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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한국전쟁 Ⅱ [1950.10. ~1950.12]
1950. 10. 1. 서울 시청 일대 NARA
1950. 10. 1. 소공동 일대 NARA
1950. 10. 1. 반도호텔(지금의 롯데호텔)에서 바라본 서울 시가지, 멀리 중앙청이 보인다. NARA
1950. 10. 1. 반도호텔에서 바라본 을지로 NARA
38선 돌파하는 국군
38선 돌파하는 T-34 전차
1950.
10. 7. 불타고 있는 김포 비행장 NARA
1950. 10. 10. 함흥집단학살 현장 NARA
1950. 10. 10. 함흥 집단학살 현장에서 가족을 찾아 헤매면서 울부짖는 아낙네들 NARA
이미 숨진 엄마의 시신을 붙잡고 하염없이 울고 있는 어린 남매의 모습. 이들은 이곳을 지나던 영국군과 호주군에 의해 안전한 곳으로 데려갔다.
교실이 불타고 일터로 나간 엄마를
대신해 동생을 데리고 학교 운동장에서 수업을
받는 소녀의 모습.(1950년.10월)
대구에서 한국군 헌병들이 부역자들을 구덩이에 몰아넣고 처형 준비를 하고 있다. 미 군사고문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인천에서 생포된 인민군 포로들이 인식표를 목에 걸고 피복 지급을 기다리고 있다.
1950. 10. 11. 서울 교외, 부서진 북한군 전차 위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당시 38선 이북이던 양양에서 국군이 북한 측의 선전게시판을 소각하는 모습
북한의 한 학생이 자기가 그린 태극기를 든 채 살려달라는 애원을 하고 인민군 병사는 엎드려 목숨을 구걸하고 있다.(1950. 10. 21. 평양).
대량 학살 현장에서 가족의 시신을 확인하고 오열하는 북한 할머니
태극기와 성조기를 앞세운 차량이 평양 시내로 진입하고 있다.
퍙양탈환 환영대회에 환호하는 평양시민들
1950년 10월, 태극기를 흔들며 거리로 나온 평양 시민들.
1950년 초겨울, 경기 연천의 한 모습이다. 농부가 소를 끌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유엔군에 억류된 북한 주민들.
한 소년이 잠든 동생을 업고 막막한 눈길을 던지고 있다
1950. 10. 12. 미조리호 군함에서 청진항을 향해 함포사격을 가하고 있다 NARA
1950. 10. 12. 원산. 학살된 시신들
1950. 10. 영동, 생포한 북한 측 유격대원들
▲ 1950. 10. 13. 함흥. 우물에서 학살된 시신을 건져 올리고 있다
1950. 10. 13. 경기도 파주, 참혹하게 학살된 시신들 NARA
1950. 10. 18. 전화에 그을린 중앙청 NARA
1950. 10. 18.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 멀리 북악산과 중앙청 돔이 보인다. NARA
1950. 10. 19. 함흥. 시신더미에서 가족을 찾고 있다 NARA
1950. 10. 19. 함흥. 지아비의 주검 앞에서 오열하는 지어미. NARA
1950. 10. 19. 함흥. 학살에는 남녀가 없었다 NARA
1950. 10. 20. 400여 명의 낙하산부대가 평양부근에 투하되고 있다 NARA
1950. 10.22. 평양의 학살 현장 NARA
태극기 파는 사람 6.25 전쟁 혼란중에도 발빠른 벤처기업가(?)가 태극기와 유엔기를 팔고 있다.
1950년 10월 28일 서울모습
평양상공에 미국 비행기에 의해 공습을 받은 여파로 폭파된 집의 파편 속에서 나이든 할머니와 그녀의 손자가 어슬렁 거리고 있다. 한국전쟁 동안 대략 200만명의 시민이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1950. 10. 30.
▲1950. 11. 1. 전란으로 폐허가 된 서울.
▲1950. 11. 23. 함경도 갑산. 미군 폭격으로 성한 집이 드물다
장진호 전투 인해전술의 중공군
흥남철수 부두의 피난민들
불타는 흥남항과 흥남철수 지원하는 미해군의 127 전함
중공군 참전에 밀려 후퇴하는 유엔군이 혹한 속에 휴식을 취하고 있다.
*
북한지역을
탈환한 국군들을 환영하는 북한 주민들 (1.4후퇴전)
* 국군입성을 환영하는 북한 주민들
*
6.25 전쟁 기간 초토화된 평양중심가
* 폭격맞은 평양시와 벽보
*
폭격맞은 평양 대동교
*
50년10월 함흥 북한살해 정치범사망자 확인
* 인민군의 함흥집단 처형현장
▲ 1950. 10. 22. 평양, 북한 주민의 학살 현장. 누가 그들을 죽였을까?
1950. 11. 1. 서울 중앙청 앞 지금의 문화관광부 자리, 주민들이 폐허더미에서 땔감이나 돈이 될만한 물건을 찾고 있다
1950. 11. 1. 황해도 평산에 진격하는 유엔군을 두 여인이 전신주 뒤로 불안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NARA
1950. 11. 2. 원산의 한 성당, 폐허가 된 성당 내부를 신도들이 청소하고 있다 NARA
1950.
11. 2. 적십자사에서 피난민에게 구호물자를 나눠주고 있다 NARA
1950. 11. 2. 거리에 버려진 아이들이 트럭에 실려 고아원으로 가고 있다. 눈망울이 초롱한 아이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트럭에 실려온
전쟁고아들
1950년11월
2일. 전쟁고아들이 트럭으로 실려와 서울의 한 고아원에 내리기 직전의 모습
식사하는 전쟁
고아들
1950년11월 2일. 고아원에 방금 도착한 아이들이 통조림으로 첫 식사를 하고
있다.
1950. 11. 5. 국군과 유엔군이 수복한 북한의 어느 지역(평산)에서 주민들이 지역 대표와 치안대장을 뽑고 있다. NARA
1950. 11. 6. 북한의 어느 농촌, 탈곡한 볏단을 달구지에 싣고 있다 NARA
1950. 11. 11. 바지 저고리들의 포로들. 총이나 한 번 제대로 잡아보고 포로가 되었는지?
뜨게질 배우는 고아원 원생들, 1950년 11월 12일. 가톨릭교회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원생들이 수녀들의 도움으로 뜨개질을 배우고 있다
1950. 11. 유엔군이 원산에 상륙하고자 상륙용 소형 함정에 옮겨 타고 있다
1950. 11. 15. 영흥, 유엔군들이 생포한 유격대원들
1950. 11. 20. 국경지대, 미군들이 소달구지로 보급품을 운반하고 있다 NARA
1950. 11. 23. 함경도 갑산, 미군 폭격으로 성한 집이 드물다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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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전장을 순시하는 맥아더 사령관. 가운데 인물은 리지웨이 사령관.
▲ 1950. 11. 13. 함흥 덕산광산, 482명을 생매장한 갱도에서 시신을 꺼내 늘어놓은 것을 한 아버지가 아들을 찾고 있다. "제발 내 아들이 아니기를..."
1950. 11. 13. 지아비가 생매장된 갱도 어귀에서 오열하는 지어미. "날라는 어찌 살라하고 가시리잇고"
.
▲ 한 어머니가 서울 남쪽의 한 마을에서 지뢰 파편에 다쳐 우는 아들을 데리고 미군을 뒤따라가 가고 있다
1950. 11.29. 최전방의 한국인 간호사들 NARA
▲ 김창룡 특무대장과 여배우 홍성기 감독.
1950. 11월, 방첩대(CIC)본부에서 기록영화를 촬영할 당시 홍성기 감독이 사전 연출지시를 하는 장면이다
1950. 12. 1. 부산 임시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를 등록하려고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NARA
1950. 12. 3. 평양, 부서진 대동강 철교를 넘어 남하하는 피난민 행렬 NARA
1950. 12. 3. 평양, 남행 피난민 행렬 속의 한 소녀.
1950. 12. 4. 평양을 떠나 대동강을 건너 후퇴하는 국군 NARA
1950. 12. 6. 황해도 사리원, 남행하는 피난열차에 피난민들이 몰려들고 있다. NARA
미군의 폭격을 받고 있는 원산 시내.
중공군이 횡성지구 전투에서 고지로 돌진하고 있다
서부전선에서 생포된 중공군들이 국군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있다
1950. 12. 8. 경기도 금촌, 삼팔선을 넘어 후퇴하는 유엔군 차량
1950. 12. 18. 북한군에게 뿌린 귀순 권유 전단
1950. 12. 9. 끊어진 한강철교[
1950. 12. 9. 중공군의 참전으로 혹한 속에 후퇴하는 유엔군 NARA
남하하는 피난민들
1950. 12. 10. 포화에 불타는 마을.
[
1950. 12. 10. 중공군의 참전으로 강추위 속에 후퇴 행렬. 한 병사가 너무 추운 날씨로 모포를 뒤집어쓰고 있다.
1950. 12. 11. 고단한 피난길.
[
1950. 12. 12. 한강 부교를 통하여 후퇴하는 차량들
1950. 12. 12. 피난민들이 한강을 나룻배로 건너고 있다 .
1950. 12. 12. 유엔군들이 인천항을 통해 장비들을 후송시키고 있다.
1950.
12. 12. 유엔군들이 후퇴하면서 다리를 폭파시키고자 폭약을 장치하고
있다
1950년 가을, 국군 위문공연을 바라보는 군인들
끔찍한 전쟁 속에서도 군인들의 사기를 높이고 마음을 달래주는 다양한 공연들이 이어졌다.많은 문화예술인들이 군예대를 조직해 트럭과 천막을 무대 삼아 재담과 노래로 공연을 펼쳤다. 초가집 위에 올라가 위문공연을 보는 군인들의 모습. 지붕이 위태로워 보일 정도다.
1950. 12. 12. 흥남부두, LST 함정에 가득 탄 군인과 피난민들. 미처 함정에 오르지 못한 피난민들이 발을 동동거리고 있다. 대부분의 피난민들은 원자탄이 투하된다는 말에 피난 행렬에 나섰다고 한다. 몇 날의 피난 길이 50년이 더 지났다
1950. 12. 14. 서울역, 남행 피난민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1950. 12. 16. 흥남, 국군과 유엔군들이 후퇴하고자 부두에서 수송선을 기다리고 있다.
1950. 12. 16. 폭격에 엿가락처럼 휘어진 철교
1950.12.16. 흥남부두에서 후퇴하려고 수송선을 기다리는 병사들 NARA
1950. 12. 17. 보급품을 실은 화물 열차가 폭격에 불타고 있다
1950. 12. 18. 대구. 훈련소에서 교육을 마친 신병들이 전선으로 가고자 대구역전 광장에 집결해 있다
1950. 12. 18. 대구역 전방으로 떠나는 신병들
국군 신병들이 열차편으로 전선으로 떠나기 전의 모습. 비장하면서도 애띤 모습이 눈길을 끈다.
1950. 12. 18. 대구역. "총알을 요리조리 잘 피해서 어예든동 살아오이라." '어무이 걱정 꽉 붙들어 매이소. 어무이 아들 아잉기요. 내는 꼭 살아돌아올 깁니다."
1950.12.18. 흥남에서 후퇴하여 묵호항(동해)에 수송선에서 하선하는 병사들 NARA
1950. 12. 19. 묵호, 흥남에서 철수한 장비를 묵호(동해)항에 내리고 있다.
전장의 육군 소장, 김백일 , 신병들을 모아놓고 연설하는 김백일 소장. 육군 1제군단장인 김 소장은 유엔군의 반격과 함께 가장 먼저 38선을 돌파, 혜산까지 북상했으며 12월 흥남철수작전 때 10만명의 피난민 수송을 지휘했다. 1951년 3월 비행기 추락으로 순직했다. 1950. 12. 19. 묵호진.
1950. 12. 21. 경북 왜관. 낙동강 철교 어귀에 부서진 북한군 소련제 탱크.
1950. 12. 24. 흥남, 유엔군들이 철수 후 부두를 폭파시키고 있다. NARA
1950. 12. 24. 유엔군이 흥남에서 철수하고 텅빈 흥남항 NARA
1950. 12. 24. 유엔군이 흥남에서 철수하고 불타는 흥남항 NARA
▲ 1950. 12. 26. 전차도 후퇴대열에. 흥남항에서 출발해 부산항에 도착하고 있다
1950. 12. 27. 흥남, 얕은 수심으로 수송선이 해안에 닿을 수 없자 유엔군들이 바다에 뛰어들어 LST로 가고 있다.
1950. 12. 27. 인천을 떠나 선박으로 부산항에 도착한 피난민들 미국 기록문서 보관청
1950. 12. 28. 서울, 피난민들이 강추위 속에 한강 얼음을 깨트리며 나룻배로 남하하고 있다.
1950. 12. 28. 끊어진 한강 철교, 오른쪽은 임시로 만든 부교
1950. 12. 29. 양평에서 생포된 포로들 NARA
대구포로수용소에서 신문 받는 북한군 포로들
학살된 피난민
수복당시의 서울역
서울탈환전중인 국군들
인천상륙작전을 위해 승선하는 17연대 장병들 (부산항)
일본 동경의 미군부대에 입대한 재일 학도병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