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안의 또 다른 골프(the game within a game)" 역대 최고의 골퍼 중 한 사람인 바비 존스가 한 말이다. 또 이런 말도 있다. "골프의 반은 즐거움이고 나머지 반은 퍼팅이다.(Half of golf is fun, the other half is putting)" 유명 골프 작가인 피터 도버라이너의 말이다. 모두 골프에서 퍼팅이 얼마나 어렵고 또 괴로운 존재인지를 잘 나타내고 있는 말들이다. 초보 때는 잘 모르다가 핸디캡이 조금씩 낮아지면서 어느 순간 누구나한번쯤 맞닥뜨리게 되는, 참으로 넘기 힘든 산이 바로 퍼팅이다. 많은 사람들을 절망에 빠뜨리는 퍼팅의 괴로움은 직접 당해본 사람이 아니면 잘 알기 힘들다. 특히 어떤 사람들에게는 소위 '입스'(yips)라고 하는 골프를 포기하게 만들 만큼 참기 힘든 고통을 선사하기도 한다. 퍼팅은 골프 실력이 높아질수록 더욱 더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미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상급자 중 33%에서 48%에 이르는 골퍼들이 이런 입스를 경험한다고 한다. 드라이버 샷을 270야드나 페어웨이 한 가운데로 잘 보내놓고, 또 정확한 아이언 세컨 샷으로 멋지게 온 그린 시켰는데, 정작 그린에 올라가서 쓰리 퍼트로 보기를 했을 때의 그 쓰라린 마음은 정말 당해본 사람이 아니면 모른다. 이처럼 골프에서 퍼팅이 어려운 이유는 순간적인 힘과 빠른 속도를 요구하는 일반 스윙과 달리 퍼팅은 이와는 정반대인 섬세한 거리 및 속도 조절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또 일반적으로 드라이버나 아이언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습 시간이 적은 것도 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프로선수들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은데 실제로 벤 호건은 골프 역사상 최고의 볼스트라이커이자 샷 메이커로 자유자재로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거리로 볼을 보낼 수 있었던 샷의 달인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퍼팅에서는 유독 약한 모습을 보였다. 오죽하면 58년 U.S Open 우승자이자 골프 명예의 전당 회원인 동료 골퍼 타미 볼트가 “누가 뭐래도 그는 역사상 최고의 골퍼다. 그가 만약 아놀드 파머의 1/4만 퍼팅을 잘했어도 그가 거둔 승수(64승)보다 50%는 더 우승을 했을 것이다.”라며 안타까움을 표할 정도였다. 이러한 역사적 가정이 큰 의미는 없지만 동료 프로골프의 객관적인 평가이니 그의 말대로 벤 호건의 퍼팅실력이 조금만 더 좋았더라면 아마도 PGA 최다 우승 기록(샘 스니드, 84승)이나 메이저 최다 우승 기록(잭 니클라우스, 18승)의 주인공이 바뀌었을지 모를 일이다. 벤 호건이 메이저 대회만 하더라도 Top10에 든 것이 26번에 이르고 특히 그 중에서도 아깝게 준우승을 한 게 5차례나 되니 말이다. 이런 벤 호건의 퍼팅에 대한 악연은 벤 호건의 어린 시절까지 거슬러올라간다. 아버지의 자살로 9살 때부터 가족의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했던 벤 호건은 11살이 되던 해, 집 근처 Glen Garden Country Club이란 골프장의 캐디로 취직하게 된다. 그는 15살이던 1927년 근무하던 골프장에서 매년 개최되는 캐디 골프대회에서 마지막 홀까지 단독 1위를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친구이자 나중에 필생의 라이벌이 되는 바이런 넬슨이 마지막 홀에서 그만 30피트짜리 롱 퍼팅을 성공시키는 바람에 공동 1위가 되고 만다. 이튿날 벌어진 연장전에서 역시 까다로운 퍼팅을 성공시킨 넬슨에게 벤 호건은 아깝게 1타 차로 패하게 된다. 이듬해 봄 근무하던 골프장에서는 16세 이상은 근무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벤 호건은 골프장을 떠나야 했지만, 넬슨은 우승자에 대한 포상으로 골프장의 회원 자격을 얻게 되었고 결국 벤 호건보다 먼저 프로골퍼로 성공하여 이름을 날리게 된다. 지독한 연습벌레로 통하며 스윙에 관한 한 최고로 인정받은 그가 유독 퍼팅에 관한 한 다른 프로들의 평균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약했던 이유는 1949년 그가 당했던 치명적인 교통사고의 후유증도 한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은퇴하기 전까지 경기에서 종종 퍼팅 중에 심지어 몇 분 동안이나 볼을 내려다보다 겨우 백 스윙에 들어갈 때가 많았는데, 이것은 사고 때 입은 한쪽 눈의 부상으로 시력이 불안정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퍼팅에 약한 그였지만 오히려 까다로운 홀 컵 위치와 빠른 그린으로 쓰리 퍼트가 난무하는 악명 높은 U.S Open에서만은 어쩐 일인지 펄펄 날았다. 1940년부터 60년까지 20년간 한 번도 Top 10에서 밀려나 본 적이 없을 뿐더러 역대 최다인 4승을 거두었다. 퍼팅에 약한 그였지만 까다로운 홀 컵 위치는 누구보다 정확한 아이언 샷을 가지고 있는 그에겐 오히려 기회가 되었고, 느린 그린에서보다는 U.S Open과 같은 빠른 그린에서는 상대적으로 높은 퍼팅 성공률을 보였기 때문이다. 최근 아이언 그루브 규격의 변경 문제 때문에 골프계가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있는데 60여 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그때는 그루브가 아닌 퍼팅이 문제였다. 당시 빌리 캐스퍼(Billy Casper)처럼 상대적으로 볼 스트라이킹 능력이 떨어지지만 퍼팅을 잘하는 선수들이 잇달아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하고 투어에서 강세를 보이자 진 사라젠, 벤 호건 등을 중심으로 홀 컵의 크기를 두 배에 가까운 8인치로 늘리고자 하는 선수들의 움직임이 있었다. 이들은 퍼팅이 스코어에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에, 홀 컵의 크기를 늘려 골프에서 퍼팅이 차지하는 비중을 줄이고 볼 스트라이킹 능력이 좋은 선수들이 보다 유리하게 만들자고 주장했다. 만약 이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심지어 골프의 본질은 볼 스트라이킹이니 아예 홀 컵을 없애고 다트처럼 일정한 거리를 기준으로 깃대에 가까운 순으로 점수를 부여해 스코어를 매기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300야드의 드라이버 샷이나 핀 옆에 붙인 150야드의 멋진 아이언 샷이 겨우 4-5피트 거리의 퍼트와 같은 대접을 받는 것이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았나 보다. 비록 몇 백 년 된 골프의 경기 방식을 바꾸는 것이니만큼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아 결국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이때 만약 규정이 바뀌어 홀 컵의 크기가 더 커졌다면 아마도 골프라는 경기의 성격이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안타깝게 생각되시는 분들 많으시죠?) 또한 역대 골퍼 중 가장 퍼팅을 잘한다고 평가 받고 있는 타이거 우즈 역시 지금만큼 우승을 많이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현재 영국 R&A와 미국골프협회(USGA)의 공식 규정집에 따르면 홀 컵의 크기는 직경이 4¼ 인치(108mm), 깊이는 4 인치이다. 그런데 왜 하필 홀 컵의 크기는 4인치도 아니고 5인치도 아닌 4¼ 인치가 되었을까? 이것은 특별한 이유는 없고 아주 우연한 계기로 정해졌다고 한다. 초창기의 홀 컵은 정해진 규격이 없었으며 대충 적당한 크기로 모종삽을 이용해 그린을 파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오늘날처럼 일정한 크기로 그린에 홀 컵을 만들 수 있게 해주는 장비인 홀 커터(hole cutter)가 스코트랜드 로열 머셀버그(Royal Musselburgh)골프 클럽이란 곳에서 처음 개발되었다. 이 홀 커터는 당시 그린의 물을 빼는데 쓰이는 배수관을 이용해 제작되었는데 그 크기가 마침 4¼ 인치였다고 한다. 이것이 1891년 영국 R&A(the Royal and Ancient Golf Club of St. Andrews)가 새로운 골프 규정집을 발간할 때 처음 수록되기 시작해 오늘날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많은 사람을 울고 웃게 만드는 홀 컵의 크기가 정해진 이유치고는 참으로 허탈하지 않은가? 퍼팅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2009년 디 오픈에서 18번 홀 쓰리 퍼트로 역대 최고령 우승의 기회를 날린 탐 왓슨. "퍼팅을 잘하는 사람은 어느 누구와도 대적할 수 있지만, 퍼팅을 못하는 사람은 그 누구의 상대로 되지 못한다.(A man who can't putt is a match for no one, a man who can is a match for anyone.)"벤 호건과 같은 텍사스 출신의 전설적인 골프 교습가 하비 페닉의 말처럼 골프에서 차지하는 퍼팅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스코어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퍼팅을 잘하는 방법 역시 골프의 다른 기술들처럼 결국 꾸준한 연습 밖에 없다. 아~ 참! 다른 방법이 또 있긴 있었다. 다름 아닌 역대 최고의 골퍼 벤 호건 옹이 가르쳐 준 퍼팅 잘하는 비결이다. 어느 날 한 투어 프로 선수가 은퇴 후 고향인 텍사스 포트 워스에 머물고 있던 벤 호건의 사무실을 방문한다. "선생님! 저는 요즘 롱 퍼팅이 잘 안돼서 고민인데 좋은 해결 방법이 없을까요?" "간단하지. 다음부턴 아이언 샷을 핀에 좀 더 가깝게 붙이게!" 현역 시절 정확한 샷으로 깃대를 무수히 맞추었던 벤 호건 다운 대답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