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유통회-
묘법연화경.일일법문:무루(無漏)의 모든 아라한과..
무루(無漏)의 모든 아라한과
또 열반을 구하는 사람들이
지금 모두 의혹의 그물에 떨어졌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무슨 까닭에 이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까!2-37,1
연각(緣覺)을 구하는 자들과
비구와 비구니와
모든 하늘과 용과 귀와 신과
또 건달바 등이..
마음속으로 서로 쳐다보고 기다리며
양족존(兩足尊)을 우러러 보고 있습니다.
이 일이 어찌된 것입니까!
원컨대 부처님이시여! 해설해주소서!2-37,2
무루제나한 급구열반자 금개타의망 불하고설시
無漏諸羅漢 及求涅槃者 今皆墮疑網 佛何故說是
기구연각자 비구비구니 제천용귀신 급건달바등
其求緣覺者 比丘比丘尼 諸天龍鬼神 及乾闥婆等
상시품유예 첨앙양족존 시사위운하 원불위해설
相視懷猶豫 瞻仰兩足尊 是事爲云何 願佛爲解說
1-이 게송은 삼승(三乘)의 오중(五衆)이 모두 의혹하는 일을 사리불이 노래한 것이니, 첫째 무루제나한(無漏諸羅漢)은 성문이 의혹한 것이고, 둘째 급구열반자(及求涅槃者)는 보살이 의혹한 것이고, 셋째 기구연각자(其求緣覺者)는 연각이 의혹한 것이고, 넷째 비구비구니(比丘比丘尼)는 승단이 의혹한 것이고, 다섯째 제천용귀신 급건달바등(諸天龍鬼神 及乾闥婆等)은 천룡팔부가 의혹한 것이다.
2-앞에 부처님의 게송에서“世雄不可量 諸天及世人 一切衆生類 無能知佛者”를 노래한 것은, 제천용귀신 급건달바등(諸天龍鬼神 及乾闥婆等)이 의혹을 가리킨다.
3-앞에 부처님의 게송에서 “辟支佛利智 無漏最後身 亦滿十方界 其數如竹林 斯等共一心 於億無量劫 欲思佛實智 莫能知少分”를 노래한 것은, 기구연각자(其求緣覺者)가 의혹한 것을 가리킨다.
4-앞에 부처님의 게송에서 “正使滿十方 皆如舍利弗 及餘諸弟子 亦滿十方刹 盡思共度量 亦復不能知”를 노래한 것은, 무루제나한(無漏諸羅漢)이 의혹한 것을 가리킨다.
5-앞에 부처님의 게송에서 “不退諸菩薩 其數如恒沙 一心共思求 亦復不能知”를 노래한 것은 급구열반자(及求涅槃者)가 의혹한 것을 가리킨다.
6-앞에 글에서 “發聲聞 辟支佛心 比丘 比丘尼 優婆塞 優婆夷”는 비구비구니(比丘比丘尼)가 의혹한 것을 가리킨다.
7-이 게송은 영산도량의 대중을 대표하여 사리불이 부처님의 참된 지혜를 아는 제자가 없음을 고백한 것이다.
8-쉽게 설명하면 부처님이 제법실상의 십여시를 말씀하셨으나 아무도 제법실상의 십여시에 대해 조금도 아는 제자가 없음을 게송으로 노래한 것이다.
9-삼실삼관에 입각하여 제법실상의 십여시(十如是)를 적문의 제자인 지금 게송에 나오는 모든 사람의 입장에서 설명하면 세 가지의 도리를 모르기 때문에, 비록 제법실상의 십여시에 들어갔다 해도, 십여시(十如是) 중에 삼여시(三如是)인 여시상(如是相)과 여시성(如是性)과 여시체(如是體)에 머물러 있음을 알 수가 있다.
10-세 가지의 도리란, 첫째 유불여불(唯佛與佛)의 경계. 둘째 수의설법(隨宜說法)의 경계. 셋째 수기설법(授記說法)의 경계. 이다.
11-첫째 유불여불(唯佛與佛)의 경계란! 삼실삼관(三實三觀) 중에 제법실상(諸法實相)의 경계이니 현재실상(現在實相)을 가리킨다. 즉 시방세계에 모든 경계가 모두 불계(佛界)의 경계임을 보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체중생이 부처님임을 보았기 때문에, 영산제자들이 더 이상의 경계가 없다고 여긴 것이다.
12-원래 유불여불(唯佛與佛)의 경계란! 십여시(十如是)를 모조리 보아야 하나, 영산제자들이 방편품(方便品)에서 삼여시(三如是) 즉 일체제법(一切諸法)의 여시상(如是相)의 경계와 여시성(如是性)의 경계와 여시체(如是體)의 경계만을 보고 제불(諸佛)의 유불여불(唯佛與佛)인 줄로 착각을 한 것이다. 이를 제법실상(諸法實相)의 경계라 하고 현재실상(現在實相)을 가리킨다.
13-둘째 수의설법(隨宜說法)의 경계란! 중생이 무량한 겁 헤아릴 수 없는 겁 전의 무명(無明)일 때에부터 근기를 관찰하는 경계이니, 이 경계를 아무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를 무루실상(無漏實相)의 경계라 하고 과거실상(過去實相)을 가리킨다.
14-제법실상의 십여시(十如是) 중에 여시력(如是力)과 여시작(如是作)과 여시인(如是因)과 여시연(如是緣)과 여시과(如是果)와 여시보(如是報)의 6경계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삼실삼관에 입각하면 일념삼천의 관법은 현재실상에 안주해 제불의 현재 경계를 보고 만족하였기 때문에 방편관이라 하는 것이다.
15-쉽게 설명하면 일념삼천의 관법은 중생의 현재 불성(佛性)을 보았으나, 과거 무시(無始)의 무명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념삼천(一念三千)의 관법을 방편관(方便觀)이라 하는 것이다.
16-무시(無始)의 무명(無明)을 보지 못했다 함은 바로 네 종류의 근기 중에, 첫째 성문근기와 둘째 연각근기와 셋째 보살근기와 넷째 여래근기를 부처님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17-셋째 수기설법(授記說法)의 경계란! 일체중생에게 수기를 말할 수 있는 경계를 말한다. 즉 그냥 말로 “부처님이 되라.”하는 이런 것이 아니고, 실제로 중생이 무명에서부터 부처님이 되는 모든 과정을 모조리 아는 것을 말한다. 즉 제법실상의 현재실상에서 일체중생이 부처님이 된 것만 본 것이 아니라, 부처님이 되는 모든 과정을 모조리 아는 것을 수기설법의 경계라 하는 것이다. 이를 중도실상의 경계라 하고 미래실상을 가리킨다.
18-수기설법의 경계는 십여시(十如是) 중에, 여시본말구경등(如是本末究竟等)의 경계를 말한다.
19-쉽게 설명을 하면, 십여시 중에 영산제자들이 본 것은, 첫째 현재실상의 삼여시(三如是)인 여시상과 여시성과 여시체이고, 둘째 과거실상의 육여시(六如是)인 여시력과 여시작과 여시인과 여시연과 여시과와 여시보이고, 셋째 미래실상의 일여시(一如是)인 여시본말구경등이니, 이 중에 첫째 삼여시인 여시상과 여시성과 여시체만 본 것이다. 따라서 영산제자들은 법화경의 보문에 들어와야 십여시를 듣고 모조리 깨닫게 되는 것이다.
20-따라서 일념삼천(一念三千)의 도리를 가지고 불계(佛界)를 비록 지견(知見)하였으나, 여래(如來)라는 소리와 이름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21-또 참된 현재실상이란, 과거실상을 보고 미래실상은 보아야 참된 현재실상에 들어간다고 하는 것이다.
22-천태보살의 일념삼천의 관법은 하근기는 제법실상이 불상(佛相)임을 보고, 중근기는 제법실상이 불성(佛性)임을 보고, 상근기는 제법실상이 불체(佛體)임을 보는 것까지이다.
23-따라서 천태보살의 일념삼천을 가지고 유불여불(唯佛與佛)의 경계라 하지만, 수의설법(隨宜說法)의 경계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일체중생의 네 종류의 근기인 성문근기와 연각근기와 보살근기와 여래근기를 볼 수 없었고, 수기설법의 경계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일체중생에게 수기(授記)를 줄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처님이 되어야만 수기(授記)를 주기 때문이다. 8만의 대장경 안에 보살이 중생에게 수기를 주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24-유불여불(唯佛與佛)의 경계는 현재가 불계(佛界)임을 분명하게 보는 경계이고, 수의설법(隨宜說法)의 경계는 일체중생의 무명(無明)을 모조리 보는 경계이고, 수기설법(授記說法)의 경계는 일체중생이 불도(佛道)를 이루는 과정을 모조리 보는 경계이다.
25-구몽삼매관(九夢三昧觀)은 이렇게 삼실삼관에 입각하여 꿈속에서 이 세 가지의 도리를 모조리 보는 경계이니, 구몽삼매(九夢三昧)를 통해 불계와 무명과 수기를 모조리 보기 때문에, 부처님이 열반경에서 이르시길, “나는 세간과 출세간에 출현한 적이 없고, 또 일체중생을 제도한 적이 없다.”하신 것이다.
26-우리 여래인(如來人)들은 법화가(法華家)의 본문인(本門人)이며 결코 적문인(迹門人)이 아니고, 또 일념삼천의 방편관을 닦는 것이 아니라, 삼실삼관을 닦아 비록 중생의 몸을 하였으나 여래(如來)라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 마치 보살근기가 비록 중생이나 인간보살(人間菩薩)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과 같음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열반경에서 부처님이 이르시길, “열반경을 읽는 중생이 비록 사람일지라도 인간보살이라 부른다.”하시었다.
27-대개 근기의 이름을 명칭(名稱)할 때에는 비록 중생이나 화엄경을 읽으면 화엄중생이라 하고 또는 인간화엄이라 하듯이, 우리들 법화경유통회의 모든 사람들을 가리켜 “인간여래(人間如來)”라 하는 것이다.
28-현재 사람들이 많이 불교에 들어왔으나, 헤매는 이유는 부처님이 되는 과정을 모르기 때문에 헤매는 것이다.
29-선종에서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이 되는 과정을 모르기 때문에 거지와 같은 참선이니 화두선이니 간화선이니 하는 것을 만들어 내어 깨달음에 들어간다고 하나, 이들이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나, 살아생전이나 죽은 후에 보살이나 여래는 이름을 듣지 못하는 것은 나쁜 비구를 만나 스승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30-따라서 지금 현재를 보면, 우리들 여래인이 비록 선종에서 깨달았다고 하는 무리를 찾아가 가르침을 얻고자 하나, 모두 허탈한 마음만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태반이고, 또 우바이들은 원래 지혜롭지 못한 편이라 지혜를 가지고 스승을 판단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금 불교를 보면 모조리 우바이들로 가득한 것이다.
31-보운법사는 비록 부처님은 아니지만 부처님이 되는 과정은 알고 있는 사람이니, 법화경유통회에 모든 여래인들은 보운법사의 가르침을 따르면 분명히 이익을 있을 것임을 보증합니다.
32-간혹 법화경유통회에 들어왔다가 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영산근기일 가능성이, 마치 우리들 여래인들이 서분의 용수보살이나 정종의 천태보살의 논서를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과 같고, 깨달음은 얻었다고 하나 실제로 이것을 어디에 사용하는지에 대해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33-지금은 분명히 법화경의 유통시절임이 분명하기 때문에, 모든 불교인들 중에 잘 아든 모르든 간에 법화경을 가지고 나름 열심히 닦고 있는 것은, 유통시절이 도래했음을 나타내는 하나의 증거입니다.
34-보운법사는 법화경유통회에 여래인들을 마치 여래와 같이 여기며, 공양하고 공경하며 존중하고 찬탄을 합니다.
-偈頌-
불교(佛敎)를 삼분(三分)하면
정법시절을 가리켜
불교의 서분시절이라 하고,-1
상법시절을 가리켜
불교의 정종시절이라 하고,-2
말법시절을 가리켜
법화경의 유통시절이라 한다.-3
정법시절과 상법시절에는
영산도량의 제자들이
그 역할을 맡았으나,-4
이제 말법시절에는
법화경 유통시절이라
우리들 경전도량의
여래인(如來人)들이
그 역할을 맡았음을 분명하게 알고,
환희(歡喜)가 용약(踊躍)하는
미래가 기다라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5
-寶雲法師 瞻仰合掌-
一乘妙法蓮華經 一切諸佛神通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