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사이에 오가는 농담 중에 Y담이 스치는 경우가 있다.
웃고넘는 스무고개정도의 화제다.
모임에 가면 꼭 '와이담'을 펼치는 이들도 있다. 성性즉 젠더Gender를 소재로 한 야한 유머다. 으레 술자리에선 그 농도가 더 짙어지고, 여자가 끼었을 때는 은근히 더 '음담패설' 쪽으로 기울며 미묘한 줄타기를 한다. 자칭타칭 '와이담 대가'도 부지기수다. 수첩에, 명함 뒤에 메모까지 해가며 와이담을 공부해 설을 풀어놓는 이들도 많다.
와이담 대가들이 많이 줄어든 것도 사실이지만, 이런 야한 유머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 남아 있다. '성'(性)이 우리 삶의 일부분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와이담은 일본식 표현에서 유래했다. 일본에서는 '술자리에서 함부로 떠드는 말'을 일컬어 '와이단'(わいだん)이라 했는데, 이것을 말씀 담(談)자를 붙여 '와이담'이라 했고, 로마자로 표기해 'Y담'이라고 쓰기도 한다. 이 글에서 굳이 와이담이라고 한글로 적은 것은, Y라는 로마자 표기에서 다시 한 번 여성을 희롱하는 불순한 의도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주로 야한 유머를 구사하는 이들의 '변'(辯)은 이렇다. '분위기를 유화시키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단지 '변명'에 불과하다. 분위기를 좋게 하는 수많은 이야깃거리가 있는데 굳이 왜 성에 대한 우스갯소리를 고른 것일까. 그들의 의도가 미심쩍은 것은 나뿐인가?
와이담으로 입담을 떨친 이들은 '도를 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도'라는 것을 판단하는 기준이 본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듣는 이들이 판단해야 하는 것이고, 다른 동석자가 불편함과 불쾌감을 느낄 정도라면 순식간에 '유머'가 아니라 '성희롱'이 된다. 함부로 야한 유머를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이유다.
와이담 자체로는 도를 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것이 술자리 화젯거리가 되는 순간, 순식간에 여러 사람의 입을 거치면서 성희롱을 넘나드는 표현의 문제가 발생할 소지도 다분하다.
누가 들어도 낯 뜨거운 음담패설을 쏟아내면서 스스로 유머 감각이 있는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이들도 많다. 그가 나이 어린 후배라면 날카롭게 지적이라도 하겠지만 선배나 고위직, 연장자 등 예의를 갖춰야 할 상대인 경우엔 자리가 파할 때까지 가시방석이다.
와이담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서로 친밀함과 공감대가 형성된 이들 사이에선 정말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된다. 서로 이해하는 사이이니 도를 넘든 말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끼리 판단할 사안이다. 조선시대 문장가였던 서거정도 외설을 모은 '골개전'을 쓰기도 했고, 외설을 모은 책 '고금소총'도 있다. 이런 책을 혼자 읽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으며, 친한 친구 사이에 웃음의 소재로 활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사회적 공간 속에 들어왔을 때는 다르다. 이 순간부터는 더 이상 '유머'라고만 할 수 없다.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들어보겠다는 자의적 미명 아래 친밀감 없는 관계, 직장 상사와 부하직원, 처음 보는 관계에서도 무시로 행해지는 야한 유머는 젠더(생물학적인 성이 아니라 사회적 의미의 성) 폭력일 뿐이다.
최근 '미투'(Me Too)가 뜨거운 관심과 지지를 얻으면서 "어떻게 저럴 수 있나"며 혀를 차는 보통의 남성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죄에서 온전히 자유로운지 말이다. 음담패설에 낄낄대며 박수를 치고, 그 자리의 누군가에게 모멸감을 줬던 적이 분명 없는가? 속으로 불편했지만 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묵인했던 책임은 없는가?
회식 자리, 골프 회동에서 여성을 '꽃'이라 부르며 술을 따르고 안주를 먹여주길 강요하고, 러브샷을 요청하고, 은근슬쩍 스킨십을 시도했거나 아니면 이런 모습을 수없이 목격하고도 웃어넘기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당신들 역시 유죄다. 제발 당신들의 고루한 젠더 감수성을 업데이트 하자. 조심하고 예의를 지켜 손해볼 일은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