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약과 예수 그리스도
몰약(Myrrh)의 히브리어는 ‘로트’(טל), ‘모르’(רמ)이고, 헬라어는 ‘스뮈르나’(σμύρνα)이다. 영어 ‘머르’(Myrrh)는 히브리어 ‘모르’에서 온 것이다. 몰약은 일반적으로 콤미포라(발삼오르덴) 종류의 나무와 관목의 껍질로부터 추출된 향기가 좋고 쓴맛이 나며 노란색을 띤 적갈색의 함유수지 고무이다. 몰약은 에센셜오일의 여왕으로 불린다. 고대로부터 향수, 향, 의약품 등 다양한 용도로 애용된 값비싼 사치품으로 중요한 무역상품이었다. 이집트에서는 미라를 만들 때 방부제로 몰약을 사용하였다. 성경 시대에는 주로 아라비아, 아비씨니아(에티오피아), 그리고 인도에서 생산되어 그리스, 로마 등으로까지 수출되었다.
성경 여러 군데에서 몰약이 나오는데,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 지을 수 있는 부분들이다.
창세기 37장 25~28절에서 요셉의 형제들은 이스마엘 사람들(또는 미디안 상인들)에게 은 20에 요셉을 팔아넘겼다. 당시 은 20개는 통상적인 노예 값이었다. 상인들은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던 중이었다. 이 장면은 가룟 유다가 은 30을 받고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예수를 팔아넘긴 장면을 연상시킨다. 창세기 43장 11절은 야곱이 요셉에게 줄 예물로 유향, 꿀, 향품, 몰약, 유향나무 열매, 감복숭아(아몬드)를 준비하는 모습이 나온다. 요셉은 자기 형제들에게 배척을 당했으나 이스라엘 민족을 굶어죽을 위기에서 구출하는 구원자로 등장하는데, 여기서 요셉은 장차 오실 메시아를 앞서서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또한 ‘꿈꾸는 자’로서 선지자의 면모도 보여준다. 고대 사회에서 꿈은 신적 정보를 제공한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다. 선지자들과 왕들에게 주어진 어떤 꿈은 신적 계시의 수단으로 간주되었다(『IVP 성경배경주석』, 97).
몰약은 성전 및 제사장과 연관되어 거룩한 관유를 만드는데 사용되었다. 관유는 액체 몰약, 육계(계피), 창포, 감람기름(올리브유)을 섞어 향을 제조하는 법대로 향기름을 만들었다. 관유는 회막과 그 안에 있는 기구들과, 아론과 그 아들들, 즉 제사장들에게만 바르도록 허락되었다. 이스라엘의 일반 백성들에게는 관유를 붓는 것과 제조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이를 어기면 백성에게서 끊어질 것이라고 하였다(출 30:22~33).
몰약은 왕이 사용하는 물품이었다. 에스더는 아하수에로 왕에게 나아가기 전에 정한 규례대로 열두 달 동안 여섯 달은 몰약 기름을 썼고, 여섯 달은 향품과 여자에게 쓰는 다른 물품을 써서 몸을 정결하게 하였다(에 2:12). 시편 45편에서는 “왕의 모든 옷은 몰약과 침향과 육계의 향기가 있으며...”(시 45:8) 라고 쓰고 있다. 아가서에서 왕의 연인(신부)은 왕에게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 품 가운데 몰약 향주머니요”(아 1:13) 라고 노래한다. 아가서의 다른 부분들에서 왕에 대한 묘사들을 보도록 하자.
5:1 내 누이, 내 신부야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나의 몰약과 향 재료를 거두고 나의 꿀송이와 꿀을 먹고 내 포도주와 내 우유를 마셨으니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많이 마시라
5:5 일어나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 때 몰약이 내 손에서, 몰약의 즙이 내 손가락에서 문빗장에 떨어지는구나
5:13 뺨은 향기로운 꽃밭 같고 향기로운 풀언덕과도 같고 입술은 백합화 같고 몰약의 즙이 뚝뚝 떨어지는구나
그런데 신부에게도 몰약과 유향이 동일하게 적용되는 면도 있다. “네 두 유방은 백합화 가운데서 꼴을 먹는 쌍태 어린 사슴 같구나 날이 저물고 그림자가 사라지기 전에 내가 몰약 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리라”(아 4:5~6). 여기서 몰약 산과 유향의 작은 산은 지리적 장소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신부의 젖가슴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라고 한다(『아가페 성경사전』, 493).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와 나도풀과 나도와 번홍화와 창포와 계수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아 4:13~14).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세 가지 예물(황금, 유향, 몰약)을 드린 것에도 몰약이 포함되어 있었다(마 2:11). 몰약을 탄 포도주는 일종의 마취제인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직전에 그분께 주어졌으나 받지 않으셨다. 극심한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 예수를 따르던 여인들이 제공했을 것이다(관례적으로 여인들이 사형수에게 마취제를 제공하곤 했음). 예수께서는 육체의 고통을 모두 감내하는 길을 택하셨다.
막 15:23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신지라
몰약은 유대인들의 장례 때에도 사용되었다. 밤에 예수를 찾아왔던 니고데모가 예수의 장례식에 쓰기 위해서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을 가져왔다. 몰약과 침향을 섞은 것은 최고가품이었다. 리트라가 무게의 단위라면 약 57근이나 되는 양으로 아낌없는 헌신의 표현이다(『IVP 성경배경주석』, 1568).
요 19:39~40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이상과 같이 몰약이 예수 그리스도와 연관된 용례들을 살펴보았다. 요셉은 예수 그리스도 곧 메시아를 예표하는 인물이자 선지자로서 은 20에 몰약과 향품을 취급하는 상인들에게 팔려 애굽으로 보내졌고, 요셉의 아버지 야곱에게서 몰약이 포함된 예물을 받았다. 몰약은 제사장들과 성전의 기구들을 거룩하게 하는 관유로 사용되었다. 몰약은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아가서의 왕과 신부의 사랑의 관계를 나타낼 때 집중적으로 사용되었다. 에스더는 왕에게 나아갈 때 몸을 정결하게 하기 위하여 몰약 기름을 여섯 달 동안 사용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3중직은 주지하다시피 제사장, 왕, 선지자이다. 그리스도의 3중직을 동시에 수행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몰약이 드려졌다. 아기 예수께 동방 박사들이 몰약을 포함한 예물을 드렸고,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받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서 니고데모(산헤드린 70인 회원으로 요한복음 3장에 등장했던 인물)는 많은 양의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시신에 발랐다. 성경에서 몰약이 나오는 곳은 위의 구절들 외에는 잠언 7장 17절에서 음녀가 어리석은 남자를 유혹할 때이다. 성경에서 몰약은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와 연관되어 사용된 특이한 사례를 보여준다.
<참고 서적>
아가페성경사전편찬위원회, 『아가페 성경 사전』(서울: 아가페서원, 1996).
서울말씀사 편집부, 『최신판 성구사전』(서울: 서울말씀사, 1998).
존 윌튼, 빅터 매튜스, 마크 샤발라스, 크레이그 키너, 『IVP 성경배경주석』(서울: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2021).
첫댓글 몰약이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되는 내용과 설명을 잘 해주셨습니다. 자세히 읽으며 음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몰약의 영어 myrrh를 Daum 영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미나리 과에 속합니다. 미나리의 향을 맡으면 희미하게나마 몰약의 냄새를 맡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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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rrh
1.몰약 2.향·향료로 사용됨 3.미나릿과의 향기 짙은 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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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myrrh의 국제발음기호는 [məːr] 이고 머ㄹ 정도로 읽으면 되겠습니다.
미나리과라고 하는 것은 좀 생소하고, 감람과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올리브나무와 유사한 것 같습니다. 지역에 따라 나무가 조금씩 다른 것 같긴 합니다. 정교회에 들어가면 몰약 향이 짙게 배어 있다고 합니다.
네, 미르라고 발음하는 것은 너무 심하고요. 머ㄹ가 어색하면 머 정도로 쓰면 되겠습니다.
@노베 공감합니다.
장로교(통합)의 신문인 한국기독공보에 실린 아래 글도 읽어보면 몰약에 대해서 더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몰약 사진도 몇 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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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탄생과 죽음에 함께한 '몰약'
http://www.pckworld.com/article.php?aid=8902853539
링크 글 흥미롭게 잘 보았습니다. 이스라엘에 거주하며 쓴 글이므로 현장의 느낌이 생생하게 잘 전달되는 좋은 글이네요. 성구사전의 성경 구절을 따르다 보니 인용 구절이 거의 유사하군요.^^ 감사합니다.
네, 사진도 잘 보고 비슷하거나추가적인 설명이 잘 되는 것 같습니다.
잘 읽어 보았습니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몰약과 예수 그리스도를 쓴 글이 얼마 되지 않네요. 그런 차에 이 의미 깊은 포스팅을 보게 되어 좋습니다.
좋은 성경 묵상을 올려 주셔서 잘 읽고 지식과 께달음을 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