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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중국 관영 매체 인민일보가 1901년 #신축조약 모습과 올해 #미·중회담 을 비교해 올린 사진입니다.
② #의화단원 들이 철도를 파괴하는 모습을 프랑스 신문‘르 프티 파리지앵’이 보도했어요.
③당시 중국에서 돌았던‘서양인을 죽이라’는 내용의 #격문 입니다.
인민일보 웨이보·위키피디아
미국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첫 #미·중 #고위급회담 이 지난 18~19일 #알래스카 에서 열렸습니다. 미국과 중국 대표가 모여 #기후변화 등 #국제문제 에 대해 논의했는데요. 미국 측은 중국의 #사이버공격 과 미국 동맹국에 대한 #경제보복 등을 거론하며 중국이 #국제질서 를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했어요. 중국 측은 미국이 주장하는 가치가 #국제사회 를 대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반박했습니다.
이 회담을 보고 중국에선 미국에 당당히 맞서는 모습이 통쾌하다는 반응이 나왔다고 합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오늘의 중국은 120년 전의 중국이 아니다. 외국 열강이 대포 몇 방으로 중국의 대문을 열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영영 지났다"고 했어요. 중국이 1901년 미국 등과 맺었던 굴욕적 신축 조약과 #알래스카회담 을 비교해서 말한 건데요. 1901년과 알래스카 회담이 열린 올해 모두 신축년(辛丑年)이에요. 신축 조약은 미국을 포함한 연합군이 중국의 반(反)외세 운동인 의화단 운동을 진압하고 중국과 체결한 조약이에요. 이후 중국은 #서양열강 에 의해 한동안 #식민지 와 다름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 무슨 일이 있었고, 중국에는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요?
외세에 반발해 의화단 운동이 일어났어요
#청나라 는 #영국 과 싸운 #제1차아편전쟁 에서 패배한 뒤 #제국주의열강 과 #난징조약 , #톈진조약 등 #불평등조약 을 맺으며 나라를 개방했어요. 동시에 홍콩을 영국에 넘겨주는 등 많은 이권을 포기해야 했죠. 또 기독교를 허용하면서 많은 선교사가 서양 세력의 힘을 업고 청나라 곳곳에 교회를 세웠어요. 이후 청나라는 일본과도 전쟁해 패배하면서 #동아시아강국 의 지위를 일본에 내줬습니다. 청나라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고 서양 열강과 일본에 의한 #경제침탈 로 궁핍한 삶을 살아야 했지요. 이로 인해 외국 사람과 문화, 사상 등을 배척하는 감정이 깊어졌죠.
그 당시 생겨난 비밀 종교 조직이 #의화단 (義和團) 입니다. 의화단은 #무술권법 인 #의화권 을 수련하면 총에 맞아도 끄떡없다고 믿는 단체였지요. 1898년 극심한 가뭄이 들자 많은 농민이 이 단체에 가입했어요. 1900년 의화단은 산둥 지방을 중심으로 ' #부청멸양 '(扶淸滅洋·청을 도와 서양을 몰아내자)을 외치며 교회, 철도, 학교 등을 불태웠습니다. 외국인들과 외국에서 들어온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이며 그동안 쌓인 분노를 표출했어요. 기독교 선교 활동으로 중국 전통이 파괴될 것이란 우려가 컸고, 선교사들이 #식민정책 에 협력하는 경우가 많아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컸던 것이죠.
미국 등과 굴욕적 조약을 맺었어요
의화단 세력은 베이징으로 가서 모든 외국 세력이 물러날 것을 요구하며 외국 공사관이 모여 있는 지역을 포위했습니다. 이때 의화단원은 20만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양 열강은 자국민 보호를 위해 청나라에 의화단을 진압해달라고 했어요. 만약 청나라가 진압하지 못한다면 자신들이 나서겠다고 했죠. 그런데 청 정부는 의화단을 이용해 서양 세력을 몰아낼 수 있다고 생각해 오히려 의화단을 지지하면서 서양 세력에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등 8국은 연합군을 꾸려 두 달 만에 베이징을 점령하고 의화단 운동을 진압했어요. 자금성을 점령한 연합 세력은 청나라의 책, 천문 기구, 돈 등을 닥치는 대로 약탈했어요. 그리고 1901년 청나라 정부에 굴욕적 조약을 요구했어요. 바로 신축 조약인데요. 의화단 운동의 주동자 처벌, 외국군의 베이징 주둔 허용, 중국에 대한 2년간 무기·탄약 수입 및 제조 금지 등의 요구가 담겼어요.
신축 조약엔 서양 열강과 일본 등에 은화 4억5000만냥(약 1만8000톤)을 배상하라는 내용도 있었어요. 당시 청나라 인구가 4억5000만명 정도였으니 한 명당 한 냥씩 배상해야 했던 것이죠. 청 정부는 한 번에 지불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39년에 걸쳐 배상금을 나눠 갚기로 했어요. 이자까지 합쳐 약 9억8000만냥을 내야 했어요. 이로 인해 #청왕조 가 쇠락의 길로 들어서면서 통치 260년 만인 1912년 마침내 몰락하고 말았죠.
30년 넘게 빚을 갚아야 했어요
새로 성립된 #중화민국 은 청나라가 갚아야 할 배상금을 그대로 이어받았어요. #제1차세계대전 이 발발하고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미국 등 연합국은 중국이 참전하길 바랐어요. 연합국은 중국이 전쟁에 참가하는 조건으로 자신들이 받아야 하는 신축 조약 배상금을 5년 동안 미뤄주기로 했어요. 1917년 중국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를 했답니다. 신축 조약으로 지불해야 하는 배상금의 20%가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지분이었는데요.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중국도 전쟁에서 이긴 나라가 된 덕분에 패전국인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주어야 할 배상금은 면제받았어요.
1937년 일본이 중국을 침략한 후 중국은 일본에 대해서도 배상금 지급을 중단했어요. 이로써 신축 조약을 맺은 1901년부터 시작된 기나긴 빚 갚기가 30여 년 만에 끝나게 되었죠. 미국,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은 중국 유학생을 지원하는 등 중국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배상금 일부를 돌려줬습니다.
[칭화대학교]
베이징에 있는 #칭화대 는 #베이징대 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인 #명문대학 입니다. 이 대학은 #신축조약반환금 과 관련이 있어요. 미국은 신축 조약 이후 받은 배상금 중 일부를 중국에 돌려줬어요. 미·중 관계와 미국의 국제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서였죠. 반환금은 미국에서 공부할 중국 학생들을 위한 영어 교육 등 유학생 예비 교육을 하는 ' #유미학무처 (游美學務處)'에 사용됐어요. 이 기관은 1928년부터 #국립칭화대학교 로 확대됩니다. 칭화대는 저명한 중국 학자들을 많이 배출했는데요. 중국 최초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양전닝 도 칭화대 출신이에요.
출처: 프리미엄조선|[윤서원]서울 단대부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최원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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