아나 과부나 나그네들을 위해서
이삭을 일부러 떨어뜨리라고 말합니다.
레위기 23장 22절을 보십시오.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너는 그것을 가난한 자와 객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우리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추수할 때는
모퉁이에 있는 것들은
남겨두어서
가난한 사람들과
떠돌이 외국인들이
먹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지극하신 사랑이
여기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달리 생각하면,
어떤 사람이 이삭을 주어서 산다는 것은
그 사람이
그 사회에서 가장 낮은 사람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추수 때
일부러 이삭을 떨어뜨리는 것은
농사를 짓지 못하는
최하층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사회보장제도입니다.
나오미와 룻은
이렇게 어려운 삶을 삽니다.
최하층의 삶을 삽니다.
모압 여자
이방 여자라는 별명을 달고 다니는 룻은
먹고 살기 위해서
남이 추수하는 밭에 가서
거기서 일도 거들고
이삭도 줍습니다.
그렇게 이밭 저밭으로 다니면서
이삭을 줍다가
드디어 보아스의 밭으로 갔습니다.
그곳에 간 것은 우연이었습니다.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룻이
보아스에게 속한 밭을 찾아가는 모습을
성경기자는 우연히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우연이라는 게 무엇입니까?
무엇을 보고 우연이라고 합니까?
의도한 것은 아닌데,
용하게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연입니다.
룻은 정말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갔습니다.
룻이 보아스의 밭에 가지 않았다면,
보아스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보아스를 만나지 못했다면,
룻은 그냥 모압여인으로
나오미의 며느리로,
과부로 일생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우연히
보아스를 만나서
삶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룻은 억세게 운이 좋은 여자입니다.
여러분.
그러나
그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룻이 보아스를 만나는 것은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우연이지만,
그 우연한 일 뒤에는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중대한 사실이 있습니다.
우연 뒤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읽으면 읽을수록
룻이 보아스를 만난 것은
하나님의 섭리였구나
하나님이
룻의 발걸음을 인도하셨구나
그래서 룻과 보아스가 만나도록
하나님이 역사하셨구나.
하나님이 중매장이구나
우리는 이런 사실을
깊이 느낍니다.
룻이 보아스의 밭에 간 것은
말 그대로 우연이었습니다.
룻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보아스의 밭에 갔습니다.
보아스가 시가의 친척인지
보아스가 유력한 사람인지
룻은 알지 못합니다.
그저 먹고 살기 위해서
그대로 앉아있을 수는 없어서
생각한 것이
추수하는 때니까
추수하다 떨어진 이삭을 주어다 먹어야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추수하는 곳을 여기저기 다니다가
보아스의 밭에도 간 것입니다.
특별히 보아스의 밭에만 간 것이 아닙니다.
룻은 다른 사람의 밭에도 갔습니다.
거기서 추수하는 것을 도와주면서
열심히 이삭을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별생각없이
보아스의 밭에도 가서
거기서 이삭을 줍고
우연하게 보아스를 만납니다.
룻과 보아스의 우연한 만남.
그러나 이것은 운명적인 만남입니다.
룻은 보아스를 만남으로써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함께 하셨구나.
하나님이 인도하셨구나
우리는 고백합니다.
창세기를 보면,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의 아내를 구하기 위해서
밧단아람으로 갔는데,
거기서 우연히
리브가를 만납니다.
리브가는 아브라함의 손녀뻘됩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리브가를 우연히 만나지만,
그것을 결코 우연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나게 해주셨다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리브가를 만나고나서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볼까요?
이에 그 사람이 머리를 숙여
여호와께 경배하고 가로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인자와 성실을 끊이지 아니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그 우연한 것처럼 보이는
만남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종의 고백입니다.
우연한 것처럼 보여도
우리의 삶에서 우연은 없습니다.
모든 일 뒤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어떤 일이 우연히 일어난 것같아도
그것은 다 하나님의 섭리라는 사실을
우리는 에스더서를 읽으면서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이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본문을 읽으면 읽을수록
모든 일이 하나님의 역사라는 사실을
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에스더서를 찬찬히 읽어보십시오.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이라는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셨다는 말도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에스더서를 읽고나서
하나님이 살아계시다고 고백합니다.
바사제국시대때 일어난 일입니다.
아하수에로가 바사의 왕인데,
에스더가 왕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총리대신 하만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총리대신은
왕 다음 가는 높은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이 이 총리대신에게 절을 하는데,
에스더의 사촌 오빠인 모르드개는
하만에게 절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화가 난 하만은
모르드개와 유대인들을 죽이려고
계획을 세웁니다.
특히 모르드개를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목매달아 죽이려고
교수대를 높이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아침 일찍이
왕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아하수에로 왕이
공교롭게도
밤에 잠이 오지 않아서
왕들의 행적을 기록한
우리나라 이조실록같은 것을
밤새 읽고 있었습니다.
다른 왕들에 관한 기록을 읽다가
자기 행적을 기록한 것을 읽는데,
거기에 모르드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전에
아하수에로 왕의 신하 중에서
반역을 일으키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모르드개가 그 사실을 알고
에스더에게 알립니다.
그리고 에스더는
아하수에로 왕에게 그 사실을 알려서
반역자들을 모두 붙잡아
처형했습니다.
그러니 모르드개는
아하수에로의 목숨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입니다.
그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데,
아하수에로 왕이
그 기록을 읽으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당시에 경황이 없어서
자기 목숨을 구해준 모르드개에게
상을 주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모르드개에게 상을 주어야 하는데
내가 깜박했구나.
이제라도 모르드개에게 상을 내려야겠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사람을 불러서
모르드개에게
상을 내리려고 하는데,
그때 마침 하만이
왕을 알현하려고
들어왔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하만에게 모르드개에게 상을 주고
백성들 앞에서 모르드개를 높여주라고 말합니다.
하만은 왕에게 하려고 했던 말은 꺼내지도 못하고
오히려
빨리 돌아가서
모르드개에게 상을 주고
모르드개를 영광스럽게 해주는
행사를 신속하게 준비해야 했습니다.
하만은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하는데,
왕이 모르드개에게 상을 주고
모르드개를 모든 사람들 앞에서
높여주니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민을 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하만은 일이 참 묘하게 꼬인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보아도
우연도 참 희한한 우연입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잠이 오지 않아서
왕들의 실록을 읽었다는 것도
아주 우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또
모르드개에 관한 기록을 읽었다는 것도
우연입니다.
그때 마침 하만이 들어왔다는 것도 우연입니다.
에스더서는 이렇게 우연 투성이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렇게 모든 일들이 우연인 것처럼 보이지만,
에스더서를 쓴 사람은
그 일들 뒤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하고 싶어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 일들이 그냥 일어난 것같지만,
신앙의 눈으로 들여보다면,
그 일들이 다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 속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하고 싶어합니다.
하만이 모르드개와 모든 유대인들을 죽이려고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는데,
모르드개는 대책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그런 일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래서 에스더서를 읽으면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다는 이야기가 전혀 없어도,
하나님이 직접 등장하시지 않아도
우리는 거기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모든 일들이 우연히 일어난 것같아도
그 일들을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
인간들이 모든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실제로는
우리 하나님이
그 우연한 것처럼 보이는
사건 뒤에 서계셔서
그 일들을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압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셨다는 말이
한마디도 없어도
우리는 압니다.
그리고 우리 입으로 고백합니다.
그 모든 일들을
하나님이 하셨다고 말입니다.
모르드개나 에스더도
그 모든 일이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고
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연히 일어난 것같은 일 뒤에는
우리 하나님이 계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세상 사람들은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봅니다.
우리는 그 우연한 일들 뒤에
하나님이 우뚝 서계심을 봅니다.
세상 사람들은 고백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백합니다.
우리는 그 일들이
결코 우연하게 일어난 것이 아니고
다 하나님이 역사하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 일을 하나님의 일로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증인들입니다.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우연한 일들 뒤에는
언제나 우리 하나님이 계십니다.
출처: 천성을 향하여 글쓴이: 하늘 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