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문예대학 출신 작가 작품>
100대의 화음
서영숙
선선한 가을밤이 불어오는 강바람에 너울거리며 춤을 춘다. 음악에 맞추어 때로는 안단테로 신나면 비바체로 흐르는 강물을 무대 삼아 쿵작작 왈츠를 추며 깊어간다.
100대의 피아노가 아름다운 화음으로 선율을 뿜어낸다. 가녀린 여인의 속삭임같이 때로는 폭풍처럼 우렁찬 소리가 캄캄한 밤하늘을 뚫고 멀리 울려 퍼진다. 풍류 아티스트 임동창 씨의 유창한 사회로 아름다운 가을밤 100대의 피아노 연주가 사문진 나루터를 화려하게 수놓는다. 이곳은 1900년 미국에서 건너온 우리나라 최초의 피아노를 사흘 동안 배에 싣고 옮겨온 곳이다. 달성군에서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매년 열리는 음악회이다.
피아노 소리에 취해 눈을 지그시 감아본다. 한 대쯤은 불협화음이 나지 않을까? 그 소리를 찾으려고 온 신경을 쓰는 나를 발견하곤 소스라치게 놀란다. 곡의 흐름도 놓쳐버려 무슨 곡을 연주하는지 다시 팸플릿에 눈을 맞춘다. 남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찾아내려는 것이 인간의 본능인지 굳어진 나의 습관인지 알 수가 없다. 다 내려놓았던 과거의 버릇이 고개를 드는 순간이다.
한집에 살면서 그의 단점만 쳐다보고 미주알고주알 잔소리를 늘어놓은 세월이 수십 년이다. 귀에 딱지가 앉아 막힌다면 여러 번 막혔으리라. ‘누가 잔소리 들을 일만 골라 하래’ 자신에게 위로 겸 반문해 본다. 이러다가 잔소리 듣기 싫어 더는 못 살겠다 하면 어떻게 하지? ‘그래, 차라리 그렇게라도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젊은 시절에는 양팔에 두 아이를 안고 하늘로 올라간 선녀처럼 남매를 데리고 도망갈 보따리를 준비해 놓고 살았던 적도 있다.
도망갈 사람이 핑계는 왜 그리 많은지? 어른들이 계셔서 못 가고, 아이들이 어릴 때는 ‘그래 아이들이 좀 크면 그때 가도 늦지 않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른들은 가시고 성장한 자녀들이 엄마 아빠 이혼하면 자기들도 각각 제 갈 길로 가겠단다. 아직도 해야 할 일들이 많고 학업 중인데 그것은 부모로서 책임감 없는 행동이라 여겨져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늘 100대의 피아노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화음이 잘 맞는데 인생 두 대의 피아노는 왜 그렇게 화음 맞추기가 힘들었을까. 돌이켜 보면 나 자신도 허물투성이가 아닌가. 잔소리 들을 일이 왜 없었겠나마는 불평보다는 침묵으로 덮어주며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었다. 피아노의 끊어질 듯 말 듯 하면서 다시 이어지는 고운 선율이 마치 부부의 연이 끊어질 듯 위태하다가 가까스로 이어지는 인생의 곡예 같다.
사람들은 유머스럽고 허물없는 성격 때문에 남편을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나만 악녀가 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남자는 부드럽고 과묵하며 가정의 기둥으로 큰 나무처럼 우뚝 서 있어야 하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남편은 부잣집 막내아들로 태어나 고생을 모르고 자라서 자유분방하다. 여러 가지 환경적 여건 때문에 알콩달콩한 신혼 시절부터 삐걱거리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풍전등화(風前燈火) 같다며 늘 걱정하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쉽지 않았다. 창조주가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다. 일곱 식구의 무게도 버거운데 내 감정의 굴레를 고스란히 끌어안은 힘겨운 노력은 자신과 끝없는 사투였다.
으스스 춥고 시장기도 느껴진다. 밤이 깊어가고 100대의 피아노도 막바지 연주를 한다. TV에서나 보던 쎄시봉과 유명 연예인들도 자신의 히트곡을 비롯해 몇 곡씩 불렀다. 성악, 국악, 판소리 순으로 신명 나게 흥을 돋우던 사람들도 앙콜을 뒤로 하고 퇴장했다. 100명의 피아니스트는 이 거대한 화음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피나는 연습을 했을까. 열광하는 관중들을 보며 고생 대신 희열의 순간이었으리라. 마지막 휘날레로 100인의 설장구와 관중들이 어울려 머리에 상모를 돌리며 신나는 춤판이 벌어졌다. 나도 모르게 일어나 무대로 나가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어대었다.
폰에 하늘같은 남편이라 저장되어 있다. 이렇게라도 잘 해보려는 애틋한 나의 노력이다. 자녀를 결혼시키고 예쁜 새 생명이 태어나고 우리도 늙어간다. 위험 수위도 여러 번 넘겼다. 수십 년이 지나고 나니 불협화음을 내던 두 대의 피아노도 화음을 이루어 간다. 아직은 음도 살아있고 소리가 왜 이러냐고 먼저 따지지 않는다. 오히려 익숙해져 서로에게 편안하다.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나의 모든 것을 믿고 기다려준 고마운 사람이다. 서로 다른 사고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아름다운 화음을 맞추기 위한 연습 과정이라 생각된다.
조급해하지 않고 내 음정에 맞추라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한곳을 바라보며 남은 내 인생 여정은 잔잔한 모데라토로 살아가고 싶다. 바람도 잦아들고 무대의 불도 서서히 꺼지며 막이 내린다. 강바람이 내년에 또 보자고 손을 흔들어 준다.
(《수필문예》 제19집, 2020. 수필문예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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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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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문예회, 대구수필과 비평작가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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