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 리 글 과 공 동 체 이 야 기
2010-10
한 글 날-한자글을 서슴없이 가져다가 쓰는 나 자신
박병민 목사(새터공동체)
말이 되지 않는 바로 어불성설(語不成說)의 속 다르고 겉이 다른 내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신학교와 곧 이은 연구과정을 마치고, 좋은 말로 표현해서 부질없는 행위를 접은 듯 무위자연(無爲自然)하고 있던 나에게, 1990년 12월 초순에 선배님께서, 평소에 내가 하고 싶어 하던 장애인과 함께하는 일, 바로 그 같은 일을 계획하고 있는 교회가 있으니 가서 함께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시를 해주었다. 그에 따라 대전시 중촌동에 있는 이름도 좋은 바로 그 사랑방교회를 섬기게 되었다. 지금도 기억 속에 돌아보면, 비록 지금은 뵐 수없는 옛 어른이 되신 교회의 목사님은 사랑방이라는 말처럼 인자하신 사랑의 성자와 같은 품성을 지니신 어른이셨다. 그 마음이 비치어져 나와 조촐하고 산뜻한 아기 얼굴 같은 그 모습이셨다. 교회에서는 과히 멀지 않은 곳인, 지금은 재개발바람으로 인하여 덩그렇게 큰 아파트를 앉혀주고 자리를 내주게 된, 대전시 목동의 옛 방송국 뒤에 있는 목동 15번지의 아동들을 돌보는 기독교목동봉사관을 시작하여 2∼3년째 운영을 해오던 터였다. 봉사관에서는 탁아소와 그리고 요사이 널리 펼쳐져있는 지역아동센타의 전신격인 공부방이 작은둥지공부방이라는 이름으로 운영이 되어오고 있었다. 그러면서 내가 맡아보려던 장애인과 함께하려는 일은 교회의 차후에 연차적인 계획 속에 포함되어 있는 중이었다. 이처럼 교회가 사회봉사 혹은 사회선교에 방향을 품고 일을 하는 것에 매료되어 나는 장애인 일은 아니지만 공부방 일에 기꺼이 함께 했다. 그 후에 몇 해를 가면서 무료진료와 어머님들과 함께하는 한글교실이 이어졌다. 말로는 다 할 수 없지만 그 때를 생각하면, 그곳의 함께 모여 다니며 놀던 동네 아이들이 좋았고, 그리고 그들에게 열의를 가지고 함께 해주었던 자원교사들의 어울림이 마음 겹다. 잠시 동안 이지만 시간 중에 초등학생들에게 웅변을 가르쳤던 지금의 나의 친구와 또한 그 친구의 권유로 역시 웅변을 함께 도왔던 후배님이 생각이 난다. 그 교사 가운데는 삶을 뒤에 놓고 이제는 옛사람이 되어버린, 나와 같은 장애를 지니고 있는 바로 그곳에서 만나게 된 막역했던 친구도 있었다. 그리고 그 목동(牧洞)이라는 동네 이름이 지금도 좋다. 그 목동(牧洞)이라고 말할 때에 그 목(牧)이라는 글자가 무슨 뜻의 글자던가? 양치기 소년을 말하는 목동(牧童)을 말할 때의 그 ‘칠목(牧)’자가 아니던가? 또한 그 목(牧)자는 나의 신분인 목사(牧師)를 지칭할 때의 바로 그 글자이다. 그 목동(牧洞)은 그 이름에 걸맞게 대전에서 맨 처음 세워진 목동성당(牧洞聖堂)과 수도원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충청도를 근거지로 펼쳐져간 감리교(監理敎)의 선교구(宣敎區)로서 신학교로부터 시작이 된 목원대학교(牧園大學校)가 오랫동안 있었던 곳이다. 바로 그 목(牧)이라는 글자를 앞세우기에 격에 맞는, 비탈진 동산을 품은 동네 그곳은 바로 성지였다.
나는 1990년대 초중반에 그 기독교목동봉사관에서 어머님들과 함께했던 한글교실의 재미있었음이 또한 기억이 된다. 배워가는 사람들은 배워주는 사람들에 비해서 그 시간 속에서 순박했던 모습들. 계속해서 반복해드려도 어르신들에게는 좀처럼 익혀지지 않는 글귀들. 철부지를 선생으로 여기셨던 어머님들...... 내가 옛 모습을 꺼냈던 것은, 지난 가을 녘에 마을의 초등학교 교장선생님께서 집에 방문하셨다. 우리 집에 있는 속이 불편한 젊은이들이 마을에 나다니는 모습을 유심히 보셨든지? 스믈 서너 살이 된 아가씨를 초등학교에 다니게 하지 않겠느냐는 말씀이셨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올 초에 우리의 정임이가 학교에 입학하여 다니고 있다. 그녀는 제 연령에 따라 우리 면소제지의 초등학교에 진학을 하였으나, 몇 달이 못 되어 나아가지를 못하고 학교를 멈출 수밖에 없었던듯하다. 선생님께 부탁드리기를 한글과 숫자를 읽힐 수 있도록 요청을 드렸더니, 교장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배워야 되는 그 시기를 지나쳐버리면 나이가 들어서는 배운 것을 지니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셨다. 정임이가 학교를 파하고 돌아온 후에 반복해서 써간 공책을 읽도록 하였다. 두세 자로 이룬 낱말을 반복하여 한 줄에 걸쳐 써갔다. 낱말의 글자를 여기에 옮겨보면 ‘가방, 가위, 고래, 고등어, 거울, 거위, 구두, 구슬, 그물, 그네, 널뛰기, 느티나무, 바느질, 덧니, 다람쥐......’ 등의 배우기에는 쉽지 않은 글자들이 드문드문 같이하고 있다. 정임이 에게는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위, 그물, 널뛰기, 덧니와 같은 낱말들도 함께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예전에 어머니들과의 한글공부에서도 그러했듯이, 정임이도 거듭 반복해서 써가며 어렵게 머리에 담은 것이라서 그러한지 글을 보고 읽는 것이기 보다는 어렴풋이 머리에 외워서 담았던 것을 머리를 극적이며 끄집어내는 꼴이다. 그리고 앞을 뒤이어서 나오는 숫자는 계속 읽어 갈수 있으나 듬성듬성 지적해가며 읽거나 써보자고 말하면 어려워한다. 그와 같이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들도 학문이나 사람됨을 배우고 닦아가기 위해서는 절차탁마(切磋琢磨)의 마음으로 임하여야 할 것이다. 그 말은 자르고, 쓸고, 쪼고, 닦는자신을 괴롭히며 애써가는 노고와 각고가 요청된다. 병아리는 달걀에서 나온다. 하지만 단순히 달걀이 깨진다고 병아리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달걀을 품에 안고 인내했을 때 병아리는 스스로 껍질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온다. 우리의 삶에 대한 도전도 이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어제는 10월 9일의 한글날을 지나면서 보냈다. ‘한글’이라는 말의 연유를 찾아보니, 한글이라는 이름이 지어지기 전에는, 그 글자들이 시작되는 것을 보고는 ‘가갸글’이라고 말들을 해왔다고 한다. 그렇게 하다가 ‘한글’이라는 이름은 주시경 선생님이 짓게 된 것으로 ‘크다’, ‘바르다’, ‘하나’를 뜻하는 고유어 ‘한’에서 비롯되었다. 그 뜻은 큰 글 가운데 오직 하나뿐인 좋은 글, 온 겨레가 한결같이 써온 글, 글 가운데 바른 글(똑바른 가운데를 ‘한’가운데라 하듯이), 모난 데 없이 둥근 글(입 크기에 알맞게 찬 것을 ‘한’입이라 하듯이)이란 여러 뜻을 한 데 모은 그래서 많은 것을 담은 틈 없이 꽉 차서 모든 것을 나타낼 수 있는 글이, 바로 유구하게 물려받은 값진 유산의 우리글 이다. 그렇지만 애초에는 한자를 사용해오던 글자판에 한글이 다가오자 뭇 사람들은 새로운 글을 막되어먹은 상말로 여겨 언문(諺文)이라했고, 여자들이나 배워야할 암글, 자모음만으로 이루어진 반절(反切), 어린이들이 배우는 글이라고 여겨서 아햇글 등의 여러 가지로 가벼운 취급을 받았다. 그렇지만 본디 한글을 만들 당시에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으로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 하였고, 줄여서는 정음(正音)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그때의 분위기가 앞에서 말했듯이 한글을 상말로 여겨서 언문(諺文)이라고 비하했다면, 이에 반해서 자고이래로 중국으로부터 전해 받아 답습해서 우리 것이 된 한자 글을 진짜로 여겨 진서(眞書)라는 말을 갖다 붙여 얘기했다.
지금에 와서야 뭐를 알았는지? “우리껏은 좋은거셔”라는 말들을 하곤 한다. 청주에서 한자어를 뒤로하고 한글의 우리말을 소화해가며 이야기를 이끌어 가셨던 김 목사님이 연상된다. 목사님에게서 전해 받은 부부사이를 이르는 ‘가시버시’라는 우리말이 생각이 난다. 오래전에 소식지를 통하여 이야기했듯이 맨 처음으로 어떤 일이나 상황에 마주하여 직면하게 되는 일을 말하는 ‘마수걸이’, 가르거나 쪼개지 않고 생김새 그대로, 자연그대로 언제나 변함없이 라는 뜻의 ‘온새미로’, 또 말도 안 될 것 같은 ‘퍅’도 우리말이다. 그것은 가냘픈 몸이 갑자기 힘없게 쓰러지는 모양이나, 갑자기 성을 내는 모양이다. 세상에는 언어가 6,500에서 7,000여개 가까이가 있다고 하는데, 그 가운데 어떤 말은 시간이 가면서 없어지는가 하면, 어느 한편에서는 지금도 또 다른 말이 생겨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중에 문자가 있는 말은 300여개 밖에 안 되고, 문자가 있는 언어 중에 생명력이 있어서 존속되어갈 말은 30여개 밖에는 안 된다고 한다. 또 한자어를 하나 가져다 쓰자면, 삼희성(三喜聲)이라 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는 데에는 세 가지의 소리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갓난 아이 우는 소리, 다듬이 소리, 또 다른 하나는 책 읽는 소리이다. 우리는 우리의 말소리가 명맥만 유지하는 사라질듯 한 소리가 아니라, 기쁨을 담은 함성과 함께 드높여져가는 우리의 말소리를 내가며 살아야겠다.
공 동 체 소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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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터 공동체 가족
이은주 김복순 지명수 권희숙
채경일 주송례 진영택 김정화
박소웅 박정임 라홍채 최성재
최영애 정무래 박종만 박병민
진선미 박한솔 박진솔
* 여러 가지의 육신과 정신적 아픔 중에 있는 새터공동체 식구들의 건강한 몸이 되기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세요.
☻ 기도하며 함께 하신 분들
금성교회.충전교회.최선희.정무래.최영애.라홍채.박종만.진영택.이은주.공주원로원교회.최성재.김기홍.양오석.튼튼영어대전동구(연월순외13인).채윤기(박현실).추부소방서(11인).동춘교회4남선교회.이원교회.대덕교회.신건태.그리스도의집(옹인숙.3회).수영교회.유성반석교회.진명구.대성교회여전도회(5인).금산주부클럽(4인).주식회사EG(이광형).임정순.조정리교회(이정애).살림교회(박상용외13인).오정교회.동춘교회221목장(김봉숙).금산군모란회(4인).대한적십자사금산군추부봉사회(성삼순외1인).신영숙외3인
(호칭은 생략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