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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의 비밀 22 강
옛날부터 동문 수학한 친구들은 가장 친한 친구들이다. 잘못하면 권력으로까지 비화될 수 있지만, 한 스승 아래서 배웠다는 것은 굉장한 하나의 가치관을 가지게 한다. 한 영 안에서 한 마음 안에서 배웠다는 것은 굉장한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향해 가는 동문들, 굉장히 중요하다. 같은 개념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히브리어의 구조를 보면 알렢 반과 요드 반, 쿠프 반이 있다. 알렢은 예슈아, 모든 것의 본질이다. 이것을 구원이라 한다. 예슈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지만 그 구원을 이루어가야 한다.
예슈아는 하늘, 그리스도는 땅.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 분이다. 땅은 내 마음이고, 내 마음
가운데 그 구원이 나타나는 것이다. 내 마음에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손으로 능력으로 되는 것이다. 알렢에 속한 영역은 다 나에게 적용(י)되는 것이다. 내가 핵심이다.
알렢에 속한 핵심 요소들은
ב베트, ג김멜, ד달렛, ה헤이, ו봐브, ז자인, ח헤트, ט테트 8 개이다.
8 은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성경은 1 부터 7 까지밖에 없다. 그것이 완성되면 8 로 들어간다. 그래서 이 8 요소들을 통해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다. 나에게서 이루어질 요소들도 8 개이다.
כ카프, ל라메드, מ멤, נ눈, ס싸멕, ע아인, פ페, צ짜딕이다.
각자는 쌍으로 역사한다. ח헤트(8)는 פ페(80)로, ט테트(9)는 צ짜딕(90)으로 가야한다. 이렇게 알렢에 속한 요소들이 나에게 역사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י)이다.
א알렢 반에서 반장은 ב베트이다. י요드 반에서 반장은 כ카프이다. ק쿠프 반에서 반장은 ר레쉬이다. 이 반장들의 모임이 바카르이다.
בכר 바카르 : 첫 열매, 장자권.
예수님이 하나님의 장자, 첫 열매 되신다. 하나님은 부르시면 장자, 첫 열매로 부르신다. 이것은 혈통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알렢 반을 아느냐, 요드 반을 아느냐, 쿠프 반을 아느냐로 결정된다. 아직 쿠프 반을 배우지 않았으므로 장자가 안되었다. 주님이 부활하셔서 첫 열매가 되셨고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 우리를 첫 열매라고 하신다. 이 말의 뜻은 하나님의 이 원리들을 알고 있는 자들을 장자라고 한다는 것이다.
장자는 모든 것의 시작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에서처럼 사냥만 하고는 장자라고 하면 안 된다.
장자권을 경홀히 여기면 안 된다. 삶에 대한 기본 원리를 경홀히 여기면 안 된다. 첫 열매들이 타락해버리면 온 집안이 다 망한다. 그래서 이 원리들에 신실한 자들에게 주신다.
알렢 반을 천부장, 요드 반을 십부장, 쿠프 반을 백부장이라고 한다. 알렢은 1 도 되고 1000 도 된다. 천부장은 에하드 부장, 하나 부장이라고 할 수도 있다. 백부장은 충만함을 말한다. 쿠프는 바늘귀 모양인데, 모든 것을 다 꿴다. 쿠프 반은 알렢 반과 요드 반을 다 결합시킨다. 쿠프가 없으면 다 따로 놀기 시작한다. 사실 내 안에서 이 원리들이 다 따로 놀아도 각자 나타나도 좋은 것이다. 그러나 결합되었다는 것은 운동을 배울 때 각 기술들을 처음에는 따로 배워야 되지만 시합을 나갔을 때 결합이 안되고 따로 놀면 안 된다. 시합에서는 자동적으로 기술들이 나와야 한다. 쿠프라는 것은 다 꿰어서 실체가 되게 한다. 이것을 결혼이라고 한다.
예수(א)와 그리스도(י)가 합쳐 지는 것이 결혼이다. 알렢은 예수, 요드는 그리스도, 쿠프에
오면 주가 되어서 주 예수 그리스도가 된다. 그분이 나의 주님이 되는 것이다. 쿠프가 되면 주님을 만나는 역사가 일어난다. 쿠프는 모든 세상과 영혼의 주를 만나고, 시합에 나가서 게임을 하고 삶을 살아낼 수 있게 된다. 쿠프 반은 기본 요소가 많지 않다. 초등학교 때 과목이 많고
대학원은 적은 것처럼 ר레쉬, ש쉰, ת타브 세 개밖에 없다. 반장은 레쉬이다.
רשת 레쉐트 : 그물, 네트
온 세상은 네트워크을 만들어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네트워크를 잘하면 리더쉽으로 인정받는다. 세상도 하나님의 것을 흉내 낸다. 마지막 때 적그리스도가 나타나 무엇을 하느냐면 사단에 속한 본질을 다 실현시키는 것이다. 사단에게도 쿠프 반이 있다. 사단도 온 세상을
레쉐트, 네트워크 하고 있다. 사단을 주로 만들려고 한다.
백부장의 반장은 레쉬인데, 사단에게 레쉬는 거짓예언자이다. 성령님이 쿠프 반을 담당하고 있는데, 즉 거짓 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다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성령님은 성령의 그물, 제자들을 부를 때 그물로 부르셨다. 그들이 그물을 던질 때 부르셨는데 다 레쉐트와 관련이 있다.
눅 5: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시몬의 그물이 합당한 그물이 아니었다. 시몬은 무슨 그물을 가지고 있었나? 시몬은 이후에 절대 찢어지지 않은 그물, 쿠프 반에 있는 레쉐트를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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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9:15 이방 나라들은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짐이여 자기가 숨긴 그물에 자기 발이 걸렸도다 사단의 왕국이 자기가 만든 그물에 걸려 넘어질 거란 소리이다.
시 140:5 교만한 자가 나를 해하려고 올무와 줄을 놓으며 길 곁에 그물을 치며 함정을 두었나이다 (셀라)
사단이 그물을 쳐 놓아 걸려들게 한다. 우리의 어둠이 스스로 만든 그물에 묶인다. 이 그물로는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시 25:15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바라봄은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이로다
쿠프 반의 반장 쿠프는 소망이다. 소망이 무엇이냐에 따라 무엇을 소망하느냐에 따라 그물이 만들어진다. 사단은 소망의 영역을 공격한다. 지금 인류가 소망하는 것이 무엇일까? 명예, 잘사는 것 등이다. 우리는 소망의 그물에 걸려 넘어진다. 사단이 엉뚱한 소망을 줘버리면 소망이 무엇이냐에 따라 다른 걸 꿰어버린다. 내 발이 빠져 나오려고 해도 소망이 엉뚱하면 안 되는
것이다. 원인을 찾을 길이 없다. 원인은 쿠프에 있다. 그분이 나의 소망이 되면 하나님의 원리들이(알렢반, 요드반) 나에게 꿰이게 된다. 찢어지지 않은 그물이 만들어진다.
시 31:4 그들이 나를 위하여 비밀히 친 그물에서 빼내소서 주는 나의 산성이시니이다
환상, 허상의 그물, 세상이 주는 소망의 그물에서 나와야 한다. 세상이 주는 소망 속에 갇혀버린 사람들을 구해내야 한다.
베드로가 요한복음 21 장에서 얻은 그물은 찢어지지 않는 그물이었다. 거대한 물고기 153 마리를 잡아도 찢어지지 않은 그물이었다. 예수님께 부름 받은 당시에도 찢어지는 그물을 가지고 있었어도 자기의 그물이 찢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소중히 여기며 생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많은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데.’ 하지만 찢어졌다. 요한복음 21 장에서 주님은 찢어지지 않은 그물을 주신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소망이시다. 그리스도는 쿠프이시다.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은 소망이 될 수 없다.
소망은 실제적으로 내 앞에 있는 것. 실제 이루어질 것에 대한 확신이 있는 것이다. 그냥 좋은 이야기가 아니라 내 마음에 반드시 실제 이루어질 것에 대한 소망이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사단에 넘어가는가? 대부분 사람들은 무엇에 대해 소망을 가지냐? 내가 살고 있는 세계가 이미지, 허상의 세계이기 때문에 실제 이루어질 것도 거기서 만들어낸다.
누가 나를 미워하면 내가 가질 수 있는 소망은 저 사람 언제 사라지나이다. 그 사람이 사라지면 할렐루야를 외친다. 왜 이런 소망을 가지느냐면 실제 이루어질 수 있는 영역에서만 소망을 가지기 때문이다. 근데 부활이라고 하면 내가 부활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에 부활을 소망으로 가지지 않는다. 아침에 커피 마시고 싶은 만큼이라도 부활을 소망하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세계가 아니라 내 허상의 세계, 이미지 속에 살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 안에서만 소망을 가진다. 하나님은 무슨 소망을 가지실까? 나의 소망과 나의 딸아이의 소망은 다르다. 하나님의 소망이 내 소망이 되어야지만 그물이 생기고 그 속에서 결합이 생겨서 하나님의 형상을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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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가 오셔서 하나님의 소망을 실제 믿을 수 있는 소망으로 만들어주셔야 한다. 모든 행복을 결정해 줄 수 있는 것이 소망이다. 모든 인류는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는데 소망을 가진 자는 행복할 수 있다. 교회 안에는 쿠프가 가득하다.
쿠프를 동물로 치면 원숭이이다. 원숭이는 흉내 내는 걸 잘한다. 닮은 짓을 잘한다. 소망은 실제로 오지 않았지만 다 닮은 짓을 하는 것이다. 소망에 대한 닮은 짓을 한다.
내가 그리스도가 될 것이다. 그러면 그리스도처럼 한다. 내가 부활 생명이 된다. 그러면 부활생명의 닮은 짓을 하게 된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는 원숭이가 가득하게 된다. 하나님은 소망을 가진 자들을 원숭이에 비유하신다. 소망을 가지면 세상이 빼앗아갈 수 없는 행복이 찾아온다.
사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은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הלך 할라크 : 걷는 것. 숨을 쉬면서(ה) 훈련(ל)하고 적용(כ)하는 것.
לך 레크 : 훈련(ל)하고 적용(כ)하는 것.
주님이 오시기 전까지 우리의 삶은 레크레카이다.아브라함에게 있는 부르심이 우리의 부르심이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לך -לך 레크레카 :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할 때 가라. 너를 향해서 걸어라.
나를 향해 걸으라는 것은 지금 내가 진짜 내 모습이 아니라는 뜻이다. 끊임없이 훈련하고 적용해서 진짜 내가 되어야 한다. 진짜 내가 저기에 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 저기에
있다라는 뜻이다. 그래서 성경은 계속 걸으라고 한다. 여호와의 도를 걸으라고 한다. 계속 걷다 보면 신경질이 난다. 얼른 도달하고 싶기 때문이다.
요즘 세대는 인스턴트 세대이다. 인스턴트 식품을 먹기 때문에 영성도 그렇게 되어버렸다. 성령 안에서 걸으라고 하면 신경질 낸다. 성령 안에서 3 분, 3 분 영성 이런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절대로 안 된다. 알렢 반을 요드 반에 적용하려면 80 년이 걸린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다에서 앙망이 쿠프이다. 앙망은 קווה 카바, 쿠프가 실제화 된 것이다.
행복하면 절대 피곤하지 않다. 피곤은 인생에 찌든 피로감이다. 소망도 없고 훈련을 안 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나의 쿠프라는 것은 내가 그리스도의 형상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님이 인간으로 오신 이유는 인간이 신의 레벨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인성이 신성이 되는 걸 보여주신 것이다.
행 24:15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 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사도바울은 이 소망 때문에 죽을 고비를 다 넘겼다. 이 소망은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라는 것이었다.
קום 쿰 : 부활. 소망(ק)에 대한 진리(מ).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것을 믿으면 곧 나에게는 그것이 소망이 된다.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부활시키신 하나님이 나에게도 그렇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중국 삼자교회에서는 부활에 대해서 설교하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되면 문제는 중국 교회에서 알렢 반과 요드 반은 할 수 있지만 쿠프 반은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중국 공산당이 그들을 잡아둘 수 있게 되어버린다. 삶은 여전히 엉뚱한 소망을 가지고 살게 된다. 쿠프 반에 안 오면 각자 따로 놀다가 결국 하나님의 형상을 완성하지 못하게 된다. 쿠프 반은 정말 중요하다. 쿠프 반의 핵심은 부활인데, 부활에 대한 소망을 가져야만 쿠프 반이 완성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이 유일한 나의 소망이 되게 하시는 분이다. 부활의 생명으로 모든 것들이(알렢 반, 요드 반, 쿠프 반) 연합되어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한다.
창 1:9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קו 카브 : 소망하다
창세기에서 카브는 물이 ‘모여라'로 번역되었다. 그 물들은 하늘 아래에 있는 하늘의 권위 아래에 있는 물들이다. 하늘을 사역하고 나타내는 물이다. 그 물들은 소망하라는 것이다. 그 물은
멤, 진리이고 내 생각이다. 내 생각은 모여라, 한 장소(엘 마콤 에하드)로!
א ָחד
מקֹום
אל־
엘 마콤 에하드 : 한 장소를 향하여
마콤에서 쿰이 보인다. 부활의 한 장소이다. 예루살렘이다. 부활의 한 장소로 모든 물들은 모여라. 부활의 하나님, 그리스도에게로 모이라는 뜻이다. 그리스도에게만 소망을 두라는 것이 창세기 1 장 9 절이다.
내 생각이 부활로 다 모이면 마른 땅이 나타난다.
יבשה 얍바샤 : 마른 땅, 뭍 - 형상(ש)의 집(ב)을 지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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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마른땅, 형상의 집에 말씀의 씨앗을 뿌릴 수 있다. 하나님의 원리들(알렢 반, 요드 반)을 가지고 형상의 집을 지을 수 있다.
ק쿠프 : 라인, 줄. 카프(כ)가 실재화(ו) 되는 것.
줄로 생명을 구한 여인이 있다. 라합이다. 소망으로 생명을 구한 것이다. 소망을 그리스도에게 두었다. 라합이 내린 줄은 붉은 줄이다. 아담에 관한 줄이다. 아담은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 줄로 구원을 받은 것이다.
우리 삶의 진정한 행복은 부활을 기다리는 것이다. 내 생각이 다 부활로 모일 때 기쁨과 평강이
나를 사로잡게 된다. 행복한 느낌을 주는 것, 소망을 주는 것에 대한 상징이 무지개이다. 일곱 빛, 일곱 색깔, 일곱 별, 일곱 영 이게 다 쿠프 반에 있는 것이다.
קשת 케쉐트: 무지개
홍수로 다 멸하고 무지개를 보여주신 것은 '내가 너희들의 소망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여호와를 기다린다는 것은 여호와가 소망이라는 것이다. 내 경험이, 허상이 보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만들어낸 나를 봐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되어야 한다. 이것을 '그리스도는 영광의 소망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שת 쉐트 : 셋 - 아벨 대신 하나님이 주신 생명형상(ש)에 대한 완성(ת). 셋은 인류의 마지막 이름이다. 가인과 아벨과 셋이 있다.
אבל 아벨 : 생명(א)의 집(ב)을 훈련(ל)하다.
그러다가 허무하게 죽었다. 우리도 아벨과 같은 존재인 것 같다. 그러나 아벨은 셋(형상에 대한 완성)으로 완성된다.
קשת 케쉐트 : 무지개 - 소망(ק)을 형상(ש)에 대한 완성(ת)으로 보는 것.
사단은 결정적인 것을 알고 있다. 동성애자들은 여섯 색깔의 무지개로 상징된다. 일곱의 원리는 주님의 빛이다.
שבע 쉐바 : 일곱. 형상(ש)에 대한 집(ב)을 보는 것(ע).
일곱빛이 없으면 형상에 대한 집을 보지 못한다. 이것을 포로기라고 한다. 어둠 속에서 일곱 빛이 없으니까 형상이 뭔지 모른다. 나에 대해서도 보지 못한다. 나를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보지 못한다. 일곱 빛이 있으면 하나님의 형상을 보기 때문에 하나를 빼버렸다.
동성애자들도 사랑을 이야기한다. 미국에 가면 크리스천보다 이들이 더 인격이 좋기 때문에 동성애에 관대하다. 하버드대 학과장급 교수의 30%가 동성애자들이다. 정말 나이스하고 신사적이고 멋진 사람들이다.
여섯 빛깔은 가장 인간적인 것을 상징 한다. 인간적인 사랑으로 최고에 오른 것이다. 동성애는 고대 헬라에서 발달되었다. 헬라 세계, 그 중에도 아주 높은 차원의 그룹들이 철학을 이해하고 우주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한 것을, 그 사랑을 동성애라고 하였다. 왜 동성애가 미국과 유럽을 뒤덮고 있는지 의문이었다. 가장 인간적이고 싶은 것. 이게 666 차원이다. 6 을 통해 7 을 가야 하는데 가지 않고 6 이 끝이다는 것이다.
은 하나님의 형상이 되어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냥 나를 위해서 신의 수준에(창세기 1 장) 다다르고 나 자체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이다. 일곱째 날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가서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을 이야기한다. 목적이 그분과 같이 사는 것인데 6 이라는 것은 그 목적이 아니라, 창세기 2 장이 목적이 아니라 1 장에서 끝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에게 무지개를 주신다. 우리의 소망을 하나님의 형상을 완성하는데 두신다. 그러면 인생이 무지개 빛깔이 될 것이다.
롬 4: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קוה 카바 : 바라다
쿠프이다. 아브라함은 쿠프의 왕이다.
롬 5: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 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이 영광의 소망을 기뻐하는 것을 우리는 훈련해야 한다. 우리가 교회에 자꾸 모이는 이유는 영광의 소망을 기뻐하기 위함이다. 우리의 소망은 부활이다.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되는 일을 기뻐하는 것이다. 이 소망이 우리를 사로잡을 때 행복이 떠나질 않는다.
롬 15: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 자체가 우리의 소망이다. 하나님을 소망되게 하시는 분이 그리스도시다. 모든 알렢 반과 요드 반은 하나님의 요소이다. 이것을 다 꿰면 하나님이 나온다. 그리스도가 나온다.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다.
그리스도를 소망으로 내 안에 두지 않으면 기쁨과 평강을 누리지 못한다. 그리고 성령님의 가장 강한 파워는 소망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성령이 아니고는 이 소망을 가지게 할 가르침이 없다. 학교를 다닌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권능으로 이 소망을 가질 수 있다. 성령의 권능이 우리를 사로잡기를 원한다.
그런데 부활이 소망이 안 되는 이유가 부활하고 나서 주님은 하실 일이 있는데 나는 무엇을 과연 할 수 있나에 대한 그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진정한 소망이 안 된다.
내가 하나님의 형상이 된다는 것은 부활이다. 그런데 왜 쉰(형상)에서 끝나지 않고 타브가 있는가?
איש 이쉬 : 사람. 알렢(א)에서 쉰(ש)까지 하나님의 손(י)이 역사하는 것.
이쉬가 우리의 최종적인 목적이다. 그런데 왜 쉰에서 끝나지 않고 타브에서 끝나는가?
ת 타브 : 목적
가서 뭘 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주님은 우리를 향한 목적을 가지고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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