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멋쟁이/ 김순금
딸이 앉았다 일어난 자리가 따뜻하다. 컴퓨터 좀 쓴다고 하자 하던 일을 접고 양보해준다. 신안 섬 우이도에 다녀온 난 아직도 배 멀미 후유증에 정신이 몽롱하다. 돌아오는 길은 비 소식때문인지 파도가 셌다. 집에 도착하니 여기가 천국이지 싶다. 멋쟁이 이웃을 소개하려니 휴식을 잠시 미뤄두기로 한다.
바다에 쾌속선이 지나가면 ‘아, 빠르다. 나도 저런 배를 타고 물길을 시원하게 달려봤으면.’ 싶을 때 있다. 어느 날 앞집 도로에 뜬금없는 배 한 척이 세워져 있었다. 남편에게 물었더니 취미로 사들인 최신형 레저 보트라고 했다. “이 배를 타고 우리 동네 네 식구가 곧 여행갈 지 몰라.”라며 한 술 더 뜬다. 농담이려니 했다.
“금요일 오전 11시에 떠나기로 했어.” 선글라스와 수영복 정도만 챙기고 경비며 음식은 앞집에서 다 해결하니 따라만 가자고 했다. 물을 무서워하고 배 멀미를 심하게 하는 아내 둘을 제외하고 여섯은 목포에서 출발하는 보트에 몸을 실었다. 우이도는 남자의 고향이란다. 10년 전에 면허를 따서 거래처 사람들과 섬에 드나든 경력이 많다며 손수 운전대를 잡았다. 제트스키를 탄 남자 한 명이 배 뒤를 따랐다. 구명조끼를 입고 나자 여기가 바닷길이란 게 실감났다.
생소한 경험에 여럿이 셀카봉을 들고 촬영하기 시작한다. 제트스키를 타고 오는 사람이 더 멋있다며 뒤만 바라보는 사람, 시속 몇 킬로냐며 속도를 늦추라는 목소리도 들리고, 음악이 너무 크다며 귀를 막는 모습도 보인다. 수첩에 기록하는 나를 보자 주변에선 “글 써요?” 묻는다. “숙제”라고 가볍게 말하고 펜을 놓자 배의 출렁임이 그때서야 느껴진다.
바람에 눈이 시리고 눈물이 났다. 안좌쯤 오자 갯비린내가 심했다. 뻘이 많고 수심이 낮아 김양식에 제격이라더니 물길을 사이에 두고 긴 장대가 나란히 길게 꽂아져 있었다. 마치 육지에 심어진 고추농사를 연상케 했다. 조금 더 지나자 전복양식장처럼 생긴 어장 위에 개 두 마리가 보였다. 바다 위의 개라니, 너무 생소해서 물어보니 가마우지와 해달이 먹이를 찾아 양식장을 드나들기 때문에 지킴이로 세워놓는다는 거였다.
목포에서 출발해 한 시간 만에 우이도에 도착이다. 예전 여객선으론 네 시간이 걸려야 도착한 섬을 보트로 오니 빨리 올 수 있는 거라고 했다. 섬 사람들은 유독 육고기를 좋아해서 여객선을 이용할 땐 돼지 한 마리를 산채로 싣고 드나든 적도 있었다며 돼지 똥이 골치였다는 말에 다들 웃는다. 앞집 남자는 미리 준비해 온 떡과 간식을 이웃들에게 이바지 했다. 한 집 걸러 다 아는 사람이라 준비해 온 양이 그만큼 많았다. 그에 대한 보답인 냥 어획한 것들을 아낌없이 주었다. 오늘 우리가 먹을 횟감이란다.
귀의 모양을 닮았다하여 ‘우이도’란다. 돈목해수욕장이 유명한데 최근엔 예능 매체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 든다고 했다. 그래선지 열 가구 남짓 모여 있는 동네 거의가 민박을 운영하고 있었다. 모래입자가 특히나 고왔다. 하도 딱딱해서 발뒤꿈치로 쳐보니 2센티 정도 패였다. 산언저리 드문드문 흑염소도 보였다. 야생이라 약이 되고 유명해서 밀렵꾼들이 찾아든 탓에 지금은 산 둘레에 그물을 쳐서 따로 관리한다고 했다. 사구가 장관이다. 사구 위로 돋아난 풀들을 뜯기 위해 방목된 염소 가족이 정답다. 여행객이 지나자 멀뚱히 쳐다만 본다. 그 중 힘이 가장 세 보이는 수컷이 경계를 한다. 목에 걸린 방울소리가 산사의 풍경처럼 맑고 경쾌했다. 바람 따라 소리가 넓게 퍼졌다.
이웃 남자의 고향은 이미 폐가가 돼서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다고 한다. 낡은 슬레이트지붕 한 채가 남아 있어서 “저기가 내가 살던 동네였다.”는 외침을 증명해주었다. “우이도지사 왔소.” 남자는 농담처럼 자신을 가장하며 친척이 사는 마을을 돌면서 우릴 안내했다. 섬 전체에 남아있는 가구가 백 가구 남 짓 된다고 했다. 별이 많아 ‘성촌’이라 불린다는 이장 댁을 방문했다. 필리핀 여인을 만나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며 홀어머니와 살고 있었다. 줄게 없다며 수줍게 내 놓은 안주라는데 마른 갑오징어와 건조된 홍어였다. 우리에겐 귀한 음식이 어느 집엘 가나 기본처럼 나왔다. 섬에 아이들이 줄어드니 출산장려를 위해 정관 수술을 원상복귀 해주는 병원이 있는데 시술비가 무료라고 했다. 이젠 그만 낳겠다는 아내의 표정에서 이방인 생활의 고단함이 느껴졌다. ‘나라면 이런 곳에 시집와 저처럼 밝은 표정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아내가 새삼 단단해 보인다.
1박이 저물고 있었다. 아쉬움에 우이도를 상징하는 모래언덕 뒤편을 걸었다. 딱딱한 모래사장은 더 길게 늘어져 있었고, 이구동성으로 뒤편이 훨씬 낫네, 하며 감탄하고 있는데 우이도 섬 주변으로 그런 해수욕장이 두 곳이 더 있다고 하니 제발 훼손되지 않기를 바랐다. 하늘에 별이 총총해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예전엔 염소 잡으로 섬에 들어 왔다가 파도에 여럿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멧돼지가 바다를 통해 섬으로 들어와 어느 날부터 우이도에 멧돼지가 산다며 지금은 동네에서 집단으로 포획에 나선다고 했다. 등대지점에 안개가 끼면 아무것도 안보이고 너무 무서운 나머지 고모 한 분이 장화를 벗어 던진 채 ‘아이고 하나님, 나 좀 살려 주세요.’ 기도하는 순간 생전에 갚지 못한 돈 44,000원이 생각나더라는 얘기에 웃었고, 쓰레기는 면 직원들 90명이 단체로 와서 수거해간다는 말 등. 섬 살림에 관한 얘길 듣고 있노라니 내일 육지로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 왜 그리 반갑던지.
돌아오는 오후엔 비 소식이 있었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 배를 탔는데 출발부터 파도에 출렁대기 시작한다. 제트스키를 타고 따라오는 남자는 이 정도 파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물결 위에 춤을 추듯 앞질러 나간다. 큰 바다라서 파도가 심하다고 했다. 파도가 칠 때마다 바닷물이 배 안으로 들어와 옷을 적셨다.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까?’ 덜컥 겁이 났다. 아랑곳하지 않고 운전에 집중하는 앞집 남자를 보면서 오랜 경험에서 묻어난 연륜이 느껴졌다. 이상했다. 파도가 치면 칠수록 우리 몸이 어느새 거기에 적응됐다. 제트스키를 타는 사람들 언어로 고요한 바다를 ‘장판길’이라 불렀다. 우리 삶이 장판길과 같다면 파도의 매력을 어떻게 느껴보겠는가. 돌아오는 길, 우이도 파고에 흔들리는 귀한 경험을 몸에 아로새겼다.
첫댓글 제목과 내용이 딱 들어맞지 않아요.
다음 문장 어떻게 고칠지 생각해 보세요.
"제트스키를 타고 오는 사람이 더 멋있다며 뒤만 바라보는 사람, 시속 몇 킬로냐며 속도를 늦추라는 목소리도 들리고, 음악이 너무 크다며 귀를 막는 모습도 보인다."
"제트스키 타는 모습이 멋지다면서 다들 뒤를 돌아본다. 너무 빨라서 배가 통통 뛰자 속도를 늦추라는 사람과 음악 소리에 귀를 막는 모습도 보인다."
글을 쓰면서도 어색하다 생각한 부분을 여지없이 읽어내시는 교수님, 과히 달인이십니다. 제목과 내용이 일치하지 않다는 생각까지 말입니다. 글을 더 사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