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다 / 박미숙
출근길에 문자가 왔다. ‘선생님, 오늘 지수(가명)가 약을 먹지 않고 학교에 갔어요. 참고하여 지도 부탁드립니다.’ 학교 도착하자마자 지수 엄마에게 전화했다. “요즘, 수업 방해하는 일이 많이 없어졌어요. 휘파람도 불지 않고 활동도 시간 안에 끝내려고 노력해요. 친구들 힘들게 하는 횟수도 줄었고요. 점점 좋아지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아, 고맙습니다. 모든 게 선생님 덕분이에요.” “아니에요, 우리가 같이하는 것이지요. 엄마가 건강하지 못하다고 걱정을 많이 하는 것 같으니, 마음 편하게 갖고 밥도 잘 챙겨 드세요.”라고 인사한 뒤, 전화를 끊었다.
부모님이 지수가 여섯 살 때 이혼하여, 엄마랑 살면서 1주일에 한 번쯤은 아빠를 만나러 간다. 이것저것 챙겨야 하니 잔소리하는 엄마, 같이 살지 못하여 미안한 마음을 아이 요구를 다 들어주는 것으로 해결하는 아빠 사이에서 지수는 갈피를 잡지 못한다. 학년 초, 공부 시간에도 돌아다니고 심지어는 마음대로 교실 밖을 나간 적도 여러 번이다. 게다가 친구를 때리고 뺨을 꼬집거나 성기를 쥐고 흔들기도 하여 다른 부모님의 항의 전화도 잦았다. 간혹, 죽음이나 자살이란 말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면 안 된다고 아무리 말해도, 학교 위 클래스(Wee Class)에서 상담받아도 나아지지 않아 병원 진료를 권하였다. 우리 반에서 제일 힘들었던 아이가 에이디에이치(Attention-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약을 먹으며 상당한 효과를 보고 있어서 지수도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약의 효과는 모두에게 같은 것은 아니었다. 지수의 변화는 매우 더뎠다. 교실을 뛰쳐나가는 횟수만 좀 줄었지, 여전히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않고 친구들을 괴롭힌다. 아이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지수에게 당한 일을 얘기한다. 친구들에게 사과시키고, 반 아이들에겐 조금씩 좋아지고 있으니까, 우리가 좀 더 잘해 주면서 변화를 이끌어 내자고 다독인다.
공부 시간에도 조금만 어려움이 생기면 포기해 버린다. 끝까지 완성하는 습관을 들여주려고, 어려워하는 활동은 옆에서 도와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우리 할머니는 엄마보다 훨씬 나이도 많은데 건강해요. 엄마는 맨날 아픈데.” “엄마는 왜 자주 아프실까?” “제가 말을 안 들어서 그런 것 같아요.” “엄마 건강하시도록 우리 지수가 좀 잘하면 어떨까?” “네. 근데 잘 안돼요.” 자기 마음을 조절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얘를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라고 고민하던 차에 ‘회복적 생활교육 연수’ 안내 공문이 왔다. 목, 금요일은 퇴근 후 다섯 시에서 아홉 시까지, 토요일은 아침 아홉 시부터 저녁 여섯 시까지 세 차례, 마흔여덟 시간이나 연수를 받아야 하는 빡빡한 과정이었다. 잠시 망설이다 신청했다. 꾸중을 들은 날조차도 급식 시간이면 꼭 내 앞에 앉아서 재잘재잘 얘기하며 밥 먹는 지수를, 3학년 올라가기 전까지 조금이라도 더 바꾸고 싶었다. 지수 엄마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도 있었다. 그러던 차에 학부모 공개수업을 했다. 수업 자세도 좋지 않고 모든 아이가 나와서 발표해도 지수는 하지 않아서 엄마가 많이 서운해 했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지수가 조금씩 달라졌다. 엄마의 간곡한 부탁이 마음을 움직였을까?
교실로 들어서서 지수를 보았다. 아침 독서 시간이라 다른 친구들은 조용히 책을 읽고 있는데, 혼자서 색종이로 비행기를 접어서 날리다 친구 머리에 부딪히게 한다. 수업 중에는 난데없이 큰소리를 지르며 활동도 하지 않고 막 돌아다닌다. 친구들을 계속 툭 툭 치니 아이들도 난리다. 약을 먹지 않았다고 이렇게 달라지나 싶어 놀라웠다. ‘요즘 잘 지냈으니까, 하루 정도는 괜찮겠지.’라고 생각한 것이 잘못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힘든 하루를 보내야 했다.
‘나에게 영향을 준 사람’이라는 주제로 공부할 때, 지수는 엄마와 아빠를 다 적었다. 엄마도, 아빠도 다 좋다는 말이다. 다른 친구들처럼 부모와 함께 사는 가정도 꿈꾸는 것 같다. 엄마는 절대 원하지 않는 것 같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기대했던 ‘회복적 생활 교육’ 연수가 학교 폭력 문제에는 좋은 해결책을 얻을 수 있으나, 지금의 지수에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고민하다 책을 찾아보았다.
-이혼은 여섯 살에서 여덟 살 정도의 아이에게 특별히 힘든데, 특히 이 시기의 여아에 비해 남아는 더 심한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 시기의 아이들이 보이는 핵심적인 반응은 슬픔이다. (중략) 이들은 부모를 염려하고, 학교생활에 집중하지 못하며, 종종 부모가 이혼하지 않도록 해서 가족을 다시 복원하려고 애쓴다. (중략) 9세에서 12세가 되면 주된 감정이 분노로 변하게 된다. 분노에 찬 저항과 무기력한 낙담으로 인하여 성적이 크게 떨어지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혼 가정 자녀, 어떻게 돌볼 것인가/Edward Teyber/성정현/청목출판사/2006/p.24)
이 책에서는 이혼한 부모들이 자녀를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 지도 자세히 적어 놓았다. ‘아버지가 친구처럼 되는 경우에는 많은 것을 잃을 수 있다. 아버지들은 실제의 양육 관계에 내재한 갈등(훈련 시키고 통제하며 아동의 활동과 행동을 감독하는 등)과 씨름할 필요가 있다’라고 한다. 지수를 만나면 집에서 함께 게임만 하고 배달 음식을 먹는 아빠의 변화가 요구되는 것이다. 근데 이 말을 전할 수가 없다. 지수 엄마는 아빠를 만나고 싶어 하는 나를 말렸다. 불같은 성격이라서 안된다고. 그럼, 아빠는 누가 교육해야 하는가? 아빠의 태도가 계속 그러면 지수 또한 그대로일 텐데.... 쉽지 않다.
아직 어린아이들이 있는 가정에서는 ‘이혼 후 부모 역할’에 관한 교육을 꼭 받아야만 이혼이 성립할 수 있다는 조항이 들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의 ‘슬픔’이 ‘분노’가 되어 그들이 아동기를 상실하지 않도록.
첫댓글 '이혼 후 부모 역할' 교육을 받아야만 이혼이 가능하다는 법 좋을 것 같네요.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인 시대를 살고 있네요.
교육, 정말 쉽지 않네요, 내용이 어려운 글인데 술술 읽힙니다.
아이의 ‘슬픔’이 ‘분노’가 되어 그들이 아동기를 상실하지 않도록.
이 문장에서 울컥했습니다.
지금 다독이지 않으면 나중에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발생할 것입니다.
아이의 슬픔이 분노로 바뀌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데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아이를 선도하고자 하는 선생님의 노력이 한눈에 보이네요.
응원합니다.
선생님의 글 속에서 재직 시절 담임선생님들을 힘들게 하던 아이들의 얼굴이 보입니다. 여러차례 회의를 열어 해결책을 찾아가며 마음과 시간을 내던 상담선생님과 협력교사 선생님, 교육복지사며 관리자들까지 진땀을 흘려 품에서 멀어져 가던 아이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아침을 맞던 좋은 기억이 있습니다. 선생님의 노고가 웃음이 되어 돌아오리라 장담합니다.
아이의 상황이 안타깝네요. 선생님의 고민이 깊을 것 같아요. 한 사람만의 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서요. 힘내세요.
부모. 참 무거운 이름입니다.