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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e 새 세상을 위하여 싸우라
Text Rm 12,1-3
(1)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3)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1. 생활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현실의 체제에 대한 불만 섞인 이의를 제일 많이 하는 세대가 2~30대입니다. 저는 그런 현상이 당연하며, 더 나은 세상을 위하여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여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 불평해라. 지금까지의 세상은 내가 젊었을 때 꿈꾸고 불평하며 싸운 결과로 만들어진 세상이니 너희에게 맞지 않는 것이 정상적이다. 이제 앞으로의 세상은 너희가 주축이 되어 살아야 할 세상이니 너희가 이의를 제기하고 혁신을 이루어서 너희들이 꿈꾸는 좋은 세상을 만들어라.’(실제는 속으로만 ㅎㅎ)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은 지금의 노년 세대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노년 세대들이 젊었을 때, 이의를 제기하고 이 이의에 대하여 박해하는 세력들에 피 흘림으로 맞서 싸워서 이루어낸 세상이 지금의 세상입니다. 지금의 세상에서 불합리한 것들을 발견하고 불의한 것들이 보이며, 개선해야 할 무엇인가가 있다면, 침묵하거나 외면하지 말고 강력하게 수정을 요구하는 싸움을 벌여야 합니다. 거룩한 불만이 세상을 고치고 자기 자신도 그 고쳐진 세상에 맞는 사람으로 고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개혁은 현실보다 더 정의롭고 사랑이 가득한 세상을 향한다는 원칙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개혁은 세상에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한다는 사명을 부여받은 기독교회에도 주어진 명령입니다. 오늘 롬12,1-3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는 말씀을 함께 나누면서 은혜받고자 합니다. 은혜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2. 먼저, 1절을 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본문의 ‘그러므로 형제들아’는 1~11장의 복음으로 성도가 된 은혜를 받은 사람에게 요구되는 실천적 삶을 말합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는 육신과 심령, 생각과 삶 등의 일부가 아닌 전인격적 헌신으로 드려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산 제물’은 율법 시대처럼 짐승을 죽여서 불태워 드리는 제물이 아니라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살아계시는 삶 자체를 제물로 삼는 것을 뜻합니다. 또한, 그런 제물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제사야말로 성도가 드릴 ‘영적 예배’라고 강조합니다.
우리는 죄인이었고, 구원받을 자격이 없었으며, 하나님과 원수 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의롭다고 함을 받았고, 새로운 생명을 얻었습니다. 이 생명을 얻은 사람은 이제 삶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은혜를 받은 자는 반드시 반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신앙은 지식이 아니라 반응입니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변화는 단지 의무나 종교적 열심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의 변화된 삶은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억지로 순종하는 삶이 아니라, 감격으로 순종하는 삶이 참된 예배자의 삶입니다. 나의 시간, 에너지, 재능, 말, 태도, 관계, 심지어 일상생활 전체를 매일의 삶 속에서 드리는 헌신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주일 한 시간이 아니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의 우리 삶 전부를 원하십니다. 진짜 예배는 예배당 안에서 드리는 종교의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합당하게 드리는 삶 전체의 헌신인 것입니다.
어느 시대에서나 하나님은 이렇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를 드리는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에스겔 예언자는 22,30에서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았으나 얻지 못하였으므로…”라며 헌신할 사람을 찾으시는 하나님을 나타냈습니다. 하나님은 무너진 사회의 틈을 메울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그 사람이 오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말할 줄 아는 성도여야 합니다. 서른 세 살의 젊은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면서,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다고 하시면서 불의에 침묵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거룩한 분노로 성전을 고치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말하면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마3,5-10)고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거룩한 불만이 세상을 고칩니다. 침묵은 악에 동조하는 것입니다. 진실을 외면하지 말고 정직하게 말해야 합니다.
여러분, 기도하고, 일어서고, 행동해야 합니다. 불만은 말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고침은 나로부터, 교회로부터, 작은 실천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미래는 미래에 주역으로 살 지금의 젊은이들이 꿈꾸고 외치며, 그리고 싸워서 고쳐나간 결과로 주어질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청년은 단지 ‘희망’이 아니라 ‘변화의 주체’입니다. 청년은 어른들이 다 해주지 않는다고 불평만 하지 않아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개혁하고 개선하고 개량하는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자기의 안락한 삶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꿈꾼 젊은이 요셉, 자기의 생사와 출세보다 하나님을 더 많이 사랑하는 삶을 추구한 청년 다윗, 남의 나라에 끌려간 처지에서도 하나님의 법에 충성하고자 음식을 삼가며 사자 굴에 던져지는 처형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기도하기를 계속하던 다니엘, 자칫 죽을 위험이 있음에도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며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에스더, 예상되는 자신의 불행에도 불구하고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헌신하는 삶을 결단한 마리아 등이 있어서 더 낫고 좋은 세상이 올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 한국 교회에도 이런 성도들이 많이 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 삶으로 모두를 드리는 제사입니까? 우리의 몸과 삶은 정말 하나님께 드려지고 있습니까? 하루를 시작할 때마다 “주님, 오늘 제 삶 전체가 세상 문화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복음으로 중심을 지켜 주께 드려지는 예배가 되게 하소서.”
3. 다음, 2절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본문의,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동형화, 즉 외형적 폼(form)이나 틀(pattern)에 맞추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뜻입니다. 주변 문화나 사상에 피동적으로 흡수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당시 로마 제국의 주류였던 쾌락주의, 성공주의, 이방 종교, 황제숭배 사상 등을 염두에 둔 말이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너희의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는 단순한 개선이 아니라, 본질의 변화, 즉 내적 성품의 근본적 변화를 뜻합니다. 내적 가치관과 사고방식이 하나님의 뜻에 맞게 계속 변화되어 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기 위함이라’의 분별은 ‘시험하여 확인하다, 증명하다’는 의미로, 단지 지적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체험하며 분별하는 지혜입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불합리한 현실에 저항하며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데 있어 기본 원칙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그 기본 원칙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개혁과 개선, 혁신을 꿈꾼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를 먼저 분별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꿈을 꾸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꿈이란 다른 말로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말이 됩니다. 또한 이 세대를 본받지 않으려면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쳐 줍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변화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없습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고 삶을 헌신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뜻이 삶 속에 드러납니다.
어제 한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서 통일교, 신천지 등의 종교단체, 무속인 등과 연루되어 있는 윤석열 정권이 드러나고 있음에도 자칭 보수라 하는 기독교 인사들이 전 정권을 비호하고 있는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에 대한 패널들의 분석이 있었습니다. 많은 종교인이 자기가 속해 있는 종교인의 관점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성향이나 이익에 따라 종교를 이용하는 것뿐이라는 견해를 밝히면서 기독교도 그런 면에서 다를 바 없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성경은 자본주의도 말하지만 공산주의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자본주의적 성구는 ‘있는 자는 더 받아 풍성해지고 없는 자는 있는 것마저 빼앗기리라는 ’달란트 비유‘입니다. 하지만 능력 없는 자에게 능력 많은 사람과 같은 처우를 받을 수 있게 하라는 ’포도원 일꾼의 비유‘도 있습니다. 정의만 강조하지 않습니다. 정의의 법에 의해 차별받는 약자에게 사랑의 법으로 보호하고 감싸주라는 것이 주님의 말씀입니다. 무신론적 유물사관의 공산주의는 당연히 배척되어야 하는 사상이지만 그 사상에 물들어 있는 사람은 사랑하라는 것도 주님의 말씀입니다.(롬13,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우리는 앞 1절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의와 사랑의 나라를 위해 하나님께 산 제사,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다 드린 삶을 살기로 결단하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2절은 그렇게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리기로 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드려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 하나님의 뜻은 마음을 새롭게 하는 변화를 받은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변화되지 못했던 청년 사울은 박해자였으나 변화된 바울은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변화되지 못했던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던 사람이었지만 변화된 후의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세상을 변화시킨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저처럼 늙은 사람은 지금의 세상이 마지막 세상입니다만 청년들의 마지막 세상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의 싸움에 따라 만들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변화된 세상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편향된 정치의식이 아닌, 하나님의 꿈이 개혁을 꿈꾸는 성도의 비전이 되어야 하고, 예수님의 성품이 거룩한 싸움을 싸우는 성도의 인격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님의 권능으로 무장하여 힘 있는 용사가 되어야 합니다. 부디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꿈꾸고 소마아던 세상에서 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4. 끝으로, 3절을 봅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본 절의 ’너희 각 사람에게‘는 한 몸을 구성하는 여러 지체처럼 다양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다양한 사람이 한 몸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구성원들은 각자가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구성원은 함께 살아야 할 존재이지 처단하고 없애야 할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각 사람이 자기 할 일을 하며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해야(10절) 합니다. 갈5,14-15을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14)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15)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엡5,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도 마음에 새기고 있어야 할 말씀입니다.
새 세상을 꿈꾸며 싸우는 사람은 그 일에 부지런하고 게으르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는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써야 합니다. 기도는 소망과 인내의 친구로, 성도는 기도 가운데 새로운 세상을 위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대표적 AI 프로그램인 챗 GPT에 한국 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5가지 방향을 답해왔습니다. 첫째가 마10,16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는 말씀과 함께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를 말했습니다. 한국은 감정적 외교가 아니라 지혜롭고 현실적인 외교 전략을 가져야 하는데, 한미동맹은 존중하되, 우리의 국익과 주권을 분명히 세우라 했습니다. 둘째는 한반도 평화의 ‘주도권 회복’으로 남북 문제에 있어 들러리가 아닌 당사자로 나서서 전쟁이 아닌 평화를 준비하는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세우라 하였고, 셋째는 미국-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면서도, 기술 자립과 산업 주권을 확보하라고 하였으며, 넷째는 민생 우선 정치의 회복, 다섯째는 초당적 협력과 공동선을 추구하라며 막3,24(“나라도 분쟁하여 스스로 설 수 없느니라”)과 함께 교회는 협력과 일치를 촉구하는 ‘화해의 사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AI가 똑똑하긴 똑똑한 모양입니다.
여러분,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새 세상을 꿈꾸며 싸우려는 사람에게 권면합니다. 서로를 존중하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싸움에 물러서지 마십시오. 내가 할 일을 내가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은 배나 힘들어집니다. 저 같은 늙은이들이 세상을 떠난 후, 여러분들이 맞이하는 세상이 부디 지금보다 배나 아름다운 세상이길 간절히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이를 위해 교회는 믿음의 선한 싸움에 적극 나서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