뜀박질 / 박응렬
한 달여만에 안양 집에 올라왔다. 금년초 강진으로 발령받은 이후 평균 3주에 한번 꼴로 오는데 이번에는 지난 추석 때 성묘를 하지못해 올라온거다. 토요일에 화성에 있는 선산으로 식구들과 늦은 성묘를 갔다오는데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일요일에 청계산 등반을 하고싶어 온 전화다.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산에 간다는걸 둘은 너무 잘 안다.
일요일 아침, 옛골에서 셋이서 이수봉까지 가볍게 다녀오기로 하고 출발했다. 젊은 시절 즐거웠던 이런저런 추억을 얘기하다가 청계산, 관악산에서 산악마라톤을 뛰던 얘기가 나왔다. 벌써 25년 전쯤 추억들이다.
우린 젊었을 때 참 많은 운동을 했다. 산악마라톤에서 시작해 일반 마라톤, 테니스, 탁구, 축구, 당구 등등. 골프 입문한 지도 벌써 20여년이 되어간다. 남자들 사회에서 어울려지내는게 상당히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는 성격이라 운동이라는 운동은 뭐든 시도해 보았다.
산을 좋아하고 뜀박질을 좋아했던 나는 30대 중반에 우연히 산악마라톤이라는 스포츠를 접할 기회가 있었다. 친구들과 관악산을 등반하고 있는데 번호표를 단 사람들이 산을 뛰면서 가길래 나도 뒤따라 골인 지점인 관양중학교까지 뛰어 가보았다. 팜플렛을 보니 여기서 출발해서 관악산, 삼성산을 돌아 다시 관양중까지 돌아오는 18키로의 코스였다. 선두그룹은 1시간 30분만에 골인하고, 제한시간은 4시간 30분이었다. 시간당 최소 4키로 이상의 속도로 뛰어야 한다는 얘기다.
북한산 대회에 처음 참가해 보았더니 너무 힘이 들어 중도에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으나 뛰다걷다를 반복하며 간신히 완주했다. 힘은 들었으나 그 성취감은 일반 등산을 할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이 맛에 산악마라톤이라는 힘든 경기를 하나보다 생각하며 몇번 경기에 참가해보니 요령도 생겼다. 초반에 무리하지 않는게 가장 중요하다는걸 몇 경기 참가한 후에야 터득했다.
친구 둘이서 같이 참가했는데 한 친구는 중간에 쥐가 자주 나 고생을 많이 했다. 그럴 때면 옷핀으로 피를 빼주어야 하는데 그로 인해 여럿이 더 힘들어지고 뒤처진다. 요즘도 만나면 그때 있었던 에피소드가 늘 안주거리다.
북한산, 관악산, 청계산 등 주로 서울 인근에서의 대회가 대부분이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두 번 있다. 설악산과 지리산 산악마라톤대회다. 설악산 코스는 오색에서 출발해 대청봉을 거쳐 신흥사 아래 캔싱턴호텔까지 뛰는 19키로 코스다. 지금은 국립공원에서 하는 행사는 금지되어 폐지된 지 오래된 대회가 되어버렸다. 대청봉까지 가파른 오르막을 6키로 오른 후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13키로를 달리는 가장 힘든 코스로 유명하다. 3시간 55분의 기록으로 마라톤 풀코스와 비슷한 시간에 골인하였는데 같이 뛴 친구들은 대부분 5시간 무렵에 들어왔다. 조금 빨리 시작한 탓인지 친구들 중에서는 내가 다소 빠른 편이다.
지리산 대회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동대문운동장에서 밤 10시에 출발, 새벽 3~4시경 지리산 입구에 도착하여 식사를 한 후 5시에 출발한다. 노고단, 반야봉, 장터목산장을 거쳐 천왕봉에 오른 후 중산리로 내려오는 40여키로 코스다. 참가자 300여명중 중간 정도 들어왔는데 기록은 9시간 46분이다.
산악마라톤은 대회가 많지않아 일반마라톤도 같이 참가했는데 10키로와 하프는 무수히 참가했다. 풀코스 도전은 쉽지 않아 처음에 많이 망설였던 기억이 새롭다. 가장 수월한 서울에서 치르는 중앙일보 대회를 시작으로 가장 힘들다는 춘천에서의 조선일보 대회까지 완주는 총 다섯번 해보았다. 늦게 시작해서인지 기록은 4시간 전후로 속도는 빠른 편이 아니다. 풀코스는 완주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고, 그 이후에는 10키로와 가벼운 산악대회만 가끔 참가하고 있다.
작년에 산티아고 900여키로를 거뜬히 완주한 것이나 킬리만자로 정상을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오늘 우리가 청계산을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것도 젊었을 때 뜀박질하면서 비축해놓은 에너지 덕분이라며 함께 웃는다. 마음은 아직 청춘인데 나이는 벌써 많이도 와있다. 시간될 때마다 산행을 자주 하자고 다짐하며 연휴를 마무리한다. 친구들아, 함께할 수 있을 때 자주 보자꾸나!
첫댓글 제 지인도 100킬로 울트라마라톤을 하는 분이 있었어요
오전 5시무렵
순천서 노고단까지 택시로 이동,
노고단에서 땡 출발하여
중산리까지 9시간만에 내려와서
남편 퇴근하기 전에 집에 온다더군요
요령을 물으니 평지는 뛰고
오르막은 걷고 그런다더라구요
체력과 정신력이 대단하시네요.
부럽습니다
숨을 고르는 모습이 선 합니다. 모임에서 설악산 등반하면서 일행 중 한사람은 답답하다고 겉 옷만 입고 브레지어를 벗어 가방에 담고 힘들어 하던 적도 있었어요. 대단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