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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부에서 근무하던 시절, 숱하게 많은 사연을 접했습니다. 기록을 읽다가 주책없이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분노를 느끼기도 하고, 결국은 답이 없는 막막함에 도달하곤 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발버둥 치며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보려고 할수록 그물에 걸린 짐승처럼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원하게 돈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빚으로 빚을 막고, 카드로 카드를 막으면서 겨우 이자나 갚다가 그나마도 못 갚고.
물론 빈곤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 끝에 좌절한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하지만 남들과 비교해서 목을 매는 불나방 같은 이들도 분명히 있더군요. 남들은 모두 손쉬운 대박으로 부의 사다리를 올라가고 있는데 자기만 낙오되고 있는 것 같은 불안감에 조급증이 시작되지요.
'어느 세월에 쥐꼬리만 한 월급을 한 푼 두 푼 저축해서 부자가 되겠어. 인생 한 방인데 나도 승부를 걸어야지.' 그러고는 불나방처럼 승산 없는 게임에 몸을 던집니다. 돈 빌려서 주식 투자, 그것도 데이트레이딩, 돈 빌려서 술집 개업 같은 좀 더 투기적인 사업 그리고 피라미드에 다단계까지..
유감스럽게도 고위험 고수익 (high risk high return)의 전장은 게임의 규칙을 지배하는 극소수의 승자들이 독식하는 피비린내 나는 곳입니다. 어리바리한 양민들이 들어와 푼돈이라도 건져 살아나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인터넷 쇼핑몰의 몇 억 대박이 어떻고, 드라마 주인공은 죄다 외제차 끄는 재벌 2세에,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이야기해준다..물질적인 부가 인간의 가치까지 결정해버리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부의 피라미드 위로 올라가기만을 희망합니다.
아파트 평수 늘리기, 서울의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한 걸음씩 이사 가기, 자동차 배기량 늘리기가 한 인간의 자아 성장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 그나마 다들 조금씩이라도 사다리 위로 올라갈 수 있었던 고도 성장기에는 마약처럼 그 가속도에 취해 버티지만, 그 속도가 더뎌진 후에는 자신의 인생 자체가 실패한 것 같은 좌절감과 분노만이 남게 됩니다.
욕을 먹더라도 단순 무식하게 한번 말해 보겠습니다.
모두가 부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빈부격차가 심화되는 것에 대한 경계와 대책은 필요하지만 빈부격차 자체를 소멸시킬 수는 없습니다.
모두가 어느 수준 이상으로 잘 사는 것만을 사회의 목표로 삼게 되면 그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는 대부분의 사람은 불행합니다. 빈부격차에도 불구하고 각자가 자신의 현재 상태에서 지금보다 행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아귀의 허기처럼 충족될 수 없는 물질적 욕구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진 다른 행복의 가치를 일깨워야 하겠지요.
모두가 부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잘 사는 것만을 사회의 목표로 삼게 되면 그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는 대부분의 사람은 불행합니다. @visuallyDFRNT
하버드 로스쿨에서 연수를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석사과정(LLM) 학우 중에는 부탄 왕국의 공주님이 있더군요.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공주의 나라는 참 재미있는 나라였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은 2천 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교육과 의료를 국가가 보장하고 있고, 국민총행복(Gross National Happiness)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중의 하나랍니다.
그녀의 부왕은 국정 기본철학을 국민소득이 아닌 국민총행복 극대화로 여기고 있고, 국가경영전략은 의도적인 저속 성장과 개발 지연이라는 겁니다.
이 나라는 소박하나마 전통적인 가치와 문화를 안정적으로 지키고 있으며, 경쟁이 치열하지 않답니다. 그래서 부왕은 행복도가 높은 부탄의 국민들을 중국식 고도성장으로 인한 아노미 상태로, 빈부격차로 인한 갈등 상황으로 몰아넣고 싶어 하지 않는답니다.
또한 예부터 전해내려온 부탄의 아름다운 자연을 관광 산업과 건설 산업의 탐욕 아래 파괴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더군요. 성장은 추구하지만 다 같이 서서히 성장하길 원한다고요. 놀러갈 테니 왕궁에서 재워주겠냐고 농담 삼아 물어보니 선뜻 좋다고 하면서도 덧붙이기를, 자기네 왕궁은 검소한 목조주택에 불과하다고 하더군요.
물론 우리와 단순 비교하기 어려운 저개발국인 부탄이 자국이 처한 여건 하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모색하는 과정인지라 부탄의 경우가 보편적인 모델이 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이 고수하는 가치와 생각에는 분명히 배울 점이 있다고 봅니다.
어떻게 모두가
행복할 수 있냐고요?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이 세상을 구원합니다. 물질적 소비로 얻는 효용은 그 양에 비례하지 않습니다. 로마 귀족처럼 산해진미를 매일 먹고 토하고 다시 먹어대는 것이 아이가 생일날 부모 손을 잡고 중국집에 가서 먹는 짜장면에 비해 수천 배의 만족감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억대 가격이 나가는 오디오로 듣는 라흐마니노프가 스마트폰으로 듣는 라흐마니노프보다 수천 배의 감동을 주지도 않습니다. 온갖 좋다는 세계 여행지를 다 섭렵한 사람이 느끼는 여행의 감동이 생애 처음 기차를 타고 정동진에 가서 느끼는 감동을 능가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도 없습니다.
100배 더 많은 재화를 소비하거나, 100배 더 비싼 재화를 소비한다고 인간의 뇌가 지각할 수 있는 쾌락이 100배 늘어날 도리는 없지요. 아쉬울 것 없어 보이는 부유층이 마약 사건을 일으켜 법정에 서는 경우를 볼 때마다 발견하게 되는 것은 '권태'입니다.
좋은 차를 타고 맛있는 것을 먹고 여행을 가고 이것저것을 다 해봐도 시큰둥하다 보니 조금이라도 더 큰 자극을 찾아 마약으로 뇌를 속일 수밖에요. 법정이 주는 배움의 하나는 감동도 설렘도 없는 삶이란 겉만 번지르르한 지옥이라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부의 분배는 불평등해도 행복은 평등할 수도 있습니다.최소한의 기본 전제만 충족시켜준다면 말이죠. 중국집 짜장면이라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외식하러 갈 여유가 있어야 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느낄 줄 아는 감성을 교육받을 기회가 있어야 하고, 전철을 타고라도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여가가 주어져야 합니다.
법정이 주는 배움의 하나는 감동도 설렘도 없는 삶이란 겉만 번지르르한 지옥이라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colln egan
연재 3화 '아이들이 판사에게 물어본 것들'에서 소개한 가정공동체 '젬마의 집' 원장님은 운영이 어려운 여건에서도 열심히 문화단체에 편지를 쓰고 후원자들에게 부탁하여 아이들에게 한 번씩 뮤지컬과 오페라를 보여주고 스키장도 보내주려고 애쓰시더군요. 아이들에게 악기를 배우게 하여 어설프지만 합주도 시킵니다.
얼핏 생각하면 어떻게든 취업 공부를 열심히 시켜서 혼자 힘으로 먹고살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사치를 부리는 것 아닌가 싶었지만, 원장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삶에서 다양한 기쁨을 찾을 수 있는 능력과 경험을 바로 지금, 감수성이 예민한 시절에 주는 것이 직업 교육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이죠.
아이들로 이루어진 작은 합주단은 양로원과 병원 등을 찾아가 노인과 환자들에게 작은 위안을 줍니다. 이 속에서 아이들은 도움을 받기만 하는 대상이 아닌 남을 돕는 주체로서의 기쁨과 자존감도 느끼게 됩니다.
행복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회는 소수만이 승자가 될 수 있는 경쟁이 아닌 모두가 누릴 수 있는 다양한 행복의 가치를 존중해야 합니다.
먼 훗날 남들이 부러워하는 부자가 되어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차를 타며 행복해지겠다는 욕망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지금 내가 선 바로 이 자리에서 소박하나마 가족, 이웃과 함께 누리는 소소한 행복이 누구에게도 폄하되지 않고 존중되는 그런 사회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희망과 긍지의 꿈이 없다면 인간은 죽고 말리라.
그의 육체는 움직일지라도 그의 마음은 무덤 속에서
잠자는 것이리라.
땅이 없이는 인간은 꿈꿀 수 없으리라.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존엄하게 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굶주린 병사들에게서 빵부스러기를 빼앗으라. 그들은 죽지 않을 것이다.
신은 말했다. 인간은 빵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고.
굶주린 아이들에게서 음식을 빼앗으라. 아이들은 울지 않을 것이다.
음식만으로는 아이들 눈동자 속의 굶주림을 달랠 수
없을지니.
-멕시코 빈민가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그린 영화 <산체스의 아이들Children of Sanchez>주제곡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