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님 화엄경 강설 30】 5
<9> 진여를 들어 진여상회향을 널리 밝히다
1) 두루 행하는 진여의 덕의 열 가지 비유
譬如眞如가 徧一切處하야 無有邊際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徧一切處하야 無有邊際하며
“비유컨대 진여(眞如)가 온갖 곳에 두루하여 끝이[邊際] 없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온갖 곳에 두루하여 끝이 없느니라.”
▶강설 ; 보살이 선근을 닦아 회향하는 공덕은 세간과 출세간을 막론하고 그 어떤 공덕보다도 가장 우수한 공덕이므로 진여의 1백가지 공덕을 들어 비유하였다. 먼저 10가지는 진여의 덕이 두루하는 비유를 들어서 밝혔다.
진여의 1백가지 덕을 밝혔으므로 진여에 대한 내용을 새롭게 자세히 설명하여야 할 것이다. 청량스님은 소(疏)에서 “진(眞)이란 말하자면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음을 나타낸 것이며, 여(如)란 말하자면 같고 항상하여 변역이 없음을 표한 것이다. 이것은 법상종의 뜻이다. 만약 법성종이라면 변하지 않는 것을 진이라 하고 인연을 수순하는 것을 여라 한다. 변하지 않기 때문에 유위법으로 더불어 하나가 아닌 뜻이 있고 인연을 수순하는 연고로 유위법으로 더불어 다르지 않는 뜻이 있다.”라고 하였다.
다시 진여란 모든 사람과 모든 생명과 유정 무정의 참 생명인 진여생명이다. 일체 존재의 본성이며 본질이다. 본성이며 본질이기 때문에 밖으로 나타난 현상들의 삼라만상과 우주만유로 더불어 천변만화한다. 천변만화하는 현상은 인연을 따라 부단히 그 모습을 바꾸지만 그러나 그 본성과 본질은 언제나 여여(如如)하여 변함이 없다.
또 진여는 온갖 성질을 다 가지고 있다. 불변성이 있는가 하면 변화성도 있다. 둘이 아닌 성질과 둘인 성질도 있다. 상호연결하며 상호 통신하는 성질도 가지고 있다. 대승성도 있고 소승성도 있다. 불성과 보살성과 중생성도 있다. 10바라밀성도 있고 인의예지성도 있다. 자비성도 있고 지혜성도 있다. 부처님이나 보살들이나 모든 조사들이나 중생들까지 모두가 상상할 수 있는 일체 성질을 다 가지고 있는 것이 진여성이다. 이와 같이 진여는 아무리 설명하여도 끝내 다할 수 없다. 그래서 진여는 모든 것의 모든 것이다.
이와 같은 진여를 들어 보살의 선근회향을 비유한 것이다. 진여가 아무리 그와 같더라도 어쩌자는 것인가? 불법의 결론은 요익중생하자는 것이다. 홍익인간하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살이 중생들을 위해서 선근을 닦고 다시 그 선근으로 회향하는 일이 그와 같이 위대하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만약 사람이 선근을 닦아 회향하는 일이 없다면 모든 것의 모든 것인 그 위대한 진여도 무용지물일 뿐이다. 차별 없는 참사람[無位眞人]도 마른 똥 막대기일 뿐이다.
譬如眞如가 眞實爲性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了一切法이 眞實爲性하며
“비유컨대 진여가 진실함으로 성품을 삼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모든 법의 진실함을 알므로 성품을 삼느니라.”
譬如眞如가 恒守本性하야 無有改變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守其本性하야 始終不改하며
“비유컨대 진여가 항상 본 성품을 지키고 달라짐이 없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본 성품을 지키고 처음부터 나중까지 변하지 않느니라.”
▶강설 ; 만유의 근본인 진여생명의 본성도 진실하고 보살의 선근회향의 본성도 진실하다. 또한 우주법계의 근본인 법성진여도 변함이 없으며 보살의 선근회향의 공덕도 변함이 없다.
譬如眞如가 以一切法의 無性爲性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了一切法이 無性爲性하며
“비유컨대 진여가 온갖 법의 성품이 없으므로 성품을 삼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온갖 법의 성품이 없음을 알므로 성품을 삼느니라.”
譬如眞如가 無相爲相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了一切法이 無相爲相하며
“비유컨대 진여가 모양이 없으므로 모양을 삼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온갖 법의 모양이 없음을 알므로 모양을 삼느니라.”
▶강설 ; 진여자성은 모든 것의 근본이지만 고정된 성품이 없듯이 보살이 선근을 닦아 회향함도 또한 그 본성은 고정 불변하는 성품은 없다. 또한 진여도 선근회향도 형상이 없음으로써 형상을 삼는다.
譬如眞如가 若有得者면 終無退轉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若有得者면 於諸佛法에 永不退轉하며
“비유컨대 진여를 만약 얻은 이가 있으면 마침내 퇴전함이 없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만일 얻은 이가 있으면 모든 부처님 법에서 길이 퇴전하지 않으리라.”
▶강설 ; 진여를 얻는다는 것은 곧 본성을 보는 것이며, 본성을 본다는 것은 곧 성불이다. 견성과 성불에 무슨 퇴전이 있겠는가. 보살의 선근회향에도 모든 불법에 퇴전이 없다. 선근회향이 곧 최상의 불법이다.
譬如眞如가 一切諸佛之所行處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一切如來의 所行之處며
“비유컨대 진여는 일체 모든 부처님의 행하신 바이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모든 여래의 행하신 바이니라.”
▶강설 ; 모든 부처님은 진여의 공능대로 사신다. 선근회향도 일체 여래의 행하시는 바며 여래의 공능이다.
譬如眞如가 離境界相으로 而爲境界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離境界相으로 而爲三世一切諸佛의 圓滿境界며
“비유컨대 진여가 경계를 여윈 것으로 경계를 삼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경계를 여윈 것으로 삼세의 일체 모든 부처님의 원만한 경계를 삼느니라.”
▶강설 ; 진여에 무슨 경계가 있겠는가. 경계 없는 것이 곧 진여의 경계이듯이 보살의 선근회향도 경계가 없는 것으로 과거·현재·미래 일체 부처님의 원만한 경계가 된다.
譬如眞如가 能有安立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悉能安立一切衆生하며
“비유컨대 진여가 능히 나란히 건립함이 있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일체중생을 능히 나란히 건립하느니라.”
譬如眞如가 性常隨順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盡未來劫토록 隨順不斷하니라
“비유컨대 진여가 성품을 항상 수순하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이 미래 겁이 다하도록 수순하여 끊어지지 않느니라.”
▶강설 ; 진여는 모든 것에 펼쳐져 있듯이 선근회향도 일체중생에게 펼쳐져 있다. 또 진여는 본성을 항상 수순하듯이 선근회향도 미래 겁이 다하도록 수순하여 끊어지지 않는다. 여기까지가 진여의 덕이 두루 하는 열 가지 비유를 들어 보살의 선근회향의 덕이 두루 함을 밝혔다.
2) 가장 수승한 진여의 덕의 열 가지 비유
譬如眞如가 無能測量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等虛空界에 盡衆生心하야도 無能測量하며
“비유컨대 진여를 능히 측량할 수가 없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허공계와 평등한 온 중생의 마음을 다해도 측량할 수가 없느니라.”
▶강설 ; 진여는 무한광대성을 갖췄다. 그러므로 측량할 길이 없다. 선근회향도 그와 같아서 저 드넓은 허공계와 같은 중생들의 마음을 다해도 측량할 수가 없이 드넓다. 보살의 선근 회향은 그와 같이 끝이 없다.
譬如眞如가 充滿一切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一刹那中에 普周法界하며
“비유컨대 진여가 모든 것에 충만하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한 찰나에 법계에 두루 하느니라.”
▶강설 ; 법성진여와 생명진여는 모든 것에 충만하다. 선근회향도 짧은 한 순간 중에 우주법계에 충만하다.
譬如眞如가 常住無盡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究竟無盡하며
“비유컨대 진여가 항상 있어서 다함이 없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구경에 다함이 없느니라.”
▶강설 ; 진여는 과거·현재·미래의 무한한 시간 동안 항상하다. 그것이 진여의 무한성이며 무진성이다. 선근회향도 그와 같아서 끝까지 다함이 없다.
譬如眞如가 無有比對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普能圓滿一切佛法하야 無有比對하며
“비유컨대 진여가 비교하여 상대할 수 없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모든 불법에 널리 원만해서 비교하여 상대할 수가 없느니라.”
▶강설 ; 불법에는 온갖 가르침이 있어서 중생들을 두루 이익하게 한다. 그러나 그 많은 종류의 이익 중에도 선근회향과 같이 큰 이익은 없다. 그래서 다른 이익과 비교해서 상대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일체 불법 중에 선근회향이 가장 위대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