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이야기/정다연
밤새 고라니가 운다
우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우는 마음은 알 것도 같아서
잠이 오지 않는다
할머니 생각이 난다 잠 못 드는 밤, 내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빗질해 주시곤 했는데
여름이 오면 물컹한 복숭아 입에 한가득 넣어 주셨는데
엄마 아빠는 잠들었고
나는 깨어 있다 혼자
낮에 어른들이 하는 얘기를 들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
조만간 이 집을 정리하자고, 돈은 나중에 공평하게 나누자고
이불을 덮으면 이렇게나 할머니 냄새가 나는데
자주 입으시던 꽃무늬 바지 여전히 빨랫줄에 걸려 있는데
할머니만 없다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고라니가 울어서
그 마음은 알 것도 같아서
----------------------------------------------------------------
정다연 시인의 시집<햇볕에 말리면 가벼워진다>에 실린 시입니다.
어린시절 여름방학이 되면 할머니가 계신 강릉에 갔었지요. 대문을 들어서며"할머니!!" 부르면 일손 놓고 달려와 맞아주셨지요. 방학 끝나 돌아갈땐 산모퉁이 돌 때까지 담장 앞에서 어서 가라고 손 흔들어 주시던 모습이 떠오르네요.
시에서는 "고라니"가 할머니 부재에 대한 화자의 슬픈 마음을 잘 대변해 주네요.
그리고 복숭아는 순수하고 연약한 마음을 표현하는데 할머니는 그런 화자의 여린 마음을 품어주셨지요.
이 시는 "여름"이라는 한정된 시간을 통해 화자의 성장과 이별을 그리지요.
할머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간직하며 화자는 잘 성장해 가겠지요.(감상/어향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