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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論語正義에, 此篇明仁. 仁者, 善行之大名也. 君子體仁, 必能行禮樂, 故以次前也. |
이 篇은 仁을 밝힌 것이다. 仁은 先行의 總稱이다. 君子는 몸소 仁을 實踐하니, 반드시 禮樂을 行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篇을 前篇 뒤에 붙인 것이다. |
* 「里人篇」의 1-14章을 要約해 보면 1-7章은 仁에 關한 것을 集中的으로 收集하였고, 8-9章는 道를 主題로 하고 있으며, 10-14章는 君子的인 삶을 이야기 하고 있다. |
p.271
4-1-1 子曰里仁為美擇不處仁焉得知(處上聲 焉於䖍反 知去聲)
↳4-1-1 子曰 里仁이 爲美하니 擇不處仁이면 焉得知리오
-子曰: 里仁이 為美이니, 擇에 不處仁이면 焉得知(智)이리오?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마을이 仁厚(어질고 厚德함)한 것이 아름다우니 가려서 仁厚한 마을에 살지 않는다면 어찌 智慧롭다 하겠는가?”
* 《孔安國의 解釋》 孔子가 말씀하시기를 仁者(마음이 어진 사람)의 마을에 사는 것이 아름다우니, 살 곳을 選擇하면서 仁者의 마을을 選擇하지 않는다면 어찌 智慧로운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
* 擇(택): 사는 곳을 가려서 삶. * 知(지): 智慧롭다. (='智'와 통용됨) * 爲美(위미): 아름답고 좋다. |
* 里仁(이인): ‘里’는 사람이 居處하는 곳 또는 사는 마을. 仁에 산다. 仁에 處하다. * 不處仁(불처인): 仁의 境地에 處하지 않으면. 處와 居는 同義語, 仁한 곳에 살지 않는다면. * 焉得(언득): 어찌…을 얻었다고 하랴? 焉得知는 어찌 안다고 하겠느냐? |
* 朝鮮의 實學者 李重煥의 「擇里志」라는 것이 ‘里仁爲美 擇不處仁’에서 나온 것이다. |
(4-1-1) 子曰:“里仁为美。择不处仁,焉得知? 자왈, "이인위미. 택불처인, 언득지?" |
The Master said, "It is virtuous manners which constitute(~으로 選定하다) the excellence(美德) of a neighborhood. If a man in selecting a residence, do not fix on one where such prevail(널리 行해지다), how can he be wise?" |
孔子说: “居住在有仁德之风的地方才是美好的。如果不选择有仁德之风的地方居住,怎么说得上明智呢?” |
p.271
里有仁厚之俗為美擇里而不居於是焉則失其是非之本心而不得為知矣
↳里有仁厚之俗이 爲美하니 擇里而不居於是焉이면 則失其是非之本心하여 而不得爲知矣라
-里에 仁厚之俗이 有함이 美함이 되거늘, 擇里에 그것이 是(美)에 不居일지면 則 그 是非之本心을 失함이니, 知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마을에 仁厚한 風俗이 있는 것이 아름다우니, 마을을 가리되(而→逆接) 이 곳(仁)에 居하지 않는다면 自身이 옳고 그름(是非)을 分別하는 本心을 잃은 것이어서 智慧로울 수가 없는 것이다.
p.271
(朱子曰擇字因上句為文問此章謝氏引孟子擇術為證如何曰聖人本語只是擇居不是説擇術古人居必擇鄉遊必擇士又問今人數世居此土豈宜以他鄉俗美而遽遷邪曰古人危邦不入亂邦不居近而言之若一鄉之人皆為盗賊吾豈可不知所避)
(↳朱子曰 擇字因上句為文 問 此章 謝氏引孟子擇術為證 如何 曰聖人本語只是擇居 不是説擇術 古人居必擇鄉 遊必擇士 又問 今人數世居此土 豈宜以他鄉俗美而遽遷邪 曰古人危邦不入 亂邦不居 近而言之 若一鄉之人 皆為盗賊 吾豈可不知所避)
(-朱子曰: 擇字는 上句(里仁為美)에 因하여 文을 삼은 것이다. 問컨대, 此章을 謝氏는 孟子의 擇術을 引하여 證을 삼았으니, 如何입니까? 曰: 聖人의 本來 語는 단지 이렇게 擇居인 것이지, 擇術에 説함이 아닌 것이다. 古人은 居에 必로 擇鄉하고, 遊에 必로 擇士하였다. 又問컨대, 今人은 數世로 此土에 居하였거늘, 어찌 宜當 他鄉의 俗美으로 하여 遽로 遷할 수 있겠습니까? 曰: 古人은 危邦엔 不入하였고 亂邦엔 不居하였나니, 近而言之일지면 萬一 一鄉之人이 모두 盗賊이 된다면 吾가 어찌 可히 避할 바에 不知할 수 있겠는가? )
(〓朱子께서 말씀하였다. ‘擇’字는 위 句에 因하여 적은 글이다. 質問하기를 “이 章은 謝氏가 孟子의 擇術을 끌어와서 證據로 삼은 것입니까?”하자, 對答하기를 “聖人께서는 本來 다만 擇居를 말씀하신 것이지, 擇術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古人은 居함에 반드시 고을을 고르셨으며, 交遊함에 반드시 선비를 고르신 것이다.” 또 質問하기를 “今人이 數世로 이 땅에 居하였거늘, 어찌 他鄉의 風俗이 아름답다 해서 대번에 옳길 수 있겠습니까?”하자, 對答하기를 “古人은 危殆한 나라에는 들어가지 않고 混亂한 나라에 居하지 않았으니, 가까이 말하자면 한 고을 사람들이 모두 盗賊이 된다면 내 어찌 避할 바를 알지 못하겠는가?”하였다.)
* 朱子(주자, 朱熹주희, 1,130~1,200年): 字는 원회(元晦), 仲晦이고, 號는 회암(晦庵) 또는 회옹(晦翁)임. |
회암(晦庵) 先生이다. 諡號는 周文公. 經學에 正統하여 宋代의 性理學을 集大成하였음. 李侗에게 修學함. |
周敦頤, 鄭顥, 程頤의 學說을 繼承하고 장재(張載) 소옹(邵雍) 等을 吸水하고 綜合하고, 新儒學의 體系를 完成함. 性理學의 根幹이 되는 理氣論, 心性論, 工夫論을 確立함. 朝鮮時代 儒學에 큰 影響을 끼침. |
著書에는 『太極圖說解』, 『通書解』, 『西銘解義』, 『資治通鑑』, 『四書集註』, 『近思錄』, 『朱子家禮』, 『朱子語類』, 『四書或問』, 『周文公文集』 等이 있으며, 이는 후대에 『朱子全書』, 『朱子大全』 等으로 刊行됨. |
p.271
(○勉齋黄氏曰居必擇鄉居之道也薰陶染習以成其徳賙恤保愛以全其生豈細故哉夫子稱子賤而嘆魯多君子以此也)
(↳○勉齋黄氏曰 居必擇鄉 居之道也 薰陶染習以成其徳 賙恤保愛以全其生 豈細故哉 夫子稱子賤而嘆魯多君子 以此也)
(-○勉齋黄氏曰: 居에 必로 擇鄉함은 居之道인 것이다. 薰陶染習으로서 그 徳을 成하고, 賙恤保愛(진휼할주)로서 그 生을 全할 수 있는 것이거늘, 어찌 細한 故이겠는가? 夫子께서 子賤을 稱하시며 魯의 多君子에 嘆하심이 此 때문인 것이다.)
(〓○勉齋黄氏가 말하였다. “居함에 반드시 고을을 고르게 됨은 居하는 道인 것이다. 薰陶하고 染習함으로서 그 徳을 이루고, 賙恤하고 保愛함으로써 그 삶을 온전히 할 수 있는 것이거늘, 어찌 자잘한 緣由이겠는가? 夫子께서 子賤을 稱讚하시며 魯나라에 君子 많음을 感歎하심이 이 때문인 것이다.”)
* 勉齋黃氏(면재황씨, 黃幹황간, 1,152~1,221年): 宋나라 영종(寧宗) 時代의 學者를 말함. |
名은 榦, 字는 직경(直卿), 號는 勉齋, 諡號는 문숙(文肅). 黃直卿, 勉齋先生이라 불림. 勉齋集이 있다. |
朱子의 사위로 朱子의 學問을 傳하였다. 朱子의 『儀禮經傳通解』를 完成하였다. 朱子는 그의 堅志苦思함을 稱讚하였다. 黃榦은 師說에서 論語의 [三人行必有我師焉]을 解釋하여 스승이란 반드시 훌륭한 人物이 아니라 해도 相對的으로 배울 수 있다는 內容인 것으로 判斷하였음. 臨終時에 그에게 道通을 傳授하였다.(宋史 卷 430) |
* 黃榦을 黃幹으로 表記한 곳도 있다. * 近思錄을 集註한 葉采(섭채)도 朱子의 사위. |
p.272
(○勿軒熊氏曰學而篇言親仁此言處仁後篇言以友輔仁又言居是邦友其士之仁者居飬見聞之助薰陶漸染之益皆資於人者也)
(↳○勿軒熊氏曰 學而篇 言親仁 此言處仁 後篇言以友輔仁 又言居是邦 友其士之仁者 居飬見聞之助 薰陶漸染之益 皆資於人者也)
(-○勿軒熊氏曰: <學而> 篇에서는 親仁이라 言하였고, 此에선 處仁이라 言하였고, 後篇에서는 ‘以友輔仁’이라 言하였고, 또 言하기를 ‘居是邦友其士之仁者’라 하였으니, 居飬見聞之助와 薰陶漸染之益이 모두 人에게서 資인 것이다.)
(〓○勿軒熊氏가 말하였다. “「學而」篇에서는 親仁이라 말씀하였고, 여기서는 處仁이라 말씀하셨으며, 다음 篇에서는 ‘벗으로써 仁을 보탠다.’라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기를 ‘이 나라에 居함에 선비들의 仁과 벗하는 것’라 하였으니, 居飬하며 見聞하는 도움과 薰陶에 漸次 물들게 되는 보탬이 모두 남에게서 資賴하는 것이다.”)
* 勿軒熊氏(물헌웅씨, 1,135~1,195? 1,253~1,312年): 名은 熊禾(웅화), 字 거비(去非) 亦是 위신(位辛)으로 고쳤다. 號는 물헌(勿軒) 또는 퇴재(退齋)이다. 宋나라 學者인 웅화(熊鉌, 熊禾)로 고쳤다. |
咸淳 10年(1,274年)에 벼슬길에 올랐으나 宋나라가 亡한 뒤에 元나라 初 무이산(武夷山)에 홍원서당(洪源書堂)을 짓고 學問에만 專念하였다. 本來 이름은 洪源書室이며 熊禾가 隱居하던 곳, 明나라때 重修하여 熊勿軒先生書院으로 改稱함. |
勿軒熊氏(물헌웅씨)→주돈이(周敦頤), 정호(程顥)와 정이(程頤), 장재(張載), 주희(朱熹) 等을 師事함. |
著書로는 『禮考異』, 『春秋論考』, 『經序學解』, 『勿軒集』, 『芝山集』, 『淸陰集』, 『詩經集疏』, 『書經集疏』, 『春秋集疏』, 『翰墨全書』 等이 있다. |
p.272
(○雲峯胡氏曰集註仁厚之俗四字有斟酌一里之中安得人皆仁者但有仁厚之俗則美矣)
(↳○雲峯胡氏曰 集註 仁厚之俗四字 有斟酌一里之中 安得人皆仁者 但有仁厚之俗 則美矣)
(-○雲峯胡氏曰: 集註의 仁厚之俗 四字는 一里之中(仁)에서 斟酌(숙고)하여야 함이 有인 것이다. 어찌 得人에 모두 仁者일 수 있으리오? 다만 仁厚之俗이 有이어야 則 美인 것이다.)
(〓○雲峯胡氏가 말하였다. “集註의 ‘仁厚之俗’ 넉 자는 한 마을 가운데서 斟酌(짐작)하여야 할 것이 있는 것이다. 어찌 사람마다 모두 仁할 수 있겠는가? 다만 仁厚한 風俗이 있어야 아름다운 것이다.”)
* 雲峰胡氏(운봉호씨, 1,250-1,333年): 名은 호병문(胡炳文), 字는 중호(仲虎), 號는 雲峯(운봉), 雲峯先生으로 불림. 宋末~元初의 理學家이자 經學者. 안휘성(安徽省) 휘주(徽州) 무원(婺源)의 出身. 道一書院 山長을 지냄. 난계주학정(蘭溪州學正)이 되었다. 그의 아버지 두원이 朱子의 宗孫으로부터 『書經』 그리고 『周易』 두 經傳을 傳受받았고, 胡炳文이 다시 아버지로부터 傳受받음. 以後 朱子가 集註한 四書의 硏究에 盡力하면서 特히 饒魯(요로)인 雙峯饒氏(쌍봉요씨)의 說이 朱子의 原意에서 벗어나 있음을 批判하였다. |
『四書通』을 지어 그 잘못된 點을 直接 校正. 또한 『周易本義』를 根據로 여러 說을 折衷, 校正하고, 아울러 여러 學者의 學說을 補充하여 『周易本義通釋』 12卷을 지음. 그 外에 『詩集解』, 『春秋集解』, 『禮書纂述』, 『大學指掌圖』, 『五經會義』, 『이아운어(爾雅韻語)』 等의 著書가 있음. |
p.272
(○新安陳氏曰惻隱羞惡辭讓是非皆人之本心是非之心知之端也不知則失其是非之本心矣
(↳○新安陳氏曰 惻隱羞惡辭讓是非 皆人之本心 是非之心 知之端也 不知則失其是非之本心矣)
(-○新安陳氏曰: 惻隱, 羞惡, 辭讓, 是非는 모두 人의 本心이나, 是非之心은 知之端인 것이다. 不知일지면 則 그 是非之本心에 失인 것이다.
(〓○新安陳氏가 말하였다. “惻隱·羞惡·辭讓·是非는 모두 사람의 本心이나, 是非之心은 知의 端緖이다. 智慧롭지 못하면 그 是非의 本心을 잃은 것이다.)
* 新安陳氏(신안진씨, 1,252~1,334年): 名은 진력(陳櫟), 字는 수옹(壽翁), 號는 新安 또는 定宇先生, 동부노인(東阜老人)이다. 元나라 휘주(徽州) 휴령인(休寧人)으로, 朱子를 宗主로 삼아 學問 活動을 하고, 南宋의 滅亡을 經驗하고, 隱居하여 著述에 힘썼다. |
著書로는 『상서집전찬소(尙書集傳纂疏)』, 『歷代通略』, 『勤有堂隨錄』, 『定宇集』 等임. |
* 參考: 謝氏引孟子擇術為證 |
1)朱子語類卷第二十六(里仁爲美章) |
或問:「里仁一篇,自首至『觀過斯知仁矣』,都是說仁。『里仁爲美』,是指言仁厚之俗;『觀過斯知仁』,是指言慈愛底仁。其他則皆就心德上說。」曰:「雖是如此,然統體便都只是那箇仁。如里有仁厚之俗,便那一里之人這心不大故走作,所以有仁厚之俗。『觀過斯知仁』,便也是這心。」僩。 |
問:「『里仁爲美』,論語孟子注不同,如何?」曰:「論語本文之意,只是擇居。孟子引來證擇術,又是一般意思。言里以仁者爲美,人之擇術,豈可不謹。然亦不爭多。」問:「美,是里之美?抑人之美?」曰:「如云俗美一般。如今有箇鄕村人淳厚,便是那鄕村好;有箇鄕村人不仁、無廉、無恥者多,便是那鄕村不好。這章也無甚奧義,只是擇居而已。然『里仁』字也差異。」淳。 |
問:『里仁爲美』,孟子引用,自要說下文『安宅』。謝氏說:『論語本意不是如此。』」曰:「若這般說話,也要認得本旨是了。若如孟子說,也無害;如謝氏,也無害。」賀孫。 |
問:「此章謝氏引孟子擇術爲證,如何?」曰:「聖人本語不是說擇術。古人居必擇鄕,遊必就士,是合著事。」劉問:「今人數世居此土,豈宜以他鄕俗美而遽遷邪?」曰:「古人『危邦不入,亂邦不居』。近而言之,若一鄕之人皆爲盜賊,吾豈可不知所避!聖人言語說得平正,必欲求奇說令高遠如何!今人說文字,眼前淺近底,他自要說深;在外底,他要說向裏;本是說他事,又要引從身上來;本是說身上事,又要引從心裏來,皆不可。」宇。 |
2) 『孟子』「公孫丑 上공손추 상」에 |
3-7-1 孟子曰 矢人豈不仁於函人哉 矢人惟恐不傷人 函人惟恐傷人 巫匠亦然 故術不可不愼也 孟子께서 말씀하기를 ‘화살을 만드는 사람이 어찌 甲옷을 만드는 사람보다 어질지 못하겠는가? 화살을 만드는 사람은 오직 사람을 헤치지 못할까 두려워하고, 甲옷을 만드는 사람은 오직 사람이 傷할까 두려하는 것이다. 巫堂과 葬儀師 또한 그러하니, 그러므로 技術에 있어 삼가지 않아서는 不可한 것이다. |
[集註] 函甲也 惻隱之心 人皆有之 是矢人之心 本非不如函人之仁也 巫者爲人祈祝 利人之生 匠者作爲棺槨 利人之死 函은 甲옷이다. 惻隱(측은)之心은 사람들 모두 그것을 가지고 있으니, 이 화살 만드는 사람의 마음이 本來부터 甲옷 만드는 사람의 仁함만 못한 것은 아니다. 巫라는 者는 사람을 위하여 祈禱하고 祝福해주어 사람의 生으로서 利로움을 보고, 匠이라는 者는 棺의 內外棺을 만들어 사람의 죽음으로서 利得을 보는 者인 것이다. |
3-7-2 孔子曰 里仁爲美 擇不處仁 焉得智 夫仁天之尊爵也 人之安宅也 莫之禦而不仁 是不智也 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을에 仁한 風俗이 아름다움이 되니, 擇하되 仁한 곳에 處하지 않으면 어찌 智慧롭다할 수 있으리오?”하셨으니, 무릇 仁함은 하늘이 내려준 尊貴한 爵位이니, 사람이 便安히 居處하는 집이 되는 것이다. 아무도 그것을 막지 않는데도 仁하지 못함은, 이것은 智慧롭지 못한 것이 되는 것이다. |
[集註] 里有仁厚之俗者 猶以爲美 人擇所以自處 而不於仁 安得爲智乎 此孔子之言也 仁義禮智 皆天所與之良貴 而仁者天地生物之心 得之最先 而兼統四者 所謂元者善之長也 故曰尊爵 在人則爲本心全體之德 有天理自然之安 無人欲陷溺之危 人當常在其中而不可須臾離者也 故曰安宅 此又孟子釋孔子之意 以爲仁道之大如此 而自不爲之 豈非不智之甚乎 |
마을에 仁厚한 風俗이 있는 것을 오히려 아름답게 여기는 것이다. 사람이 스스로 處할 바를 擇함에 仁함을 쫓지 않는다면 어찌 智慧롭다 할 수 있으리오? 이것은 孔子의 말씀이다. 仁義禮智 모두 하늘이 주신 바로 참으로 貴重함이 되나, 仁이라는 것은 天地가 事物을 만드는 마음이니, 그것을 最優先的으로 얻어 네 가지를 兼하여 統括해야 하는 것이다. 所謂 <元(周易의 卦: 春, 仁)이라는 것은 善의 우두머리이다>가 이것이다. 故로 曰: 尊貴한 爵位가 사람에게 있으면 本來 마음 全體의 德이 되어 天理의 自然스런 便安함이 있게 되며, 人欲에 빠지는 危險이 없어져 사람은 마땅히 恒常 그 속에 있게 되니, 暫時라도 떠나는 것은 不可한 것이다. 故로 安宅이라 말한 것이다. 이것은 또 孟子께서 孔子의 뜻을 풀이하셔서 仁의 道가 이와 같이 크다고 여기셨으니, 스스로 그것을 하지 않는 것은 어찌 智慧롭지 못함의 甚함이 아니겠는가? |
*乾卦 文言傳曰; 文言曰 元者善之長也 君子體仁足以長人 亨者嘉之會也 嘉會足以合體 利者義之和也 和物足以和義 貞者事之幹也 貞固足以幹事 君子行此四德者 故曰 乾 元亨利貞 |
3-7-3 不仁不智 無禮無義 人役也 人役而恥爲役 由弓人而恥爲弓 矢人而恥爲矢也 不仁하기 때문에 智慧롭지 못한지라, 禮도 없고 義도 없으면 사람의 부림을 當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의 부림을 當하여 부려지게 됨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은, 활 만드는 사람이 활 만드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과 화살을 만드는 사람이 화살을 만드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과 같은 것이 된다. |
[集註] 以不仁故不智 不智故不知禮義之所在 不仁하기 때문에 智慧롭지 못하고, 智慧롭지 못하기 때문에 禮와 義가 있는 바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
3-7-4 如恥之 莫如爲仁 마치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은 仁하게 되는 것만 못한 것이다. |
[集註]此亦因人愧恥之心而引之 使志於仁也 不言智禮義者仁該全體 能爲仁 則三者在其中矣 이것은 또한 사람이 부끄러운 마음으로 因하여 그것을 引用하여, 仁에 뜻을 두게 한 것이다. 智와 禮와 義를 말하지 않은 것은 仁이 全體를 包括하기 때문이며, 能히 仁을 하게 되면 세 가지는 그 속에 있게 되는 것이다. |
3-7-5 仁者如射 射者正己而後發 發而不中 不怨勝己者 反求諸己而已矣 ‘仁이라는 것은 활쏘기와 같다. 활 쏘는 者는 몸을 바르게 한 以後에 發하는 것이다. 發하여 맞추지 못해도 自己를 이긴 者를 怨望하지 않으니, 自己에게 反省해 求해볼 뿐인 것이다.’ 여기서 引用하여 말한 것이다. |
[集註]爲仁由己而由人乎哉: 自己로 말미암아 仁을 하는 것이지, 남을 말미암아 하는 것이겠는가? |
* 參考: 夫子稱子賤而嘆魯多君子以此也: 「公冶長공야장」2章에 |
子謂子賤 君子哉 若人 魯無君子者 斯焉取斯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子賤(자천)을 일러 말씀하시기를 ‘君子로다, 이 사람이여! 魯나라에 君子가 없었다면, 이 사람이 이와 같은 德을 어찌 取할 수 있었겠는가?’” |
子賤 蓋能尊賢取友 以成其德者 故 夫子旣歎其賢 而又言若魯無君子 則此人 何所取以成此德乎 因以見魯之多賢也 子賤은 대개 能히 賢明한 이를 尊重하여 벗으로 取하여 그 德을 이룬 者이다. 故로 孔子께서 이미 그 賢明함을 感歎하고, 또 <萬一 魯나라에 君子가 없다면 이 사람이 어찌 取할 바가 있어 이 같은 德을 이루었겠는가?>라고 말씀하신 것은, 이것으로 因하여 魯나라에 賢明한 이가 많았음을 나타내신 것이다. |
稱人之善 必本其父兄師友 厚之至也 사람의 善을 稱讚할 적에는 반드시 그 父兄과 스승과 벗을 根本하여야 두터움이 至極한 것이다. |
* 子賤 孔子弟子 姓 宓(복) 名不齊 * 上斯斯 此人 下斯斯 此德 |
* 參考: 以友輔仁: 「顏淵안연」 24章에 |
曾子曰: 君子 以文會友, 曾子曰: 君子는 學文으로서 친구와 會同하면 則道益明以友輔仁: 즉 道가 더욱 밝아지게 되고, 벗으로서 仁을 補完하게 되면. 則德日進: 즉 德은 하루하루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
* 參考: 居是邦友其士之仁者: 「衛靈公위령공」 9章에 |
子貢問爲仁: 子貢이 仁을 實踐하는 것을 묻자 子曰 工欲善其事: 子曰 匠人이 그 일을 잘하고자 하면, 必先利其器: 반드시 먼저 그 道具를 날카롭게 하여야 한다. 居是邦也: 이 나라에 居處하며, |
事 其大夫之賢者: 섬기기를 그 大夫가 賢明한 者이어야 한다. 友 其士之仁者: 벗하기를 그 선비의 仁한 者이어야 한다. |
夫子嘗謂子貢悅不若己者, 欲其有所嚴憚切磋以成其德也. 孔子께서 일찍이 子貢이 自己만 못한 者를 기뻐한다 말했으니, 그가 嚴肅하고 꺼리는 바가 있어 그 德을 이루게 하고자 하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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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參考: 論語集註大全1 * 위 8개의 blog를 編輯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