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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 稚岳山(행구동-구룡사)
- 위 치 : 강원도 원주시 행구동, 소초면, 판부면, 횡성군 강림면
- 높 이 : 치악산 1,288m
1. 일 시 : 2011. 2. 2. 07:30 ~
2. 장 소 : 치악산(행구동탐방지원센터 - 구룡탐방지원센터)
3. 참석인원 : 18명
4. 등산코스 : 국형사주차장 - 보문사 - 향로봉 - 비로봉 - 구룡사주차장 (14,5km / 7시간)
5. 다녀온길 : KBS앞 - 중앙고속도로 횡성IC - 소초방면 장양리 순환도로- 행구교차로 - 고문골길 - 국형사주차장(하차) - 구룡사주차장(승차)
6. 오늘활동 상황
○ 07:30 --- KBS앞 출발
○ 08:48 --- 국헝사주차장 도착
○ 08:50 --- 국형사 경내
○ 09:58 --- 단체기념사진촬영
○ 09:02 --- 행구통제소, 일정안내
○ 09:05 --- 들머리 진입
○ 09:33 --- 보문사
○ 10:28 --- 향로봉
○ 10:58 --- 곧은치
○ 12:53 --- 황골갈림길
○ 13:08 --- 전망대
○ 13:19 --- 헬기장
○ 13:29 --- 비로봉감시초소, 점심식사
○ 14:05 --- 비로봉 정상
○ 15:00 --- 후미팀 비로봉 정상 하산
○ 15:55 --- 사다리병창
○ 16:40 --- 선두팀 주차장 도착
○ 17:02 --- 세렴폭포
○ 17:32 --- 구룡소
○ 17:33 --- 구룡사
○ 17:44 --- 일주문
○ 17:49 --- 황장금표
○ 17:50 --- 매표소
○ 18:10 --- 후미팀 주차장 도착
○ 18:17 --- 주차장 출발
○ 18:40 --- 춘천도착
7. 치악산 살펴보기
□ 개관
- 1984, 12, 31 국립공원 지정
-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 한국의 산하 선정 인기명산 100 중 7위
- 치악산은 동악명산, 적악산으로 불렸으나, 상원사의 꿩(또는 까치)의 보은전설에 연유하여 꿩치(雉)자를 써서 치악산이라 불리게 되었다 한다. 치악산은 단일 산봉이 아니고 1,000m 이상의 고봉들이 장장 14㎞나 능선으로 이어져 있어 치악산맥으로 불리기도 한다.주요 봉우리는 주봉인 비로봉(1,288m), 남대봉(1,181m), 향로봉(1,043m), 매화산(1,085) 등이다.
- "치악산에 왔다 치를 떨고 간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치악산은 산세가 웅장하고 험하다.주봉 비로봉에서 남대봉까지 남북 14km에 걸쳐 주능선 양쪽으로는 깊은 계곡들이 부채살처럼 퍼져 있다. 주봉인 비로봉은 치악산의 최고봉으로 이곳 정상에서는 원주, 횡성, 영월지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를 중심으로 남대봉(1,181m), 향로봉(1,043m), 매화산(1,085)등의 고봉들이 솟구쳐 있고 4계절마다 그 모습을 달리하여 많은 산악인과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 치악산 곳곳에는 산성과 수많은 사찰 사적지들이 있다. 남대봉을 중심으로 꿩의 보은지라는 상원사를 비롯해서 서쪽으로 세존대, 만경대, 문바위, 아들바위 등 유래 깃든 경관이 있다. 그외 영원산성, 해미산성, 금두산성, 천연동굴과 북원적 양길이 궁예를 맞아들여 병마를 정돈했다는 성남사가 또한 이곳에 있다. 치악산은 단풍으로도 유명하다. 우뚝우뚝 하늘로 치솟은 침엽수림과 어우러져 자아 내는 치악산 단풍 빛은 신비하리만치 오묘하다. 구룡사 입구의 우거진 단풍은 한 폭의 수채화같은 풍경을 연상시킨다. 하얀 폭포 물줄기와 어우러진 울긋불긋한 단풍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치악산은 가을단풍이 너무 곱고 아름다워 본래 적악산이란 이름으로 불려왔다.
- 겨울의 치악산 정상 일대는 온통 만발한 설화와 상고대가 또한 장관이다. 가지에 눈 내린 것이 두툼하게 감싸인 것이 눈꽃, 눈가루와 서리가 내려 녹다가 다시 얼어서 투명하게 된 것이 상고대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산 중에서 특히 눈꽃과 상고대로 이름난 산은 소백산, 덕유산, 치악산 이다.
인기명산 100 중 7위
- 산세가 험하지만 수려한 치악산은 가을 단풍으로도 유명하다. 단풍이 절정인 10월에 많이 찾지만 구룡사 주변의 울창한 숲과 구룡사에서 세렴폭포에 이르는 계곡 나들이 산행으로 봄과 여름에도 인기가 있다.
산림청 선정 100 명산 선정사유
- 주봉인 비로봉을 중심으로 남대봉 (1,181m)과 매화산(1,085m) 등 1천여 미터의 고봉들이 연이어 있어 경관이 아름다우며 곳곳에 산성과 사찰, 사적지들이 널리 산재해 있고 국립공원으로 지정(1984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 구룡계곡, 부곡계곡, 금대계곡 등과 신선대, 구룡소, 세렴폭포, 상원사 등이 있음. 사계절별로 봄 진달래와 철쭉, 여름 구룡사의 울창한 숲과 깨끗한 물, 가을의 단풍, 겨울 설경이 유명
8. 등산기행
□ 산행안내준비
<치악산국립공원안내도>
- 원주 8경은 천년의 고찰인 치악산 구룡사, 500년 강원도 행정의 중심지인 강원감영, 보은의 전설을 간직한 상원사, 치악산 비로봉, 간현관광지, 영원산성, 용소막 성당, 미륵산 미륵불상 등인데 이중 구룡사, 상원사, 비로봉, 영원산성이 치악산에 소재한다.
- 치악산은 2008. 8. 7 상원탐방지원센터-상원사-남대봉-상원상원탐방지원센터 원점회귀코스, 2009. 8. 20 상원탐방지원센터-상원사-남대봉-금대탐방지원센터 코스, 2009. 11. 5 구룡탐방지원센터- 비로봉-구룡탐방지원센터 원점회귀코스, 최근 2010. 9. 16 부곡탐방지원센터-곧은재-비로봉-입석사-황골탐방지원센터코스를 다녀온바 있다. 치악산국림공원 정규 탐방로 중 구룡탐방지원센터-비로봉-향로봉-남대봉-성남탐방지원센터로 이어지는 23,8km / 10시간 종주코스와 남대봉에서 향로봉 구간이 남아있는 셈이다. 종주코스를 정기산행일정으로 운영하는 데에는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기 때문에 구간을 나눠 소화하는 것으로 보고 오늘 행구동-향로봉코스를 경유하게 되면 남대봉-향로봉 구간만 남는다. 앞으로 기회를 봐 가면서 성남탐방지원센터-상원사-남대봉-향로봉-곧은재-관음사 코스만 다녀오게 되면 치악산국립공원내 정규 탐방로는 종을 치는 셈이다.
- 2012. 2. 1. 16:00기준 원주시일원 당일 날씨예보는 -16℃ 내지 -8℃ 분포를 보였고 레저/스포츠 산, 계곡의 날씨예보 중 치악산 날씨는 -17℃ 내지 -7℃ 분포를 보였다. 이정도이 날씨 상황에서는 이미 수 없이 많은 산행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다만 정상에서 강풍의 정도에 따라 체감온도가 염려스러울 뿐이었다. 그렇지만 개인안전장비와 방한용품을 잘 챙긴다면 이 또한 견딜 만 한 상황으로 접수하였다. 그러나 우리 카페 목요산행신청방은 냉기가 감돌았다. 20여명을 겨우 넘겼는가 싶었는데 입춘을 며칠 앞두고 50년 만의 동장군과 함께 한파경보가 엄습해 오면서 우리 모두님들의 마음까지 꽁꽁 얼어붙게 하였던 것이다. 더욱이 지난 1. 31 오후에 내린 눈이 5㎝ ~ 6㎝의 적설량을 보였기 때문에 참여율이 더욱 저조한 듯 싶었다.
- 빠른 길 찾기 정보에 의하면 행구동 국형사까지 80,9km / 1시간32분으로 제공하고 있었다. 이정도의 제원이라면 09:00 이전에 들머리 진입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하였다. 마지막으로 치악산국립공원에 전화를 걸어 오늘 탐방코스 출입통제 여부와 국형사주차장까지 버스 진입 가능여부를 확인해 놓고 안내준비를 마쳤다.
- 여기서 치악산국립공원을 살펴보고 넘어간다. 우리나라의 등줄기인 태백산맥의 오대산에서 서남향으로 분기되어 매화산(1,084m), 천지봉(1,086.5m)이 위치하며, 연접한 비로봉(1,288m)은 치악산국립공원의 최고봉으로 향로봉(1,042.9m)과 남대봉(1,181.5m)까지 해발 1,000m이상의 준봉들로 연결되는 대표적인 경관지를 형성하고 있다. 이렇게 수려한 경관을 보유한 치악산국립공원은 강원권의 교통요지인 원주시에 인접해 있을 뿐 만 아니라 수도권으로부터 근거리에 위치하여 1일 탐방이 가능해 탐방활동이 연중 이루어지는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 치악산의 경관자원으로는 구룡계곡, 부곡계곡, 금대계곡 등 아름다운 계곡과 구룡소, 세렴폭포 등의 명소가 곳곳에 산재해 있으며, 사계절에 따라 봄에는 진달래와 철쭉, 여름철에는 구룡사의 울창한 송림과 깨끗한 물이 볼만하고, 가을의 단풍과 겨울의 설경은 특히 장관이다. 생물자원으로는 포유류 26종, 조류 98종, 곤충류 1,298종, 양서파충류 약 15종 야생식물 738종이 서식하고 있다. 또한, 치악산 곳곳에는 강원도유형문화재인 보광루를 보유한 구룡사와 꿩의 보은설화를 간직한 상원사, 전쟁유적지인 영원산성과 벌목금지의 상징인 황장금표 및 우리나라의 대표적 온대림으로 보존되고 있는 천연기념물 93호인 성남리 성황림 등의 문화자원이 있다. 아름다운 금대계곡에 자리 잡고 있는 영원사를 포함 보문사, 국형사, 관음사 등이 수려한 치악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연혁>
- 1973. 03. 15도립공원 지정(강원도 공고 제1127호), 1984. 12. 31국립공원 지정(건설부 고시제564호), 면적:181.631km, 1985. 08. 01국립공원관리사무소설치(강원도), 1987. 08. 05국립공원관리공단 치악산관리사무소 개소, 1991. 04. 23국립공원관리업무 이관(건설부->내무부), 1998. 02. 28국립공원관리업무 이관(내무부->환경부)
<치악산등산지도>
- 치악산국립공원 정규 탐방로는 탐방코스와 같이 8개 코스가 있다. 이중 행구동탐방지원센터- 향로봉으로 이어지는 2,8km 코스와 구룡탐방지원센터에서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5,7km 코스를 기본으로 하여 나머지 구간을 연계하여 일정을 잡고 안내준비를 하였다. 오늘 사용한 등산지도도 치악산국립공원에서 제공하는 등산지도를 바탕으로 행구동탐방지원센터에서 구룡탐방지원센터로 이어지는 코스를 연계하여 편집하였다.
- 오늘 코스는 지난해 9. 16 부곡탐방지원터-비로봉-황골탐방지원센터 탐방코스 13km에 비하여 약 1,5km정도 긴 편이지만 난이도 면에서는 유사한 코스로 판단하였다. 비로봉에서 세렴폭포까지 사다리병창코스 2,7km만 내려가면 나머지 3km는 어린이나 노약자 분들까지 무난하게 다닐 수 있는 산책코스이기 때문이다. 또한, 비로봉 정상에서 사다리병창으로 하산하는데 부담을 갖으시는 분들은 계곡코스를 병행하여 운영할 요량이었다. 계곡코스는 사다리병창보다 100여m 긴 2,8km에 불과하지만 계단의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각 코스별 특징을 아래와 같이 살펴보고 넘어간다.
- 행구동탐방지원센터에서 오르는 코스는 해발 1042.9m의 향로봉까지 오르는 코스이다. 소요시간은 편도 약 1시간 30분가량이며, 거리는 2.8㎞이다. 이 코스 마지막 화장실은 보문사에 위치해 있어 산행하기 전에 필히 화장실을 이용해야하며.또한 약수터는 국형사 주차장에 있어 물을 준비하지 못한 탐방객은 이곳에서 충분히 물을 보충해야 한다. 이 코스의 장점은 하산코스가 다양해 원하는 코스(곧은재 입구 등)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지역의 볼거리로는 원주시내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보문사와 사찰내의 강원도 유형문화재 103호인 보문사칠층석탑(일명 청석탑)이 있다. 이 탑은 점판암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그 양식이 신라 말기에 시작되어 고려시대에 유행하였는데 현재 해인사(海印寺), 금산사(金山寺) 등 몇 곳에만 있는 희귀한 양식의 탑이다. 또한, 행구동공원지킴터에 진입하기 전 행구동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신라시대의 고찰 국형사가 위치해 있다. 이 코스에서는 국형사 주변 소나무숲이외에 계곡, 곧은재 억새밭 등의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하며 탐방할 수 있다.
- 구룡탐방지원센터 - 세렴폭포 - 비로봉 코스는 급경사에 길이 험해 힘든 등산을 하고 싶은 탐방객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코스이다. 거리는 편도 5.7km이며, 산행시간은 약 3시간 30분 가량 소요된다. 이 코스 중 중간지점에 세렴통제소, 교량이 있으며 이 지점에서 사다리병창길과 계곡길로 나누어진다. 사다리병창길은 계단이 약 1,000여개 정도이며, 길이는 2.7km로 비로봉으로 가는 가장 난코스에 해당된다. 그러나 암벽과 암벽 사이에 자라난 나무들이 어우러져 사시사철 독특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계곡길은 거리가 약 2.8km이며, 사다리병창길과 비교해볼 때 인위적으로 만든 계단이 없으며 계곡을 따라 산행을 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산을 오를 때와 내려올 때 코스(사다리병창길과 계곡길)를 다르게 잡는다면 이 두 코스를 모두 즐길 수 있다. 정상에 오르면 치악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로 해발 1,288m인 엎어놓은 시루모양을 하고 있는 비로봉(일명 시루봉)에 도달하게 된다. 이 곳에서는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으며, 또한 돌탑 세 개로 이루어진 미륵불탑을 볼 수 있는데, 중앙의 탑을 「산신탑」, 남쪽의 탑을 「용왕탑」, 북쪽의 탑을 「칠성탑」이라 한다.
- 구룡탐방지원센터 - 세렴폭포 코스는 치악산을 찾는 많은 탐방객들이 이용하고, 경사가 완만하여 나이 드신 분들이나 어린이들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코스이다. 거리는 3.0km이며, 시간은 편도 약 1시간 45분 정도 소요된다. 이 코스에서 볼거리는 구룡탐방지원센터 부근에 강원도 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된 황장금표가 있다. 이 황장금표는 궁중에서 필요한 황장목을 보호하기 위해 일반민의 도벌을 금지하는 표식으로 일종의 보호림 표식이다. 이런 이유로 치악산에는 수고가 20~30m에 달하고 수령이 수백 년 된 소나무 숲이 웅장하게 들어서 있다. 이 곳을 지나 약 20분가량 걷다보면 구룡사에 도착하게 되는데 지방문화재 제145호인 보광루(보수완료)를 비롯하여 대웅전, 범종각, 삼성각, 사천왕문, 종무원 겸 요사, 원통문 등의 건축물을 비롯하여 은행나무, 구룡사 부도 등 많은 볼거리가 있다. 특히 보광루의 짚으로 만든 멍석은 세 사람이 3개월에 걸쳐 완성했다는 국내 최대의 멍석이다. 이 구룡사를 지나 가다보면 주위의 나무와 물밑의 물고기, 나무로된 교량과 함께 어울리는 약 1m 높이의 구룡소를 만나게 된다. 이 구룡소에는 구룡사 연못에 살고 있던 아홉마리의 용이 하늘로 올라갈 때 뒤쳐진 한 마리가 살던 곳이라는 전설이 있다. 이 코스 주위의 자연을 감상하면서 걷다보면 세렴통제소가 나오고 약 2분가량 더 위로 올라가면 세렴폭포를 만날 수 있다. 비 온 다음날에 세렴폭포를 찾으면 세렴폭포에서 물이 힘차게 떨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탐방코스(공원제골)>
- 행구동탐방지원센터-향로봉 2.8 km /1 시간 30 분, 성남탐방지원센터-남대봉 : 5.9 km / 2 시간 30 분, 부곡탐방지원센터-비로봉8.9 km / 3 시간, 구룡탐방지원센터.-세렴폭포 3 km / 1 시간 45분, 구룡탐방지원센터- 비로봉 5.7 km / 3 시간 30 분, 구룡탐방지원센터- 성남탐방지원센터 23.8 km / 10 시간, 금대분소-남대봉 5.2 km / 2 시간 40 분, 황골탐방지원센터-비로봉 4.1 km / 2 시간 30 분
□ 산행안내
<국형사 전경>
- 오늘 들머리인 국형사 관련 자료를 먼저 살펴보고 넘어간다. 국형사는 신라 경순왕 대에 무착대사에 의해 창건되어 고문암(古文庵)이라 하였고 무착대사는 이곳을 호법대도량으로 하여 불도에 정지하였다고 한다. 창건연대가 신라시대라고 하지만 이를 증명하는 당시의 유물, 유적은 현재 남아있지 않는 형편이다. 조선조 태조(太祖)가 이 절에 동악단(東岳壇)을 쌓아 동악신을 봉인하고, 매년 원주와 횡성, 영월, 평창, 정선고을의 수령들이 모여 제향을 올렸다고 한다. 한편 조선 정조의 둘째 공주인 희희공주가 병을 얻자, 절에서 백일기도를 하게 되었는데 정종(政宗)이 절을 크게 중창하였다는 전설도 있다. 1907년 벽하(壁河)와 응송(應松)이 중창하였으며 1945년 자항(慈航)이 1974년에는 김용호가 각각 중수하였다고 한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무애당, 관음전, 요사 등이 있으며, 진암당대선 사영주탑과 그 옆에는 망실된 부도 1기가 있다. 그리고 봄과 가을에 호국대제를 봉행하는 동악단이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이며 관음전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8작집이다. 이 건물의 대부분은 보영(普英) 주지 스님이 최근에 중창한 것이다.
▶ 국형사 동악제단
- 동악제단은 현재 원주시 행구동 국형사 (98번지) 인근에 자리해 있다. 동악단에는 조성 정종 때 공주의 신병을 치료하기 위해 이곳에서 100일 기도를 드려 동악산 신령의 가호에 의해 완치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건물은 근년에 신축한 것으로 토단만이 남아있어 동악단을 지었지만 2001년 7월 뇌전으로 불에 탄 이후 복원되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집으로 좌우에는 방풍판이 있고, 주변을 돌담으로 에워싸서 신단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 국형사 잔암사부도
- 잔암사 부도는 국형사 경내에 자리해 있다. 국형사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부도로써, 석종형으로 전체 높이 1.74m의 중형부도이다. 탑신 표면에는 '진암당대선사영주탑' (晋庵堂大禪師靈珠塔)이라는 글자가 왼쪽에는 '승정삼기미사월립'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이 부도가 진암당대사의 묘탑이며 조선 정조 23년(1799)에 건립된 사실을 알 수 있다.
<단체기념사진>
- 오늘 들머리가 속한 행정구역인 행구동을 간략히 소개한다. 행구동은 원주시청에서 동쪽으로 5㎞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치악산을 경계로 횡성군 강림면, 서쪽으로는 봉산동, 남쪽으로는 반곡동, 북쪽으로는 소초면에 접해 있다. 행구동은 원래 원주군 부흥사면(富興寺面)의 지역으로 살구나무가 많으므로 살구둑 또는 행구(杏邱)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사리(四里) 일부와 오리(五里)를 병합하여 행구리라 하여 판부면(板富面)에 편입되었다가 1955년 원주시 구역 확장에 의하여 원주시에 편입되어 행구동이 되었다. 행구동 일원에서 매년 복숭아축제가 열린다.
- 이번 주 내내 동장군이 기승을 부렸다. 특히 어제와 오늘이 극에 달했다. 금년 겨울 들어 가장 춥다고 언구럭을 떨어대며 한파경보가 내려진 상황이었다. 2008. 1. 17 본인의 모두산악회 입문 후 두 번째 주 정기산행지였던 평창 발왕산의 경우 -25℃ 내지 -26℃를 오르내리는 한파와 함께 해발 1,458m 고지에서 모진 눈보라를 경험했었는데 아마도 그 당시보다는 오늘 상황이 훨씬 양호한 편일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러면서도 평소 심설산행에 대비하여 준비했던 모든 방한장비를 총 동원하여 배낭을 꾸렸다. 가면모에 여벌 장갑과 오리털파카까지 챙겨 수납하고 나니 배낭이 항아리처럼 빵빵하였다. 2009. 1월 지리산 종주 산행 당시 배낭 수납 품목 중에서 취사도구와 매트리스를 제외하고 거의 대등한 수준이었다.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 싶어 배낭을 훌훌 털어내고 다시 짐을 챙기느라 부산을 떨기도 하였다. 이것저것 알뜰히 챙겨봤자 꺼내 보지도 않고 하루 종일 등에 메고 돌아다닐 것이 불을 보듯 뻔하였기 때문에 불요불급한 소품은 과감히 걸러내고 배낭무게를 줄여 출동준비를 마쳤다.
- 출발당일 춘천의 아침기온은 -21,6℃ 이었다. 근래 보기 드문 한파였다. 언론에서도 50여년만의 동장군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원주지역 역시 -17℃에서 -7℃의 분포를 보였다. 그 때문인지 참여율 역시 근래 보기 드물게 단출하였다. 그 원인이 동장군의 여파인지, 아니면 산이나 코스가 마음에 안 들어서 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암튼 대문을 나서면서부터 머리에서 쥐가 날 듯한 혼란스러움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 안내준비를 하면서 예상했던 시간대에 무사히 국형사주차장에 도착하였다. 버스에서 내리면서부터 치악산 비로봉 등정에 임하는 각오가 그 어느 때 보다도 특별해 보였다. 심상치 않은 날씨를 직감한 듯 스패츠, 아이젠, 방한모, 가면모나 마스크로 완전 무장하느라 분주한 모습들이었다. 콧구멍으로 들어오는 싸늘한 공기가 역시 심상치 않았다. 국형사 경내로 들어서면서 대웅전을 배경으로 단체기념을 남겼다.
- 국형사 경내를 빠져나와 보문사 방향으로 접어들면서 포장도로가 말끔하게 제설작업이 되어있었다. 우리 모두산악회 정기산행 일정을 눈치 챈 듯 수고하신 흔적이 역역했다. 국형사에서 5분 남짓 오르면서 고객안내센터란 현판이 붙은 통제소가 나왔다. 통제소 바로 옆 국립공원안내도 앞에서 일정안내와 더불어 16:00까지 하산을 예고하고 들머리에 들었다. 아스팔트 포장길을 아이젠을 착용하고 올라가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벗었다 신었다 반복하는 것이 귀찮아 그대로 올라갔지만 발목과 고관절에 무리가가는 바보걸음걸이의 부담을 감수해야만 했다. 아마도 모두가 같은 생각인 듯 싶었다.
<보문사 청석탑>
- 09:33 보문사 경유
- 들머리에든지 30여분 만에 보문사 경내에 도착하였다. 보문사까지 포장길을 올라오는 동안 준비운동은 충분히 된 듯싶었다. 굳었던 다리근육도 풀리고 겹쳐 입은 방풍재킷을 벗어도 충분할 정도로 몸에서 열기가 솟았다. 여기서부터 급사면 눈길로 이어지기 때문에 경내에 머물면서 복장을 가다듬고 전열을 재정비하여 향로봉으로 향했다.
- 보문사는 원주시 행구동 산105번지에 소재한다. 보문사는 신라 경순왕때 무학대사가 창건 했다고 전하며, 경내에는 고려 말 조선 초 때의 것으로 보이는 청석탑이 있어 고찰의 흔적을 엿볼 수 있고 신축중인 부속건물이 눈길을 끌었다.
- 보문사 경내 대웅전 앞에 있는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3호로 지정된 청석탑은 점판암(粘板岩)으로 건조(建造)된 것으로 신라말기(新羅末期)에 비롯되어 고려시대(高麗時代)에 이르러 유행하였으며 현재 해인사(海印寺)·금산사(金山寺) 등 몇 곳에만 있는 희귀한 탑이다. 이 탑은 두개의 기단(基壇)에 연화문(蓮華紋)을 조각(彫刻)하였고, 탑신석(塔身石)에 범자(梵字)가 새겨진 것이 특이하다. 두개의 기단과 다섯 개의 옥개석(屋蓋石) 그리고 2,3,4층의 탑신만 원형대로 남아 있을 뿐 전체의 탑재(塔材)가 원형은 아니다. 건립 년대(建立年代)는 고려시대(高麗時代) 전기(前期)로 추정된다.
<향로봉>
- 10:28 향로봉 도착
- 보문사를 출발하면서 심설산행으로 이어졌다. 탐방로는 지난 겨우내 내린 눈이 수북이 쌓여 잘 다져져 있었으나 엊그제 내린 눈은 그대로였다. 성질 급한 산객 몇 분이 다녀온 듯 족적을 그려 놓았지만 거의 생눈길이나 다음 없었다. 10:05이 넘어가면서 향로봉갈림길 능선에 도착하였다. 이 지점에 향로봉 0,7km, 문수봉 0,5km를 알리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여기서 상원사 방향으로 진입하여 향로봉을 올랐다가 이 지점까지 원점 회귀하여 비로봉으로 향해야하는 지점이다. 능선구간에 접어들면서 오름 구간 상황과 대조를 이뤘다. 겨우내 바람이 쌓아 놓은 눈이 쌓여 성벽을 이뤘다. 향로봉까지는 예정시간대에 무난히 올라올 수 있었다.
- 향로봉에 오르면서 상고대가 극치를 이뤘다. 바람한 점 없이 맑은 날씨에 따사로운 햇발을 받은 상고대가 바닷빛 하늘과 조화를 이뤄 눈을 즐겁게 하였고 이로 인하여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향로봉 정상에는 해발 1,043m를 알리는 안내판과 “안전하고 즐거운 산행 되시길 바랍니다” 라는 인사말이 새겨진 안내판이 함께 세워져 있어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비로봉 5,9km, 상원사 4,6km, 성남리 9,8km를 알리는 이정표와 치악산경관해설안내판이 함께 세워져 있다. 치악산경관해설안내판 앞에 서면 원주시 일원이 손바닥 손금처럼 훤히 내려다보인다.
- 치악산 정상 비로봉에서 남쪽으로 약 6km지점에 솟아있는 향로봉은 원주시와 횡성군의 경계를 이루는 곳으로 치악산 종주산행의 중간지점 으로 남으로는 남대봉을 북으로는 비로봉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후미 팀 리더인 부회장님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비로봉으로 향했다.
<곧은치 갈림길>
- 10:58 곧은치 갈림길 경유
총무연락 정 한 문제발생
- 고든재(치)고개는 구룡골에서 원주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고개가 쭉 곧았기 때문에 곧은+재> 곧은재 >고든재가 되었다고 한다, 이 구간까지 오면서 능선 탐방로는 먼저 다녀가신 선구자들의 발길로 인하여 큰 부담 없이 올 수 있었다. 그 분들이 선명하게 남겨놓은 발자국에 우리 일행 분들의 발자국을 다시 새기면서 보폭을 조정하다 보니 진행속도가 늦어지기 시작하였고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했다.
- 이 지점은 치악산 남대봉에서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종주코스중 남대봉방향, 관음사방향, 부곡방향, 비로봉방향으로 갈라지는 갈림길 중 한곳이다. 여기서 부곡공원지킴터 4.1km, 남대봉 5.7km, 관음사 2.1km, 비로봉 4.8km 지점이다.
- 곧은치에 도착하면서 총무님으로부터 SOS 호출신호가 터졌다. 후미 일행 중 한분이 컨디션 난조를 보여 더 이상 진행이 어렵다는 전갈이었다. 결국 낙오자가 발생한 셈이었다. 현 위치를 확인해 본 결과 향로봉갈림길에서 곧은치 방향으로 접어든 상황이었다. 우선 곧은치까지 동행한 다음 곧은치에서 관음사방향으로 하산하여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구룡사주차장까지 이동할 것을 권고하였다. 다행스럽게도 곧은치에서 관음사 방향으로 하산하는 산객들을 만나 동행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는 총무님의 마무리 교신을 받고 안심할 수 있었다. 또한 운 좋게도 관음사까지 동행한 다음 원주시내까지 자가용을 편승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하였다는 후문을 들었다.
- 곧은치에서 20여분 남짓 올라가면 첫 번째 헬기장이 나온다. 이 지점에서 원주시 일원이 시원하게 조망된다. 전망대 시설은 없었지만 주변 시계 청소가 잘 돼 있어 전망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헬기장 주변은 겨우내 쌓인 눈이 쌓여 설원을 이뤘다.
- 여기서 황골갈림길까지 능선구간은 가벼운 오르내림으로 이어졌지만 진행방향 왼쪽으로 바람이 눈을 쌓아 성벽을 이뤄 이를 피하여 진로를 선도하는데 따른 부담을 감수해야만 했다. 일부 구간은 아예 생눈을 뚫고 눈 성벽을 피해가면서 새 길을 닦아야만 했다. 황골갈림길 마지막 구간 내림막길을 접어들면서 난감한 상황이 벌어졌다. 비교적 수월한 구간을 지나면서 앞서 올라가던 일행 분들이 제자리걸음을 한 채 요동도 하지 않고 대장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현장에 도착해 보니 진행방향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면서 “어디로 가야 돼요?” 라는 질문이 떨어졌다. “길로 가야지요!” 라는 답변을 남기기는 하였지만 현문에 우답이었던 모양이다. 주변에 함께 있던 일행 분들이 폭소로 응답이 왔다. 앞서내려 가기는 하였지만 진행방향 전방으로 설원을 이뤄 선구자들의 발자국을 찾을 수 없었다. 대충 능선구간으로 직진하여 진로를 선도하다 보니 왁자지껄하는 인적과 함께 황골갈림길에 도착하였다. 수도권에서 오신 산객 두 분이 먼저 도착하여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크게 들렸던 것이다.
<황골 갈림길 이정표>
- 12:53 황골갈림길 경유
- 이 지점은 황골탐방지원센터에서 진입할 경우 여기서 합류 지점이다. 비로봉에서 남대봉으로 이어지는 종주코스 구간에 있는 중요 갈림길 중 한 곳이다. 치악산국립공원 탐방코스중 황골에서 비로봉 정상까지 4.1km로서 정상이 가장 가깝기 때문에 가장 빨리 비로봉 정상을 오를 수 있는 코스이기도 하다. 여기서 입석사까지 1.2km, 비로봉 정상까지 1.3km 지점이다.
- 황골갈림길에서 0.4km /10여분 남짓 오르다 보니 쥐너미재에 도착하였다. 이 지점에 치악산경관해설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앞서 경유한 헬기장에서 원주시 일원을 시원하게 조망한 이후 두 번째 맞이하는 전망대인 셈이다. 여기서 원주시내 한라대, 남원주요금소, 원주시청, 봉화산, 중안시장, 상지대, 우산공단, 원주요금소, 황골 일원 등이 손금 보듯 시원하게 내려다 보였다.
- 쥐너미재는 옛날 쥐떼가 넘어간 고개라 하여 쥐너미재라고 한다. 옛날 범골에 범사(凡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쥐가 너무 많아 스님들이 쥐등쌀에 견디지 못하고 절을 떠났다고 한다. 그 후 그 많은 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줄을 지어 범사를 떠났는데 그 이후로는 이 범사를 찾는 사람이 없어 절은 폐사되었다고 한다.
<비로봉감시초소>
- 13:29 비로봉감시초소 경유
- 이 지점은 들머리에 들면서 점심식사 장소로 예고된 장소였다. 점심식사가 좀 늦더라도 감시초소 인근 양지바른 안부가 점심식사 장소로 제격이기 때문이었다. 현장에 도착해 보니 감시초소 처마 밑 명당은 이미 먼저 올라온 산객들이 선점하고 있었다. 지난해 부곡에서 올라왔을 당시 정상에서 내려와 점심을 먹던 장소도 살펴보았지만 적설량이 만만치 않아 아예 포기하고 감시초소 석축아래 즙은 공간에 눈을 대충 발로 밀어내고 자리를 폈다. 여기서 선두 팀과 중간 팀이 교대로 식사를 마쳤다. 이미 정상적인 점심식사 시간을 넘긴 시간대였기 때문에 점심식사 후 마지막 깔딱구간 오름길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정상을 피하는 것이 좋을 듯 싶어 이 지점을 점심식사 장소로 점지하였다.
- 여기서 입석사까지 2.2km, 비로봉 정상까지 0.3km 지점이다. 또한 구룡사 계곡 하산 길로 세렴폭포까지 2.5km, 구룡사까지 4.8km로 이어지는 갈림길이다. 산행안내준비를 하면서 계곡길도 염두에 두었었지만 현장의 상황으로 봐서 계곡길을 포기하고 말았다. 눈 위에 새겨진 산행 흔적이 달랑 한사람 발자국뿐이었다. 생눈길을 뚫는 것 보다는 절 뚫어진 길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비로봉 정상석>
- 14:05 비로봉 정상 도착
- 비로봉은 원주8경중 제4경에 속한다. 행구동공원지킴터를 출발하여 선발팀 기준 5시간 만이다. 산행안내준비를 하면서 국형사 - 향로봉 1시간30분, 향로봉 - 비로봉 2시간30분으로 잡고 총 4시간으로 판단했었는데 예정시간 보다 무려 1시간이나 지체되었던 것이다. 오름구간 탐방로 상황이 생각보다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정상일원에는 미륵불탑외에 정상표석, 치악산경관해설안내도, 미륵불탑안내도, 상원사 10.5km, 입석사 2.5km, 구룡사 4.8km, 세렴폭포 2.7km를 알리는 이정표가 함께 세워져 있다. 정상석을 살펴보니 해발 1,288m 이었다. 산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즐겨 찾는 사이트에서 확인한바 에 의하면 1,282m 이었기 때문에 혼란스러웠지만 현장의 정보를 근거로 관련 자료를 수정하였다.
- 정상에서의 조망은 유난히도 눈부셨다. 바람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아래 우뚝 솟은 정상석을 중심으로 자리한 산신탑, 용왕탑, 칠성탑의 위용이 그 어느 때 보다 빛났다. 동서남북 사방으로 눈이 모자라게 펼쳐진 조망은 지금까지 한겨울 비로봉 정상 경험 중 최고로 느껴졌다. 한겨울 심설산행임에도 불구하고 바람이 없다는 사실이 참으로 신비스러웠다. 오늘같이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는 날씨에 바람이 겹쳐진다면 아마도 체감온도는 -30℃를 훨씬 넘었을 것이다. 지난주 태백산의 경우 기온은 오늘보다 포근하면서도 정상에서 칼바람을 만나는 바람에 점심식사도 제대로 못하는 우여곡절을 겪었었는데 오늘 비로봉 정상에서 이 같은 날씨를 접하고 보니 눈물겹도록 감동적이었다. 이는 아마도 지난주 태백산과 너무나도 대조를 이뤘기 때문일 것이다.
<정상에서 바라본 조망>
- 오늘 정상에서의 조망은 지난해 9. 16 가을산행에 이어 겨울산행으로는 최고의 조망환경이었다. 매번 고르지 못한 기후 관계로 시원한 조망을 포기하다 시피 하였는데 오늘 역시 지금까지의 아쉬움을 모두 채우고도 남음이 있었다. 남대봉, 시명봉, 향로봉, 곧은치. 원동재와 더불어 원주시일원과 횡성 안흥, 강림 일원의 치악산하가 눈이 모자라게 펼쳐졌다.
- 사다리병창 하산길의 난이도를 감안하여 회장님을 비롯한 선두 팀 일행 분들을 먼저 하산시켰다. 여기서 후미 팀을 기다려 합류할 요량이었다.14:40이 다돼가면서 총무님을 비롯한 후미 팀 일행 분들이 비로봉 정상에 도착하였다. 후미 팀은 아직까지 점심식사 전이었다. 정상 기념 인증 샷을 마치고 서둘러 점심식사를 마쳤다. 정상석에서 단체기념을 마치고 하산길에 올랐다. 이 때는 이미 15:00가 넘어가고 있었다. 하산구간 5,7km / 2시간으로 잡았었는데 2시간 만에 하산하더라도 하산예정시간 16:00을 1시간이상 지체가 예상되는 시간대였기 때문에 순조롭지 못한 일정운영이 불을 보듯 뻔하였다.
<산신탑>
- 비로봉감시초소에서 0.3km/10여분 남짓 오르면 용왕탑과 산신탑을 지나 정상표석앞에 설 수 있다. 보은의 꿩 전설과 함께 치악산을 대표하는 상징물은 주봉인 비로봉 정상에 세워진 세 개의 미륵불탑이다. 가운데 서있는 산신탑이 주탑이고, 남북으로 각각 용왕탑과 칠성탑을 거느리고 있다. 산신탑의 유래는 아래를 참고하기 바란다.
비로봉 미륵불탑의 유래
- 미륵불탑은 치악산 최고봉인 비로봉(1,288m)에 서 있는 3개의 돌탑이다. 이 탑은 원주시내에 거주하며 조그만 제과점을 운영하던 용창중(용진수)라는 사람에 의해 쌓여졌다고 전해진다. 어느 날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나는 치악산 산신령이다. 너는 지금부터 내가 있는 치악산 비로봉(시루봉)에 3개의 돌탑을 쌓되 너 혼자 힘으로 직접 쌓기를 원한다" 며 탑의 모양을 말해 주고는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잠에서 깨어난 용씨는 가족회의를 열고 탑을 쌓기로 결심하였으며, 그 날부터 3년간 3일에 2일은 탑을 쌓고 1일은 장사를 하여 생활을 하였다. 탑 쌓기는 3년 만에 완성되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하룻밤 만에 무너졌으며, 다시 산신령이 나타나 다시 쌓아 놓으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버렸다. 그리하여 용씨는 다시 3년에 걸쳐 탑을 쌓고 다시 하룻밤 만에 무너져 내렸고, 다시 쌓으라는 산신령의 말에 3년에 걸쳐 쌓은 탑이 지금의 미륵불탑이다.
- 이 탑은 치악산의 상징으로 사랑을 받았으나, 1999년 큰 낙뢰를 맞아 산신탑은 완전히 파손되고 칠성탑· 용왕탑은 반파되었다. 이후 몇 년간 방치되다가 2004년 치악산 국립공원의 협조와 원주 지역 등산인 들의 노력으로 복구했다. 현재는 낙뢰사고를 막기 위해 주탑인 신선탑 옆에 반경 80∼100m 내에서 발생되는 낙뢰를 막을 수 있는 반영구적 광역 피뢰침이 설치되어 있다.
<사다리병창>
- 사다리병창 하산 길 전망대를 벗어나면서 첫걸음부터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지난 겨우내 계단에 쌓인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다져져있거나 계단 자체가 푹 묻혀버려 착지가 불안하고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아이젠을 착용하였지만 아이젠발이 먹혀들지가 않았다. 세렴폭포까지 2,7km 마의 구간을 벗어날 일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아이젠은 착용하나 마나였고 위험구간에 설치된 로프에 의존하다시피 하여 사다리병창안내판이 세워져있는 지점에 있는 “사다리병창” 칼등 같은 암릉 구간을 통과하였다. 이 지점까지는 부회장님과 동행하면서 선발 후미 팀 일행 분들과의 합류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 그럴 즈음 후미 팀의 리더인 총무님으로부터 두 번째SOS 호출이 왔다. 후미 팀 중 한 분이 두 다리에 쥐가 나서 더 이상 진행이 불가능한 상태라는 전갈이었다. 아직까지 사다리병창을 지나지 않은 상황으로 봐서 주차장까지 3,2km 이상 되는 지점에서 오늘 두 번째 우발상황이 발생하였던 것이다. 구급약품 주머니를 뒤져보니 진통제, 지사제, 소화제는 있었지만 이런 상황을 대비하여 상비약으로 준비해가지고 다니던 아스피린이 없었던 것이다. 주말 오지회(오지를 사랑하는 모임) 활동 시 필수약품으로 준비해가지고 다니느라고 작은 배낭에 넣고 다니다가 이를 미처 챙기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 사다리병창 바로 아래 안부에 배낭을 벗어놓고 부회장님과 생이별하였다. 현 위치에서 후미 일행 분들과 합류하기 위해 대기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평소처럼 정상적인 컨디션을 유지하였다면 거슬러 올라가 동행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왼쪽 발목 염좌가 가라앉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하루 종일 조심 또 조심하면서 이 지점까지 하산한 처량한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을 맞이하여 좀 더 현명하게 대처할 수 없는 상황에 봉착하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하산하면서 배낭에 수납한 겉옷과 방풍재킷을 꺼내 완전 무장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땀이 식으면서 체온저하 증상이 나타났다. 다시 배낭을 둘러메고 제자리 뛰기를 하면서 체온을 높여 보았지만 이 또한 여의치가 않았다. 그럴 즈음 총무님으로부터 전갈이 왔다. 총무가 팬더 곰을 살렸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총무님의 응급조치가 효험이 있어 다시 하산을 시작하였다는 것이었다. 119구조신청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염두에 두었던 상황에서 컨디션이 회복되어 자력으로 하산을 시작하였다니 이보다 더 반가운 소식이 또 어디 있으랴 싶었다. 총무님과 교신이 있은 후 시간대를 확인해 보니 일몰 전 하산이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되었다. 배낭 깊숙이 수납된 헤드랜턴을 꺼내 놓은 다음 시계가 제한되어 답답한 심정에서 벗어나 보고자 사다리병창 바로 아래까지 거슬러 올라가 자리를 잡고 기다리다가 개선장군처럼 보무도 당당하게 하산하는 이산가족과 상봉하는 희열을 맛보기도 하였다. “하느님! 감사합니다.”가 저절로 나왔다. 119구조요청 없이 자력으로 일몰 전에 구룡사 경내 진입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되었으니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그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해진다.
- 사다리병창은 구룡사 큰골에서 세렴폭포와 갈라지는 곳에서 시작되는 바위로 된 치악산의 주 등산로이다. 바위 모양이 사다리를 곤두세운 것 같다고 하여 사다리병창이라고 부른다. '병창'은 영서 방언으로 '벼랑, 절벽'을 뜻한다. 사다리병창길은 계단이 약 1,000여개 정도이며, 길이는 2.7km로 비로봉으로 가는 가장 난코스에 해당된다. 치악산에 와서 치를 떨었다는 얘기가 나오는 코스가 바로 사다리병창 코스이다.
<세렴폭포>
- 17:02 세렴폭포 경유
- 세렴감시초소 앞에 이르러 휴식을 취하는 동안 총무님과 세렴폭포로 향했다. 꽁꽁 얼어붙어 볼거리가 없을 것으로 판단되었지만 평소 워낙 폭포를 좋아하는 관계로 빙폭이라도 눈요기할 요량이었다. 대충 눈 팅만 하고 발길을 서둘렀다.
- 아흡마리 용의 전설이 얽혀있는 치악산 구룡사 계곡에 위치한 세렴폭포는 2단으로 휘어져 떨어지는 환상적인 물줄기가 일품이다. 인근의 구룡폭포와 함께 치악산을 대표하는 곳으로 강원 내륙에 산재한 여러 폭포 가운데서도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그러나 한겨울 산행이므로 폭포의 위용을 볼 수 없었지만 잘 다듬어진 빙폭을 보면서 금년 여름 그를 빼어 닮은 폭포석 한 점 점지해야겠다고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을 해 보기도 하였다.
<구룡소>
- 17:32 구룡소 경유
- 얼음판으로 변한 구룡소는 기암의 차별 침식에 따라 낙석들이 층층으로 쌓여 만들어진 여울형 소이다. 전설에 의하면 의상대사가 구룡사 창건 당시 용 아홉 마리가 연못 속에 살다가 승천하였다하여 龍沼라 불리기도 한다.
<구룡사>
- 17:33
- 백두대간의 주맥이 오대산을 거쳐 서쪽으로 태기산을 지나, 국동의 명산 치악산에 이르고 거기에 영서의 대찰 구룡사(龜龍寺)가 자리 잡고 있다. 풍수 지리적으로 “천년이 지난 신령스러운 거북이 연꽃을 토하고 있고, 영험한 아홉 마리의 용이 구름을 풀어 놓는 형상을 한 천하의 승지”인 치악산에 구룡사는 서기668년(신라 문무왕8년) 의상대사께서 창건하셨으며 나말려초 도선국사의 비보사찰중의 하나로 수많은 고승의 발자취가 남아있다. 구룡사는 원주시 소초면 학곡2리 치악산(1288m) 국립공원에 자리 잡고 있으며 황장목(금강송)숲길의 일주문(원통문)을 지나 사천왕문에 들어서 구도의 계단을 올라 문화재인 보광루 밑을 지나면 대웅전이 자리 잡고 있다
- 구룡사(龜龍寺)의 유래(由來)를 살펴보고 넘어간다. 구룡사는 서기 666년(신라 문무왕 6년)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온다. 전설에 의하면 현 대웅전(大雄殿) 터가 원래는 큰 연못이었고, 이 연못에는 청룡(靑龍) 아홉 마리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의상대사가 이 연못에 있는 용(龍)들을 불도(佛道)의 힘으로 쫓아내고, 연못을 메우고 절을 이룬 뒤 사찰의 이름(寺名)을 아홉 마리의 용이 살고 있었던 곳이라는 구룡사(九龍寺)라 부르게 했다고 한다 한편 달아나던 용들은 얼마나 다급했던지 구룡사 앞산을 여덟 개로 쪼개 놓으며 도망을 했다 한다. 이후 구룡사(龜龍寺)는 사세(寺勢)가 많이 기울었으며, 당시 어느 도인이 절 입구에 있는 거북바위의 혈(血)을 끊으면 절이 번창하게 될 것이라 하여, 거북바위 혈을 끊었으나 절은 날이 갈수록 신도가 줄어 이후 폐찰 상태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거북바위를 살리는 뜻에서, 사명을 '거북구(구)'자를 써서, 구룡사(구龍寺)로 개칭(改稱)하였으며 절 이름이 그 이후부터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전한다.
<황장금표>
- 17:49 황장금표 경유
- 황장금표는 구룡사에서 내려오면서 매표소 입구 직전 오른쪽에 놓여 있다. 황장목(黃腸木)의 보호를 위하여 일반인의 벌목을 금지하는 경계의 표시이다. 황장목은 나무의 안쪽색깔이 누렇고 몸이 단단한 질이 좋은 소나무로서 왕실에 올리는 특산물 중의 하나이며, 궁에서 신관을 만드는데 주로 사용되었다. 특히 치악산은 질이 좋은 소나무가 많을 뿐 아니라 관아가 가까이 있어 관리도 유리하였고, 한강의 상류에 자리하여 뗏목으로 한양까지의 운송이 편리하여 전국에 있는 60여 개소의 황장목 보호림 가운데에도 이름난 곳의 하나였다. 금표는 작은 바위의 한면을 평평하게 다듬어 ‘황장금표(黃腸禁標)’라는 글귀를 새긴 모습으로, 최근에 ‘금’자와 ‘표’자 사이의 윗부분에 ‘동(東)’자가 새로이 발견되었다. 구룡사 입구에서 100여m 정도 내려가면 도로가의 흙속에 일부가 묻혀 있는 1기의 금표가 더 남아 있는데, ‘금표’의 글귀 윗부분에 ‘외(外)’자가 보인다. 이렇듯 보호림 구역을 만들어 표시를 해놓는 제도는 조선시대 전기부터 생겨난 것으로, 강원도에는 이곳 외에도 인제, 영월, 양양 등에 있다. 지금은 눈이 수북이 쌓여 황잠금표 글씨를 확인할 수 없다.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면 눈을 치우고 한 컷 담아오고자 하였으나 그럴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현장의 모습 그대로를 담아왔다.
<학곡리 구룡사주차장>
- 18:10 주차장 도착
- 오늘 날머리가 위치한 학곡리를 살펴보고 넘어간다. 학곡리는 치악산 국립공원 및 구룡사가 소재하고 있는 지역이다. 동쪽으로는 횡성군 우천면과 접해 있고 서쪽으로는 평장리, 남쪽으로는 치악산이 횡성군 강림면을 가로막고 있으며 북쪽은 횡성군 우천면과 접하여 있다. 동과 남으로는 치악산과 그 줄기인 매화산이 막혀 있다. 학곡리는 현 학곡저수지를 활골저수지라고 하는 등 활골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활골을 한자로 학곡으로 적은 것으로 추정되나 명확하지 않다.
- 학곡리는 본래 소초면의 지역으로서, 팔리(八里)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대곡, 이흥, 백교, 수철, 삼신, 신흥, 장대, 칠송, 토동, 토정을 병합하여 학곡리라 하였다. 학곡리는 주민 90%이상이 관광객을 상대로 상업에 종사하는 지역이다.
- 차량 한 대 없는 썰렁한 주차장에 들어서면서 땅거미가 지면서 어둠이 깔렸다. 버스를 찾아보았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큰 주차장을 빠져나와 보니 아래 작은 주차장에서 대기중이었다. 우리 일행을 기다리다 학목이 된 일행 분들의 환영을 받으며 버스에 승차하였다. 버스에 승차하면서 장시간 지체하여 몸 둘 바를 모르며 안절부절 하는 후미 팀을 박수로 환영하는 모습에서 모두님들의 성숙된 일면을 읽을 수 있었다. 1시간30여분을 지루하게 기다려준 점에 대해 심심한 유감의 뜻을 전하면서 이를 이해해 주시고 박수로 환영해 주신 점에 대해서 깊이 감사드린다.
- 현지사정상 하산행사를 생략하고 서둘러 귀로에 올랐다. 버스 내에서 하산행사로 준비한 안주로 이슬이를 기울이면서 덕담을 나눴다. 춘천근교에 이르러서야 1부 행사가 막을 내리고 연이어 2부 행사안내로 이어졌다. 오늘 2부 행사는 모든 분들의 총의에 따라 오늘 동행하신 모든 분들이 함께하여 자리를 빛내 주셨다.
□ 산행을 마치고
- 언론보도에 의하면 이번 동장군은 65년만의 추위라고 하였다. 연일 한파특보가 내려지면서 호들갑을 떠는 모습이 못마땅하기도 하였다. 예전의 추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듯 싶었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정말 추운가? 로 부정에서 긍정으로 마음을 열어 접수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을 무릅쓰고 치악산에 갔다가 치를 떨었다고 정평이 나있는 치악산 사다리병창코스를 심설산행으로 다녀왔으니 간덩이가 부어서 배 밖으로 나왔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집사람 왈 엄동설한에 거가 갔다 오면 상줘! 쉬었다가 다음에 가면 되는 거지 하고 걱정하던 모습을 떠올리면서 이점 역시 공감이 갔다. 컨디션 난조로 한걸음 한걸음이 부담스럽고 조심스러웠지만 우리 모두와 함께 기필코 해내고야 말았다. 지난해 연말 함백산에 이어 1월 내내 심설산행으로 이어졌고 2월 첫 문을 열면서 치악산 심설산행으로 이어졌으니 지금까지 겁 없이 강행군 한 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산 즐산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던 점에 대해서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