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2. 24
미래통합당이 탄생했다.
중도 보수 통합을 기치로 내건 신당 이름을 두고 말이 많다. 미래라는 단어가 왜 들어갔느냐, 통합이라는 이름이 너무 진부하지 않느냐 등등.
일단 ‘미래’부터 따져보자. 정당 이름에 ‘미래’ 혹은 ‘새’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유권자에게 나름 신선한 느낌을 줄 수 있다. 그뿐 아니라 미래통합당의 ‘미래’는 정치공학적 의미도 담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미래한국당이라는 위성 비례 전문 정당을 만들었다. 신당 이름에도 ‘미래’라는 단어가 들어가야 유권자들이 미래한국당과 미래통합당이 관련 있음을 인지할 수 있을 터다. ‘미래’가 신당 입장에서 여러모로 필요한 단어인 셈이다.
‘통합’이 진부하다는 주장에는 공감이 간다. 과거 우리나라 정당의 이합집산이 그만큼 자주 있었기 때문이다. 민주통합당, 대통합민주신당, 통합민주당 등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은 통합이란 단어를 선택하고는 했다. 과거 ‘통합’ 단어를 쓴 정당 대부분은 지금의 여당, 즉 진보 측이었다. 이렇게 보면 과거와 지금의 차이를 알 수 있다. 과거에는 대부분 진보 측이 분열했던 반면, 탄핵이라는 엄청난 정치적 사건 이후에는 보수가 분열했다. 이는 우리나라 정치 현실에서 집권 여부와 상관없이 열세에 몰리는 측이 항상 분열함을 보여준다.
신당 이름부터 거론한 이유가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신당을 겨냥해 ‘미래통합당’이 아니라 ‘과거통합당’ ‘도로새누리당’이라며 “탄핵 반대 세력과 친박 세력이 다시 손을 잡은 것, 그 이상이 아니다. 미래통합당을 보면서 우리 국민들은 탄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비난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인사들 언급은 일면 타당하다. 하지만 이런 언급 속에는 여당 처지를 합리화시키는 측면도 엿보인다.
‘도로새누리당’이라는 주장을 살펴보자. 도로새누리당 비판은 현재 미래통합당이 새겨들어야 할 측면이 있다. 신당 지도부는 자유한국당 지도부 플러스 알파로 구성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식이라면 과거 새누리당 지도부를 총망라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통합당에 새롭게 수혈된 젊은 층이 없다면 이런 식으로 지도부를 구성할 수밖에 없다는 변명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도 않다. ‘브랜드뉴파티’ ‘같이오름’ ‘젊은보수’ 등 2030세대를 중심으로 한 3개 정당이 지난 2월 16일 미래통합당 합류를 선언했다. 이들 정당 대표의 평균 연령은 35세 미만이다.
이런 젊은이들이 미래통합당에 합류한 것에 대해 통합당은 고마워만 할 것이 아니라, 이들을 통해 통합당이 과거와 달라졌음을 보여줘야 한다.
지도부 구성은 지나갔으니 어쩔 수 없다손 쳐도, 선대위 구성은 달라야 한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지도부보다 선대위가 유권자 눈에 잘 띄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통합당이 중도층까지 아우를 수 있을까다. 통합은 했지만, 통합의 얼굴이 보수를 연상케 하는 인사들이라면 중도층에 어필하기 어렵다. 유감스럽게도 유승민 전 바른미래당 대표는 통합당 출범식 때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이를 두고 말이 무성하다.
유승민 전 대표가 아직도 불만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아마 유 전 대표가 통합의 전제 조건으로 내걸었던 “탄핵의 강을 건너자”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판단해서일 것이다. 통합당이 출범한 지금도 탄핵 문제는 정리되기는커녕 일단 덮고 보자는 분위기다.
▲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가 2월 1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출범식 ‘2020 국민 앞에 하나’에서 축사하며 “환호합시다”라고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탄핵 문제에 대한 이런 식의 미봉책은 여당에 또 다른 빌미를 제공한다. 여당이 “국민은 탄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비판을 가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여당의 이런 비판은 이번 총선 전략의 일환일 수 있다. 민주당이 과거 지향적 전략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악재는 계속 나오고 있는 반면 이를 잠재울 수 있는 혁혁한 성과는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악재는 숱하다. 코로나19와 관련해서 29번과 31번 환자가 보여준 것처럼 지역사회 감염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는 점, 경제는 ‘안 좋다’는 표현이 부족할 만큼 위기 상태라는 점, 대선을 앞둔 미국이 북한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어 남북관계가 언제 풀릴지 모른다는 점, 임미리 교수 칼럼으로 표현의 자유 침해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검찰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시행되는 갖가지 조치가 정권 핵심의 의혹을 덮기 위한 행위라는 의구심을 다수 국민이 갖고 있다는 점 등이 그렇다. 민주당이 당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기서 아주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민주당의 위기관리 능력이 아주 낮다는 사실이다. 임미리 교수의 ‘민주당만 빼고’ 칼럼에 대해 민주당이 과잉 대응한 것이나, 그 이후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된 이후에야 뒷북 사과를 했다는 점은 민주당의 위기관리 능력 부재를 보여준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가 2월 18일 ‘마침내’ 사과했지만 문제가 커질 대로 커지고 여론이 나빠질 대로 나빠진 이후였다.
민주당의 위기관리 능력과 관련해서 한 가지 더 지적하고 싶은 점은, 민주당이 지지 세력에 끌려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친문 세력이 임미리 교수를 선관위에 고소하고 있는데, 이런 식이면 문제는 더욱 커지고 권력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깊어진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일언반구 말 한마디 없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이 시장을 방문했을 때, 문 대통령에게 “(경기가) 거지 같아요”라고 한 상인의 신상을 털고 이 상인을 비난하는 상황이 여권 지지자에 의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 역시 여권에 대한 거부감만 더욱 키울 뿐임에도 청와대나 여당은 한마디 말이 없다. 지금 여권 지지자 행위는 민주당에 절대 도움이 되지 않음에도 이들에 대해 자제하라는 메시지는커녕 한마디 말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 구사하기 가장 쉬운 총선 전략은 탄핵을 상기시키는 옛날 얘기를 하면서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다. 뚜렷한 성과는 보여줄 것이 없고 그래서 미래를 말해봤자 유권자에게 먹히기 힘든 상황에 과거 정권의 실책을 부각시켜 현 야당을 공격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선거 전략일 수 있다. 이 때문에 더불어민주당은 유권자들이 계속 야당 하면 탄핵을 연상하게 만들려고 노력할 것이 분명하다.
통합당은 이런 여당의 예상 가능한 공격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하는데 지금 하는 행동을 보면 그렇지 못한 것 같다. 한마디로 전략 부재는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통합당이 뚜렷한 전략을 갖지 못하고 여당 실책에 의한 어부지리만 누리려고 한다면 이것도 심각한 문제다.
이런 여야 상황을 볼 때 이번 총선에서 대한민국 미래의 비전을 보기는 힘들 것 같다. 선거는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그러나 우리의 선거는 미래는커녕 현재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기회조차 만들어주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 미래는 우리 스스로 각자 알아서 대비해야 한다는 것인지.
신율 /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 2047호 (2020.02.26~2020.03.03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