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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태시인의음악사랑이야기 (111)
《귀향의 인문학,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삶의 어느 길목에서 이 노래를 나지막이 읊조려본 적이 있을 것이다.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전주가 흐르고 '가왕' 조용필의 호소력 짙은 음성이 퍼지는 순간, 우리의 머릿속에는 넘실거리는 검은 파도와 오륙도를 돌아서는 연락선, 그리고 안개 속으로 아득히 멀어지는 한 사람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단순한 대중가요 한 곡을 넘어, 70~80년대 한국 현대사의 굴곡과 민족적 한(恨), 그리고 인간이 가진 가장 근원적인 정서인 '기다림'을 담아낸 서사시다.
항구에는 언제나 두 개의 길이 있다. 하나는 먼바다를 향해 떠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운 사람에게 돌아오는 길이다. 떠나는 사람에게 항구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출발점이지만, 남겨진 사람에게 항구는 기다림이 시작되는 자리다.
그래서 항구를 노래한 가요에는 유난히 이별과 그리움, 눈물과 귀향의 정서가 짙게 배어 있다. 우리 가요 가운데 항구라는 공간을 이토록 강렬한 그리움의 장소로 만들어 놓은 노래가 또 있을까.
필자는 부산에서 살아온 사람으로서 부산항이라는 이름에 남다른 정감을 느낀다. 부산의 바다는 언제나 열려 있다. 파도는 밀려왔다가 물러가고, 배는 떠났다가 돌아온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바다처럼 쉽게 오고 갈 수 없다. 떠나보낸 사람을 기다리는 마음에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어지는 그리움이 있기 때문이다.
노래는 사람을 즐겁게 하는 오락을 넘어, 한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감정과 기억을 담아내는 문화의 기록이다.
그것이 대중가요가 지닌 인문학적 가치다.
이 곡의 출발점에는 작곡가 황선우와 비운의 가수 김해일(본명 김성술)의 서사가 자리하고 있다.
1969년, 작곡가 황선우는 고독과 실연의 아픔 속에서 밤새 기타를 튕기며 노래를 만들었다. 본래 그가 구상했던 곡은 부산항을 배경으로 한 노래였으나, 당시 충무(지금의 통영) 출신 지망생이었던 김해일과 인연이 닿으며 1970년 '돌아와요 충무항에'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첫 선을 보이게 된다.
"꽃피는 미륵산에 봄이 왔건만 님 떠난 충무항은 갈매기만 슬피 우네…"
당시 김해일이 써 내려간 노랫말은 떠나간 연인을 향한 사모곡이었다.
원곡인 '돌아와요 충무항에'는 충무항과 미륵산, 세병관, 한산도 등 통영의 풍경과 정서를 담고 있었다.
필자가 삶의 노정에 '케렌시아
(querencia)'로 활용하고 있는 '운형산방'이 위치한 곳도 바로 이 통영이다. 그래서 더 애틋하게 이 노래가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음반은 빛을 보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가창을 맡았던 김해일은 군 입대 후 휴가를 나왔다가 1971년 대연각 호텔 화재 참사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고 만다. 슬픔에 빠진 유가족들이 음반을 회수해 타오르는 불길 속에 묻어버리면서, 노래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멜로디의 생명력은 끊이지 않았다. 곡을 사장시키기 아까웠던 황선우는 1972년, 갓 데뷔한 신인 가수 조용필에게 이 곡을 안겨준다. '충무항'은 당초 목적지였던 '부산항'으로, '미륵산'은 '동백섬'으로 바뀌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잔잔하고 밋밋한 템포였던 이 곡은 여전히 대중의 큰 반향을 얻지 못했다.
반전은 1976년에 찾아온다. 조용필은 곡의 템포를 빠르고 경쾌하게 바꾸고 트로트와 록 음악의 질감을 조화롭게 결합해 다시 편곡하여 발표한다. 그리고 노랫말 속 떠나간 '님'을 '형제'로 다듬어내며, 곡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명곡은 처음부터 완성된 모습으로 세상에 나오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한 곡의 노래가 사람들의 가슴에 깊이 들어가기까지는 작곡가의 구상과 작사가의 언어, 가수의 해석, 편곡자의 감각이 서로 만나고 부딪히는 과정이 필요하다. 때로는 오랜 시간의 기다림도 필요하다.
이 대목에서 음악과 인생이 참으로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도 처음부터 완성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젊은 날에는 서툴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도 많다. 한때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지만, 실패와 경험을 거듭하면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만들어 가듯이 말이다.
이 곡이 여러 변화를 거쳐 명곡으로 완성되었듯이, 우리 인생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저마다의 깊이를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 명곡은 세월을 견디며 완성되고, 사람은 세월을 살아 내며 성숙해진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인문학적으로 볼 때 '항구(Port)'는 언제나 경계의 공간이다.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 머무름과 떠남이 끊임없이 교차하며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장소다.
우리의 삶 역시 어쩌면 누군가를 끝없이 떠나보내고, 또 무언가의 돌아옴을 간절히 기다리는 '부산항'과 닮아 있다. 동백꽃이 피고 지는 자연의 순환(봄) 속에서도 정작 내가 기다리는 존재가 부재할 때 느끼는 결핍의 정서, 즉 "봄은 왔건만 온 것이 아니다(춘래불사춘, 春來不似春)"라는 역설이 이 노래의 첫 구절에 깊게 뿌리내려 있다.
또한 조용필이라는 거목의 가창은 슬픔을 단순히 비탄에 묵혀두지 않았다. 절절하면서도 터져 나오는 특유의 창법은 시련을 딛고 다시 일어서려는 생명력을 품고 있다.
그의 가창에는 맑고 고운 소리만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거친 울림과 절절한 호소력이 있다. 노래가 절정으로 향할수록 그 목소리는 단순한 선율을 넘어 한 사람의 가슴속에 쌓인 감정을 터뜨리는 듯하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흔히 말하는 '한(限)'이라는 정서는 단순히 슬픔만을 뜻하지 않는다. 이루지 못한 소망, 견뎌야 했던 세월, 쉽게 풀리지 않는 마음이 오랜 시간 안에 쌓여 형성된 복합적인 감정이다. 조용필은 이 노래를 부르면서 그러한 정서를 자신만의 목소리로 표현했다.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젊은 날의 사랑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살아온 세월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오랜만에 가족을 만났던 순간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같은 노래를 듣고도 사람마다 떠오르는 장면이 다른 이유는 노래가 각자의 기억을 불러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 노래는 일본으로 건너가 현지 엔카 가수들에 의해 번안되어 불렸고, 세계적인 팝 오케스트라 폴 모리아(Paul Mauriat)가 항구의 서정을 담아 연주곡으로 내놓는 등 국경을 넘어 유라시아 대륙 전체의 정서를 두드리는 '회귀의 찬가'가 될 수 있었다.
이 노래를 더욱 깊이 이해하려면 발표 당시의 시대적 배경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70년대 한국 사회에는 고향과 가족을 떠나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변화 속에서 일자리를 찾아 타지로 향한 이들이 있었고, 역사적 사정 때문에 오랫동안 고국에 돌아오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특히 1970년대 후반 재일동포 모국 방문은 이 노래의 정서가 널리 공감을 얻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고국을 찾아오는 재일동포들의 모습과 노래 속 귀향의 정서가 맞물리면서,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개인적인 사랑의 노래를 넘어 가족과 형제를 그리는 노래로 더욱 깊이 받아들여졌다.
처음 노래를 들을 때 우리는 떠나간 연인이나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시대의 아픔과 역사의 흐름을 알고 다시 들으면, 노래 속 그리움은 훨씬 넓어진다. 그것은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그리움이며, 오랜 세월 가족과 떨어져 살아온 이들의 마음이기도 하다. 바다 하나를 사이에 두고도 마음대로 오갈 수 없었던 시절의 안타까움이 그 속에 스며 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이라는 참혹한 비극을 거치며 고국을 떠나 타향(조총련계 등)에서 숨죽여 살아야 했던 재일동포들이 수십 년 만에 배를 타고 부산항에 첫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백발이 된 형제와 자매가 관문인 부산항 배다리 위에서 끌어안고 통곡하던 그 시절, 라디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 가사는 전 국민의 가슴을 쥐어짜듯 울렸다.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 목메어 불러봐도 대답없는 내 형제여/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
개인의 애절한 실연 노래(님)가 순식간에 민족적 분단과 이별의 한을 치유하는 시대의 애가(애국적 낭만가, 형제)로 승화된 것이다. 부산항이라는 상징적 공간은 이별의 눈물이 채워진 포구이자, 비로소 상처를 어루만지고 재회를 맞이하는 치유의 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인문학은 인간의 삶을 그 시대의 역사와 함께 읽어 내는 공부다. 그런 의미에서 노래 한 곡을 역사적 배경과 연결해 듣는 일도 훌륭한 인문학적 경험이 된다. 노래의 가락만 들을 때는 애절한 대중가요이지만, 그 시대를 함께 떠올리면 한 사람의 사연이 역사의 한 장면으로 확장된다. 이것이 음악이 가진 특별한 힘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기록으로 남지만, 음악은 그 기록 속에 담긴 사람들의 감정을 우리에게 다시 들려준다. 오래된 노래 한 곡이 때로는 두꺼운 역사책보다 더 가까이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제 노래를 잠시 내려놓고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자. 누구에게나 돌아가고 싶은 항구가 하나쯤은 있다. 어린 시절 뛰놀던 고향 마을일 수도 있고, 부모님이 계시던 옛집일 수도 있다. 젊은 날 친구들과 어울리던 골목이나, 한때 꿈을 품고 살아가던 작은 방일 수도 있다. 세월이 흐르면 그곳의 모습은 달라진다. 옛집은 사라지고, 골목에는 새로운 건물이 들어선다. 함께 웃고 울던 사람들도 하나둘 다른 길을 걸어간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곳을 기억한다. 실제로 그곳에 돌아가고 싶어서이기도 하지만, 그곳에 남아 있는 자신의 지난날을 다시 만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돌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공간을 되찾는 일이 아니다. 그 시절의 마음을 다시 이해하고, 그때의 자신을 오늘의 눈으로 바라보는 일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어쩌면 인생의 여러 항구를 지나온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젊은 날에는 앞만 보고 달려가지만, 세월이 쌓이면 지나온 항구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온다.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 이루지 못한 꿈, 미처 전하지 못한 말들이 새삼 마음에 떠오른다. 그때 비로소 깨닫는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멀리 떠났느냐만이 아니라, 누구와 함께했으며 무엇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왔느냐는 사실을. 그러므로 돌아가고 싶은 항구가 있다는 것은 아직 마음속에 소중한 사람이 있고, 기억해야 할 시간이 있으며, 감사해야 할 인연이 남아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노래는 어쩌면 우리 자신에게 보내는 조용한 질문일 수도 있다.
'당신은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그리고 언젠가 반드시 돌아가고 싶은 곳은 어디인가?' 그 질문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지나온 삶을 돌아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한 곡의 노래는 우리에게 충분한 위로와 성찰을 선물한다.
돌아온다는 말은 단순히 출발했던 장소로 되돌아간다는 뜻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끊어졌던 관계를 다시 잇고, 멀어졌던 마음을 가까이 가져오는 일이기도 하다.
돌아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돌아가고 싶은 곳이 있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끝내 놓지 말아야 할 삶의 아름다운 선율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돌아간다는 것이 반드시 과거에 머문다는 뜻은 아니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는 까닭은 오늘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 내일을 조금 더 따뜻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다.
지금 당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당신이 돌아가야 할 마음의 항구는 어디인가?'라고 이 노래는 묻고 있다.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늦기 전에 당신의 마음을 자주 전하라고 조용히 일러주는 노래가 아닐까.
/문화칼럼니스트 최진태

첫댓글 조용필 - 돌아와요 부산항에 [광복80주년 KBS대기획 - 조용필, 이 순간을 영원히] | KBS 251006 방송
https://youtube.com/watch?v=4uDf1A3TN9s&si=oT1Vlq69y6YaEKX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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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와요 부산항에 하모니카커버 | 조용필 명곡 감성 연주
https://youtube.com/watch?v=qRS1YaaVp_E&si=2SQF_Cgv7pNz5dp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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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힌트로 너무나 잘 유용하게 활용하는 분
ㅎㅎ
칭찬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