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스터의 출산
어제 오후부터 지금까지 나는 연구실에서 아무 일도 못할 정도로 아이들의 전화를 많이 받고 있다. 햄스터(정확하게는 로보로브스키)가 새끼를 낳았기 때문이다. 어제 방과 후 선빈이가 처음 발견한 모양인데 선우, 선형이까지 번갈아 가며 숱하게 전화를 해댄다.
“우리 햄스터가 새끼를 일곱 마리나 낳았어요.”
“선형이가 자꾸 만져요. 그러지 말라고 했는데......”
“큰일 났어요. 새끼들이 안 보여요. 죽었나 봐요. 엉엉.”
“아, 다시 보여요.”
“아빠 말씀대로 아빠 햄스터를 다른 곳에 감금시켰어요.”
저녁에 집에 들어가니 베란다 출입문에는, ‘출입금지. 햄스터 새끼가 있으니.’라는 경고문이 붙어있다. 내가 밥을 먹는 동안 선빈이는 식탁 앞에 누워서 손발을 버둥거리며 햄스터 새끼의 몸짓을 흉내 내 보여준다.
“새끼들이 아주 건강해요.”
하며 아이들은 모두 기뻐하는데, 그 옆의 아내는 얼굴에 걱정이 가득하다.
지난 월드컵 때 한국이 스페인을 이긴 날 축하 기념으로 산 놈들이다. 네 마리를 샀는데 그 이후 서로 싸우다가 두 마리는 죽고 두 마리만 남았는데 결국 이 놈들이 가족을 이렇게 늘려놓은 것이다.
참, 지난 주에 선형이가 학원에서 받아온 우렁이들도 어항 윗 부분에 분홍빛 알을 두 무더기나 낳아놓았다. 조만간 우리 집은 햄스터와 우렁이로 가득 찰 것 같다.
(2002.11.27.)
(경남대 김원중)
햄스터 분양합니다
요즘 나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바로 달려가는 곳이 있다. 저녁에 퇴근해서도 제일 먼저 그곳에 간다. 다름 아니라 베란다에 있는 햄스터(정확하게는 로보로브스키) 집이다. 현재 햄스터의 수는 총 13 마리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두 마리밖에 없었는데 두 달 사이에 그렇게 늘어났다. 먼저 지난 달에 그 두 마리가 새끼 6 마리를 낳아 모두 무사히 키워냈으며, 며칠 전에 또 7 마리를 낳아 지금까지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그렇다면 총 15 마리가 되어야 하는데 왜 13 마리뿐이냐 하면, 지난 달에 낳은 놈 중 2 마리를 선우가 친구 건이에게 분양했기 때문이다.
햄스터의 새끼 출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지난 겨울에도 두 번 있었다. 그때도 우리 아이들이 모두 흥분했으며 나도 그 소식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러나, 그 두 번은 모두 실패로 끝났다. 추운 겨울 날씨 때문이었는지 며칠만에 모두 죽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 출산에도 가족 모두 한동안 노심초사했다. 아이들도 당분간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지 않았으며, 누구도 큰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조심했다. 그래서 그랬는가 - 실은 따뜻한 날씨 덕분이겠지만 - 지난 달에 낳은 새끼들은 한 마리도 잃지 않고 모두 건강하게 자라났을 뿐만 아니라, 또 채 한 달이 지나기 전에 연이은 경사를 맞은 것이다. 나와 아이들은 모두 좋아 죽겠는데 반해, 아내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은 것으로 보아 혹시 다른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새끼를 키우는 중에 우여곡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이들 중에도 유난히 햄스터를 좋아하는 선빈이가 새끼들이 배에까지 털이 나자 안심을 하고는 한 마리를 몰래 꺼내어 데리고 놀다가 손에서 떨어뜨리는 일이 있었던 것이다. 내가 퇴근하여 햄스터 집을 들여다보니 아침까지는 모두 멀쩡했었는데 새끼 중 한 마리가 뒷다리를 쓰지 못하고 질질 끌고 다니더란 것이다. 혼자 속으로 ‘왜 이렇게 됐지? 햄스터에게도 소아마비가 있나?’ 하고 궁금해 하다가 아내를 통해 그 날 낮에 있었던 선빈이의 실수를 들었다. 순간 몹시 화가 났으나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생각을 해보니 햄스터 새끼도 안 됐지만, 선빈이 놈도 제 딴에는 꽤나 가슴이 아플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꾸짖지 않고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아, 얼마나 마음이 넓은 아버지인가! 내가 마음씨를 곱게 써서 그랬는가, 며칠이 지나자 그 놈도 다시 멀쩡해졌다. 더불어 선빈이의 죄책감과 나의 분노와 안타까움까지 싹 해소되었다.
며칠 전 햄스터가 두 번째 출산을 한 다음 날, 아이들과 함께 롯데마트 애완동물 코너에 가서 햄스터 집을 한 채 더 사왔다. 돈도 수 억 들었다. 아내에게는 물론 사전에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다. 한 채를 더 산 이유는 지난 달에 태어나 어느 새 청소년이 된 햄스터 형, 누나 놈들이 서로 장난질을 너무 심하게 쳐, 새로 출산한 햄스터 어미가 영 안정을 취하지 못하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두 채를 따로 떨어뜨려 놓지는 않고 연결 통로까지 사서 서로 통하게 해 놓았으며, 원래 있던 집은 ‘구관’, 새집은 ‘신관’이라고 명명하였다. 그랬더니 구관의 한복판 시끄러운 곳에서 새끼를 품고 있던 어미는 얼른 한 마리씩 입으로 물어 신관 구석 조용한 곳으로 모두 옮겨 새 보금자리를 꾸몄으며, 청소년 햄스터들은 구관에 그대로 남아 저희들끼리 엎치락 뒤치락 힘 겨루기를 계속하였다. 즉, 신관은 부모와 신생아 햄스터, 그리고 구관은 지난 달에 태어난 청소년 햄스터들이 사는 양상이 된 것이다.
새로 태어난 7 마리가 조금 더 크면 햄스터 집 두 채도 좁을 것이다. 아이들은 그러면 또 사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내 생각에는 아마 아내가 더 이상은 참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미리 공고하는 바이니, 혹시 햄스터를 키우시고자 하는 분은 연락주시기 바란다. 단 햄스터 집을 미리 준비한 사람에게만 분양하겠으니, 그 점 양지하시기를..... (우리 햄스터, 너무 이쁩니다.)
(2003. 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