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폐기론자, 즉 구원파 계열이나 그런 유사한 마인드를 가진 이단이나 극단적 세대주의자들은 십계명을 율법으로만 보고 섣부른 판단을 합니다. 그러나 찐 복음의 수여자이며 말씀의 성육신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모범인 주기도문은 십계명을 요약한 것입니다. 십계명 중 엿새 동안 일하라는 명령의 의미를 구분선 아래 칼빈의 설명으로부터 잘 이해하고 믿으면 좋겠습니다.
신5:12-14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
엿새 동안 일하라는 명령의 의미
이제 모세가 오늘의 본문을 통해 전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신 5:13)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일을 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우리가 그런 목적으로 태어난 것은 분명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가 세상에서 게으름을 피우며 사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가 일하는 데 필요한 손과 발은 물론 우리가 해야 할 일들까지도 주셨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아담은 타락 이전에도 동산에서 정원을 돌보아야 했습니다(창2:15).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이 수행하고 있는 일들은 죄에 대한 징벌입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라"(창 3:19). 우리는 우리의 조상 아담의 원래의 상황, 즉 사람이 애써 일하지 않아도 편안하게 살 수 있었던 상황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책망을 받아 고통스럽고 힘겨운 일을 하도록 정해지기 이전에도 이미 어떤 형태의 일을 해야 했습니다. 어째서 그런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쓸모없는 나무 토막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은 우리의 본성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분명히 우리는 일생 동안 어떤 형태로든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의 본문이 우리에게 명령하는 것은 우리가 엿새 동안은 반드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율법 시대에는 그 날의 목적이 안식이 아니었던 다른 엄중한 날들도 있었습니다. 가령, 주중에 열리는 절기 축제 같은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 수가 일 년에 나흘 정도로 아주 적었기에 하나님은 여기에서 그것들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시고 단순히 안식일에 관해서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엿새 동안 일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자신이 우리에게 일주일 중 엿새를 주셨으니 우리가 주중의 한 날을 온전하게 자신에게 바치는 데 인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려 주시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마치 그분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주중의 한 날을 택해 다른 모든 일을 중단하고 그날을 온전하게 나에게 바치면서 오직 나의 율법을 읽고 실천하라고, 너희에게 선포되는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라고, 교회에 나와 내게 예배하면서 확신을 얻으라고, 내 이름을 부르면서 너희가 내 백성의 무리에 속해 있음을 고백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그렇게 지나친 것이냐? 너희가 일주일 중 엿새를 너희 자신의 필요와 사업상의 여러 일들을 수행하는 데 사용한다면, 너희는 나를 위해 그 정도의 시간은 할애해야 하는 것 아니냐? 내가 너희에게 일주일 중 칠일이 아니라 오직 한 날만 요구하면서 많이 양보했음에도, 만약 너희가 그 날조차 아까워하면서 나를 위해 너희의 시간 중 칠분의 일을 할애하는 데 인색하게 군다면, 너희는 용서받지 못할 만큼 배은망덕한 것 아니냐? 나는 너희 모두에게 일생이라는 긴 시간을 주었다. 너희에게 햇빛이 비추는 것은 너희가 나의 선함을 깨닫고 내가 너희의 관대한 아버지임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내가 오늘도 너희에게 햇빛을 비추는 것은 너희가 그 빛을 통해 각자의 길을 살피고 자신에게 필요한 일을 수행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니 그런 내가 너희에게 칠일 중 하루만이라도 세상의 염려에 휩싸이지 말고 너희의 일에서 물러나 나에 대해 생각하라고 요구하면 안 되는 것이냐?"
그러므로 우리는 엿새 동안 일하라는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진 명령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지 않을 경우 우리의 배은망덕을 비난하기 위해 주어진 일종의 허가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칼빈, 『칼빈의 십계명 강해』(Vision Book), pp.160~163.
첫댓글 엿새 정도는 일을 하지만 하루 정도는 온전히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건하게 존숭하는 정직하고 겸손한 믿음을 보여야 합니다.
매일, 언제나 일한다는 것은 사실상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위한 여백과 공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공감합니다.
안식일(The Sabbath Day)
안식일은 첫째, 그 근원이 하나님이시다. 즉 하나님이 이 날을 시작하셨다. 하나님께서 6일간에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만물을 창조하시고, 제 7일에 쉬셨다(창2:1). 둘째로,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날이다. 인간만이 아니라 만물에게 복 주시는 날이다. 즉 육신은 육적인 일에서 해방되고, 영혼이 영적인 일을 하므로 하나님께로 부터 준비한 축복을 받는 날이다. 이날에 육적인 노동을 하고 영적인 노동을 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축복이 주어지지 않는다. 세째로, 거룩한 날이다.
그 이유는 택한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하고, 하나님께 경배하고 감사하며,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신령한 양식과 영력을 받는 날이다. 끝으로 하나님은 안식일에 쉬심으로 인간에게 모범을 보여 주셨다. 또 쉴 것을 명령하셨다. 그 이유는 인간의 신체와 마음과 사업을 그 조건에 맞게 지으셨기 때문이다. 이날은 하나님께로부터 유래되어 만물에게 복주고 그 영장인 인간에게 영과 육신에 축복하시는 날이다. 이날은 성수하는 여부에 따라 신앙도수를 측정하는 계기가 된다.
1.어의
안식일에 관한 말씀은 성경에 매우 많다. 그런데 주의 할 것은
창세기에 안식일에 관한 단어가 없다. 그러나 안식일이란 단어만이 없는 것이지 안식일에 관한 기사이다. 그 안식일은 귀한 날인데 위에 언급함과 같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모범을 보여 주실 뿐 아니라 가장 귀한 날이므로 성수하실 것을 명령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신약의 예수님도 지킨 것이다. 이 날은 신앙의 조상들에게 잘 지키어 진 것 같다. 창세기에 신앙의 조상들이 이 날을 지켰다는 기록이 없다. 그러나 신앙의 조상들이 하나님께 경배하고 제사드린 날들이 어느 날이겠는가? 이 날이 아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창세기에 성수 안식일에 관한 기사가 없는 것이다. 또 그 후대에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이 타락하여 이날을 지키지 않음으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명령하고, 가르칠 뿐 아니라 그 후대인들에게 교훈고 율법으로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위의 법을 모세에게 주실 때에 그를 시내산에 불러 40여일 만에 주셨다. 그것은 두 돌비 중에 하나에 속했는데 10계명 중에 네째 계명이었다. 그 네째 계명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날을 거룩히 지키라였다.
이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언약이요, 또 약정서였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를 섬길 때 이 계명을 지키고, 그대로 시행케 되기 때문이다. 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고귀한 축복이 따르게 된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그 법을 지켜 행하지 않을 때 하나님의 진노가 따른다. 그러므로 그것은 언약서이다. 만약 어떤 하나님의 백성이 그것을 파괴하든지 아니면 그것을 멸시할 때에 그것이 하나님과 바른 신앙관계인가?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지 못한 그들에게 보상이 주어질 수 있겠는가 아니다.
보다 그들에게 진노와 형벌이 따르게 된다(느13:15-18). 이 안식일에 관한 교훈과 경고는 성경에 매우 많이 기록되어 있다. 그 성경 귀절들은 출애굽기 16:23, 35:23, 레위기 16:31,민수기 15:32, 신명기 5:12, 열왕기하 4:23, 역대기상 9:32, 23:31,역대기하 2:4,8,13,23:4,8,31:3,36:21, 느헤미야 9:14, 시편92: 이사야 1:13, 58:13, 66:23, 예레미야 17:21,22,24,27,애가2:6, 에스겔 20:12, 24, 22:8, 26, 23:38, 44:24,45:17,46:1,3,4,12, 호세아 2:11, 아모스 8:5 등이다.
신약에도 적지 않게 기록되어 있다. 마태복음 12:15, 마가복음 1:21, 누가복음 4:16, 사도행전 13:14, 골로새서 2:16 등이다. 그 외에도 이에 관한 성경 귀절은 콘콜단스를 참고 하기를 바란다.92)이 안식일은 히브리어로 샵밭이다. 이 샵밭은 명사인데 동사 샤밭에서 나온 것이다. 샤밭는 노동으로부터 쉰다"끝인다는 뜻도 있지만 또한 옮긴다는 뜻도 있다. 이것은 명사로 되어 샵밭이 되었다. 그것은 안식일또는 쉬는 날로 되었다. 그 의미를 보면 우리의 심신이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노동에서 그치든지 아니면 쉬고, 그 마음과 몸과 영혼은 거기에서 옮겨 하나님께로 나가서 신령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의 의미는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육신에서 영혼에게로, 인간에게서 하나님께로 물질의 세계에서 영적인 세계로, 세상의 일에서 주님의 신령한 일로 전환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런 깊은 뜻을 바로 인식하지 못하여 일방적인 면과 그릇된 면으로 나아가서 범죄하며 범법하게 되었다. 즉 습관적이고 형식적이 되어 버렸다. 이때에 주님께서 바르고 참된 진리의 면에 서서 나아갈 때는 그들과 충돌이 있게 되었고, 투쟁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는 무섭고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에 빠지게 될 것이다.위의 히브리어 샵밭는 헬라어로 십바톤이다. 이것은 헬라어 역인 70인경(LXX)에 의하여 헬라어화 한데서 기인한 것이다. 유감스러운 것은 안식일에 관한 고찰에 있어서 그릇된 이론을 제기하는 자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소위 고등비평가라고 하는데, 그들 중에 일파는 안식일이 바벨론(Babylon)의 신화에서 왔다고 한다. 즉 바벨론 설형문자로 된 문서(Babylon Cuneiform)에 의한 신화에 Sabattu,또는 Sabattum이라는 단어가 있다. 그것은 히브리어 Sabbatton과 같은 형과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성경과 그 신화의 차이를 비교하여 보면 신화는 첫째로, 쉬는 날이 아니고 속죄일이다. 즉 신의 노함에서 면하고 사유함을 받기 위한 것이다. 둘째로, 바벨론 비문에 의하면 반드시 5째 또는 6째로 나타났는데 그 둘 중에 어떤 하나가 제7일과 관계를 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째로, 그 해의 어떤 달에 7째,14째,19째,21째,28째 날들은 왕, 제사장 그리고 의사들이 신의 진노를 주의하지 않아도 되는 날로 유명하며 불을 주의하는 유명한 날로 정했다.
이 날에 왕은 불에 굽지 않은 음식을 먹고 조복을 입지 않고, 그의 병거를 타지 않아야 했다.93)
이런 신화의 안식일이 성경의 안식일과 어떻게 같고, 그 영향을 관계가 있고, 둘째로, 창조와 관계를 가지고, 세째로, 거룩하고 복된 날이고,네째로,인간에게 주어진 고귀한 날,즉 영혼의 복받는 날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안식을은 바벨신화의 Sabattum(사발툼)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2. 안식절의 유래
안식의 유래는 위에서 잠간 언급했다. 그러나 여기서 다시 상세히 기록하면 아래와 같다. 안식일은 하나님께로부터 유래한다. 즉 안식일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친히 이 날을 제정하시고, 하나님께 친히 쉬셨고, 하나님께서 그 날을 엄수케 하므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한다. 그 깊은 교제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된다. 이 날을 지키지 않을 때 하나님과 유리되고, 하나님의 뜻을 불순종하고, 반역하는 것이 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거절하고, 사탄의 유혹에 빠져서 저주와 멸망을 취하게 된다.(창2:1-3)또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준 이 귀한 날을 인류가 범하고 하나님을 떠나 그를 대적하고 자행자지 하므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과 다시 언약을 세우셨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내산에 불러 올리시고, 그에게 안식일의 언약을 하신 것은 이스라엘과의 언약이다. 그 이유는 그는 이스라엘의 대표자요,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또 모세가 그들에게 이 언약을 공포할 때에 아멘으로 재확인했고, 굳게 인증한 것이다(출16:20,레23: 신5:참고).
성경을 상고하여 보면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는 이 날을 엄수함으로 그 언약을 고수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자는 제일 첫 단계로 이 날을 버리고, 범하게 되는 것이다(느13:15). 그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외형적인 형식이고, 행실이나, 그것을 지키는 행실과 형식의 배후에는 신앙과 순종의 내형적인 마음과 신앙이 깃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행실만이 아니라 그 근거가 되는 마음과 신앙을 보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마음을 보시고 신앙을 보신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이 날을 마음을 드려 신앙으로 지키고 실행하기를 원하시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첫째는 하나님이 안식하신 날이다. 즉 하나님이 제정하시고, 하나님이 모범으로 보여 주시고, 또 인간을 위한 축복으로 장식하신 날이다. 법은 제정자와 받은 자가 다 지키는 것이 근본 원리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지키셨다. 그리고 인간이 이 날을 지키는 것이 당연하다. 인간이 이 날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를 경외하고, 그의 뜻과 섭리를 순종하고 그의 일에 참여하여 충성함이 된다. 그러므로 성수 안식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언약을 실천하는 증거이다. 그 실천은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신앙의 척도이다.
둘째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의 교제의 날이다. 하나님은 창조자이시고, 인간은 피조물이다. 하나님은 그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인격자이시고, 그의 창조물인 인간도 인격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 날을 주시어 지키게 하신 것은 인격의 하나님이 인격자인 인간과 인격적인 교제를 원하신 까닭이다. 그러므로 창세기 3장 8절에 교제의 날 즉 영교의 날을 정하신 것이다. 그 말씀을 우리 한글 성경과 영어 성경에는 날이 서늘 할때로 되어 있으나 히브리어 원어에 보면 도저히 이런 번역이 나올 수 없다. 즉 레루카 하욤이다. 여기의 (레-루)는 부사이고, 루카는 바람이라는 뜻도 있으나 영이란 뜻도 있다. 하욤은 그날이란 뜻이다. 하욤에서 앞에 관사가 붙은 것으로 버아 그 날은 전에 기록한 그날을 지시하는 것이고,
한번만 있은 날이 아니고 두 번 이상 계속하여 지켜 내려 온 날이다. 즉 하나님과 아담과 그의 아내 하와가 약속하고 상호 지켜 교제하던 그 날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과 이브가 범죄하고 하나님이 오실 것을 알고 그 날에 숨은 것이다. 그 날은 영교의 날,즉 영의 날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안식일에 인간과 인격적인 교제를 원하신다.
세째는, 거룩하고 복된 날이다. 하나님께서 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신 날이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므로 그 하나님이 날이니 거룩하다 .구약에 보면 거룩한 제물에 접촉된 것이 거룩하다고 했다. 그렇다고 하면 그보다 더 거룩한 거룩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관계를 가진 그 날이야 더욱 거룩하지 않겠는가! 또 하나님께서 쉬신 날이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정하여 준 날이요,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약속된 날 즉 성별된 날이니 거룩하다. 일주일에 많은 날이 있으나 각각 자기를 위하여 일하다가 이 날만은 하나님과 약속하고 만나서 교제하는 교제의 날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하나님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이 피차 교제하는 날인 거룩한 날이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축복을 주시는 날이다. 즉 하나님의 사랑과 거룩한 뜻을 받는 날일 뿐 아니라 축복과
은혜를 주어서 인간, 즉 하나님의 자녀요 선민인 그들에게 땅위에서 영육으로 생명과 평안과 행복을 누리게 하는 날이다. 인간은 이 날에 축복을 공급받는 것이다. 이 날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 날을 범하고, 어기는 것은 불신과 반역하는 것이다. 탕자의 소행이다.
네째, 장래 일의 그림자이다. 이것은 타락한 인간 중에 택한 선민에게 주신 장래의 계시요 예언이다. 즉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오시고,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 만나는 귀중한 시점인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다(히4:9) 함은 영원한 안식의 예표이다. 그 보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지상의 인간의 안식도 된다. 즉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성결케 하고 주님이 되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주되심을 의미하는 것이다.94)
3. 안식일을 지키는 방법
안식일을 철저하고 엄격하게 또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 그 이유는 안식일은 위에 언급한 바와같이 하나님이 제정하신 날이요,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과 영교하는 날이요, 은혜와 축복을 받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날에는 자유인이나, 종이나 손님까지라도 쉬라고 했다. 출애굽기 20장 8-11절을 보면
네 문안에 유하는 것은 다 쉬라고 했다. 네 문 안에란 뜻은 네 집안이 아니고 네 땅에 있는 도성이나, 부락(신5:1414:21)등을 모두 의미한다.
또 문은 마음을 들어가는 곳, 큰 마당과 궁전에 둘러막은 곳을 출입하는 문이다. 이 문은 집아나, 창고, 천막의 출입구에 적용된 것이 아니다. 그 예가 느헤미야 13장15-22절에 나타나 있다. 위의 성경 귀절에 의하면 안식일 전에 성문을 닫고 안식일이 지나기까지 열지 않았다. 성경에 안식일에 쉴 것이며 (마23:2831). 다른 날에 일 할 것이다. 노동이나, 작업이나, 상업은 다른 날에 할 것이다. 이 안식일에 경작과 추수(출34:21), 술틀을 밟고, 물건을 나르는 것(느13:15), 무역 하는 것(암8:5).식물을 파는 것(느13:15)을 금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생활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안식일에는 만나도 주시지 않으시고(출16:26),나무를 하고(민15:32)불을 피우는 것(출35:3)도 금했다.95)또 여행과 오락과 사사로운 말도 금하고, 여호와 안에서 즐기라고 했다(사58:13-14).
그러므로
(1)구약은 안식일을 성수할 것만 아니라.
(2) 안식일 성수하는데 거리끼고, 방해되는 것도 제하여 버리고,
(3) 인간적이고, 육신적이고, 그리고 세상적인 모든 것을 제거하게끔 하였다. 신약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은 안식을을 철저히 지켰다. 누가복음 6장 6절에 회당에 들어가서 성경을 가르쳤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예배드린 것이다. 마가복음에도 같은 기사가 있다. 이 말씀은 육신적인 일은 쉬시고, 반면에 신령한 사업에 충성하신 것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셨다(눅 6:6-11). 예수님은 대적하는 자들에게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멸하는 것 어느것이 옳으냐? 고 하셨다(눅 6:914:3).그러면서 주님은 안식일을 정의하기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막 2:28)고 하시면서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마12:8,눅6:5,막2:28)고 하였다. 요한복음 5장 17절에는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했다. 이것은 안식일은 성도가
(1)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기념하고,
(2)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영교할 뿐 아니라,
(3)신령한 가정 식구들이 모여 단락한 생활을 하여야 하며
(4) 주님의 거룩하고, 선한 사업을 실시하는 날임을 보여준다. 그래서 사도시대는 안식일이 주일로 변경이 되었다.
그 이유는 이 날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요20:1, 마28:1,막16:1)의 날이요, 성령의 강림의 날(행2:1-)이요,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서 계시를 받은 날이요(계1:)의 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약은 안식일에 육신의 일만 쉬는 것을 말씀했으나 신약은 안식일에 신령한 일을 할 것을 말씀한다. 그러므로 성경에 근거하면 안식일에 육신의 일은 쉬고 영적인 일은 힘써 할 것이다.
4. 영적의미
안식일에 대한 영적인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죄인들에게 주어지는 영적인 안위와 평화이다. 그것은 신약에 말씀하신 이 한 말씀으로 알 수 있다. 즉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막 2:27-28)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제정하시고, 거룩하고 복되게 하여 인간에게 주시고 하나님과 인간이 영교하게 하신 것은 인간을 위하여 주신 것이다. 그렇다고 인간이 안식일의 종이 되거나,
또는 그날을 위하여 창조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오시고, 인간은 하나님께 나가서 영적으로 교제하고, 거룩함을 누리고, 축복을 받게 함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죄인인 인간에게 거룩함을 주고, 저주와 진노의 자식인 인간에게 거룩함을 주시고 축복을 받게 함에 있다. 그러면 안식일을 지키면 거룩하여지고, 또 안식일을 지킴으로 복을 받게 되는 것인가? 아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수단과 방편이다. 안식일은 지키는 내용은 하나님과 영적 교제이요, 하나님과 사귀여 영적 가정식구가 됨에 있다. 그 영적 가정 식구가 되고, 영적 교제를 하는 것은 죄인이 불가능하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먼저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 그 죄와 악을 청산하고, 진노와 형벌에서 면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죄인들로 죄악을 사유함을 받고, 진노와 형벌에서 면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면 안식일이 그것을 하며, 하나님께서 안식일로 하여금 그렇게 하게 하였는가?아니다. 안식일은 영적인 사건의 그림자이다. 그 안식일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 실체는 인격적 존재이다. 즉 인자이다. 그는 안식일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이 인자는 신성과 인성을 가지신 자로 신성으로는 하나님편에, 인성으로는 인간편에 서서 양편을 중재하신 중재자이시다. 그 중재자는 누구인가? 마가복음 2장 28절에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되어 있다.
헬라 원어에 보면 ()되어 있다. 이에 대하여 American Standard Version(미국 표준역)은 So that the Son of Man is Lord even of the Sabbath로 되어 있다. 즉 그러기 때문에(그래서)인자는 안식일까지라도 주인이다는 것이다. 본문을 위의 성경 귀절과 함께 생각하면 그 안식일이 인간을 위한 것이다. 또 안식일의 주인은 인자이다. 안식일의 주인인 인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된 인간을 위해서 사죄와 구원(거룩함)과 평안과 영생(축복)을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내용으로 한 날이다. 그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죄인을 거룩하고, 복되게 하는 날이다. 그래서 안식일은 하나님인 그리스도께서 인간에게 오시고(임마누엘 마1:23-),인간이 그를 맞이하는 귀한 날이다(마2:1-12).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눅2:14)가 있는 때이다. 즉 그리스도의 초림의 날을 에언하고, 그리스도를 맞이하는 성탄절이 아닌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출31:12-13)고 증거 하였다.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표징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한 것이다. 성령으로 (사8:8) 처녀 마리아에게 잉태한 것이다.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는 사죄와 구원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다(마1: 20 -21).예수는 자기의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근거하면 안식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즉 초림에 관한 예언이다. 레위기 24장 8절에 매 안식일에 새 떡을 여호와 앞에 진설하는 것은 감사의 예물도 되지만 하나님의 신령한 양식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희생에 대한 감사제사이다(성막참조).또 민수기 28:9-10절을 보면 1년 되고 흠없는 수양을 번제로 드리게 되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과
구속의 죽음을 예언한 것이다. 즉 임마누엘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하나님 앞에서 속죄 구원을 예표한다. 신명기 5장 12-15절에는 하나님의 구원을 말씀하고 있다. 이 구원은 애굽에서의 구원이나, 영적으로는 죄악에서의 구원을 의미한다.(시92:1-15, 사56:24-758:14). 이상은 구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안식일과의 관계를 생각했다.이하에서는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와 안식일과의 관계를 생각하여 보자! 마태복음 12장 1-8절을 보면 안식일과 주님과의 관계를 말씀하고 있다.즉 안식일과 진설병의 관계를 말씀하시고, 성전과 주님의 관계를 말씀하셨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셨다. 누가복음 13장 10-17절에 안식일에 주님은 병자를 고치셨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의 구원사역을 말씀하여 주며, 요한복음 5장 17절은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일한 것을 반대할 때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선언했다. 이 모든 말씀으로 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의 상징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은 죄인들에게 속죄 구원만 아니라 내세의 영생 복락과 영원한 천국의 축복과 영생도 허락한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에서는
이날이 주일로 되었다.
그날은 주의 죽으심을 포함한 부활의 날이요, 초대 교회의 성령 강림절이다. 또 주님이 부활하여 나타나 보이셨고, 초대 교회가 예배를 드린 날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사역도 의미한다. 그의 신성으로는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인성으로는 인간과 관계를 가지고 교제케 하시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계시어 화목케 하셨다.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죄인을 변호하시고, 인간의 죄를 속하시고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속죄함을 받은 인간으로 한 영적 가정을 이루게 하셨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하여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 교제하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에게 오시어 영적으로 교제하며, 예배를 받으시는 거룩한 날이요 복된 날이다.
<출처: 한국컴퓨터선교회-KCM사전>
@장코뱅 내용이 너무너무 길지만 인내하면서 빠르게 읽어 보았습니다 새롭게 알려 주는 영적인 지식들을 많이 접할 수 있어서 좋네요. 창 3:8이 아담과 하와가 여호와를 만나는 날, 영적인 교제를 하는 정해진 날이라는 해석이 신선하네요.
안식일은 인간이 육체의 일을 쉬고, 영적으로는 하나님과 친교하면서 하나님의 것을 누리고 흡수해서 영적 고갈을 막고 충전하는 거룩한 날이며 복을 받는 날이며 회복의 날이라는 걸 알려주시네요.
사람을 위해서 안식일을 제정해주신 하나님의 뜻을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코람데오 그렇군요. 이 댓글로 읽은 셈 치겠습니다.
칼빈은 주기도문이 십계명 두 돌 판의 요약이라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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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그리스도께서 주신 기도문은 여섯 가지의 간구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 세 가지의 간구는 우리와는 상관이 없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되어 있는데, 우리는 이 점을 꼭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나머지 세 가지의 간구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꼭 필요한 것들과 관련되어 있다. 하나님의 율법이 두 개의 돌 판으로 나뉘어져 있어서, 첫 번째 돌 판은 경건의 의무들(pietatis officia)을 담고 있고, 두 번째 돌 판은 사랑의 의무들(caritatis officia)을 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기도문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고려하고 구하라고 명하심과 아울러,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의 유익들을 구하는 것도 허락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우선시하는 마음이 되어 있을 때에만, 올바르게 기도할 수 있는 마음 상태에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데만 마음이 팔려서,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하나님의 나라를 도외시하는 기도를 드린다고 한다면, 그것은 본말(本末)이 전도(顚倒)된 정말 너무나 터무니없는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칼빈주석: 공관복음』.
엿새 동안 일 하라는 의미는 제7일, 안식일을 준수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설명 잘 들었습니다. 7일 중에 하루라도 하나님과 교제하며 거룩하게 지내라는 요구를 하심으로써 그 하루를 지키지 않을 경우에는 내가 엿새나 너희에게 주고 모든 것을 하도록 허락해 주었는데 그것도 못하겠다면 이는 배은망덕한 것이다 라고 책망하실 수 있는 근거로 삼기 위함이라는 거군요. 6일 일하는 것은 허용이지 의무사항은 아니라는 설명 잘 알겠습니다. 좋은 포스팅입니다.
요약과 좋은 댓글로 도움을 얻습니다.
원죄의 결과인 징벌을 의미하는 구절을 한번 찾아 보았습니다.
창3:17-19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